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5:1-12, 길갈의 할례, 21.10.27, 박홍섭 목사
기독교 신앙을 영어의 전치사 세 개를 사용하여 from the world, in jesus christ, into the world로 설명하곤 합니다. 세상의 가치관에서 나와,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 믿음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이 원리가 출애굽-광야-가나안 입성의 여정에 고스란히 들어 있으며 오늘 본문의 할례와 유월절 준수가 그 신앙의 원리를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의 생활을 끝내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 길갈에 들어왔습니다. 요단강 바닥의 돌을 기념비로 세운 뒤 하나님은 이들에게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를 받으라고 명하십니다. 이들이 말씀에 순종하여 할례를 받고 낫기를 기다릴 때 하나님은 이들에게 오늘 애굽의 수치가 너희들에게서 떠났다고 선포해주시고 이들은 그 장소를 ‘길갈’이라고 부릅니다(2-9).
이들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를 행한 것을 보면 이스라엘의 문화는 아직 석기 문화였습니다. 그들이 살아야 할 땅인 가나안은 이미 철 병거가 있고 철로 된 칼과 도구를 사용하는 철기문화입니다. 석기 문화와 철기문화의 차이는 마치 미개인과 현대인의 차이만큼 엄청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을 하나님과 함께 하는 믿음의 훈련을 받는 동안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해 버렸습니다. 이제부터 이런 가나안 땅에서 살려면 가장 먼저 철기문화를 배우고 거기에 빨리 적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너희들은 빨리 뒤떨어진 시대에 적응하라고 하지 않고 먼저 할례부터 받아야 한다고 명령하십니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는 시대에 남자들이 할례를 받으면 며칠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낫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만약 이들이 할례를 받고 낫기를 기다리면서 유숙하고 있다는 소식이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들어가서 그들이 쳐들어오면 손 한번 쓰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말하자면 길갈의 할례는 죽음을 각오하고 행한 믿음의 의식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앞으로 가나안 정복 전쟁과 그 땅에서의 삶은 자신들의 힘이나 지혜가 아니라 죽음을 각오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에 달려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때가 언제입니까? 10-12절을 보십시오. 애굽을 나온 지 40년 만에 유월절을 지킨 1월 14일 저녁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할례를 행하고 가나안의 소산으로 유월절을 지키고 먹은 그다음 날 40년 동안 한 번도 그치지 않았던 만나를 그치게 하십니다. 광야 시대가 끝나고 가나안 시대가 도래했다는 뜻입니다. 이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은 출애굽-광야-가나안의 여정에 담긴 하나님 없는 세상의 가치관에서 떠나 예수와 하나 되고 다시 예수와 함께 세상으로 들어가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를 할례와 유월절에 고스란히 담아 가르쳐주십니다.
이는 할례의 영적 의미를 살펴보면 더욱 확실해집니다. 창 17장을 보십시오. 1-9절을 먼저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나이 99세 때에 전능하신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아브람이 86세에 사라의 종 하갈로부터 이스마엘을 낳은 지 13년 만입니다. 지난 13년 동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13년 동안 아브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성경의 기록에서 제외하고 건너뛰심으로 이 기간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하나님 되지 않는 시간, 의미 없는 시간임을 암시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브라함이 땅과 자손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방법과 수단으로 이스라엘을 낳아 이스마엘의 재롱을 보는 재미로 만족하고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기간도 겉으로는 똑같이 신앙생활을 했겠죠. 그러나 지난 13년의 아브라함은 그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잊어버리고 그 영광의 소망을 내려놓은 체 이스마엘을 통한 자기만족에 빠져 지내온 시간이었습니다. 그의 삶의 중심은 하나님의 약속이 아니라 이스마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13년이 지난 후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하다고 하시면서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요구하십니다. 다시 언약을 갱신해주시고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주시면서 할례를 명하십니다. 10-14을 보십시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자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표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는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표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라”
할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할례는 언약이고 언약의 표징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의 생식기 표피를 베어내는 것을 언약의 표징으로 삼은 이유는 아브람이 이스마엘을 낳은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사라에게 자손을 주겠다고 약속하시고 그 자손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람과 사래는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들의 힘과 자신들의 방법으로 하갈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육체의 자식을 얻음으로 언약을 깨트려버립니다. 할례는 자신의 방법, 자신의 능력으로 아들을 낳은 것을 대변하는 생식기 끝의 포피를 잘라냄으로 다시는 내 힘으로 살지 않고 내 방법, 내 능력, 내 생각으로 살지 않겠다는 믿음의 고백을 자신의 몸에 새겨 의미화하는 의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길갈에서 할례를 명하십니까? 이제부터 가나안의 새로운 시대는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자신들의 힘과 수단과 방법을 의지하는 옛사람의 본성은 잘라내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새롭게 살아야 함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할례의 표징을 통해 나는 내 수단과 내 능력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약속과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면서 살아야 함을 자신에게 되새겨야 합니다.
신약에 오면 할례는 세례로 유월절은 성찬으로 그 영적 의미가 승계됩니다. 롬6:3-11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말이 반복되죠. 세례는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나의 옛사람에 대해서는 죽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새 생명 가운데 살겠다고 고백하는 의식이며 이는 할례를 행할 때 포피를 잘라내는 의식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나 세례나 눈에 보이는 표식과 의식보다 그 의식이 주는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그대로 살겠다는 고백과 결단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육체에 할례를 행했다 할지라도 여전히 자기 힘으로 살고, 육신이 주는 소소한 재미와 의미와 만족을 인생의 유일하고도 최고의 목표와 소망으로 삼고 살아간다면 할례를 행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롬2:28-29절을 보실까요?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할례를 마음에 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할례를 행함이 무엇입니까? 이제 더 이상 내 생각, 내 수단, 내 계획, 내 힘으로 내 인생을 살지 않겠습니다. 나의 생각과 수단으로 얻은 나의 이스마엘로 만족하며 살지 않겠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죄 중에 있던 나를 부르실 때 약속하셨던 그 부르심의 소망을 붙들고 나에게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고자 하는 기업의 영광과 그 영광의 풍성함을 배우고 그것들을 더 많이 알고 누리고 전하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이 지시하는 원리와 방법들을 의지하고 살겠습니다. 하는 고백과 결심을 마음에 새기고 그 결심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음에 할례를 행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에 이런 할례가 행해집니까? 겔36:26-27절이죠.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성령이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부어질 때 굳은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임재를 사모하는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하되어 자신의 힘과 방법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마음으로 변화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이유는 바로 그를 믿는 모든 자의 죄를 사해주시고 성령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셔서 주님과 연합하게 하시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게 하는 마음의 할례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 표징이 신약의 세례입니다. 매 순간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서 내 힘으로 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