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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속에서 태양빛이 나타나더라(2178.2023.2.12)
대하 20:1-13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인생을 행복하게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죽지못해 고난과 고통과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면 지금 내 형편은 어떻습니까? 즐겁고 행복합니까? 마지못해서 살고 있습니까? 모든 상황이 내게 불리한 상황입니다. 우리한 상황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을 위기상황이라고 하고 우리속담에 ‘산 넘어 산이로구나’라고 탄식할 때가 있습니다. 한 고비 넘으면 이제 좀 괞찮으려니! 라고 생각했는데 절망과 고통이 계속해서 겹쳐 올 때에 아무리 믿음이 강인한 사람도 좌절하고 쓴물이 속에서 올라오게 되고 다 두고 도망가고 싶은 심정일 것입니다. 이것이 혼자만이 겪는 일이 아니고 우리 모든 성도들이 겪는 삶의 모습입니다. 요즘에 자꾸만 겹치는 환란을 만나서 괴로울 때에 이걸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인가에 대한 답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남왕국 유다 제 4대 왕인 여호사밧 왕 때 일어났던 일입니다. 여호사밧 왕은 25년 동안 남왕국 유다를 다스렸는데 종교개혁 운동을 일으켜서 큰 영적 부흥을 일으킨 귀한 왕입니다. 그런데 나라가 새로워지려고 하니까 영적으로 부흥하려고 하니까 이방 민족들이 힘을 합해서 저들을 공격해 왔습니다. 한 나라도 아니라 세 나라와 민족인 모압 압몬 자손과 마온 사람들이 같이 연합군을 만들어서 공격해 왔습니다. 대하20:1-2절‘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어떤 사람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전하여 이르되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하니’
종교개혁을 통해서 나라가 새로워지고 영적으로 부흥하려고 할 때 저들이 공격해 왔습니다. 보니까 여호사밧 왕을 치러왔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이 리더를 지도자를 먼저 꺾어 놓으면 그가 이뤄놓은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것을 저들이 알았기 때문에 함께 연합군을 이루어 쳐들어온 것입니다. 우리가 결심하고 예수를 더 잘 믿으려고 할 때 믿음 생활을 바르게 하려고 할 때 잘못된 옛 사람의 모습을 내던져 버리고 이제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가려고 할 때 더 잘 해 보고 싶었는데 예기치 않은 환난과 시험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또 어떤 때는 세상적인 풍요로움 속에서 주님의 은혜를 잃어버리고 살 때, 이때도 우리에게 겹치는 환난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환난이 다가오는 것은 우리에게 절대 절망적이고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환난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다가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굳건히 해서 환난과 시험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갈 때 우리의 믿음이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 더 귀한 일꾼으로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고난은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인생은 배를 타고 넓은 바다를 향해 가는 것과 같습니다. 순풍에 돛달고 항해하듯이 기쁘고 평안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노도풍랑이 엄습해 올 때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노도풍랑이 엄습해 와서 정신 차릴 수가 없고, 낙심하고 좌절할 수 밖에 없을 때, 이를 잘 대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풍랑을 대처할 줄 모르면, 불안해 하다가 노이로제 환자가 되거나 정신병 환자가 되거나 아니면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경에서 얼마든지 풍랑이 일어날 때 대처하고 승리하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롬5:3-4절‘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난이 인내를, 인내가 연단을, 연단이 소망을 이루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큰 환난이 다가오게 된다고 할지라도 잘 참고 견디며 모든 환난을 극복해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유대의 여호사밧 왕은 아버지 아사 왕의 믿음을 계승한 자로서 하나님 신앙으로 뜨거웠습니다. 여호사밧은 25년 동안 통치하면서 여러 가지 개혁 운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우상을 섬기던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을 제거하였고(17:6) 전심으로 여호와의 도를 행하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나라를 견고케 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사랑한 만큼 하나님은 그에게 합당한 보상을 해주심으로 부귀와 영광이 극에 달했습니다(17:5). 나라가 점점 부강해지자 그는 믿음으로 사는 것보다 세상의 방법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할 사람이 사람을 더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북쪽 이스라엘 왕 아합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아합과 함께 길르앗 라못을 치러 올라갔습니다(18장).
하나님은 미가야 선지자를 통해서 그 전쟁이 실패할 것을 말씀해 주고 있었는데도 전쟁에 나가는 큰 실수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러한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선견자 예후를 보내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19:2). 하나님은 여호사밧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모압과 암몬과 마온 사람의 연합군을 보내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순간에 여호사밧은 자신의 무능을 깨닫고 오직 주만 바라본다고 고백을 하게 됩니다. 오늘도 본문을 중심으로 ‘풍랑속에서 태양빛이 나타나더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1.풍랑을 만나면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했기에 자신이 만난 위기를 통해 하나님을 더 경험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큰 위기 앞에서 즉각적인 군사적 대응을 하지 않고 그는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위기 앞에서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들은 어떤 신앙의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까?
어려울 때 성전에 모였습니다. 5절‘여호사밧이 여호와의전 새뜰앞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중 가운데 서서’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교회 중심으로 살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은혜의 장소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삶 전체를 즉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곳입니다. 아니 더 나아가 여러분의 영생의 문제를 다루며 그 일로 사력을 다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주님이 피값을 주고 사신 곳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인생의 문제를 반드시 교회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밖에는 인생이 당하는 영육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 위기가 찾아왔습니까? 교회로 나와 기도하십시오. 슬픔이 여러분을 괴롭히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주저말고 교회로 나오십시오. 인생의 문제를 가지고 교회를 출입하는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거센 풍랑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자칫하면 풍랑만 바라보고 좌절에 빠지기 쉬운데, 우리는 풍랑을 보지 말고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하여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됩니다. 3절‘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였다’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이 환난에 처했을 때에 가질 태도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시험 환난을 당할 때 자꾸 그것만 쳐다보지 말고, 마음을 가다듬고 낯을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기도했습니다. 3절에‘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간구’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계속 찾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저들의 기도는 합심 기도로 이루어졌고(4,13절), 금식 기도로 이어졌습니다(3절). 저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영히 주셨다는 것입니다(7절). 그런데 지금 하나님이 주신 그 땅이 위협을 받고 있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임을 상기시키며 기도하고 있습니다(11절). 그리고 그의 기도 속에는 인간의 무능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12절). 이 인간의 무능의 기도는 하나님 절대 신앙의 기도로 승화되어 갔습니다. 하나님만이 하늘의 하나님이시고, 하나님만이 모든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기도를 드렸습니다(6절).
베드로도 예수님만 똑바로 바라볼 때는 거센 파도를 밟고 물 위로 걸어갈 수가 있었으나, 눈길을 예수님으로부터 돌이켜 풍랑을 바라볼 때 그만 그 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라도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하고 주님을 향하여 부르짖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건져주시며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여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하실 때 의인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창문을 3층에다 내고 하늘을 쳐다보게 했던 것입니다. 시뻘건 홍수물에 사람과 짐승의 온갖 시체가 다 떠다녔지만 노아는 그것을 하나도 보지 않고 3층 창문을 통해서 하늘만 쳐다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아무리 무서운 환난과 시련이 와도 그것만 바라보고 낙심하는 대신 하나님께 낯을 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함이 없고 잠재우지 못할 인생의 풍랑이란 없습니다. 그래서 시121:1-2절‘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만난 위기, 수많은 어려움들이 모압과 암몬과 마온의 연합군처럼 공격할지도 모릅니다. 이때 성도는 자신이 가진 재력이나 권력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경험에 의해서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변함없이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으로만 나아가야 합니다. 여기에 승리가 있고, 여기에 능력이 있고, 여기에 기쁨이 있고, 희열이 있습니다. 아무리 숫자적으로 우세하고 좋은 무기를 갖추고 있다 할지라도 그 전쟁이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전쟁은 반드시 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2.인생의 풍랑을 만나도 성도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합니까?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세상의 기업도 위기가 닥치면 뼈를 깍는 노력을 합니다. 예수믿는 성도들이 풍랑을 만났을 때 달라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속 사람이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마음의 변화가 되면 삶은 저절로 해결이 됩니다. 삶의 변화가 없으면 풍랑속에서 어려움속에서 허덕이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달라지기 위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답답한 것은 딜레마가 있습니다. 왜 악인들은 잘될까입니다. 거짓과 속임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왜 잘 살고 있을까 왜 재물은 저들에게는 쌓이는가? 왜 하나님은 가만이 계실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는데 왜 저렇게 엉망으로 신앙생활 하는데도 잘되고 있습니까? 의인들은 고난당하는데 내가 생각한 악인은 왜 잘되고 있습니까? 왜 가만이 보고만 계십니까라는 딜레마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답을 주십니다. 잡초를 보라 빨리자라지 않느냐 그러나 잡초는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날 잡초를 한번에 베어서 블에 던지듯이 그렇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을 주시면서 시37:1-2절‘악을 행하는자들 때문에 불평하지말며 불의를 행하는자들을 시기하지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시1:6절‘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라로’ 이것이 오늘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우리모두에게 주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어떤 일을 만나면 하나님 신뢰하고 기도했듯이 우리들도 지금까지 도와주신 하나님 오늘도 구해주실 것을 믿습니라고 기도할 때 다시 일으켜 세워주실 것입니다.
찬543장--어려운일 당할 때 나의 믿음적으나---
모든 인생의 풍랑은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신호입니다. 시50:15절‘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했습니다. 풍랑이 몰아치는 환난의 날에! 내 인생에 노도 광풍이 몰아치는 날에, 그리하여 내 소망이 풍전등화와 같이 깜박일 때, 소망의 빛이 보이지 않고, 여기가 내 인생의 마지막이구나 할 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믿는 성도에게 주신 특권은 바로 이러할 때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 힘만 의지할 땐 패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면 승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늘문을 여는 마스터키입니다.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풍랑을 만나면 신앙고백을 잘 해야 합니다. 12절‘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 116만명의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17:13-19). 아무리 연합군의 공격일지라도 한 번 해볼 만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이미 하나님이 반대하시는 전쟁에 아합과 함께 나간 길르앗 전투에서 철저하게 패배의 쓴맛을 보았기 때문에 자기의 군사력을 의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전쟁은 반드시 패한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아무리 숫자적으로 우세하고 좋은 무기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 전쟁이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전쟁일 때는 아무 의미가 없음을 여호사밧은 깨달은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이 진리를 알았기 때문에 자기의 군대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인간적인 수단을 포기하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했습니다. 인생이 만난 위기, 국가적인 위기에서 여호사밧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자기의 군사력, 인간적인 모든 방법들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 절대 신앙으로 나아갔습니다. 오늘을 사는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에게도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악한 마귀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공격할지 모릅니다. 이때 성도는 자신이 가진 재력이나 권력을, 자신의 경험을 믿고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변함 없이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으로만 나아가야 합니다. 여기에 승리가 있고, 능력이 있고, 기쁨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그리곤 경배했습니다. 18절‘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했습니다. 인간의 무능을 아는 자는 절대자 앞에 합당한 태도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여호사밧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예배를 통해 문제 해결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리고는 찬송했습니다. 19절‘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하였습니다. 찬송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찬송은 음률이 있는 기도로서 무한한 능력을 체험하게 합니다. 다윗의 찬양하는 수금은 사울 왕에게 붙은 악신을 쫓아내기도 했습니다. 빌립보 감옥에서의 바울과 실라의 찬송 소리는 옥터를 진동시켰고, 감옥 문을 여는 기적을 가져왔습니다. 이런 능력의 찬송이 여러분의 삶속에서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인생의 풍랑속에서도 주만 바라본 성도에게는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반드시 그 결과가 있습니다. 저들이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 기도 드릴 때 야하시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야하시엘은 레위 사람으로서 성전 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예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즉각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신앙생활의 능력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저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응답이 임했습니다. 14절‘여호와의 신이 회중 가운데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으니’하였습니다.
야하시엘에게 임한 하나님의 응답은 15-17절에보면 하나님의 응답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15절에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불신앙에서 출발합니다.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환경과 형편에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믿음 없는 이스라엘 군대는 거대한 골리앗 앞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혔지만 하나님만을 신뢰했던 다윗에게는 결코 두려움의 존재가 되지 못했습니다. 인생사에 닥치는 어떤 ‘큰 무리’가 우리에게 닥친다 할지라도 두려움을 떨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입니다. 15절‘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여호사밧의 잘못으로 임한 징계였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윗도 골리앗과의 접전에서 이렇게 용맹의 소리를 발하였습니다. 삼상17:47절‘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전쟁도, 구원도, 나라의 흥망성쇠도 다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인생의 생(生)과 사(死)도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는 것입니다. 17절‘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17절‘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응답입니까? 얼마나 큰 하나님의 구원입니까? 이렇게 선지자를 통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저들은 하나님께 경배하고 레위 사람들은 심히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18-19절). 아직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저들은 이렇게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저들은 일찍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20절). 여호사밧은 재차 백성들에게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고 촉구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 신무기로 무장한 군대를 동원하지 아니하고 찬양대를 조직하였습니다. 저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 세워 여호와께 찬양을 드리게 하였습니다. 인간의 상식이 용납하지 못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들의 찬양의 내용은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였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전쟁도 하지 않고 여호와를 찬송하기만 했는데 적군들은 자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이 사건들은 성경에 수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 군대의 나팔 소리와 무리들의 외치는 소리는 거대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습니다. 다윗의 찬양하는 수금은 사울에게 붙은 악신을 쫓아내었습니다. 빌립보 감옥에서의 바울과 실라의 찬양 소리는 옥터를 진동시켰고, 감옥 문을 여는 기적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소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찬양의 소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심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연합군을 치게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 ‘복병’을 천사로 보기도 하고, 또는 유다의 군대로 보기도 합니다만 천사라는 근거도 없고, 유다 군대라는 근거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유다 백성에게 싸우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17절). 그러므로 복병은 적의 군대 중의 한 부대로서 그 부대가 갑자기 반란을 일으켜 저희끼리 싸워 죽이는 결과를 낳게 된 것입니다. 저들의 싸움이 너무 치열해져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죽었습니다(23-24절). 이런 전쟁은 기드온이 300명의 용사를 거느리고 미드안을 공격할 때도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싸우시는 전쟁에서 승리한 유다는 사흘 동안이나 취해도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은 전리품을 취했습니다(25절). 유다 백성들은 브라가 골짜기(축복의 골짜기)에 모여 여호와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인생이 만난 위기 속에 오직 하나님만 바라본 자의 삶은 위기가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승리케 하셨습니다. 창검을 들고 승리한 게 아니라 전쟁터에서 레위 사람들, 고핫 자손, 고라 자손이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게 했습니다. 대하20:22-23에 보면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산 거민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거민을 멸한 후에는 저희가 피차에 살육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기도와 찬양소리에 대적들이 흔들렸습니다. 혼란이 왔습니다. 자중지란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승리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어떤 위기나 고난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의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업, 교회에 고난과 위기가 오고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여호사밧 왕과 같이 권세와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능력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교회를 향해서 기습해 오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교회 분쟁에 처음부터 부당하게 개입하던 이들이 연합하여 기습안건을 상정하여 교회를 장악하려고 합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호사밧의 신앙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사밧은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도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변의 강대국에 구원병을 요청하지도 않았습니다. 애급을 의지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전능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를 치러 오는 이 무리를 우리가 대적 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여호사밧은 여호와를 앙망함으로 인하여 사기가 충천하게 되었고 새 힘을 얻었고 결국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호사밧의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문제가 있을 때, 성전을 찾는 신앙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성전을 찾읍시다. 믿음으로 간구하며 금식하며 언약의 말씀을 붙듭시다. 난관이 앞을 가로막고 있을 때, 어찌 할 바를 모를 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면서 하나님만 바라봅시다. 여호사밧처럼 ‘나는 대적할 능력도 어떻게 할 줄도 모르니 주님만 믿습니다’라고 고백합시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신앙의 힘으로는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이 마19:26에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느니라’코로나도 지나가고 하니 다니엘21일 특별새벽기도회를 3월에 할 예정입니다. 하나님 바라보며 문제해결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지구촌에 사는 모든 인생은 예외 없이 여러 가지 다양한 위기를 만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상주감리교회 성도라고 예외는 없습니다. 모든 인생은 예외 없이 수많은 위기 속에 살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죄로 인해 오는 위기도 있을 것이고, 사단이 주는 시험도 있을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하시고 축복하시기 위해 주시는 고난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이는 누구입니까? 우리를 도와주실 분이 누구입니다. 우리를 이기게 하실 분이 누구입니까? 오직 주님 뿐입니다. 위기를 만난 성도는 오직 주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위기를 만난 인생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인생이 만난 위기는 결코 절망적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위기 때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축복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기적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인생이 만나는 위기에서 오직 주만 바라봄으로 우리의 삶속에 브라가 골짜기만 있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풍랑속에서 태양빛이 나타나더라’는 은혜속에 ‘인생의 풍랑이 일어나도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는 신앙으로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며 축복을 받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