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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바닷속의 갈보리
오늘도 말씀을 사모하는 심령으로 주님앞에 이르신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말씀의 은혜로 말세를 살아가시는 영적 힘과 능력을 얻으시는 복된 시간 되길 축복합니다.
오늘 저는 함께 교독한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바닷속의 갈보리 라는 좀 특이한 제목으로 특별한 경험을 한 사람의 기록을 중심으로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요나가 어떻게 하다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까?
정로로 가다가 입니까? 곁길로 가다가 입니까? 곁길로 가다가
우리는 지난번 요나서를 통해서 요나를 살리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던 사공들의 모습을 함께 보았습니다.
요나가 자신을 들어서 바다에 던지라고 했지만 그렇게 하면 당신들은 살 수가 있다고 했지만 요나가 비록 불 순종을 하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가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살아계신 창조주의 종이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 감히 그를 들어서 바다에 던지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풍랑 가운데서도 배를 육지에 대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가 있었다고 합니까? 할 수 없었다고 합니까?
그길만이 어떤 길이라고요? 요나도 살리고 사공들도 살고 현제적 생명의 구원만이 아닌 영원한 구원까지 받을 수 있는 길이 풍랑 속으로 바닷속으로 요나를 들어 던지는 길이다.
요나의 불순종과 그를 돌이키시려고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섭리가 이유가 있었습니까?
선왕 266 “요나에게 위탁된 책임은 무거운 것이었으나 그에게 가라고 명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붙드시고 그에게 성공을 허락하실 수 있으셨다. 만일 선지자가 의심치 않고 순종하였더라면 많은 쓰라린 경험을 겪지 않고 큰 축복을 받았을 것이다. 요나가 절망에 빠진 때에도 여호와께서는 그를 버리지 않으셨다. 연속적인 시련과 이상한 섭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당신 자신의 구원하시는 무한하신 능력에 대하여 선지자의 확신을 소생시켜야 하셨다”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고생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었을텐데 하나님의 명령과 섭리를 의심하였던 요나는 물고기 뱃속이라는 것을 통과 한 후 하나님의 섭리를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사건이 있은 후 약 700년이 지난 어느 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예수그리스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 12:39-4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무슨 말씀입니까?
구약시대 말씀에 불순종하여 도망가다가 물고기 뱃 속에 들어갔던 그 요나가 지금 누구의 표상이 되었다는 말씀입니까?
예수그리스도의 표상이 되었다.
예수께서 요나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두 가지 면이 당신의 표상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경험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관련하여 말씀 하셨고요. 다른 하나는 요나의 전도와 예수그리스도의 전도와 관련하여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은 이 두 표상적인 면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1.십자가의 그림자 물고기 뱃속
먼저 십자가의 그림자 물고기 뱃속이라는 작은 제목으로 말씀을 좀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 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이 말씀을 이상하게 해석하여서 예수그리스도께서 금요일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수요일 돌아 가셨다는 해석을 하여서 성경에 깊은 이해를 하지 못하시는 분들을 혼란 가운데 빠트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예수께서 금요일 돌아 가셨습니까? 수요일 돌아 가셨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이해를 하는데 수요일에 돌아가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중에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 분들도 아마도 있을 줄 압니다,
왜 그런 주장이 나왔을까? 오늘 올려드린 말씀 때문입니다.
요나가 밤낫 며칠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다고 합니까? 사흘을
밤낮 하루는 몇시간입니까? 24시간
그럼 밤낮 삼일은 몇 시간이 되나요? 72시간.
그럼 예수께서 밤낮 삼일을 무덤 속에 계셨다면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셨다면
금요일 돌아가셨다는 이론이 맞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들이 그런 오류에 빠진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밤낮 사흘을 문자 그대로 72시간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여러분들을 만나서 그렇게 주장을 한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그게 아니라고 우기면 될가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성경에 모든 문제는 무엇으로 풀어야 합니까? 성경으로 풀으라
그리고 성경으로 풀리지 않을 때는 풀릴 때까지 침묵하고 있으라 그것이 제가 성경을 통해서 본 성경이해입니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금요일 돌아가셨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셨다는 많은 증거들도 있고요.
그럼에도 그들은 수요일 죽으심을 고집한다.
그래서 오늘 짧은 시간에 문제가 되는 성경절 마태복음 12장 40절을 조금 이해를 하고 다른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성경에 날짜 계산법이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날짜 계산법이 어떠하다고요? 두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하루라고 하면 밤과 낮을 다 포함시키는 계산법입니다.
그 계산법에 의하면 밤낮 삼일은 분명히 밤 삼일 낮 삼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 용어가 사용된 말씀 보겠습니다.
고후 11: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이곳에 기록된 일 주야라는 단어를 헬라어에는 “눅크쎄메론” 이라는 용어를 썼습니다. 일주야는 오해하기 쉬운 말입니다. 일주일이라는 말이 아니고 하루 밤과 낮이라는 말씀입니다.
에스더에도 녹크쎄메론이 쓰여진 말씀이 있습니다.
에 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이곳에 밤낮 삼일이라는 용어도 눅크쎄메론입니다.
그런데 에스더 5장 1절에 보면 금식한지 제 삼일에 금식을 끝낸 것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밤낮 삼일 72시간을 하려면 제 사일이 시작될 때 끝이 나야 하였는데 하루 24시간 계산법으로 사용된 눅크쎄메론도 72시간이 되지 않았는 시간을 그렇게 사용하기도 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또 하나의 날짜 계산법은 시작한 날과 마치는 날을 다 포함하는 계산법입니다,
무슨 말씀을 드리는지 이해가 됩니까?
시작하는 날과 마치는 날이 아무리 작아도 그것을 하루로 계산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계산 법은 연도 계산 법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성경 보겠습니다.
왕하 18:9-10 “히스기야 왕 사년 곧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칠년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삼 년 후에 그 성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의 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구년이라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제가 년도를 다 붉은 글로 기록하였습니다.
히스기야왕 몇 년이라고 합니까? 4년 그리고 호세아 칠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앗수르왕 산헤립이 쳐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삼년 후 성이 함락됩니다.
4년에서 삼년을 더하면 몇 년이 되어야 합니까? 7년
예 사년에 성이 에워 싸이고 삼년 후라고 하면 적어도 7년 아니면 8년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함락된 해가 히스기야 몇 년이라고 합니까? 6년 호세아 몇 년이라고 합니까 9년이라고 하죠
그렇게 계산 한 것은 바로 쳐들어온 해와 함락된 해를 다 넣어서 기록하였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어떻게 계산하였는지 이해가 됩니까?
우리도 그런 상식으로 계산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오후에 우리 교회에서 청도 연수원으로 제직회를 간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오늘 오후에 갔다가 내일 아침에 옵니다.
모통 며칠이라고 합니까? 일박이일이라고 하는 표현 사용합니까?
시작한 날과 마치는 날을 함께 계산하면 이일이 됩니다. 누가 이야기 해도 이일이 아니라고 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문제가 되는 말씀 다시 올립니다.
마 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두 가지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글자 그대로 72시간이고요.
다른 하나는 시작한 날과 마치는 날을 합한 계산법 그러한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답을 찾아야 바른 성경 이해라고 할 수가 있습니까?
제가 자주 드리는 말씀이지만 본문 말씀이 이해가 잘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른 성경 절을 참고하라.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말씀 중에 금요일 돌아가신 내용과 수요일 돌아가신 내용을 찾아서 그 답을 삼으라는 것입니다.
힌트가 되는 말씀하나 더 올립니다.
눅 24: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 지가 사흘째요”
예수님 십자가 후 부활까지 며칠 째라고 합니까? 사흘째
금요일 돌아가시고 일요일 부활하셔야 사흘째가 되죠? 또 이런 말씀 있습니다.
마 27:40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요 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 2:20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마 27:63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막 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사흘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또 제 삼일에 라는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 17:23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
마 20:19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
마 27:64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하니”
눅 13:32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 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올려드린 말씀외에도 주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더 많은 말씀들이 있음
그래서 마 12장 40절의 “밤낮 3일” 표현은 포함 계산법으로 밤과 낮으로 구성된 달력의“날”의 뜻으로 3일을 의미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원래 히브리어,와 헬라어,는 날과 낮은 같은 단어이기 때문에 “낮”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날”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될 때는 특별히 날(일)에 “밤낮”이라는 표현을 덧붙인 것이라는 말씀임.
이상의 말씀을 통한 결론은 부활한 날은 십자가 달린지 제3일이라는 말씀임.
지난 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잘 이해하여서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가 있다면 더 좋지만 그렇지 못하다 하드래도 나는 확신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임.
우리 모두 이 말씀 뿐 아니라 진리의 말씀들을 다 밝히 깨닫고 말씀으로 살아가는 은혜의 삶이 되길 축복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그러한 논란을 삼으라고 주신 말씀이 아니고요, 것 같이 라는 말씀입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어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까?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요나의 경험을 당신 자신의 무슨 경험에 비교하셨습니까? 무덤의 경험.
예수께서는 무덤에서 쉬셨지만 요나의 지금 경험은 쉬는 경험입니까? 아니면 다른 경험입니까? 예수그리스도의 갈보리의 십자가의 경험이라고 이야기 할 수가 있습니까?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이런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욘 2:1-2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이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예수께서도 기도하셨습니까? 무덤이 아닌 십자가 위에서 기도드리셨죠?
요나가 절박한 기도를 드렸을까요? 하나님 살려주세요 라는 기도를 드렸을까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무슨 기도를 드리셨습니까?
요한복음 19장은 예수님의 그런 기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 15: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부르짖음을 하시고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떨구셨습니다.
그 다음 요나의 기도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욘 2: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기록한 시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시 22: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십자가 위이고 바닷속이지만 비슷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께서 당신도 요나처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런 말씀하십니다.
막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자주 찾아 드리는 말씀이죠?
우리보고 어떤 경험을 함께하자고 하십니까? 십자가의 경험을 함께하자.
그 길이 어떤 길이라고요?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다.
요나는 십자가의 길이 싫어서 도망가다가 바닷속에서 십자가의 경험을 합니다.
이다음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늘에 도착한다면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늘에 오게 되었는지를 한번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요나와 같은 모습 보일까요?
호세아서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결혼하라고 하시면서 처녀를 골라 장가가라고 하시지 않고요 창녀에게 장가가라고 하십니다.
제가 생각할 때 호세아는 참 안된 선지자 같이 보입니다.
일생 한 번뿐인 결혼을 자기가 마음에 드는 사람과 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누구와 결혼하라고요? 창녀에게 장가가라 그리고 음란한 아이를 낳아라 하십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어떻게 지으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그 아이의 이름을 이는 내 아들이 아니다 라는 이름을 지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결혼한 부인이 옛 생활을 버리지 못하고 또 다시 창녀촌으로 돌아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찾아가서 돈 주고 싸오라고 하십니다.
여러분들 호세아서를 좀 읽어 보셨습니까? 호세아서가 그런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선지자들은 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다 몰라서 그렇지 오늘날 목사들도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다 그런 유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의도대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 그들을 위해 기도 많이 해 주시길 바랍니다.
왜 성경에 그런 기록을 주셨을까요?
하나님의 사랑을 현실감 있게 느끼도록 하기 위하여서라면 맞는 말씀입니까?
호세아에서 호세아는 누구를 상징하고 고멜은 누구를 상징합니까?
예수님과 우리를 상징하는 이야기가 맞습니까?
고멜처럼 요나처럼 걸핏하면 하나님을 떠나서 내 마음대로 살았던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 사랑이 아니었다면 우린 멸망 할 수 밖에 없었죠.
우리를 잃어버리기 싫으셔서 목요일 밤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고 겟세마네로 가시어서 기도하시고 밤새 한숨도 주무시지 못하시고 새벽에 폭도들에게 잡히시어 이리 저리 끌려다니시며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 형을 언도받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오리신 것은 저와 여러분들을 놓치기 싫어서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도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구원받지 않으려고 결심할 때 이루어 질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강권하시는 그 사랑을 매일 느끼면서 여러분들의 믿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잘 지키시길 바랍니다.
요나의 전도 예수님의 전도
이제 짧은 시간 요나의 전도와 예수님의 전도와 관련된 말씀을 조금만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올려드립니다.
마 12: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요나보다 더 큰 분이 예수그리스도가 맞는 말씀입니까?
지금 우리는 예수님 계시던 때보다 더 큰 분의 영향력 아래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시나요?
언제 제가 이 말씀을 한번 올려드렸죠?
요 1: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지만 하나님을 다 비워 버리고 오셨기 때문에 지역의 제한을 받으실 수 밖에 없으셨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시죠? 이스라엘에 계시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에 계실 수가 없다는 것이죠?
그러나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허락하신 보혜사 성령은 무소부재하신 분이십니다.
동시에 전 세계에 충만히 임재하실 수 있는 하나님 그대로 오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시대보다 더 큰 일을 저와 여러분들은 다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죠.
요나의 전도를 듣고 그 도성안에 12만명이 회개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전도를 듣고 그 영향으로 지금 수 억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오늘 성령의 능력으로 전해질 복음을 들을 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판 때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서 장유사람들 보고 너희들은 무엇을 하였느냐고 했을 때 장유사람들이 우리는 복음을 듣지 못하여서 구원받지 못하였습니다 라는 말을 한다면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까?
종말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저희들이 그 책임을 회치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겔 33:8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우리가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받아 들이지 않으면 그들은 자기 죄악 중에 멸망할 것이지만 우리가 잠잠하면 그들의 피 값을 누구에게서 찾으리라 하십니까? 우리 손에서
사랑하는 성도님들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가 멸망할 것이라는 엄숙한 사명감을 깨닫게 되길 소원합니다.
금년 선교부와 안교부에서 많은 계획을 세우고 여러분들의 동참과 협력을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 이제 일어나서 이곳에 정말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하는 교회가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속히 복음사업마치고 주님 기다리는 저 영원한 천국에 속히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일을 위하여 다시 결심하시고 충성을 다짐하시고 뜨거운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여 내 집을 채우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쫓아 하나님의 성전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우리 모든성도님들 되길 축복합니다.
기도
하늘에 계시는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무지한 저희들을 깨우쳐 주시거 어떤 오류에도 흔들리지 않고 바른 믿음위에 굳게 서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욘 2:1-4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이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