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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달동네 사랑>에 나타난 사회. 윤리 의식
김명옥(시인)
1.서론
문화의 발달은 인간의 지적능력을 발달시켰고 지적능력의 발달은 의사나 감정전달의 욕구를 가져왔고 이 욕구는 언어의 발달을 가져왔다. 그리고 언어의 발달은 표현과 전달기능의 도구로써 문학작품을 창출했다. 이렇게 창출된 문학작품 속에는 그 시대의 사회상의 모습과 윤리의식이 표출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연구할 때 이와 같은 사회적인 측면과, 윤리적인 측면을 무시하고는 올바른 작품분석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한 작가의 작품 속에는 매우 다양한 현실의 모습이 또한 나타나기 때문에 그의 작품세계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는 것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다양한 목소리로 많은 작품을 양산하는 작가에게서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이것은 청하 성기조에게도 해당되는 말인지도 모른다.
성기조는 1958년 <絶叫>가 청마 유치환에 의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창작의 결과로 시집과 소설, 동화, 수상집 등을 발표하였다. 그의 시속에 나타나는 소재가 자연과 사회 현상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인 문제, 예술과 인간의 심리 등 매우 광범위하여 그의 시세계를 정의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작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어차피 문학이 그 시대와 사회의 다양한 모습이 반영되는 복잡한 현상이라고 한다면, 또, 인간이 사회생활의 산물이듯 문학 역시 언어라는 사회적 산물을 매개로 할 수밖에 없다면 작가와 독자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관계라는 장치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성기조의 다양한 작품 중에서 ‘달동네 주민 신고’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 <달동네 사랑>을 중심으로 그의 문학 속에 나타나는 사회. 윤리의식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이것은 <달동네 사랑>이 민중과 대화하고 있는 중심 테마, 산업사회의 발전으로 소외된 현실공간으로 달동네 주민의 현실적인 체험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2.산업사회와 소외된 현실세계
오늘날, 사회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발전되면서부터 과학문명이 지배하는 후기산업사회로까지 가속화되어 옴에 따라 인간성의 상실과 물신숭배 사상의 팽배로 도덕과 철학이 부재하는 사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서 현대를 상실과 허무와 고갈의 시대로 파악하기도 한다.
미국적 상업주의와 물질만능주의로 치닫고 있는 사회구조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소외된 계층의 현실공간은 다양한 삶의 모습을 양산했고, 부익부, 빈익빈의 모순된 경제 논리 속에서 가진 자에 대한 못 가진 자의 상대적인 박탈감과 상실감으로 인하여 정신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성기조는 문학이라는 그릇을 통해 충실히 그려내고 있다. 특히 <달동네 사랑>은 표제가 말해 주듯이 산업화 시대의 서자인 도시 변두리 달동네의 하층민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억세면서도 건강한 삶의 모습을 휴머니티 넘치는 따뜻하면서도 긍정적인 시각으로 노래하고 있다는 평가와 같이 찬란하고 황홀한 산업사회에 의해 가려진 달동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과 사랑을 담고 있다.
1)고향 상실과 회귀 의식
달동네 사랑에는 61편이나 되는 <달동네 사랑> 연작시, 10여편의 <소쩍새>, 그리고 이 풍진 세상의 3부로 나뉘어져 있다. 그의 모든 시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는 정신은 한결같이 이웃을 연민하고, 또 도시의 변두리에서 옹기종기 모여 가난을 극복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도시 서민의 생활 현실과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려주고 있다.
우리의 사회가 후기 산업사회로 접어들고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이농현상이 두드러지게 되었고 이농현상의 영향으로 도시는 주택, 교통, 환경, 교육 등의 복잡한 문제를 안게 되었다.
농사 짓다가 농약 냄새에 코를 버리고
과수원은 태풍 때문에 낙과가 반이다
소치다 시세 폭락, 강아지 값되고
차라리 개를 키우자니 복날이 며칠인가
세상잡사 모두 잊고
땀흘려 먹고사는 보람
무럭무럭 자라는 새끼들을 보고
훈훈한 핏줄을 확인한다.
<달동네 사랑.22>의 전문
달동네의 시작은 농경사회의 붕괴에서부터 찾아 볼 수 있다. 산업사회의 거대한 물결에 등밀려 치열한 생존경쟁의 마당인 도시로 무작정 상경했고, 도시로 무작정 상경한 이들은 서울의 변두리 지역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집이 몇 채씩 생겨나던 시절이었다. ‘농사짓다가 농약 냄새에 코를 버리고’,‘과수원은 태풍 때문에 낙과’가 되고, 소값은 폭락하여 ‘강아지 값’되어 버린 농촌에서 그들은 삶의 의욕과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 그렇게도 살기 위해 발버둥쳤건만 산업사회라는 거대한 세력은 거대도시와 함께 농촌을 가난하게 만들었고 개발과 선진국화라는 미명아래 문명은 가속적으로 발전하고 가진 자는 더 많은 부를 축적했고 상대적으로 농촌은 더욱 가난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살기 위해 도시로 향했다. 화려한 도시적 풍요와 공동화 현상까지 결과가 예상되는 농촌을 두고 도시로 흘러든 이들이 도시의 변두리에 마련한 어설픈 생활공간이 바로 달동네이다.
달동네는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다. 돈버는 행운을 잡은 일부의 사람들이나 그 주변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에 관심을 가진 사람, 그리고 주체성을 도둑 맞은 사람들을 빼고는 모두 달동네의 주민들이다. 이 동네에는 반장도 통장도 없다. 오로지 성실한 삶과 살점이 튀는 듯한 힘있는 활동이 있을 뿐이다. 오늘 열심히 일을 하지 않으면 내일을 굶게 되니까 어떤 슬픔, 어떤 기쁨이 다가와도 땀 흘려 일하는 도리밖에 없다. 오늘의 힘든 일은 내일의 행복을 약속해 주는 가장 구체적인 보증 수표가 된다. 이를 악물고 땀 흘려 일하자. 그리하여 일한 만큼의 보상을 받아 행복하게 살림을 꾸려 나가자라고 말하듯 몸하나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막벌이 인생이었지만 ‘무럭무럭 자라는 새끼들을 보고 / 훈훈한 핏줄을 확인’하는 행복을 얻었기에 고달픈 달동네의 삶도 넉넉하게 만들 줄 아는 지혜를 그들은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떠나온 고향도 고향이지만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는 유행가의 노랫말처럼 달동네 또한 고향이다.
도시의 소음과 못 믿을 언어를 버리고
헛된 꿈을 버리고
우리의 고향, 달동네로 가야 한다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인정
복닥거리는 말싸움
넉넉지 못한 나눔이 있는 달동네
그곳으로 가야 한다
눈으로 사랑하고
가슴으로 얼싸안는
달동네의 인정을 퍼 올리러
우리는 가야 한다
<달동네 사랑.10>의 일부
산업사회에서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해 버린 인간은 점점 소외되어 갈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용케도 참고 견디어 냈다. ‘도시의 소음과 못 믿을 언어’,‘헛된 꿈’은 모두 버리고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일 줄 아는 긍정적인 삶 속에서 새로운 고향, 정붙이고 살아가는 ‘달동네’로 가자고 외치고 있다. 그 달동네에는 ‘넉넉지 못한 나눔’이 있고, ‘눈으로 사랑하고’‘가슴으로 얼싸 안는’,‘인정’이 있는 공간이다. ‘인정을 퍼 올리러’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귀가하는 고달픈 달동네의 주인공인 도시의 가난한 노동자들끼리 어깨를 부비고 등붙이고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고향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삶이 고달플수록, 현실에 악착같이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새록새록 피어오르는 것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고향은 항상 그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날마다 만나는 너의 얼굴
나는 항상 네 가슴속에 들어앉아
눈부신 햇살과 어두운 그림자가
내 마음에 엇갈리고
너를 만나면 내 마음은 평화
너를 떠나면 내 마음은 슬픈 폭포가 된다.
<고향.1>의 전문
산업사회 속에서 인간의 존재가치가 상실되고 고도성장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래도 ‘고향’은 항상 ‘눈부신 햇살’과 ‘평화’로 다가오고 있었지만 고향의 부재 속에서 고향은 ‘슬픈 폭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성기조는 달동네라는 어두운 현실을 시로 표현했지만 그 분위기는 밝고 따스하고 사랑이 가득 넘쳐흐른다. 어두운 현실을 고발하거나 폭로하지 않고 은근하게 덮어준다. 빈민의 삶을 묘사하되 건강의 미학이 바탕에 깔려 있고 사회모순을 고발하기보다 넌즈시 암시함으로써 고쳐지기를 바란다. 그의 시는 불을 노래하되, 불같이 뜨겁지 않고, 얼음을 노래하되 얼음같이 차지 않고, 악을 노래하되 선량함이 깃들어 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시적 휴머니즘이다. 그의 시에는 농촌에서 살 수 없어 도시로 이주한 가난한 도시 노동자의 고향상실 의식과 언제나 눈부신 햇살과 마음의 평화를 안겨주는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회귀의식이 담겨져 있다.
2).경제적 궁핍과 정신적 상실의식
그는 배고픔을 참고 이기며 넘던 보릿고개는 70년대에 없어졌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는 더 엄청난 정신의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고 허덕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고도성장이라는 경제적인 풍요 앞에서 소외된 많은 사람들의 배고픔을 누가 알아주며, 하루가 다르게 뻗어 올라가는 고층건물에 가려진 또 하나의 얼굴을 누가 관심인들 가져 주며, 범람하는 외래문화 속에서 정신적인 안주 처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 시대의 정신적인 가난을 누가 달래주겠는가.
겉보기에는 상상도 못할 발전을 이룩했다고 마음놓고 말하지만 물질에 가려진 어두운 구석이나 외래문화에 밀려난 고독한 우리의 정신은 이제 참으로 어려운 국면에 도달하여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있다.
모두 배가 고프다. 극소수의 사람들을 빼 놓고는 고픈 배를 쥐고 울상을 짓고 살아간다. 이들에게 노래를 만들어 주고 시를 지어 주어 읽혀야 한다. 그리하여 배가 고파도, 정신적으로 갈증이 다가와도, 그때그때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안식을 얻게 만들어야 한다. 그는 오늘의 정신적인 빈궁을 보릿고개라고 진단하고 있다. 가을에 장만했던 양식은 이른봄에 바닥이 나고 보리 수확은 아직도 멀었는데 긴긴 봄날의 춘궁기를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넘겨야 하는 보릿고개는 육체적인 빈곤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빈곤이요 정신적인 황폐화인 것이다. 과학기술을 기초로한 물질적 발전과 경제적 풍요는 그의 말대로 적어도 우리의 경우 70년대 이후에는 보릿고개가 없어졌다. 이른바 고도성장, G N P 급등 등 풍요의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문명의 발전이나 경제적 풍요에 비례해서 행복지수는 상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강하여 정신의 황폐화를 가져왔다. 따라서 정신적인 풍요가 보장되지 않는 한 가난은 항상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어쩔 것인가
산꼭대기 달동네에 산다고
날 어쩔 것인가
아파트 열쇠도
자동차 열쇠도
금고 열쇠도 없는데
날 어쩔 것인가
있는 것은 고운 마음
토실한 몸매
일할 만한 힘
죽도록 사랑하는 정열
그것뿐인데
날 어쩔 것인가
<달동네 사랑.9>의 전문
달동네는 산업사회의 뒷전에 밀려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공간이다. 가진 자들이나, 지배자들의 정신적 빈곤으로 방치되는 곳이긴 하지만 ‘어쩔 것인가’라고 자신만만하게 외칠 수 있는 것은 외면적으로는 가난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건강하고 풍요로운 인간다운 애정이 넘치는 곳이 바로 달동네에는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열쇠’도, ‘자동차 열쇠’도, ‘금고 열쇠’도 없지만 있는 것은 ‘고운 마음’, ‘토실한 몸매’, ‘일할 만한 힘’,‘ 뜨거운 정열’이 있기에 오히려 여유 있는 달동네의 모습이다. 고루거각, 높은 호화주택에 살면서도 철거대상자들의 유일한 밑천인 ‘딱지’에까지 눈독을 들이고 싹쓸이를 연출하는 망국병전염자들 에 비하여 경제적인 궁핍은 벗어날 수 없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누구보다 풍요로웠다.
언제나 낫브게 먹고
한 번도 배불러 본 적이 없다
비단 옷 입는 것은
꿈에서나 본 일
한 집에 세 식구, 세 들어 살아도
악다구니 쓰며 싸우지 않았다
<달동네 사랑.8>의 전문
화려한 주택이 주는 풍요로움에 밀린 그들은 산비탈에 판잣집을 짓고 살수밖에 없다. 그곳은 시궁창 냄새가 코를 찌르고, 연탄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는 그런 곳이다. 누렇게 바랜 창호지의 달동네는 가진 자나 지배자들이 살고 있는 황홀한 바깥 세상에서 보면 도시의 어두운 곳에서 자생하는 독버섯처럼 여겨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오히려 달동네가 마음은 언제나 넉넉하게 생기 있고 희망이 있는 양지로 표현되고 있다. ‘한 번도 배불러 본 적이 없’고, ‘비단 옷’은 꿈에서나 본 일이고, 한 집에 세 식구가 세 들어 살아도 ‘싸우지 않았다’. 이와 같이 달동네의 생활은 좁은 공간 속에서 서로 부딪히면서 살아가지만 서로를 위로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에 악다구니 쓰고 싸울 일이 없다.
달동네는 고향을 등진 사람들이 마음 붙이고 정붙이고 살아가는 곳이기에 달동네 그 자체가 그들에게는 또 다른 고향이다. 비록 문명과 물질이 풍요로운 도심지는 아닐지라도 비굴하거나 양심을 속이거나 크게 욕심을 내지 않는다. 염치를 내세워 그들은 산다. 그들은 지난날 농촌에서 그랬듯이 천성이 순박하고 소박한 것에 자족하며 모든 것을 하늘의 뜻으로 돌리며 열심히 사는 것이 달동네의 철학이고 윤리다. 물론 달동네라고 해서 왜 싸움이 없겠는가마는 그 자잘한 싸움이 끈끈한 유대관계를 더욱 돈독히 다져주기 때문이다.
바른 달동네의 인정과는 달리 바깥 세상은 투기와 사기, 이권개입과 직권남용, 정경유착과 착취, 매점매석과 부정축재 등 온갖 비리와 파렴치한 불법이 반도덕적 형태로 혼탁한 세상이다. 즉 달동네가 ‘인간’ 중심이라면 ‘바깥’의 그들은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는 대가로 극심한 정신적인 가난과 의식의 황폐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3)굴절된 현실과 풍자정신
무소불능의 부당한 권력이 마구잡이로 남용되던 5공 시절은 한 나라의 통치자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그는 자신의 자전적 체험을 통해서 담담하게 시적 언어로 서술하고 있다.
살던 집과 경영하던 수영장이 5공정권에 의하여 그 자리에 단군전을 짓는다고 헐릴 때 나는 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이 나라에서 국제규격을 갖춘 체육시설로 일반대중에게 이용토록 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욕심 많은 정치인의 허상을 개국의 이미지로 통용되는 단군을 앞세워 실상으로 바꿔 놓으려고 권력이 앞장서 개인을 못살게 군 일을 왜 내가 당하여야 하는가....(중략)... 특출한 몇몇 사람이 사회를 이끌고 국가를 이끄는 것이 아니고 평범한 상식인, 제 할 일을 다 해 나가는 꾸준한 노력자가 나라를 만든다는 보통 사람의 사회는 엘리트 집단이 계획에 의한 통치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시대에 많은 생각을 갖게 했고 몇 년 후 정치계에서 큰 바람을 일으켰다. 특권층에 신물난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썼지만 끝내 보통 사람은 권력을 쥔 사람으로 되돌아갔다.
어쩔거나, 네게 마련해 줄
금반지는 끝내 금방에서 낮잠 자고 있다
크로바 꽃잎으로 만든 풀반지로 대신하자
그게 우리들의 행운, 우리의 행복을 뜻한다
없으면 어떤가
사타구니 가리고 삼시 세 때, 라면을 먹어도
떳떳하게 죄 안 지으면 되는 일
남의 돈 꿀꺽하고, 나를 못살게 군 廉시장이 형무소에 갔는데
그리고 全씨는 백담사에서 백일 천도를 하는데
우리는 그보다 떳떳하다
한 평생 살면서 새끼 나서 기르면 되는 일을
탐욕에 눈 가려 소경되면 뭘 해
<달동네 사랑.31>의 일부
그는 지식인으로서, 가장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의지를 토로하는 동시에 옳지 못한 ‘굴절된 현실의 파행적 비리와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비록 네게 줄 금반지 대신 ‘크로바 꽃잎으로 만든 풀반지’로 사랑을 대신했지만 행복했다. ‘남의 돈 꿀꺽’하여 ‘형무소’로 ‘백담사’로 간 탐욕스런 사람들에 비해, 비록 ‘삼시 세 때 라면을 먹’을 지언정 우리는 그들보다 ‘떳떳’했다. 탐욕의 불길에 휩쓸려 눈먼 소경이 될 바에야 ‘없으면 어떤가’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永乙 선거가 보름 동안
돈 뿌리고 경쟁이라는데
말 잘하는 통장 부인이 이름을 적어 가 따라 나섰더니
수건 한 장에 돈 만원을 받았다.
...(중략)...
법을 지키는 것
에라, 투표날은 낮잠이나 잘까
잠 속에서 민주주의가 어이어이 곡을 하다
국회 의사당으로 들어갔다.
<달동네 사랑.37>의 일부
법을 만드는 주역인 국회의원이 되려는 자들이 오히려 탈법과 불법, 온갖 권모술수의 부정부패를 자행하는 선거를 보면서 ‘투표날은 낮잠이나 잘까’라고 자조 섞인 독백을 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지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듯, 불법과 탈법이 판을 치는 속에서 민주주의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선거 때 마다 연례 행사처럼 따라다니는 공명선거의 구호 뒤의 또 하나의 얼굴인 부정부패의 병폐를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3. 정신적 우위를 향한 발걸음
흔히들 현대를 도덕과 양심이 실종된 사회로 진단하기도 한다. 온갖 범죄가 판을 치는 속에 휴지처럼 버려진 양심과 도덕이 신문의 사회면을 온통 뒤덮고 있는 것이 당시의 현실이기도 하다. 강력범죄, 향락문화, 퇴폐 서비스업, 사치성 외유, 청소년 비행 및 성범죄의 급증 등 불안한 사회를 반영이나 하듯 정부에서는 각종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도덕성 회복을 한 목소리로 높이고 있다.
그는 이와 같은 현실을 치유하기 위해 달동네라는 공간을 설정하고 달동네 사람들의 생활과 의식을 통해서 이 시대의 병리를 진단하고 치유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달동네 서민들의 애환이 나타나지만 달동네는 우울과 절망과 좌절의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따뜻한 사람끼리 모여서 살아가는 공간으로 역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물론 그의 시의 전편에는 달동네를 만든 이 사회의 모순이 나타나 있지만 그는 이러한 모순을 그저 한탄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건강한 정신과 도덕과 윤리의식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물론 문학작품이 지나치게 사회의식과 윤리의식을 강조한다는 것은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창출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오늘날과 같이 혼탁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누군가는 달동네 서민들의 애환에 귀를 기울려 주어야만 하고 그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어야만 한다. 그래서 이 사회의 병리를 진단하고 그에 대한 처방을 정당하게 내렸을 때 이 사회는 음지에도 따뜻한 햇살이 내리 쬘 수 있다는 것을, 가난하기에 그리고 모두가 서러운 삶을 살아가기에 더욱 ‘사랑’이 값지고 단단하고 감동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은 달동네의 사랑학의 출발이 이 사회의 병리를 치료하는 첩경임을 그의 시 전편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
1) 인간에 대한 사랑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한 사랑 즉 육친, 아내, 자식에 대한 사랑 이것을 실천해 나갈 때 이 사회는 바르게 설 수 있다. 달동네 사람들의 삶의 질을 바꿔놓은 것도 바로 사랑이다. 그리고 그가 역점을 두고 있는 것도 샘물처럼 끝없이 솟아나는 사랑, 즉 곰삭은 부부의 일상적인 사랑이다.
먹을 것 없어 항상 낫브게 먹어도
마음은 언제나 푼푼하다
옥수수 한 자루 감자 한 개를 갈라 먹어도
네 몫은 소중하구나
지지리 못나 손가락질 받아도
나는 네가 있어야 사람이 된다.
<달동네 사랑.40>의 전문
사람이 의식주가 충분하지 못하면 예의를 챙기지 못한다고 하지만 달동네의 사람들은 가난하여도 ‘마음은 언제나 푼푼하였다.’ 콩 한 개도 나누어 먹었던 우리의 선조들의 삶과 같이 옥수수 한 개를 갈라먹는 가난한 삶일지라도 ‘나는 네가 있어야 사람이 된다’는 부부의 믿음이야말로 그들의 가장 소중한 재산이었던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의지할 때 이 세상은 믿음과 이해와 사랑으로 충만한 공간이 될 수 있었다.
액자 속에 정지된 당신의 사진은
흔들리지 않는데
당신은 봄눈 녹듯 살금살금 눈웃음치고
꽃봉오리 벙글듯 입가에
미소를 담는다
<달동네 사랑.45>의 일부
부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얼굴만 보고도, 눈동자만 보고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을 함께 살면서 서로의 일거수 일투족을 훤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부는 서로 닮는다고 한다. ‘액자 속에 들어 있는 사진’처럼 말한 마디 하지 않는 ‘고요한 정지 상태’인데도 ‘봄눈 녹듯 살금살금 눈웃음치고’ ‘입가에/ 미소를 담’는 것은 곰삭을 대로 곰삭은 부부의 끈끈한 애정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 주는 동시에 가정과 사회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의 평화는 바로 부부의 믿음이 전제된 사랑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해 준다.
아버지가 남기신 혈육
9남매의 얼굴에 몸에
아버지는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내 가슴 안에 환하게 웃는
아버지의 모습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버지
숨은 끊어져도 내 가슴에 살아 있는 아버지의 숨은
오래도록 이 땅에 살아 있습니다
내 몸에 살아 숨쉽니다
아버지
<임종>의 일부
죽음은 언제나 가슴 아픈 일이다. 특히 부모와 자식간은 더욱 고통스런 일이다. 그래서 天崩之嘆이라고 한다. 우리는 흔히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부 사이에 和合 한다고 말한다. 이 세상에 나를 존재하게 해 주셨던 아버지, 비록 숨은 끊어져도 아버지의 모습은 ‘내 가슴 안에 환하게 웃는’모습으로 자리잡고, 아버지의 숨은 끊어졌어도 ‘내 가슴에 살아있는’ 그래서 ‘오래도록 이 땅에 살아’있고 ‘내 몸에 살아 숨쉰’다는 천륜간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다. 가정이 파괴되면 사회가 파괴되고 가정이 흔들리면 사회가 흔들린다. 가정은 부부가 이룩해 내는 가장 아름다운 삶의 터전이요, 자식들의 교육장이며 어버이와 자식간의 윤리와 질서 그리고 예의, 형제간의 우애와 사랑, 보모에 대한 효도와 가족 구성원간의 원만한 조화와 화해를 이루어 내는 지혜를 배우고 가르치는 거룩한 공간이다. 그래서 가정이라는 공간 속에서 그 구성원들이 만들어 내는 사랑은 도덕과 가치관이 부재하는 시대에 도덕성과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확실한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2) 경천사상과 연민의 정
민주주의도 좋고 자유경쟁도 좋고 고도성장도 좋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서로 돕고 사랑하고 인정을 나누는 사회가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 경제가 유례없는 발전을 했다고 하지만 발전한 만큼 그 그늘에 묻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불행한 일은 수없이 많다. 그렇다고 무작정 인정이 메말라 가고 사회풍조가 야박해지고 있음을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호우주의보가 내리고
물난리가 나서
피해액이 70억이라는데
비가 그치자
한밤중에 피울음 운다
소쩍새
소쩍새야 왜 우느냐
피해가 많아서
비가 많이 와서
소쩍 소쩍 소쩍
내 귀에 박히는 네 울음소리가
내 가슴을 미어지게 만든다
<소쩍새.2>의 일부
매년 여름철이면 연례행사처럼 치르는 태풍에 의한 피해는 심각하다. 비록 직접 농사를 짓는 농부는 아니라 하더라도 홍수와 태풍의 피해는 가슴이 아프다. 하늘에 구멍이 났는가 주먹질을 해 보기도 하고,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해 보지만 속시원한 해결책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귀다툼을 하고 못 된 짓을 떡 먹듯 해대니 하느님이 노하여 비로 응징하는 것이라고 자위도 해보지만 어느 것 하나 시원하지 않다. 그러니 자연물인 소쩍새까지도 비가 그치자 그 엄청난 피해에 놀라 ‘한밤중에 피울음을 우’는데 하물며 인간의 도리로 어찌 마음 아프지 않겠는가. 그런 마음을 알기나 하는 것처럼 ‘피울음으로 내게 알려’ 주는 소쩍새 소리에 가슴만 미어진다. ‘사랑은 함께 하면 배가되고 아픔은 함께 하면 반이 된다’는 말처럼 이웃의 아픔을 공유하고 나누는 사랑의 정신이야말로 메말라만 가는 이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인 것이다.
가진 것 없는데 마음은 곱다
줄 것은 없는데 생각은 많다
아침부터 부지런 떨어도
할 일이 없다
봉투도 부치고 꽃도 만들지만
받는 것은 하루에 삼천원
이 돈으로 쉐타를 샀다.
... (중략)...
내일 받는 돈으로 양말을 사자
발가락이 시려 동동거리는
네 발을 감싸줄 양말을 사주마
아무 것도 내가 가질 수 없는 마음
그것이 사랑인가 보다
<달동네 사랑.17>의 일부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어려운 이웃들이 있다. 국제수지 흑자를 노래하고 무역대국임을 자랑하면서 절대빈곤층이 아직도 우리 주위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일방통행식 경제성장만을 추구하다가 소득의 공정분배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봉투 붙이기’,‘ 꽃 만들기’를 한 댓가로 받은 것은 단돈 3천원, 더 좋고 더 훌륭한 것을 선물하고 싶지만 그들은 가진 것이 없다. 오직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고운 ‘마음’과 많은‘ 생각’뿐이다. 따뜻한 쉐타를 입고 즐거워할 애인을 생각하면서 가난한 애인은 가난한 애인을 위하여 쉐타를 샀다. 그리고 내일 일해서 받을 돈으로 따뜻한 ‘양말’을 사기로 약속을 한다. 그 양말이 발가락이 시려 동동거리는 애인을 포근하게 감싸줄 것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것이 바로 ‘사랑인가 보다.’
‘광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가진 자는 덜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를 찾아서 이 사회의 총체적인 불안을 헤쳐나가야 한다.
3)安分知足의 삶 추구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언제나 욕심과 욕망으로 뭉쳐져 있는 존재다. 그러나 그 욕심과 욕망이 허상임을 아는 사람은 몇 없다. 그래서 부처님은 인간의 육신은 고름이 흐르는 빈 껍질이라고 하였다.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달을 쳐다보았다
소주 한 잔 마시고
별을 쳐다보았다
콜라 한 잔 마시고
구름을 쳐다보았다
냉수 한 사발 마시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
냉수 한 사발 마시고
하늘을 쳐다보았더니
달도
별도
구름도
몽땅 하늘 안에 들어 있었다.
<달동네 사랑.5>의 전문
풍요와 빈곤의 넘나듦, 정신적 빈곤과 물질적 빈곤의 넘나듦처럼 가진 자와 가난한 자들이 유리창의 앞뒷면처럼 공생 공존하는 세상 그것이 달동네의 현실이다.
삶에 지치거나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울분과 분노를 달래기 위해 한 사발의 막걸리를 마시고, 한잔의 소주를 마시고, 그리고 그 술기운을 빌려 쳐다본 하늘.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만’,‘냉수 한 사발 마시고/ 하늘을 쳐다보았더니 / 달도/ 별도/ 구름도/ 몽땅 하늘 안에 들어 있’음은 바로 냉수를 마시고 맑은 맨 정신으로 깨달은 세상사는 이치였다. 빈부의 차이도 사랑도 모두 같은 하늘같은 세상의 일이었으며 분수를 알고 살아가는 정직한 삶의 넉넉한 마음속에서는 가난, 풍요, 사랑, 미움... 그 모든 것들이 한가지였다.
일없이 늙는 게 행복하다고
한가한 생각, 푼푼한 마음
넉넉한 지혜가 있어야 한다고
이 말을 엿들은 멧새 한 마리
쪼로롱, 그게 아니라고
푸드득 날개를 펴
저 멀리 날아갔다
<달동네 사랑.56>의 일부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게 마련이다. 세월을 거부하기보다는 순응하는 자세는 아름답다. 늙음을 행복으로 느낄 줄 아는 생은 그만큼 주어진 상황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의 여유있는자세이다. 늙어감에 대하여, 행복에 대하여, 넉넉한 지혜에 대하여 깨달은 경지를 자연물인 멧새의 행동에 얹어 한가한 여유를 보여주고 있는 것도 정신적으로 넉넉한 달동네 사람들만의 특권이었다.
4. 결론
지금까지 성기조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사회. 윤리의식을 살펴보았다. 물론 그의 다양한 작품 속에서 한 가지 방법론만을 적용하여 그의 시세계를 알아낸다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이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그의 작품 <달동네 사랑>을 중심으로 그의 시에 나타나는 사회. 윤리의식을 파악해 보았다.
첫째, 달동네는 화려한 도시의 변두리에 자리잡은 가난한 사람들의 어설픈 생활공간이며, ‘시궁창 냄새’,‘비탈길’,‘깨어진 전구’,‘단칸 방’ 등으로 표현되는 어둡고 침울한 공간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현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들이다. 비록 우리 사회가 주는 각종 병폐와 산업사회 속에서 선진국화와 개발이라는 명분에 밀려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자리잡고 살아가는 것이지만 그것은 영원한 상실이 아닌 언젠가는 돌아가야 하는 회귀공간이다.
둘째, 도시의 변두리에 모여 사는 이들은 비록 경제적으로는 궁핍했지만 정신적으로는 풍요로웠다. 그러나 화려한 경제적인 풍요를 자랑하는 바깥 세상은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정신적으로는 되레 궁핍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달동네의 인정과 바깥 세상의 삭막함을 대비시켜 경제적인 궁핍보다 정신적인 궁핍이 더욱 심각한 문제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셋째,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저지르는 온갖 부정과 비리를 보면서 이 사회의 지배자와 가진 자들의 모순을 풍자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에는 가난한 달동네 사람들의 절망과 좌절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비록 밑바닥 인생이지만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꿈을 잡으려는 몸부림과 인간의 본능적인 사랑의 바람직한 모습만이 있다. 또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이해하고 포용하는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새가 날아오는 것을 보면 행복하다
하늘에서 푸드득대며 날개를 펴는 것은
무한한 자유, 멋진 비상이다
새가 작은 알을 깨고 나와
숨쉬고 노래하고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나는 것은 엄청난 행복이다
창조는 틀을 깨야 이룩되는 것
작은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사랑은 창조적 힘이 있어야 한다
하늘을 나는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사랑은 자유
사랑은 비상
사랑은 창조
사랑은 이해
사랑은 협동
사랑은 믿음
사랑은 화해
사랑은 이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알이다
알은 암컷을 통해 산란되고 부화되듯
사랑은 돌고 도는 것
사랑은 굴렁쇠다
<달동네 사랑.60>의 전문
‘하늘을 나는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창조’는 껍질을 깨는 아픔 속에는 이룩된다. 그리고 ‘작은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사랑 또한 ‘창조적 힘’이 있어야 한다. 사랑 속에는 ‘자유’, ‘비상’, ‘창조’, ‘이해’, ‘협동’, ‘믿음’, ‘화해’가 들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이 인간성이 상실되고 도덕성이 타락한 후기 산업사회에서 인류가 살아남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은 오직 넘치는 사랑뿐임을 재확인시켜 주면서 우리 사회의 영원한 과제가 사랑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 2023년 10월 16일 우리 곁을 떠나 가신 성기조 교수님(전 국제펜한국본부회장, 한국교원대명예교수)을 추모하며. . . 인연 따라 모인 것은 인연 따라 흩어지니 태어남도 인연이요 돌아감도 인연인 걸 그 무엇을 애착하고 그 무엇을 슬퍼하겠습니까. 교수님, 생사고해 벗어나서 해탈열반 성취하사 극락왕생하옵소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제자 김명옥합장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