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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라산~봉화산~망해산~취성산
나흘전에 이미 초복(初伏)은 물러갔고,곧바로 내일은 대서(大暑)가
기다리고 있다.여름 더위를 좌지우지하기로 유명하다는 절기(節氣)
한복판에 들어섰다.본격적인 더위는 이제부터라고 기상예보는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무덥다고 산행을 일시 중단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다.버스를 기다리는 도중에도 온몸으로 파고 들어오는
더운 열기 탓에 이마에는 벌써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한다.버
스안은 에어컨이 제 기능을 한껏 발휘하고 있다.
어느사이 후끈하게 달아올랐던 치열의 순간은 시원함의 유혹에
맥없이 무너져 내린다.
지난 번 다섯 째 구간의 날머리인 함라초교 앞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정각이다.이곳에서 오늘의 날머리인 부곡재(거점재)까지는
도상거리로 치면 14,9Km,사십리가 채 안되는 거리다.
그렇지만 무더운 더위가 복병 노릇을 할 것이 틀림없고,그리고
산행자료에 의하면 공포수준의 가시덤불 구간을 얼마나 용이하게
돌파할 수 있느냐가 산행시간을 가름할 것이다.
햇볕이 쨍쨍 내려쬐는 함라면 사무소 앞을 출발하자마자 우측의
마을 고샅으로 들어선다.마을 뒷편으로 병풍처럼 펼쳐있는 함라산의
초록능선이 우선 반갑다.태양의 열기와 햇살을 고스란히 토해내는
세멘트로 포장된 마을길을 따르다가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접어들어가면
주차장 용도의 공터가 나온다.이 곳에는 함라산의 산행안내도가
세워져있고 곁들여서 산행 이정표가 반갑게 입산객을 맞는다.
계곡입구에는 늘어선 농가와 식당이 보이고,어린이 복지시설이 있
는 곳 못미쳐 좌측으로 숲으로 향하는 산길이 유도목책을 따라 나있다.
매미들의 노래소리가 세속의 번잡함을 차단하려는 듯 요란스러움을 더한다.
고추잠자리들도 출격채비를 갖추었는지 하나 둘 시험비행을 서두른다.
숲은 고요하고 축축한 습기가 잔뜩 드리워져 있고 뙤약볕 아래의
녹음방초들도 더위를 먹은 듯 축 늘어져 활기를 잃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주능선을 오르기 직전에 삼거리가 나온다.
우측으로 함라산 정상을 가리키는 방향을 따르면 10여분 정도 발품을
보태면 함라산 정수리에 닿을 수 있다. 그리고 정맥을 계속 따르려면
정상에서 반대쪽인 이 곳으로 되돌아나와 봉화산 방면의 산길을
따라야 한다.함라산의 정수리에는 커다란 느티나무 댓 그루가 시원한 그
늘을 드리우고 있고 그늘의 널찍한 공터에는 벤치도 여럿 눈에 띠고
정수리 뒷편으로는 헬기장도 갖추고 있다.해발 240.5m의 작은 높이지만
너른 들판에 솟아오른 봉우리이기에 고도감은 실제 높이보다
높아 보인다.
서쪽으로는 누런 흙탕물이 흐르는 금강의 물줄기가 우선 산객의
눈길을 붙잡고,뒤를 돌아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익산의 푸른 들판이
가슴을 시원하게 만든다.일출과 일몰을 두루 즐길 수 있는 명당이지 싶다.
"봉화산 1,2km"라고 가리키는 정맥의 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정맥을 이으려면 조금 전 삼거리로 되짚어 이동을 해서 봉화산 쪽으로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통나무 계단의 내리막을 따르면 목재의
아치형 다리도 만나게 된다.금강의 누런 물줄기와 익산 들녁의
푸르름을 시야에 끌어모으며 숲길을 따른다.축축하게 습기를 머금은
산길은 초록의 짙은 그늘이 길게 드리우고 있지만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이다.바람의 도움이 절실한데 그는 미동조차 않는다.
산행을 시작한지 한 식경을 조금 넘긴 시간인데 전신은 땀으로 이미
범벅이 되었다.하늘색 산불초소가 세워져있고 사각정자가 멧부리를
점령한 봉화산 정상에 닿는다.
봉수대 안내판도 보이고 무선기지탑도 단골손님처럼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곳 봉화산의 원래 이름은 함라산 소방봉 봉수대다.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중엽에 설치되어 1894년 고종때 폐지 된 통신수단으로
봉(烽)은 밤에 횃불로,수(燧)는 낮에 연기로 알리어 봉수라고 하며
"봉화"라고도 한다고,평상시에는 1홰(炬),적이 나타나면 2홰,해안에 가까이
오면 3홰,적선과 접전시에는 4홰,육지에 침입시에는 5홰 하였으며
싸리나무,섶나무,쇠똥과 말똥을 태워 사용하였다고 기록은 전하고,그리고
이곳 소방봉 봉수대는 제5직봉(여수~서울 목멱산)에 속해있으며
서쪽으로는 임피현 오성산 봉수에 응하고,동쪽으로는 용인현 광두원산 봉수와
응한다고 기록되어있다.또한 함열읍지에는 봉수군 75명이 배치되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그러나 현재에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전한다.
정자 안에는 입산객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있다.멧부리 주변으로는
딱히 뙤약볕을 피할만한 그늘이 없다.그늘이 없다는 것은 멧부리 모습이
민둥의 봉우리처럼 볕을 가려줄만한 수목이 드물다는 뜻이다.
줄줄 흐르는 땀을 훔치며 정자 주위를 두어 바퀴 돌아보지만 궁둥이를
들이디밀 만한 틈이 보이지 않는다.
익산들판의 푸르름과 막바지 서해바다 진입을 서두르는 누런 금강
물줄기가 연출하는 장관을 즐길 전망대의 출입이 만원사례를 이룬 덕분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통나무 계단을 따라 봉화산을 뒤로하면 허름하고 작은 수렛길(입점재)를
만나고 연신 팥죽땀을 훔치며 숲길을 이어가면 2차선 차도로 내려서게 된다.
722번 도로가 넘너드는 칠목재다.722번 도로에서 방금 내려 선 산길 입구에
등산안내도가 세워져있고 좌측아래에는 식당과 휴게소가 보인다.
100여명 정도는 돼 보이는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2열종대로 행군을 하고 있다.
인하대생들이 폭염속에 국토행진을 하는 모양이다.
계속 이어지는 정맥은 길 건너 좌측으로 조금 이동하면 우측으로 산길이
나온다.길옆에 "소룡테마마을 등산로" 안내도가 세워진 곳을 지나치면 바로
칠목마을로 들어서게 된다.개 짖는 소리를 뒤로하고 마을 고샅을 벗어나면
이윽고 하늘을 찌르는 송전탑을 지나고 곧 쓸어질 것같은 낡은 흉가(?)를
지나면 잡풀이 우거지고 사위가 잡목으로 둘러쳐진 봉우리에 닿는다.
삼각점이 한복판을 지키고 있는 해발 179m의 무명봉이다.
이곳에서 이어지는 산길이 불분명하다.제대로 정맥을 이어가려면 좌측의
희미한 풀숲을 헤쳐나가야 한다.울창한 숲속이 아니라면 송전철탑을
이정표 삼으면 되겠지만 울창하게 우거진 녹음으로 송전탑도 가까이
다가가서야 확인할 수 있으니 독도에 신경을 곧추세워야 한다.
179m봉우리를 무난히 빠져나오면 산길은 본래의 모습을 회복한다.
작은 수렛길의 임도를 가로지르고 적막이 감도는 음울하고 관리가
좀 부실한 공동묘지를 뒤로하면 이내 15번 국도인 2차선 차도로 내려서게 된다.그
러나 15번 국도로 내려서기 전 약0.5km전방에서 좌측의 희미한
산길을 이용하는 것이 제대로 정맥을 따르는 것임을 2차선 도로에
내려선 뒤에 알아챈다.결국 이런 간단한 시행착오는 200여미터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이동해야 하는 추가 발품을 필요로 한다.
이곳 수레재 언덕빼기 서쪽편에는 원두막 모양의 가건물이 설치되어 있고
그 뒤 산자락에는 농가 한 채가 있다.불문곡직 그늘막으로 몸을 맡긴다.
열기와 땀으로 범벅이 된 산객과 동료들이 너나 할 것없이 땀을 식히고
숨을 고를 시간을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의 장소다.
농가의 주인인 듯한 몸피가 둥글둥글한 사내가 농가를 나선다.
지금 그늘막을 점령하고 있는 산꾼들 모습은 이미 종종 보와았던 눈치다.
망해산까지는 삼사십 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겠고 거점재까지는 아마 2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을거란다.그늘막 뒷편으로 이정표가 마련되어 있다.
새 두마리를 마주 앉혀놓은 솟대를 모양삼아 세워놓은 이정표가 재미있다.
그리고 망해산 정상까지는 2.1km라고 알린다.우측 산자락 전체를 고추밭으로
일군 널따란 따비밭을 지나면 이따금씩 솟대 이정표가 친절하게 갈길을
설명한다.여러 기의 묘지를 지나면 발목을 괴롭히는 넝쿨식물들의
거친 태클도 각오해야 한다.예상했던 것보다는 아직 태클의 강도는 거
칠어 보이지 않는다.온몸을 땀으로 범벅을 만든 뙤약볕은 여전히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바람의 기동을 바라는 산객의 헐떡임은 점증하기
시작한다.
산길을 가로지르는 임도를 지나면 그나마 뜨거운 볕을 가려주었던 숲 그늘도
기대하기 어려운 능선 길이 이어진다.가파르지도 않은 통나무 계단이
급경사의 지루한 된비알을 힘들게 올려치는 순간보다 힘들게 느껴진다.
염천(炎天)의 무더위가 발목을 거세게 부여잡기 때문이다.
팔각정자가 허위단심 애면글면하는 산객을 바라보는 모습이 연민의
표정으로 가득하다.사방팔방이 시원한 조망으로 둘러쳐진 망해산의 동봉이다.
누런 빛깔을 하고 있는 금강이 턱밑에 이른 느낌이고 익산의 푸른 들판이
끝간데 없이펼쳐있다.손을 뻗으면 곧 닿을 듯 망해산의 정상이 손짓을 한다.
팔각정을 뒤로하면 금강과 군산주변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도 함께하는 헬기장을 두어 곳 만날 수 있고,군산의 "구불길"이라는
이름의 올렛길 안내를 받을 수도 있다.망해산 정수리에도 뙤약볕을 피할
그늘이 없다.그러나 정상을 알리는 나무 말뚝과 허름한 묘1기가
외롭게 정수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주변 조망은 이름에 걸맞게 금강하구둑과
서해바다를 조망하는데 부족함이 없다.해발 228.6m높이에 불과하지만
고도감은 강원산간의 1000m급에 비길만하다.
정맥을 계속 이으려면 정수리에서 조금 되돌아나오면 우측으로 희미한
산길이 보인다.짙푸른 초록의 산줄기상의 뾰족하게 솟아있는 산불초소가 보인다.
그곳이 취성산의 멧부리다.그곳을 타켓삼아 이동을 서두른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반드시 그와 관련된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일어난다는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동봉에 이르기 전의 산길에서 잠시 발목을
잡았던 넝쿨식물들이 또다시 나타나기 시작한다.태클의 강도가 훨씬 진전되었다.
산길은 임도로 꼬리를 내린다.동봉을 오르기 전에 만났던 임도의 연결선상의
산간도로다.뙤약볕의 열기를 가득 품은 임도에서 솟아오르는 지열과 온 산하를
녹여버릴 듯 내려쪼이는 햇살이 산객을 괴롭힌다.
임도를 버리고 조금은 시원할 듯해서 들어선 산길도 후덥지근한 모습으로 외양만
살짝 바꾸고 산객을 기다린다.산불초소가 우뚝하고 카메라탑까지 갖춘 취성산의
정수리는 가히 조망을 위한 전망대로써
나무랄여지가 없다.다만 그늘을 피할 만한 여유가 부족한 것이 흠이라면 흠일 것이다.
해발 219m의 높이로 여느 봉우리에 비하면 난장이 봉이라고 평가절하 당할지는
몰라도 조망의 우수성에는 타의추종을 불허 할 것이다.
서서히 고도를 낮추어가는 초록의 등줄기는 작은 봉우리를 솟구쳐 놓았다.
용천산으로 가늠이 되는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그렇다면 오늘의 날머리인
부국재가 턱밑으로 다가왔다는 싸인이다.
어지간히 입산객들의 왕래는 있어보이는데 넝쿨식물들이 등산로를 뒤덮어
놓아서 발을 옮기기가 용이하지 못하다.줄기마다 가느다란 가시라도 없으면
무지막지로 헤쳐나갈 수는 있겠는데 날카롭게 푸른 이파리 사이마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잔가시로 인한 이동에 어려운 상황이 수없이 되풀이 된다.
거북이처럼 납작 업드리고 낮은 포복을 취한다면 이동에는 성공할 듯도 싶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낫이라도 있다면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봉변은 당하지 않겠지만 그것도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천신만고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탈출(?)에 성공하고 부곡재에
내려선 시각이 16시가 가까운 시간이다.2차선 도로가 넘나드는 고개,
나포면 부국리와 임피면을 오갈 수 있는 고갯 길이다.아직도 뜨거운 뙤약볕은
조금도 스러질 줄 모르고, 평소에는 꽤나 강바람이 불어닥쳤을 언덕빼기에는
바람의 그림자는 얼찐거리지도 않는다.길 맞은쪽 다음 구간의 들머리 산길이
무성한 잡풀로 뒤덮혀있다.다음 구간의 산행일정은 8월 세째 토요일로
예정되어 있으니 폭염의 날씨는 어느정도 피할 수가 있을텐데 ,
진행을 방해하는 가시덤불 구간이라도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그런 고난을 왜 자초하느냐고? "단맛을 더욱 즐기려면 그 만큼의 소금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2012년 7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