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팔조사 행화도량 벽송사
지리산 북쪽,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259번지, 칠선계곡 입구에 있는 벽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며, 경남 전통사찰 제 12호로 지정된 사찰이다. 발굴된 유물이나 절뒤편 창건 당시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3층 석탑으로 미루어보아, 신라말이나 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나, 사적지가 전하지 않아 확실한 역사는 알 수 없다. 1520년(중종15년) 벽송지엄(1464~1534)이 중창한 뒤 현재의 명칭으로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절에서 조선시대 불교 선맥인 벽계정심. 벽송지엄.부용영관.경선일선.서산휴정.부휴선수.사명유정.청매인오.환성지안.호암체정.회암정혜.경암응윤.서룡상민 등과 같은 조사들이 수행하였고, 또 선교를 겸수한 대종장들을 108분이나 배출하여 벽송사는 일명 ‘백팔조사 행화도량’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벽송사 제2대 조사는 부용영관선사인데, 그의 문화에서 가장 뛰어났던 제자는 서산대사인 청허휴정과 부류선수이었다. 서산대사는 벽송사에서 깨달음을 얻은 뒤 벽송산문의 제3대 조사가 되었으며, 서산대사의 제자인 사명대사와 청매조사도 이곳 벽송사에서 오도하여 크게 불법을 떨쳤다 한다. 1704년(숙종30년)에 선교겸수의 대종장인 환성지안 대사가 벽송사를 크게 중수하여 불당.법당.선당.강당.요사 등 30여 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근대 선지식인 경허선사도 벽송사에서 주석하며 서룡선사 행적기를 집필하였으며, 벽송사 강원의 마지막 강주를 역임한 초월동조대사는 일정 때 동국대학교 전신인 혜화전문학교의 교장을 역임하였고, 이후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옥고를 치르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그러나 400여 년간 참선 수행처로 지속되어 왔던 벽송사는 1950년 한국전쟁 중 지리산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국군에 의해 방화되어 완전히 소실되고 말았다. 이렇게 6.25전쟁으로 황폐해진 벽송사를 1960년대에 이르러 원응구한대사의 원력으로 선원.법당.요사채등 건물들이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벽송사 경내에슨 신라양식을 계승한 벽송사 3층 석탑(보물 제 474호)과 벽송사 목장승이 있다. 유물로는 묘법연화경 책판과 벽송당지엄영정. 화엄경 금자사경 등이 전해 오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보광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장선원, 간월루, 청허당, 안국당 등이 있으며, 선방 뒤 탑전 앞에는 도인송과 미인송이 서 있다.
지리산 이천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