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의 마음으로 꼴찌로 내려가 사랑으로 돌보는 것 >
아지트에서 만난 친구 이야기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 그 친구는 고1이었는데,
어린 시절 아버지는 가정을 버리고 도망쳤고
어머니는 심각한 조현병 환자였습니다.
그리고 나이 차가 많은 하나뿐인 친오빠는
더 이상 어머니를 못 돌보겠다며 집을 나갔습니다.
이 친구와 상담을 하면서 듣게 된
잊혀지지 않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태어나서 가족끼리 외식을 해본 적도, 바다를 가본 적도
단 한번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생활비를 매월 지원해 주는 명목으로
아지트에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오라고 했습니다.
이 친구가 오는 날이면 모든 선생님과 저는 한가족이 되어
그 친구와 외식을 했습니다.
물론 1인 식비 예산에 제한을 두지 않고,
메뉴는 이 친구가 정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국, 영, 수를 더 공부해야 대학을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제가 6년 이상 사목했던 대학교 사목부에서 만났던 친구들을 직접 섭외했습니다.
상황을 설명하고 이 친구를 위해
최대한 오랫동안 과외와 멘토링을 해줄 수 있도록 연결해 주었습니다.
그 무렵이 친구는 다시 한번 제 마음에 울림을 주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꼭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갈 거예요.
그래야 집에서 통학하며 엄마를 돌볼 수가 있어요.”
저도 이 친구가 꼭 서울에서 통학할 수 있게 되길 기도했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해야 했던 그 친구는 현실의 벽을 체험하며
지방에 있는 간호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수능 후에는 즉시 또 다른 꿈 ‘바다 보기(!)’를 위해,
선생님들과 함께 강릉 바다로 갔습니다.
좀 추웠지만 날씨가 너무나 화창하고 좋아서
푸른 바다를 실컷 볼 수 있었기에,
이 친구에게 좋은 추억이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여행 후,
어느 주일에 저는 아지트 후원자들을 모집하기 위해 장안동성당에 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후원신청서에 쓴 편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친구가 다니는 간호대학 교수님이셨죠.
저는 곧바로 전화드렸고 저의 이야기를 다 들으신 그분은
“조만간 법인에서 회의가 있는데
이 친구에 관한 내용을 안건으로 올리겠습니다.” 하시더니,
그다음 주에 놀라운 답변을 보내주셨습니다.
“신부님, 이 친구 앞으로 졸업할 때까지
학비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한 해가 지나 이 친구가 2학년이 되던 겨울,
이 친구를 가르쳤던 선생님들이 커플에서 부부가 되어
제가 혼배미사를 주례했습니다.
그날 이 친구도 어느새 예쁜 아가씨가 되어 왔더군요.
개신교 신자가 되어서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알고 보니 동네 교회에서 신도들과 목사님이 이 친구를
어려서부터 고3 때까지 생필품과 생활비, 공부할 공간까지
무상으로 지원해 주었더군요.
오늘 복음에서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태 9,35)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처럼,
어느 종파가 됐든 교회가 아름답고 화려한 성상들로만 채워져 있고
그저 자리에 앉아만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공간이 아니라,
가장 보잘것없는 형제가 언제나 환영받을 수 있고
그들을 첫째로 여기며 꼴찌로 내려가 사랑으로 섬기는 곳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은성제 요셉 신부 | 가톨릭청소년이동쉼터(서울A지T)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