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빛
거리에 나뒹구는 햇살이 아쉬운 듯 버스가 종점에서 빈 차로 출발하려는 그때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오르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는데요
"어서 오세요… 두 분 오늘 어디 가시나 봅니다?"
"우리 할멈 드라이버 좀 시켜주려고…"
"하하…가시는 데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
그렇게
나뒹구는 햇살을 안고 정류장 마디마디를 건너가던 기사님은 타고 내리는 사람들보다 등 뒤에 앉아 주고받는 노부부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계셨는데요
"임자… 저기가 63빌딩이여"
"63층이면 하늘에 닿겠네요"
"그럼….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이지 그리고 저기 푸른 물결 좀 봐"
"이 강 냄새가 한강에서 불어오는 거라는 거죠?"
"저기 좀 봐.. 곳곳에 차들이 건너다닐 수 있게 다리들이 촘촘히 놓여있잖아"
바깥 구경이 처음이라는 듯 차창 틈으로 밀려오는 강 내음
햇살 한 바가지를 드신 듯 거리의 풍경을 보며 주고받던 노부부의 이야기가 어둠 사이로 덮어져 가고 있었는데요
"어르신…. 이제 한 정거장만 더 가면 종점입니다"
함께하고 있다는 힘 하나만으로 밤 별들로 수놓아진 거리의 이곳저곳을 아쉬운 듯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이제 종점이에요 "
할아버지는 기사님의 말에
행복으로 가는 길은 아직은 멀었다는 얼굴을 먼 호흡 긴 한숨으로 지워내더니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탈 때의 그때처럼 내리고 있었습니다
"기사님 덕분에 오늘 우리 노부부가 행복했다오"
"저도 두 분 덕분에 오늘 운전이 즐거웠습니다"
살가운 인사를 마친 노부부가 녹슬고 휘어진 두 다리로 멀어질 때까지
라이트 불빛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던 버스 기사님은 알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를...
그리고
라이트 불빛이 수놓아진 길을 따라 걸어 나간 노부부의 발자국마다 이런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오늘이 58번째 결혼기념일이라고…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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