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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잠언 제3강
말씀 : 잠언 5-7장
요절 : 잠언 6:16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잠언은 반복하여 음녀의 유혹을 경고합니다. 오늘 본문 3장 내내 경고합니다. 5장 전체, 6장 후반부, 7장 전체입니다. 음녀라는 표현은 여성들에게 거북함을 줄 수 있습니다. 음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음남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적 문란은 여자보다 남자에게 더 심각한데, 왜 음녀만 말하느냐는 것입니다. ‘모든 남자의 참을 수 없는 유혹’이 말하듯, 음란한 남자들이 정말 많습니다. 음란의 유혹은 특정인의 문제가 아니라 남자와 여자, 모든 사람의 문제입니다. 특히 솔로몬처럼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유혹을 많이 받습니다. 솔로몬은 당시 가장 큰 부와 권력을 자기 아들들을 염려하며 권면한 것입니다. 잠언의 저자가 여성이었다면 혹은 오늘날처럼 여성의 위치가 높았다면, 음남에 대해 경고했을 것입니다. 정욕을 물리쳐야만 온전한 리더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5장 1-4절에서는 지혜로운 아들의 입술과 음녀의 입술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2절 보십시오. 지혜로운 아들은 입술로 지식을 지킵니다. 입술로 지킨다는 것은 머릿속 생각으로 끝내지 않고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씀을 암송하거나 낭독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파하거나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도 입술로 지식을 지키는 것입니다. ‘공격은 최선의 수비다’라는 말처럼 소리 내어 진리를 뿜어내면 유혹의 소리가 파고들 공간이 없어집니다. 이는 음녀의 입술과 대조됩니다. 3,4절을 보십시오. “3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4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로우며” 꿀을 떨어뜨리는 것은 달콤한 말, 기름보다 미끄럽다는 것은 쑥쑥 받아들이기 쉬운 말을 의미합니다. 실상은 나중에는 쑥처럼 쓰고 두 날 가진 칼처럼 깊은 상처를 만들어내는 끔찍한 말입니다. 유혹의 무기가 말입니다. 한자 풀이와도 통합니다. 유혹의 유(誘)는 말(言)과 수려할 수(秀)을 합쳐놓은 것입니다. 혹(惑)은 창(戈)과 마음(心)을 합쳐놓은 것입니다. 수려한 말로 창처럼 날카롭게 마음을 찌름으로 유혹합니다.
어떤 젊은 공무원 목자가 민원을 해결하고자 현장에 나갔다가 나이 많은 이혼녀의 유혹에 넘어가 젊은 아내와 어린 자식을 버리고 그 여자에게로 갔습니다. ‘나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의 민원을 들어준 당신같은 분은 정말 천사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파고드는 말로 사냥한 것입니다. 목회자가 유혹에 넘어가는 이유도 대부분 말입니다. 집에서는 경제 문제, 자녀문제로 바가지를 긁히는데, ‘세상 어디에서 들을 수 없는 천상의 말씀을 전하시고 인품도 탁월하시고...’, 꿀 떨어지는 칭찬이 미끄러지듯 마음 깊이 영접하다보면 유혹에 넘어갑니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에게 무관심과 무시하는 말을 듣고 살다가, 지도자의 칭찬과 위로의 말이 꿀처럼 달콤하게 마음에 다가오다니보니, 선을 넘는 유혹에 빠집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음녀의 말은 파멸이며, 그 끝은 지옥입니다.(5) 물론 파국이 올 때까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6) 마치 파리지옥에 끌려드는 벌레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그런즉 하나님의 사람들은 배운 바 가르침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7) 유혹하는 자에게서 멀리 떨어지고 그의 집 문에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8) 시편 119:9절은 말씀합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9-14절은 음녀를 물리치지 않으면 두려운 일입니다. 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두렵건대 네 존영이 남에게 잃어버리게 되며 네 수한이 잔인한 자에게 빼앗기게 될까 하노라” ‘두렵건대’라는 말씀이 10절 그리고 11절에서 반복됩니다. 정말 두려운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평생 쌓아온 명예나 생명처럼 소중한 것을 빼앗길 수 있습니다. 한강씨가 노벨문학상을 탔다는 소식을 듣고 몇 년 전까지 노벨문학상 후보로 매년 떠올랐던 한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한국 문학가중에서 첫 번째 유력한 인물이었는데, 성추문으로 인해 그의 문학적 명성마저 빛을 잃고 사라졌습니다. 부모로서의 명예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막대한 위자료를 내어 타인의 배를 채울 수 있습니다.(10) 몸과 육체가 쇠하여 인생의 마지막을 앞둔 때, 돌이킬 수 없는 한탄을 남길 수 있습니다.(11)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꾸지람을 가벼이 여겼던가(12), 그때 청종했어야 했는데(13), 많은 사람에게 큰 고통을 남겼구나(14)” 참으로 일어나지 말아야 할 두려운 일입니다.
음녀의 유혹을 물리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내와 함께 행복하며 즐겁게 살기에 힘써야 합니다. 1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고대 중동지역에서 우물, 샘은 생명을 상징합니다. 아내를 생명으로 알고 소중히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3장 7절에서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남편이 아내를 무시하고 돌보지 않는 것은 자기를 낮추고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가정 바깥에서 즐거움을 찾을 것이 아닙니다.(16) 배우자를 불쌍히 여기고 챙겨야 합니다.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라는 말씀처럼, 아내의 부탁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합니다.(17) 위로와 사랑의 말을 건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기념일 잊지 말고 작은 선물을 준비하는 노력은 기본입니다. 윤선 사모는 가끔씩 카톡으로 제게 상품권을 보내줍니다. 제가 매머드 아아를 마시며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매머드 상품권을 보내어줍니다. 치킨을 먹고 싶어하니까 치킨 상품권을 보내줍니다. 돈이 없어, 혹은 어떻게 할 줄 모를 것 같아 보내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함께 즐겁자고, 함께 재미있자고, 안스러운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위로와 기쁨이 됩니다.
1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젊어서 취한 아내, 젊어서 취한 배우자가 나이를 먹으면 어떻게 됩니까? 남편은 나이를 먹을수록 여성호르몬이 증가하고 아내는 남성 호르몬이 증가합니다. 신체 호르몬만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삶의 십자가는 무거워집니다. 늙어가는 부모와 커져가는 자녀들, 어찌 감당해야 할지 당황스러운 장면에 자주 부딪힙니다. 세상의 압박은 점점 강해집니다. 그러다보면 사자 같은 남편은 쪼그라들고 젊은 날 암사슴 같은 아내는 암사자 같은 투사가 되어갑니다. 그것이 현실인대도, 잠언은 권면합니다. 19절을 읽겠습니다.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억지로 암사슴 혹은 암노루처럼 여기라, 그 정도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함께 젊은 날을 다 소비하고 나이 먹도록 함께 해주는 배우자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나 같이 부족한 자를 하늘이 내린 동역자로 영접하고 함께 하는 마음이 얼마나 빛납니까! 자기 살기도 바쁜데, 밥도 챙기고 옷도 챙기고 가족 챙기며 잘해보려고 발버둥을 치며 살아가는 모습은 암사슴처럼 신비롭고 암노루처럼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세상의 누가 내 인생에서 이만큼 해줄 수 있습니까! 그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인한 감동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목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음녀는 상품이고 아내는 작품이다”(20), ‘상품이다’라는 말을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상품은 유통기한이 지나면 처치곤란 쓰레기가 되지만,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를 발한다는 뜻으로 비교한 것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복되게 여기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십니다. 반면 아내 귀한 줄 모르고 자기 정욕대로 사는 자는 죄의 줄에 매여 고통당할 것입니다.(22) 생명력을 잃고 죽을 것이며, 심한 미련으로 말미암아 혼돈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23)
6장에서는 갑자기 보증과 게으름과 불경건의 언행을 다룹니다.(1-19) 이것들도 불륜만큼 가정의 위기를 가져오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해석합니다. 하나씩 다루어 보겠습니다.
첫째 보증입니다.(1-5) 여기의 보증은 타인의 채무를 끝까지 함께 지는 연대보증을 말합니다. 친족이나 친구의 요청으로 보증 섰다가 한순간 빚더미에 앉은 가정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케이스를 알고도 보증서는 이유는 가정을 최우선에 두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스스로를 자비와 긍휼을 베푼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증 선 순간, 그 사람은 자비와 긍휼을 덧입어야 할 사람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올무에 걸린 짐승처럼 함정에 빠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1,2) 혹시 분별력을 잃고 보증섰다면, 탈출하기 위해 간구해야 합니다.(3) 보증의 위험을 외면하지 말고 직시해야 합니다.(4)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스스로를 구원해야 합니다.(5) 어떻게 사냥꾼에서, 그물 치는 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사냥꾼이 잠시 한 눈 파는 틈, 그물 치는 자의 손이 잠깐 느슨해진 틈, 그런 은혜가 필요합니다. 간절히 구해야 하고 절박하게 몸부림쳐야 합니다. 오늘날 과거만큼의 치명적인 보증제도는 없지만, 한순간 가정 경제를 망가뜨릴 수 있는 위기들은 항상 있습니다. 투기를 종용하는 목소리나 다단계나 보이스 피싱이 그러합니다. 사업자 명의나 통장명의를 빌려주었다가 덫에 걸리는 일들도 있습니다. 가정경제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명분으로 다가오든지 처음부터 차단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둘째는 게으름입니다.(6-11) 게으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해가 중천에 떠오르기까지 퍼질러 자는 것입니다.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본문의 책망이 그러합니다. 물론 늦게까지 야근하거나 밤새 시험공부나 리포트를 쓰는, 밤낮이 바뀐 요즘 시대와는 맞지 않은 이미지입니다. 해가 떨어지면 곧바로 잠을 잤던 당시에 어울리는 이미지입니다. 우리시대의 잠언이라면, 게으름을 다른 식으로 표현했을 것입니다. “어느 때까지 게임만 하고 있겠느냐, 어느 때까지 쇼츠만 보고 있겠느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외면하고 뭉개는 것입니다. 경제의 십자가 혹은 가사의 십자가를 져야 하는데, 안 좋은 습관이나 생활 패턴을 개선해야 하는데,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 위기에 대한 오은영씨의 코칭을 가끔 볼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찾아오는 생각이 있습니다. ‘코칭이 필요한 것은 무지의 문제인가? 아는데도 노력하지 않는 게으름의 문제인가?’
잠언은 충격적인 책망을 던집니다.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주방에 들락날락하는 개미들을 자세히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는데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양식을 모읍니다.(7,8) 게으른 자들은 일해야 할 시간이 왔는데도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좀 더 누워있자, 자꾸 뒤로 미룹니다.(9,10) 나름 이유를 댈 것입니다. 체질이 아니어서, 재미를 못 느껴서, 이득이 없을까봐, 건강이 상할까봐...,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고난 받지 않고 편하게 살려는 게으름 문제입니다. ‘게으른 자여!’ 책망에 귀를 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빈궁이 강도같이, 곤핍이 군사같이 찾아올 것입니다.(11) 부지런해야 가정을 지킬 수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기 위해, 변화의 열매를 맺기까지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게으르지 않아야 위기가 파고들만한 틈을 메꿀 수 있습니다.
셋째는 경건한 언행입니다.(12-24) 12-14절을 보십시오. 불량하고 악한 자는 구부러진 말을 합니다. 눈짓과 발과 손가락질로 악을 뿜어내며 다툼을 일으킵니다. 그런 언행과 가정의 위기는 무관한 줄로 생각하는데..., 어느 순간 재앙처럼 위기로 다가옵니다.(15) 선한 눈, 바른 입, 순전한 손 그리고 경건한 발을 갖춘 존경받을 만한 배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1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은 ‘하늘의 복을 걷어차는 가정이 되게 하는 것’이라 바꿀 수 있습니다. 교만한 눈으로 주위를 보고 입으로는 거짓을 쏟아내는 것입니다. 죄 없는 자에게 이유 없이 해꼬지하는 것입니다.(17) 진실과 자비를 베푸는 대신 거짓과 위증을 만들어 형제 사이를 이간시켜 이익을 취하는 것입니다.(18,19) 집 바깥에서 어떻게 행동하든지 가정의 축복과 상관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불경건한 언행은 타인의 상처나 손해로 끝나지 아니하고 돌고 돌아 자기 가정에게로 돌아옵니다. 경건한 언행을 힘쓰는 것이야말로 가정을 지키는 비결입니다. 아내에게 존경받고 자녀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자 깨어 있어야 합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그것은 아버지의 명령을 지키고 어머니의 율법을 마음에 새기고 목에 거는 것입니다.(20) 어려서부터 받은 신앙 교육대로 살고자 항상 애쓰는 것입니다.(21-23) 그런 사람은 어둔 세상에서도 빛을 잃지 않으며 음란의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24)
25절부터는 다시 음녀의 유혹을 경고합니다. “그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며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탐하지 말라’, 정욕은 좋은 것을 훔쳐서라도 갖고 싶은 탐욕과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눈꺼풀은 아름다움의 유통기한을 말합니다. 눈꺼풀 감았다가 뜨는 시간은 평균 0.2초입니다. 심리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외모가 주는 매력의 유통기한은 3개월입니다. 반면 음란이 불러오는 재앙은 끔찍합니다. 재산, 가족, 명예를 잃고 한 조각 떡만 남아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26) 숯불을 품은 자처럼 고통스런 인생을 살 것입니다. 숯불을 품는다면 아무리 좋은 옷도 타버리고(27) 아무리 강한 발도 화상을 입습니다.(28) 불륜이 가져오는 결과가 그러합니다.(29) 배고픔으로 도둑질을 하면 정상 참작될 것이지만,(30) ‘얼마나 배고팠으면!!’, 남의 아내를 훔치면 영원히 정죄당합니다.(31) ‘저런 파렴치한 인간!!’ 진짜 똥멍청이, 무지한 자입니다.(32)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됩니다.(33) 남편이 분노하여 원수를 갚고자 하는 날에 누구도 제지할 수 없습니다.(34) 어떤 보상이나 선물로도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남깁니다.(35)
그러므로 솔로몬은 아들에게 계명을 지키고 간직하고 순종하며 마음판에 새기도록 간절히 부탁합니다.(7:1-3) 7장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라’ 누이와 음녀를 대조시킨 것입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전자제품 광고문구가 있었습니다. 음녀와 함께 할 것인가? 지혜를 누이삼아 함께 할 것인가? 내 집에 누구를 들이냐는 평생, 아니 영원을 좌우합니다. 지혜를 누이처럼 함께 하며 그녀의 말을 따르고 귀를 기울일 때,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5)
물론 많은 청년들이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에 솔로몬은 6-23절에 걸쳐 한 젊은이를 동영상으로 보여주며 다시 한번 실감나게 경고합니다.(6,7) 그는 해가 저물 때, 흑암중에 음녀의 유혹을 받습니다.(8,9) 여자는 기생 옷처럼 화려하고 섹시한 옷을 입었습니다. 거리에서, 광장 모퉁이에서 마음 가는 데로 남자들을 붙들고 떠들며 유혹합니다.(10-13) 그러다가 눈에 맞는 남자를 붙잡아 입맞추며 말합니다. ‘여호와가 나의 서원을 들어주셔서 당신을 보내셨군요’(14,15) 나의 집에 근사한 침실을 꾸몄으니 함께 가서 밤을 지새우자고 합니다. 밤새도록 사랑의 밀어를 나누며 즐기자고 합니다. ‘남편 걱정은 하지 마세요 보름 후에나 돌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기회입니다’, 안심을 시킵니다.(16-20) 고운 말, 호리는 말로 살살 녹이며 꼬드깁니다.(21) 그러자 청년은 신이 나서 따라갑니다. 스스로를 억세게 운이 좋은 남자처럼 생각합니다.(8-23)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말합니까! 7:2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젊은이가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 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처럼 미련한 자입니다. 어떤 목자가 말했습니다. “소보다 미련한 인생입니다. 소는 도수장으로 끌려갈 때에 죽으러 가는 줄 알고 눈물을 흘리는데, 정욕으로 끌려가는 자는 그것조차 모르고 가니까 말입니다.” 절대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화살이 간을 뚫는 것처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는 것처럼 필경은 사망입니다.(23) 그러므로 받은 훈계와 지식대로 살아야 합니다.(24)
25,26절이 결론입니다.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죽은 자가 허다하다’, 무시무시한 표현이지만, 리얼 현실입니다. 음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면 유력한 정치가, 학자, 목회자라도 탁월함을 잃고 엎드러집니다. 가정을 지키지 못하면 그 어떤 성공이나 명예도 모래위에 쌓은 성이 되고 맙니다. 지혜와 지식을 받은 대로, 훈계를 받은 대로 음녀, 음남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물리쳐야 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것들을 힘써 물리쳐야 합니다. 그것이 생명을 지키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