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부 능선
홍 경 화
저 아래 구부러진 산비탈 아래로 자그마한 그녀의 모습이 아스라이 멀어지고 있었다. 내내 무표정하여 애달프던 그 얼굴이 기억난다. 그럼에도 왠지 정 깊은 느낌이 들던 얼굴. 푸석한 머리카락은 날아든 돌가루로 희뿌옇게 덮이고 구릿빛 피부에 얇은 살가죽, 검고 커다란 눈동자를 수줍은 듯 굴리며 바라보던 모습.
그녀를 만난 것은, 비행기의 결항으로 포카라에서 카트만두까지 버스를 타고 넘던 중이었다. 주변의 풍경은 마치 첩첩산중 강원도를 지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흡사했다.
7부 능선쯤 되는 산허리에 구불텅구불텅 험난한 길을 덜컹거리는 낡은 버스를 타고 달리기도 지쳐 좀 쉬어가려고 차에서 내렸을 때, 길가 돌무더기 앞에서 그녀는 망치를 내리치며 돌멩이를 깨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다가가 보니 돌을 자디잘게 부스는 작업이었다. 만일 비행기를 타고 하늘길로 손쉽게 이동했더라면 못 만났을 그녀. 흙먼지 날리는 땅의 길을 달리다가 애틋한 인생을 만날 수 있었던 거다.
장갑도 끼지 않은 그녀의 맨손은 밀가루를 바른 양 뽀얗게 분칠을 했고 돌멩이를 붙잡는 왼손 엄지와 검지에만 누런 헝겊쪼가리로 친친 동여매었다. 내리치는 망치에 두들겨 맞기도 했겠지. 손등에 난 어렴풋한 멍 자국이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돌을 잘게 부스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작업 속에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낼지 초점 흐릿한 눈동자가 참 순해 보였다.
산비탈 아래로는, 그녀의 처지와는 아랑곳없이 맑은 옥빛 강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돌을 깨다 이따금 쳐다볼 그녀의 눈길에도 그 강줄기가 아름답게 보일지 의문이었지만 멋진 풍광이었다. 좀 더 아래쪽의, 물줄기가 말라버린 강 하구로 눈길을 돌리니, 강바닥에서 흙 속에 파묻힌 돌덩이를 캐고 있는 남자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였다. 그 옆으로는 그들이 캐 놓은 큼지막한 돌덩이가 여기저기 뒹굴었다. 남자들은 돌을 캐고 여자들은 캐온 돌멩이를 잘게 부수는, 일의 작업이 나뉘어 있는 모양이었다.
메마르고 거친 그녀의 손을 바라본 내 손은 어느새 가방을 뒤적거려 목장갑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표정으로 커다란 눈을 껌뻑이며 쭈볏쭈볏 장갑을 받아 들었다. 장갑을 건네주는 상대방을 이해 못하겠다는 멀뚱한 표정이랄까, 아낙의 태도 이면에서 한줄기 숨겨진 고난이 보였다. 작업할 때 사용하는 장갑이라는 걸 모르는 눈치였다. 아니면 알고도 그러는 건지. 커다란 눈은 검고 아름답건만 그녀가 웃지 않는 건 처한 환경에서 형성된 그녀의 성격인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고로 주변 환경은 그 사람의 성격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산악지대 깎아지른 비탈의 집에서 나와, 날마다 쌓인 돌무더기 앞에 나앉아야 한다면 어떤 새로운 기대를 품고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반짝일 수 있을까. 자고 나면 변함없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을 집채만 한 돌무더기뿐인 것을.
하늘에 드높이 떠 있던 산, 은빛 히말라야를 바라보고는 탄성이 절로 뿜어지더니 산중턱 돌가루를 허옇게 뒤집어쓴 그녀의 흰머리를 보고서는 탄식이 삼켜졌다. 6,70년대 우리가 그랬듯이 열악한 삶을 마주칠 줄이야. 그때 우리는 사는 데 큰 불편을 모르고 지난 것처럼 그들도 지금 그럴 것이라 짐작만 할뿐이다.
어쨌거나, 무덤 같은 돌무더기는 산등성이 비탈을 따라 군데군데 쌓여 있었고 둥그런 무덤 하나씩을 지키듯 아낙들은 그 앞에 꿈쩍 않고 앉아 돌 깨는 작업에 충실했다. 아낙의 손을 거친, 그 돌로 지은 집은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꿈쩍 않고 자리를 지키는 그녀처럼.
이방인을 구경하러 동네 아이들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가방 안에 비상식량으로 하나 남은 초콜릿 생각이 났다.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섣부른 행동은 아닌지 망설여졌다. 생글거리는 검고 초롱한 눈망울로 아이들의 표정은 생생히 살아 뭔가를 요구했다. 막막한 표정의 아낙과는 달랐다.
이 다음에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처럼 돌무더기 앞에 앉아있지는 않겠지. 이방인의 희망사항이었지만 뭔가 선택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기를 바랐다. 비록 얼굴에는 땟물이 흐르고 낡고 짧아진 소맷부리는 해져서 너덜거렸지만 아이들의 눈매에는 남다른 의지가, 개척의 의지가 엿보였다. 지구촌 어느 곳에서나 아이들은 기대가 되는 유일한 희망인 듯했다.
참을 수 없어 넓적한 초콜릿 한 개를 건네주었더니 받은 아이는 그것을 세 조각으로 쪼개 골고루 한 조각씩 나눠 먹는다. 손을 뻗어 선량한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궁금해서 이름을 물어보았다. 나이도 물어보았다. 열 살, 쁘러딥. 아홉 살, 밍마. 열한 살, 라나. 수줍은 듯하지만 쾌활한 목소리가 명쾌하게 날아왔다.
시간이 흘렀다. 쪼개진 것들을 쌓아 놓은 돌무더기가 한 뼘씩 넓어지고 쪼개야 할 것들의 돌무더기가 그 만큼씩 줄어들고 있었다. 문득 아이들에 대한 기대치가 한 뼘씩 높아지고 아낙의 버거운 생의 무게가 그 만큼씩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은 흘러가면서 변화를, 크고 작은 많은 변화를 가져다준다. 주어진 일을 묵묵히 이루어내는 아낙의 자태에는, 자라면서 누누이 보아온 우리의 어머니 모습이 투영되었다. 겉으로는 메마른 표정을 짓고는 있지만 히말라야 아낙의 가슴속에는 대리 희망을 옹달샘처럼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무덤만 한 커다란 돌무더기와 함께 아낙은 지금 고된 7부 능선을 묵묵히 넘고있는 중이다.
그 옛날 우리 어머니의 돌을 쪼는 인내를 바탕으로 하여 성장한 우리가, 지금 여기서 네팔을 바라보고 있듯이 훗날 저 아이들도 다른 세계를 둘러보러 여행을 떠날 때, 그때 밍마나 쁘러딥의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올 것이다. 우리들 성장에는 어머니의 인내가 세상과 관계하는 중요한 밑거름이었다고.
그날 저녁, 동네의 선술집에서 막걸리 비슷한 맛인 전통주 퉁바로 마른 목을 적시고 나오다가 붉어진 눈으로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멀리로 별이 반짝거렸다. 아름다웠다. 별만 보면 마음이 들떠 나도 모르게 와, 별이다 라고 외쳤을 때 일행 중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별이 아니네요. 7부 능선에 위치한 산비탈의 마을 불빛이네요.”
별빛이 아니고 마을이라고? 보기에는 캄캄한 하늘 높이 뜬 별빛같이 황홀한데, 거기 또한 사람이 웅크려 사는 동네의 불빛이었던 거다.
7부 능선, 아름답기도 하고 험난하기도 한 저곳은 결코 별세계가 아니다. 때론 힘들고 지치더라도 내일의 희망을 일궈낼 수 있는 곳이기도 한 생의 7부 능선이다.
히말라야가 보이는 네팔의 산중턱에서 그때 나는 잠시 우리의 지난날을 보는 듯 애틋하고 친근한 마음이 되어 아낙과 초롱초롱한 아이들을 만나고 있었다. 기뻤건 슬펐건 간에 지나고 나면 누구에게나 그것은 향수처럼 은근하고 애틋한 것인가 보다.
첫댓글 멋진 여행수필
앉아서 즐감합니다
리얼하게 잘 그려졌습니다. 따스한 홍선생님. 심성이 잘 읽힙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아들내와 오야동에서 저녁 식사하고 이제 봅니다. 고맙습니다...
글을 따라 풍경을 상상하며 만났던 여인의 눈망울을 바라봅니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봤던 여인의 눈을 생각하면서요.
잘 묘사된 글에서 함께 바라보고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였습니다.
클로즙된 정밀성이 기행문의 생명인듯, 현장에서 직접 보고 체험한 일들이 리얼하게 보입니다.
네팔이었나요? 5,60년대 우리네 삶을 소환해봅니다.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들의 지난했던 고단한 삶.사방공사 하느라 아낙들은잘게 다진 돌무더기를 이고,남정네들은 지게를 지고 신작로에 쏟아붓던 그때 그시절. 채석장 발파소리를 듣는 건 낮선 풍경이 아니었지요. 세밀한 시선 처리와 훌륭한 필치에 박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