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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8:1-36) 답은 십(十) 하나다. 문제는 무수하다.
1.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2. 그가 길가의 높은 곳과 네거리에 서며
3.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이르되
4.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5.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 지니라
6. 너희는 들을 지어다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7.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8.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에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9. 이는 다 총명 있는 자가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가 정직하게 여기는 바니라
10.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11.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오늘 말씀중심으로 <답은 십(十) 하나다. 문제는 무수하다.>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답은 십(十) 하나다. 문제는 무수하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답을 하나로 정해 놓았습니다. 문제가 있기 전에 문제들이 나타나기 전에 문제를 만들기 전에 답은 십 하나로 정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문제를 어떻게 만들면 될까요?
예를 들어서 7+3= 그 다음에 13-3= 이런 식으로 문제를 만들면 되는데, 그 문제의 답이 십이 되도록 만들면 그 문제의 수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무수하지요.
4조10-4조=10, 그리고 2억-1억9천9백9십9만9천9백9십=10, 답은 10하나로 정해놓고 10이라는 답이 나오게 문제를 만드는데 무수한 문제가 만들어 집니다. 이 원리가 바로 창조의 원리입니다.
요한복음에 서론에 보면 예수님에 대한 묘사가 나오게 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고 하고 그리고 "이 말씀이 아니고는 아무것도 되어 진 것이 없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무슨 말이냐? 이 땅에 있는 모든 문제는 다 예수님이 답이 되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아니고는 이 땅에 되어 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답이라고 하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이유는 오늘 본문에 보니까 지혜를 의인화했어요. 지혜를 하나의 인격인 것처럼 의인화해서 지혜 스스로 말하도록 지금 솔로몬이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내게로 오라고 부릅니다. 지혜가 모든 사람을 초청합니다.
"내게로 와서 내게 들으라. 나를 가지라."라고 합니다.
"정금보다 은보다 진주보다 이 세상에서 갖고 싶어 하는 모든 것보다 지혜를 먼저 찾아라."라고 합니다. 그리고 22절에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라고 하는데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가졌다고 하는데 이것이 요한복음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라는 말씀인데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씀이라고, 잠언을 연구하는 구약학자들은 못을 박아 버리는데 동의합니다.
솔로몬이 성령의 감동에 의한 이 지혜의 의인화는, 바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태어나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요. 태초에 말씀으로 계신 예수님을 느낀 것입니다. 아버지 옆에 계셨던 말씀으로서의 주님을 느낀 것입니다. 그것을 지혜로 바꾸었습니다.
지혜가 뭡니까? 우리 인생살이에 대해서 하나님이 갖고 계시는 정답이 지혜입니다. 내 생각이 된 하나님의 생각, 내 삶에 대해서 갖고 계시는 하나님의 정답이 곧 지혜입니다. 그런데 그 답이 예수님이라는 거예요.
그것이 신약성경에는 사도바울의 입을 통해서 뭐라고 표현되고 있습니까? 제가 엊그제에도 읽었어요. 다시 한 번 읽어 드릴게요. 너무 귀한 말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선민들, 들을 귀가 있어서 십자가 복음이 들리는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할 것 없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정답이라는 뜻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만 전한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가 모든 인생의 답이기 때문입니다. 왜 답입니까? 그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보다 먼저 계셨어요. 문제투성이인 우리 인생보다 먼저 계셨어요. 답이 먼저 있었습니다. 그 답이 십자가, 십(十)이라는 답이 있었고, 그 답에 맞추어서 이 세상의 일이 진행되는 겁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십(十)이라고 하는 답으로 의도적으로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얘기하시잖아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왜 지고 있습니까? 문제를 푸느라고.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수능시험 보잖아요? 문제 푸느라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는 겁니다.
자식문제, 부부문제, 부모자식간의 문제, 돈 문제, 사업문제, 결혼문제, 취직문제, 승진문제 이 문제들을 푸느라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데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내가 답이니까.
그 모든 문제는 그 문제가 있기 전에 있었던, 선재하는 답인 나에게 맞추어져 있는 거니까 나에게로 와라. 나에게로 와서 뭐해요? 십자가. 그 주님의 십자가로 와서 내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거들랑 같이 올라서라. 그게 답이라는 거예요. 뭐의 답? 돈 문제의 답. 결혼문제의 답, 자식문제의 답, 공부문제의 답, 경제문제의 답, 대통령께서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위해서 부딪히는 문제의 답, 국회의원들의 답, 예술가들의 답, 학자들의 답, 서울역 앞에서 지게를 지시는 분들의 답, 모든 인생문제는 원래 선재하신 답인 예수님에게 맞추어져 있는 것이라서 무조건 예수님이 답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인생은 이상한 시험장이에요. 어떤 시험장이냐? 문제를 다 내주었어요. 가정문제, 자식문제, 돈문제, 직장문제, 사업문제, 건강문제 등등 가지가지 문제들을 삶에서 다 내주었어요. 인생의 문제를 풀어갑니다. 그런데 답이 스스로 찾아왔어요. 예수님이 ‘내가 답이다. 내가 답이다. 내가 그 문제의 답이야.’라고 하십니다.
자녀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그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십니다. ‘내가 답이야. 너 나와 연합하면 돼. 다 문제가 풀려.’라고 하시는데 아니 문제를 낸 자가 답을 얘기해 주는 시험장이에요. 이 지구위의 인생의 시험장이 이런 시험장이 어디 있어요? 문제를 내신 분이 창조에 동참하셨고 창조자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인생의 모든 문제의 답이신 자기 자신을 가리키면서 ‘내게로 와서 나와 연합해라. 나와 연합하는 게 모든 문제의 해답이다. 돈 문제 취직문제 결혼문제 자식문제 다 내가 해답이다. 다 내가 해답이야.’라고 답을 가르쳐 주고 있는 거예요. 이런 시험장이 어디 있어요. 시험장이 아니에요. 그런데 문제를 풀어야 되니까 시험장이에요.
여러분! 오늘 본문에 이런 말이 있어요. 21절에 보면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가 그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얼마나 감사합니까? 아멘하신 분들 계시지요. 다시 한 번 읽어 드릴 테니 크게 아멘 해 보실래요.
‘나를 사랑하는 자가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재물의 문제도 십자가가 답이라는 거예요. 십자가에서 재물에 대해서 죽는 게 답이라는 겁니다. 내 재물문제에 대해서, 내 재정문제에 대해서, 자식문제에 대해서, 주님의 십자가가 답인데, 십(十) 자(字) 가(架), 오직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만 전하니 이유는 뭡니까?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까. 다시 말해서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정답이고 하나님의 지혜이고 하나님의 정답이니까. 뭐에 대한 정답? 내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정답. 모든 인생의 문제는 열십자로 향해서 문제가 맞추어져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상한 시험장이에요. 답이 스스로 와서 답을 가르쳐 주는데, 어떤 학생도 그 답을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답을 찾아내려고 하고 있는 겁니다. 하여간 엽기적인 시험장이지요. 아무도 그 답을 받아들이지를 않으려고 합니다. 교회도 그 답을 받아들이지를 않으려고 합니다.
일단 교회 안으로 들어오잖아요. 거듭 말씀드리자면 교회 밖에서 무슨 일을 했던지 간에, 어떤 꿈과 소원을 갖고 있었든지 간에, 잘 살았건 못 살았건 깨끗하게 살았건 더럽게 살았건 도둑질을 했건 강도질을 했건 정직하게 살았건 세금을 냈건 안냈건 들어오면, 일단 주님의 십자가에서 다 죽어야 됩니다. 다 죽는 거예요. 죄인들이 오는 곳이지요. 그래서 죽는 거예요.
십자가가 밖에서 깨끗하게 살아서 아무 허물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교회 들어오면 다 죽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갖고 있는 꿈과 소원과 그들이 인생에 대해서 갖고 있는 답이 다 죽어야 되는는 겁니다. 그 답이 죽어야 됩니다. 내 자식은 어느 대학을 가야 된다는 이 답이 죽어야 됩니다. 우리 사업은 금년 말까지 흑자가 어느 수준에 까지 올라가야 된다는 이 답이 죽어야됩니다. 적자로 끝날 수도 있어요. 내가 낸 답이 모든 답이 다 죽어야 돼요. 교회가 그거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정답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올라서게 하면서, 그동안 내 스스로 찾고 있었던 답, 내 스스로 문제를 풀었던 수험생의 자세를 다 죽여 버리는 겁니다. 왜? 인생의 모든 문제는 주님의 십자가라는, 그 십(十)에 맞추어져 진 셈이니까. 그게 인생의 문제니까. 거기서 다른 답은 세상에 없습니다.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가보면 수십, 수백 개의 과가 있지만, 대학 안에서 어느 과에서도 주님의 십자가에 대한 얘기를 하는 과가 없어요. 이게 현실입니다. 답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려고 하지를 않아요.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그리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이 이 땅이 있기 전에 답을 만들어 놓으셨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살아가세요. 그러므로 문제는 이제 수고로움과 부담이 아니에요. 어떤 환난과 역경과 문제가 주어지더라도 이미 답이 있어요. 이제부터 풀어가야 되는 게 아니라, 먼저 답이 있었고 문제가 생겼으며 그 답은 이상한 답이라서 자기가 스스로 걸어와서 나에게 찾아왔어요. 우리가 문제를 찾아가는 게 아니에요. 답을 얻기 위해서 문제를 구해 가는 게 아니고, 문제를 study해 가는 게 아니에요. 답이 내게로 왔어요. 그러니까 연구한다. 노력한다. 수고한다. 또 구도자, 구도자의 자세로, 다 아니라는 겁니다.
왜 구도를 합니까? 도가 우리에게로 왔어요. 중국어 성경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에서 말씀이 도(道)로 번역되었는데, 그 도가 우리에게로 왔다니까요. 말씀이 우리에게 왔어요. 답이 우리에게 왔다고요. 우리가 답을 찾아가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문제가 있으면 있을수록 재미있는 거예요. 답이 있으니까. 답을 모르면 모르거니와, 답을 무조건 알 수 있는 그런 수험생이 있다면, 문제가 어려울수록 재미있고 문제가 어려울수록 좋잖아요. 답이 있어요. 그러니까 염려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지금 겪고 있는 자식문제는 아마 1890-1880인가봅니다. 여러분이 겪고 있는 사업문제는 아마 2억빼기 1억9천9백9십9만9천9백9십인가 봐요? 여러분이 겪고 있는 부부문제는 아마 3+7=10인가 보죠? 모두가 십자가로 갑니다.
그래서 십자가라는 말을 한자로 잘 살펴보면 十字架, 열십 자에, 글자 자, 그리고 힘력 자에 입구 자가 붙어있고 그리고 밑에 나무목자가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 혼자 생각해 봤어요. 고린도전서 1장 22-24절에 사도바울이 뭐라고 말합니까? '헬라인에게나 유대인에게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다'라고 했어요.
힘력 자에 입구 자를 썼어요. 나무위에 달리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힘이요.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입, 하나님의 정답을 말씀하시는 입이 하나님의 지혜라는 겁니다. 한자가 재미있지요.십(十)자 이게 바로 정답이라는 거예요. 내 인생의 모든 문제는 십이 나오도록 맞추어진 것이니까, 문제가 무엇이든지 문제자체를 자세히 알 것도 없어요. 예를 들어서 뭐 4조3천2백5십9억 아, 나는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문제가 너무너무 복잡해요. 7조 뭐 얼마, 얼마........, 문제가 너무 복잡한 것 같아요. 빼기에 뭐 얼마, 얼마......., 무조건 아무리 복잡해 보여도 답은 십으로 나오게끔 맞추어진 문제들입니다. 주님의 십! 자! 가! 로 답이 나오게끔 된 문제예요.
어떤 문제라도 아무리 복잡하고, 아무리 어렵고, 아무리 오리무중이고, 까마득하고 도대체가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무조건 십자가를 붙잡으면 답을 붙잡는 겁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오늘 본문 얘기가 그 얘기예요.
요한복음에만 있는 얘기가 아니에요. 22절 아래에서부터 보면 예를 들어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하고 그 다음에 뭐라고 하느냐하면요?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다.”라고 창조에 참여하셨다는 얘기입니다.
이 얘기를 요한복음은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면 이 땅위에 생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생기는 모든 문제, 모든 것은 정답이 십자가다. 만약에 우리가 죄 없이 세상을 살았다고 하면 그냥 예수님이 답이었을 텐데. 죄 있이 살았기 때문에 주님이 달리신 그 십자가가 우리에게 답이라는 겁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의 답이라는 겁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죄가 있는 자로서 이 세상의 문제를 맞이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어떤 문제든지 창조 때 함께 하셨던 예수님,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그 분이 정답이라는 겁니다.
자, 이제 한 번 세상에 나가 보시지요. 답은 십자가인데 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 사도바울의 얘기입니다. 헬라인은 지혜를 찾아요. 답을 찾는 거예요. 유대인은 능력을 찾아요. 어쨌든 해결하고 싶은 거예요. 능력으로 표적을 찾는 거예요. 하나님의 기적적인 능력을 통해 해결하고 싶은 거예요. 헬라인은 지혜를 찾아요.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며 동시에 지혜입니다.
여러분! 지금 뭘 걱정해요? 뭘 걱정해요? 내면적인 문제이든 환경적인 문제든 인간관계의 문제든 재정의 문제건 건강의 문제건 답은 십자가의 예수님으로 맞추어져 있는 문제들이예요. 답을 아는데 뭘? 내가 부동산에 투자를 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답은 십자가예요. 십자가에서 부동산에 대해서 죽어 보세요. 하나님의 정답이 딱- 떨어질 테니까. 부동산 투기 마찬가지지요. 내가 어느 회사에 출자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답은 십자가예요. 십으로 맞추어지게 돼 있는 겁니다. 그 출자하는 문제에 대해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면 하나님의 정답이 떨어집니다. 모든 게. 다. 그러니까 웃을 만 하지요. 기뻐할 만 하지요.
이제 이렇게 외치세요. 인생의 모든 문제야 와라. 나는 너의 답을 알고 있다. 십(十)! 자(字)! 가(架)! 에 매달리신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겁니다. 연합을 어떻게 해요? 내가 죽은 겁니다. 주님!
기도하는 거예요. 복음의 말씀을 듣고 복음의 기도를 하는 겁니다. 십자가복음의 기도를!
십자가복음의 기도가 뭡니까? 내 마음에 걸려 있는 모든 문제들이 문제 아닙니까? 그 문제들에 대해서 내 마음이 십자가에서 죽은 자라는 것을 고백하는 이것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정답을 끌어들이는 것이에요. 이 과정이. 까짓것 한 번 살아 보지요. 뭐. (가슴을 내밀어야 하는데 저는 배가 내밀어 지네요.) 가슴을 펴고 한 번 살아 보지요. 뭐. 어떤 문제든지 답은 십(十), 하나입니다. 문제는 수천 수백 만 가지가 될 수 있어요. 그러나 뭔 걱정입니까? 문제가 어려울수록 많이 있을수록 재미있을 것이에요. 이렇게 재미나는 인생, 답을 알며 시작하는 인생, 이미 답이 선재하셨고 지혜가 선재 하셨기 때문에, 여러분의 인생은 오늘 본문 말씀대로 평탄하게 주님이 이끌어 주실 것이에요. 답을 쥐고 가세요.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감사라는 단어 말고는 우리 마음의 고마움을 표현하는 다른 단어가 없는 것이 속상합니다. 고통 받으시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 어떻게 감사하면 감사가 다 됩니까? 내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으로서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죽음이 내 죽음인 것을 고백하는 기도와 신앙적 고백을 통해서, 아버지! 답을 쥐고 이 세상 문제가 산적한 세상을 향하여 보무도 당당히 나갈 수 있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십자가 붙잡고 인생! 한 번 살아보는 겁니다.
살든지 죽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