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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흥안씨 순계군파 세보(안)
* 이 세보는 25세 성범할아버지의 후손들이 소문중회를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으므로, 소문중회 집안의 종중회원들을 대상으로 명단을 작성하였음. 이 안은 초안으로 각 회원집안의 인적사항(자녀출생, 직업, 주소, 연락처 등)을 보완하여, 경향각지에 있더라도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자료로 만들고자 하는 바임. 더 나아가서는 상주 사벌 참판공 후손들의 집안을 묶어 한권의 책으로 펴낼 수 있는 기반으로 마련하고자 함. 이에는 소문중 뿐만 아니라 대문중과의 협의하에 이루어져야 할 것임. 만일 책으로 만들 경우, 문성공 안향 할아버지의 영정, 소수서원, 용인 선조묘역, 엄정촌 묘역, 사벌 가장산, 배목 동촌, 산막산등 묘역의 사진 및 각 회원들의 증명사진등을 게재하여 생생하게 살아있는, 효와 사랑을 나누는 보금자리가 되어야 할 것임. 또한 이 초안으로 부족한 상주 사벌로 오게된 배경, 지선할아버지의 사료파악(광양, 하동 집안과 연계), 엄정촌 시유림의 문중산 확보방안 등도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임. 위의 사업에 무식한 제가 먼저 자료를 제시하는 바이오니 문중 원로 제현께서는 필요한 참고자료를 도와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순흥안문 시조 자미 할아버지 32세손 장수(章洙) 올림.
집 054-553-2087. 휴대폰 010-8361-2087
주소: 문경시 영순면 김용리 230번지.
세 보
1세 시조 안 자미(子美), 순흥안씨 시조 할아버지. 영주 순흥 평리촌에 사단비 및 추원재.
고려 신종조에 ‘흥위위 보승별장(관직이름)’을 역임, ‘신호위상호군’에 추봉 됨. 배위(부인)의 성씨는 실전됨(알지못함).
묘소는 순흥 소백산 아래 있다고 전해오는데, 표지가 없어 찾지 못함. 후손 순원군 응창(사벌 입향조의 고조)이 의성현감으로 있으면서 순흥의 평리촌 유적지에 제단을 쌓았음. 매년 10월 초하루에 제사를 올린다. 무오년에 사단비를 세우고 추원재를 이건하였음.
2세 자 영유(永儒)
2세 때에 3형제가 3파로 나뉘어 불린다. 1파: 영유, 2파: 영린, 3파: 영화
우리 사벌 및 공검 문중들은 1파 영유 할아버지 형제이고, 국회의원 안택수와 안윤식 경북도정무부지사를 배출한 예천 용궁 월오(다래실) 및 풍양 흔효의 집안은 2파이고, 안축형제들은 3파이다.
고려 신종4년 서기 1201년 신유생. ‘추밀원부사 상호군’에 추봉되었다. 배위 성씨 실전.
묘소는 순흥의 도강면 감곡리 서쪽 기슭인 지장산 신좌이다. 후손 상(瑺)이 제실 영모암을 설치. 10월 2일에 제사. 후손인 위(湋)가 묘갈을 찬하고, 응창이 묘지를 찬하고, 부사 희가 영모암기를 찬하고, 호연이 중수상랑문을 찬함.
3세 자 부(孚)
고려 고종 경진년(1220년) 출생. 문과 급제. 벼슬이 정의대부 밀직부사를 지내고, 판도판서로 치사하였으며, 수태사문하시중에 추봉. 순흥 용연사에 제향. 묘 실전. 부인 강주 우씨이고 부친은 예빈사동정 성윤이다. 매년 10월 초하루에 순흥의 평리촌에 있는 호군공의 사단에 제향한다. 대사성을 지낸 황호가 사단기를 찬하였으며, 후손인 진사 몽백이 유사를 찬하였다.
4세 자 향(珦) 문성공, 문묘종사 소수서원 등14곳 서원등 봉안. 묘소 경기 장단군 대덕산
처음 이름은 유(裕), 뒤에 향으로 고침. 고려 고종 계묘년(1243년) 출생. 문과급제. 벼슬이 ‘삼중대광도첨의중찬수문전태학사’에 이르름.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공자를 배우고자 한다면 먼저 회암(주자)을 배워야 한다.”고 함. 스스로도 ‘회헌(晦軒)’리라고 호를 함. 선성선사와 72명 제자의 화상, 제기와 악기, 육경과 주자서. 사서들을 구입해왔고, 토지와 주택과 노비들을 바쳐 학전을 마련함.
고려 충렬왕 병오년(1306년) 별세, 향년 64세. 시호 문성(文成)이라고 하였으니, 도덕에 대한 문견이 넓은 것을 문이라 하고, 백성을 편안히 하고 훌륭한 정사를 세움을 성이라 한다.
고려 충숙왕 무오년(1318), 문묘에 화상을 그려 걸게하고 고향마을에 치제하였으며, 충숙왕 기미년에 문묘에 종사하였다.
순흥 소수서원 등 14곳의 서원과 사당에 봉안됨. 특히 소수서원은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 재임시절, 1542년 중종 37년에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을 선조임금께 말씀드려 ‘소수서원’이라는 판액과 문성공 안향 영정(국보111호)을 모시고 영주 순흥면 내죽리에 세워졌으며, 지금은 소수서원 옆에 선비촌박물관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문성공 향 할아버지의 묘소는 장단부(경기도 개성)의 북쪽인 송림현 동오리 동쪽 5리 지점인 대덕산 구정리에 있음.
부인은 김씨로, 부친은 우사간을 지낸 녹연이다. 묘소는 왼쪽에 부장하였으며, 쌍분이다.
매년 10월 초하루에 제사를 지낸다.
신익성이 언행기를 찬하고, 김세렴이 신도비를 찬하였으며, 후손 응창이 묘지명을 찬하고, 극권이 실기를 편집하였으며, 재묵이 연보를 찬하고, 명렬이 중간실기를 찬하였는데, 도통사의 사림들이 별본을 증집하였다.
5세 우기(于器) 문순공, 경기 장단 대덕산 선고 아래.
처음 휘는 천(遷이)고, 자는 허중(虛中)이며, 호는 죽옥자(竹玉子)이다. 고려 원종 을축년(1265년)에 출생하였으며, 충렬왕 임오년에 문과 급제하여 한림지제고와 사림, 보문각의 두 대제와 국자의 제주를 지내고, 밀직, 대헌과 민부.총부의 두 전교를 역임하였으며, 광정대부 검교첨의 찬성사 겸판전의시사를 역임하고, 순평군에 봉해졌다. 고려 충숙왕 기사년(1329) 9월 12일 별세하니, 향년 85세였다. 시호를 문순(문순)이라 하였으니, 학문을 부지런히 힘쓰고 묻기를 좋아하는 문, 자애로워 사람들이 두루 복종함을 순이라 한다. 묘소는 문성공의 묘소 오른쪽 첫 번째 기슭인 자좌에 있다. 순조 임오년에 순흥의 용연사에 배향되었다. 배위는 최씨로, 부친은 문하시중 충약이고, 부인은 1남을 낳았다.
최해가 진상찬을 찬하는데, 여기에 이르기를 ‘공은 의관이 정제하고 모양이 단정하고 엄하였다. 몸을 다스리기를 차라리 검소할지언정 화려함이 없게 하였으며, 일에 임하여 부지런하면서도 급하지 않았다.’ 하였다. 족질이 문정공 안축이 묘지를 찬하고, 진성 이중곤이 묘갈을 찬하였다.
6세 목(牧) 순흥군, 경기 장단군 대덕산 선고 아래.
자는 익지이며, 호는 겸제(謙齋)이다. 충렬왕 경인년(1290)에 출생하였으며, 충숙왕 을묘년에 문과급제하고,충숙왕 기묘년에 장령으로 전주를 관장하여 공신의 관작을 하사받았다. 벼슬이 통헌대부정당문학진현관대제학에 이르렀으며, 순흥군에 봉해졌다. 말년에는 파주의 서쪽 교외에 터를 잡고 은퇴하여 시와 술로 여생을 한가로이 보냈다. 경자년 5월 무자일에 별세하니, 시호를 문숙(文淑)이라 하였으며, 순조 임오년에 순흥의 용연사에 제향되었다. 부인은 김씨로, 부친은 첨의중찬을 지낸 태현이다. 묘소는 문순공의 묘소아래 자좌이다. 익재 이제현이 진상찬을 찬하고, 후손 응창이 묘지를 찬하였으며, 기우만이 묘갈을 찬하였다. 사위 민유는 재제학을 지냈다.
7세 원숭(元崇) 순흥군
처음 휘는 정(靖)이다. 고려 충선왕 기유년(1309) 출생. 충혜왕 신사년에 문과 급제, 여러번 관직을 제수받아 대언을 거쳐 판서로 있다가 전주로 부임하였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광정대부 정당문학대제학을 제수받았다. 순흥군으로 봉하였고, 시호는 문혜라 하였으니 학문을 부지런히 힘쓰고 묻기를 좋아하므로 문(文,) 유순하고 질박하여 백성을 사랑함을 혜(惠)라 한다. 부인은 원주원씨이며, 부친은 첨의평리를 지낸 선지이다. 묘는 문성공 묘아래 자좌 쌍분이다. 후손 응창이 묘지를 찬하고 참판 김학수가 묘갈을 찬한바 총록애 보인다. 세사는 10월 초하루이다.
8세 원(瑗) 경질공
호는 서암(瑞巖), 고려 충숙왕 임신년(1332)에 출생, 공민왕 계사년(1353)에 문과급제하여 한림원에 보임되고, 여러번 벼슬하여 봉익대부 형조전서에 이르렀다. 공양왕 경오년에 한양으로 천도하려는 계획을 간항 중지시켰으며, 임신년에 포은 정몽주의 도당이라 하여 외지로 유배되었다. 조선조에 들어와 여러번 벼슬을 제수하였으나 부임하지 않았으며, 한양으로 천도하게 되자, 억지로 공에게 고도(故都)의 유후를 제수하고 또 형조판서를 제수하였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고, 서원의 별장에서 거처하다가 별세하였다. 시호를 경질이라 하였으니, 의를 따라 일을 이룸을 경(景)이라 하고, 명실(名實)이 어긋나지 않음을 질이라 한다.
순흥 용연사, 개성 표절사에 배향되었다. 묘는 문성공의 묘소 남쪽 기슭인 유좌이다.
부인은 영양남씨이다. 묘는 합폄(合窆)하였다. 후 부인은 파평군부인 윤씨이며, 5남5녀를 낳았으며, 묘는 오른쪽 기슭 신좌이다. 후손 응창이 묘지를 찬하고, 진성 이만규가 묘갈을 찬하다.
9세 종신(종신) 참판공파(순흥안씨 참판공파라 부르는 바로 그 할아버지임)
9세 6형제에서 분파가 되었는 바, 우리가 참판공파라 할 때에는 종신 할아버지의 벼슬을 따서 참판공파라 부른다. 종약(판서공파), 종례(어사공파), 종의(부사공파), 종렴(도정공파), 종신(참판공파), 종검(참의공파)
전라도관찰출척사와 경력소경력을 지내고, 가선대부 병조참판에 제수되었다. 부인은 정부인에 추증된 고려종실 왕씨로, 부친은 영복군 격이다. 묘소는 양주의 진건면 배양리로, 원래는 풍양의 왕숙탄 어은동 해좌이다. 쌍분인데 표석이 있으며, 9대손 응창이 묘지를 찬하였다. 공과 공의 아드님인 동돈령공 의 묘갈이 모두 망가져서 식별할 수가 없으므로, 갑인년(1914) 봄에 석물 일체를 개수하고 양대의 비를 새겨 세웠으며, 비문을 인쇄하여 여러 집안에게 널리 전하여 행적을 밝혔다. 세사는 10월 3일이다.
10세 진(進) 돈령공, 양주군 진건면 배양리 어은동
가정대부 동지돈령부사를 지냈다. 정부인 평양조씨로, 부친은 태종조의 부마인 평양부원군 대림이다. 묘는 선고의 묘소 오른쪽 10여 보 지점인 해좌에 있는데, 쌍분으로 표석이 있다. 8대손 응창이 묘지를 찬하였는 바, 총록에 보인다. 사위 유효장은 문화인으로 군수를 지냈다.
11세 희(犧) 장사랑공, 경기도 양주군 건천면 오룡동
선고 진 아래에 잉(扔,도칠서령), 부(拊), 희, 륜(掄), 근(僅 씻을 근. 손수변이나 사전에 나오지 않아 임시로 두인변을 썼음),탁(擢) 오형제임.
장사랑세종임자1432년생 단명사단조두해액(壇名詞壇早魁解額). 문종임신졸 묘 양주건천면오룡동건좌 유표석 7대손응창 찬지. 부인 청주송씨 부친 판서 처관, 묘 광주남한산성서동음암자좌 유표석 7대손 응창. 1970년 경술 군용지징발로 인하여 이장 공조(公兆)합돌부좌
12세 계송(繼宋) 좌통례, 인천고산성 청량산.
자 자윤 호 부전경수 문종임신1452년생 성종 원종공신 돈녕부주부 문과 사헌부집의 은덕불사(벼슬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덕을 쌓음). 중종 을해 12월24일졸 향년64세 증 . 부인 숙인완산이씨 부 세종왕자 계양군 충소공, 묘 인천고산성서청량산원우음(遠于音)경좌 쌍비. 안분당 이희보 찬명, 6대손 응창찬지.
13세 광수(光脺) 승사랑공, 양주 건천면 오룡동.
형제간으로 광수, 광범(정략장군),광렬(참봉), 광윤(좌통례), 광익(무과 관 우후) 광옥(부사과)이 있다.
승사랑 성종 계묘 1483년생 17괴한성시 중종을유졸 향년55세 증좌승지 부인증숙부인동래정씨 부 참찬. 묘 양주 건천면 조고조조강곤좌 유표석 5대손응찬찬지 세사10월4일
14세 경율(景嵂) 참판공. 양주 건천면 오룡동.
자 간숙 연산 경신 1500년생 직산, 문경, 영천현감 관익위사 좌익위 증가선대부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 명조기미5월19일 졸 향년60세 부인 정부인평양조씨 부 현감 자지, 묘증고조고조하 건좌배묘부공묘좌동원이실 유갈 자 종도찬 현손 응창 찬지 세사 상동
15세 종도(宗道) 대제학, 양주 건천면 오룡동.
종도, 백도(후사 없음) 양 형제간이다.
자 관부 호 세한제 명종 임오 1532년생 병오 생원을묘문과 역한원 삼사 전랑 충청도관찰사 선조 경자 8월29일 졸 향년79세 증자헌대부이조판서 대제학 부인 정부인 전주이씨 부 수규 묘 고조하 건좌 유 신도비 지봉 이수광 찬. 선원 김상용 전 비. 증손 응창 찬지.
16세 세복(世復) 순계군파. 용인읍 삼거리 아조현.
세진(증 좌승지), 세복(증좌찬성), 세희(무과 선전 및 군자감.사헌부 감찰. 용천부사. 선조 임진란 영흥도호부사, 충무공 이순신 협찬 수훈. 이해 12월 거제한산도 순절. 증 자헌대부병조판서겸도총부도총관), 세헌(군자판관), 세걸(무과부사), 세윤(관상감정), 세연(무과검사), 여 사위 한백온으로 7남 1녀이다.
자 중회 1541 중종 신축생 경오 생원 관풍저창직장 광해갑인졸 향년74세 증보작공신좌찬성순계군 배정경부인광주김씨 부 진사 장원 묘 용인군동수여면미륵현좌록대릉동 자좌 유표석 손 응창 찬지 설 병석세사10월7일
17세 몽윤(夢尹) 순양군(順陽君) 용인읍 삼거리 아조현.
몽익, 몽윤, 몽척(선무랑노직첨지), 몽상 형제간이다.
자 상경, 선조 신미 1571년생 갑오 무과 혜산군수 책알성분위진무공신관지숭정대부지중추순양군경인졸 향년80세 증 우의정 순양부원군 부인 정경부인한산이씨 부 군수 덕순
묘소: 경기도 용인군 용인읍 삼거리 아조현
18세 응창(應昌) , 순원군(順原君) 용인읍 삼거리 아조현.
선고 순양군 몽윤의 형제간으로 응창, 응망(진사. 남별전참봉), 응발(무과 습득),응양(통덕랑), 응길, 응운 등 6형제를 두었다.
자 흥숙, 호 백산, 자호 우졸재, 선조 계묘 1603년생 학문천거로 효종 어릴 때인 봉림대군의 사부를 하였음. 심양에서 관을 시작하여 선산부사에 이르렀음. 경신 졸 향년 78세. 증 한성부좌윤 순원군. 부인 정부인 한산이씨 부 군수 경황. 후부인 정부인 성주이씨 전. 묘 순양군 아래 수백보 자좌. 전후부인 품(品)자형 동산소. 이봉징 찬지. 유석물지문견총록. 세사 10월 7일.
참판공파 18세손 순원군 휘 응창. 위선사업의 창시조. 순원군께서는 우리 순흥안문의 위선사업을 처음으로 시작하여 후세들에게 숭조 목족 정신을 일깨워 주셨고 순흥안씨 족보 기해보를 병오보 다음 두번째로 발간 하셨으며 봉림대군의 사부(스승)로 계시다가 봉림대군이 볼모로 중국으로 끌려갈 때 동행하여 고락을 함께 하는등 그 충절과 조상을 받들어 뫼시는 위선정신 등은 길이 역사에 빛나는 위훈으로서 우리 모두가 그 뜻을 이어받어 나라와 겨레를 위하고 조상을 공경하며 일가끼리 화목하는데 뜻을 모아 순원군께 보답하고 가문의 번영을 기함에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순원군은 시조의 9세손인 참판공 휘 종신의 9세손이다. 응창할아버님은 순양부원군 휘몽윤의 맏아드님으로 1603년에 출생하셨으며 자는 흥숙(興淑), 호는 백산(栢山), 우졸재(愚拙齋0이다. 공께서는 벼슬이 의성현령과 선산부사를 역임하셨고 또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임금의 아들인 봉림대군의 사부로 발탁되기도 하셨다.
공께서 34세 되시던 1636년 병자호란때 인조가 항복하자 봉림대군이 볼모가 되어 청나라 심양으로 가게 되었다. 공께서도 대군을 따라 심양으로 가셔서 대군과 함께 이역만리 오랑캐 땅에서 죄없는 죄인생활을 하시고 돌아오신바 있다.
청나라에 귀국하신 후에는 우리 안문의 추원록과 청교묵담등 많은 저술을 남기시기도 하셨다. 순원군께서는 1647년(정해) 봄에 순흥땅 관향지를 찾아서 2세 할아버님의 묘소를 참배하고 소수서원에서 문성공 할아버님 영정에 참배하신 다음에 시조께서 살으셨던 옛 터를 찾았으나, 표석 하나 없고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공께서는 탄식하시기를 “우리 순흥안씨 후손들이 선조들의 음덕으로 이 나라에서도 손꼽아 주는 명문대가로 번영하고 고귀하게 대접받고 살면서도 뿌리를 섬기는데는 이토록 허술할 수가 있느냐? 자고로 부모와 조상을 정성껏 받드러 뫼시면 그 후손이 복되고 영귀하며, 자손들이 교만하고 경솔하여 부모와 자손을 박대하는 집안은 번성도 못할뿐 아니라, 결국 망하는 것이 고금의 진리다. 우리 안문의 앞날을 위하고 조상을 받드러 뫼시려면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고 말씀하시고는 일가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였다. 한편으로는 재물과 폐백을 모으고 또 한편으로는 시조의 단비를 세우고, 시조께서 사시던 집터에는 향려단도 세우셨다. 문성공께서 글을 쓰시고 벼루를 씻으셨다는 세연지에도 비를 세우는 한편 2세 할아버님의 산소가 퇴락한 것을 모두 중수하고, 영모암을 지어 제실로 사용케 하고 추원재도 세우시었다. 또 제수를 차리기 위하여 위토를 장만하시고 매년 음력 10월 1일과 2일에는 모든 자손이 모여 제사를 받들도록 하시었다. 1659년에는 우리 안문의 두 번째 족보인 기해보를 발간하시는 등 실로 우리 순흥안씨 선조 중에서도 위선사업을 맨 먼저 주도실시하신 어른이시다.
그 후로는 현재까지 후손들이 순원군의 본을 받아 위선사업은 문중사 중에서도 가장 으뜸되는 순위로 함을 철칙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순원군 할아버님의 눈물겨운 효심과 우리 안문의 장래를 위하여 몸소 실천하시는 본을 보여주신 노고에 보답하는 길은 우리 모두 위선정신을 더 한층 새롭게 각성하고 솔선수법하는 길만이 순원군할아버님께 보답하는 후예들의 도리이고 의무라 여겨진다. 다시금 머리숙여 순원군 할아버님께 감사드리고 옷깃을 여미고 경건한 마음으로 명복을 기원함과 아울러 순원군의 뜻을 본 받는 후예가 될 것을 명심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19세 탁(琢) 용인군 용인읍 삼거리 아조현
형제간으로 탁, 석 양형제간이다.
자 이정 공해 임술 1622년생 갑오졸 부인 진주유씨 부인 좌참찬 영희. 묘 순원군 할아버지 밑쪽 임좌. 이봉징(사위) 찬지. 석물. 세사 10월 7일.
20세 춘국(春國) 용인군 용인읍 삼거리 아조현
형제간으로 춘국, 정국(생원), 원국, 이국(증 공조참의,유표석) 4형제이다.
자 태화 인조갑신 1644년생 갑인졸 부인 나주정씨 부 교리 언벽, 묘 선영국내 은행동 우편기슭 계(癸 )좌. 세사 10월 8일. 여 이봉징 연안인대사헌 부 지쳥
21세 혁(爀) 용인군 용인읍 삼거리 아조현
춘국 선고의 자제로 욱(煜)과 혁(爀)의 형제가 있다. 욱은 순양군 몽양의 적장손으로 어모장군행충좌위부사과를 거쳤고 묘 용인이목동선영국내에 있다.
혁. 이름 여휘(汝輝) 현종 술신생 영조 경신졸 묘 선영국내제실동 경좌묘사 10월8일 부인 남양홍씨 부 기조 생원 우섭 증조 사의 증승지 묘선영정자동 세사 10월8일 후부인 언양김씨 묘 대암동 갑좌
*혁자 할아버지 때에 국난을 맞아 형제분이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22세 지선(志善) 상주 사벌 엄정촌
상주 사벌 덕담 입향조이다.
혁자 할아버지 아래 지학, 지겸, 지관,지각, 지선, 지현 형제가 있다. 자제분으로는 사국 외아들을 두고 있다. 지학(경남하동적량면우리곡),지겸(묘 고뎍면 계루지 불당산), 지관(안성 죽촌면),지선(사벌), 지현(평택 포승면 미억리).
족보상 우리 사벌쪽은 지각형님쪽에 후손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래서 전남 광양 옥곡 선유동의 25세 종손 덕심과 성범할아버지는 6촌간으로 등재되어 있다. 실제는 삼종(8촌)간인데 말이다. 묘는 사벌 엄정촌에 있다.
자 치행(致幸)신축9월21일생 병오5월초5일졸 배 안동권씨, 묘 상주군사벌면엄정촌후록경좌쌍분
23세 사국(師國) 상주 사벌 엄정촌
어릴때 이름 필국 이름 충서 병자생 사과역절교위훈련원판관승자가선 기축 10월초5일졸 묘 상주 사벌 엄정촌 뒷산 조고후수십보 유좌 부인 경주이씨 부 정동 을사 9월 26일 졸 묘 쌍분
아들 덕채, 덕서 딸 사위 홍재표
24세 덕채(德採) 상주 사벌 엄정촌 뒷산
지선 입향조의 손자이며 사국의 아들임. 덕채, 덕서 양형제간이다.
이름 현지 정유생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 병인 7월2일 졸 묘 엄정촌 뒷기슭 경좌 부인 밀양박씨기 9월8일 묘 옆 경좌 쌍분
25세 자 성범(聖範) 상주 사벌 배미기 동촌(묵밭).
형제로 성범, 성위(봉출,진복집안으로 갈라짐. 건식과 16촌) , 성구, 성천, 성신. 성구,성천, 성신은 후손이 없다 . 성범할아버지 후손으로 소문중회가 결성되어있다.
이름 사일 임오생 신축 7월29일 졸 부인 진주정씨 부 치로 기 6월18일 묘 배목 동촌후 건좌 합장
26세 용호(容鎬). 진구쪽.
어릴때 이름 용순, 자 이화. 병오생. 어모장군사복시정승자통정대부 갑오4월20일졸 묘고조해좌 부인 달성서씨계사5월6일졸 묘배목산막산간좌
27세 자 승관(承寬)
어릴때 이름 정관. 자 군담 신미생 수직행용양위부호군 기4월19일 부인 상산김씨 부선삼 기5월24일 묘 엄정촌후선조하유좌합돌 후부인 충주석씨 부대근 7월27일 묘 배목동촌전산막계좌
28세 자 석근(錫根)
어릴때 이름 석노 자 문백 정해생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 기8월10일 묘증조고조하축좌 배정부인단양우씨봉준 묘배목리동촌천산막산조비우간좌
29세 자 희성(熙星)
어릴때 이름 두성 자 경칠 기유생 기2월26일 묘조비조우제2분유좌 배경주김씨정미생기9월10일 묘산막산간좌
30세 자 종기(鍾基)
자 치언 무진생 기정월17일 부인 진주강씨 부 민희계유생기정월11일 묘조비조하간좌
31세 자 진구(鎭九)
일명 홍익 자 규학 정미 6월4일생 배동래정씨부원윤 임오 정월29일생
32세 자 방태(邦泰)
일명 맹주 임오 7월15일생 부인 전주 이태순 부 복래
33세 자 수언(秀彦)
정사 정월19일생
32세 석태(碩泰)
일명 동주 신묘11 배함령김씨 부 치범 1956년3월3일생
32세 여 양홍석 남원인, 여 이성우 경주인, 여 윤화현 파평인
30세 자 정기(正基): 출계
30세 자 상기(尙基)
어릴때 이름 병황 자 치원 을유생 갑술5월23일졸 묘예천군풍양면와룡동원곡장고목축좌 부인 김해김씨부영배경인11월10일생 기미상(알지못함)
31세 진옥(鎭玉)
자 재중 경술 9월11일생 부인 담양전씨 부 계근 기미9월30일생
32세 자 영태(英泰)
임오생
32세 자 한태(漢泰)
정해생
31세 자 진항(鎭恒)
자재익 병인7월4일생 배 밀양박씨부상래 경오11월6일생
32세 자 원태(源泰)
무자6월14일생 배성주이씨 경인12월9일생
32세 자 주태(周泰)
을미11월26일생
32세 민태(玟泰)
정묘 8월 5일생
32세 자 순태(順泰)
무신4월24일생
31세 자 진대(鎭垈)
기사6월23일생 파평윤씨재기 정축정월15일생
32세 자 용태(龍泰)
무술정월11일생
32세 덕태(德泰)
경자2월19일생
32세 자 丙泰
정미9월24일생
29세 자 희중(熙重)
어릴때 이름 두중 자 경오 갑자생 정해12월27일졸 묘 와룡동원곡리고목 축좌배 김해김씨 묘합돌
30세 자 정기(正基)
어릴때 이름 수황 자 치선 병자생 기축 10우러22일졸 묘원곡고조우록소령해좌 배해주최씨부성조계미생기해12월1일졸 묘 부군좌편자좌 후부인 삼척김씨부원범병술생 정유3월1일졸 묘부군좌임좌
31세 자 진구(鎭九): 출계
31세 자 진화(鎭華)
경술8월감8일생정사12월4일졸 묘미곡갑좌 배 부림홍씨부태호갑인3월4일생 무술8월1일졸 묘원곡소령간좌
32세 경태(景泰)
신미3월감2일생 배남양홍씨 부 순조 갑술3월19일생
33세 수성(秀性)
정유정월15일생
33세 수길(秀吉)
무술10월27일생
33세 자 수철(秀哲)
신축12월8일생
33세 자 수용(秀容)
을사3월27일생
32세 완태(完泰)
정유7월19일생 배경주최강수 정축12월4일생 부 진목
33세 자 수일(秀一)
기해4월26일생
33세 자 수익(秀益)
갑진5월19일생
33세 자 수영(秀英)
신해 8월 15일생
31세 자 진국(鎭國)
을묘9월2일생 배안동권씨부중하 무오10월9일생
32세 자 흥태(興泰)
을미생
31세 자 진봉(鎭鳳)
갑자 9월감7일생기유8월19일졸 묘미곡갑좌 부인 김해김씨부영규병인7월19일생
32세 자 홍태(弘泰)
무자11월29일생 배함안이씨만풍 임진7우러18일생
33세 자 수만(秀萬)
계축10월10일생
32세 자 관태(寬泰)
1976년3월6일
28세 자 상근(商根)
자율백 을사생 을유12월21일졸 묘배목동촌전산막산조비간좌제2분 배동래정씨기12월7일 묘사벌면외지곡경좌
29세 자 희모(熙模)
자 경숙 경자생 기10월14일 묘배목촌후록묘좌배광산노씨 묘배목동촌전산막산계좌 후배경주이씨병인생신해8월20일졸
30세 자 해기(海基)
자 치육 기축생 배전주이씨병신생 병술4월16일졸 묘함창면목교리전왕릉산계좌
31세 자 진원(鎭遠)
1916년 병진 정월23일생 배 경주손씨 부 오식 기미 10월19일생
32세 자 응태(應泰)
1938년 무인 5월16일생 배밀양박금옥 부봉국 1947년3월7일생
33세 자 성호(成浩)
1970년경술10월21일생
33세 여 봉하 1970년 경술10월21일생
33세 여 봉수 1967년 4월 5일생
33세 여 수연 1968년 8월14일생
32세 자 우태(宇泰)
신사5월13일생 배경주김씨신사6월5일생
33세 여 혜경 1968년10월 21일생
33세 여 혜숙 1970년 8월 16일생
33세 여 혜정 1973년 6월7일생
32세 자 순태(順泰)
을유정월16일생 배경주이영희 부상진 1955년9월11일생
32세 자 성태(成泰)
무자12월4일생
32세 자 홍태(鴻泰)
1954년 11월14일생
31세 진목(鎭穆)
을묘2월5일생 배여흥민씨 정사4월7일생
32세 자 영태(永泰)
1969년11월6일생
30세 자 홍기(泓基)
자 치수법사 부인광산김씨 묘 서울공동묘지합돌
31세 자 진길(鎭吉)
경진4월6일생 배 인동장씨
32세 자 길태(吉泰0
1964년3월7일생
26세 자 동호(東鎬) 안시태 소문중 총무 집안.
자 이경(而敬) 신해생 신미3월13일 졸. 묘 엄정뒷산 유좌. 부인 충주지씨 부 갑선 기유생 무신3월25일졸 묘 고조(아버지)좌건좌
27세 자 승명(承明)
자 명완 기11월9일. 묘 배목 산막산 자좌 부인 김령김씨 기9월27일 묘 동원(같은곳)간좌
28세 자 봉근(鳳根)
자 중백 기3월2일 묘 엄정촌뒷산유좌 부인단양우씨 기 9월18일
29세 자 희목(熙睦)
자 일숙 신유생 기10월5일 배 경주김씨 기5월10일 묘 배목산막산자좌합돌 후부인 김해김씨 부 훈배 기11월17일
30세 복기(福基)
31세 진배(鎭培)
1919년 기미생 기 2월18일 묘 배목산막산 자좌 부인 달성서씨 부 안진 술신1월15일
32세 자 시태(時泰)
1949년 기축5월14일생 부인 김해 김 순복 갑오 11월3일생
33세 자 정식(正植)
1976년 병신 8월 25일생
30세 운기(云基): 출계
30세 철기(哲基)
자 철선 무술생 기시12월19일 묘배목전산막산신좌 배 김해김씨부성기정유생기2월28일 묘산막산자좌
31세 진배: 출계.
31세 진섭(鎭燮) 칠만
자 칠만을축팔월18일생 배 평산신씨 부상규 경오정월26일생
32세 자 호태(浩泰)
1962년임인3월20일생
32세 자 진태(鎭泰)
1964년 갑진10월21일생
32세 여 정해영 금성인, 여 서영호 달성인, 서봉우 달성인
30세 갑기(甲基)
자 갑선 임인생 기 5월6일 묘 배목전산막산자좌 부인 동래정씨 부상진, 병오생
31세 진광(鎭光) 이름.광일
자 광일 1942년 임오 정월28일생 부인 밀양박씨 부 영식, 임오12월 20일생.
32세 정태(正泰)
1963년 계묘 8월10일생
32세 영태(永泰)
1970년 경술 7월26일생
31세 여 김영호 김해인, 여 이석희 경주인
28세 자 성근(成根)
자 석백 기2월22일 부인 경주이씨 기2월18일 묘 산막산자좌합돌
29세 자 희만(熙萬)
자 천숙 1925년 을축생 기9월10일 부인 안동권씨 병인생 기 3월3일
30세 운기(云基)
자 운선, 신사생 기 9월29일, 묘 산막산 간좌, 부인 경주석씨 부 해윤 술자생 기 11월 20일 묘 상동
30세 창기(昌基)
후손 없음.
29세 자 희목(熙睦): 출계.
28세 자 영근(永根)
자 대완 갑신생 기 12월28일 묘 산막산건좌 부인 동래정씨 부 석태, 신축생 병인2월10일졸
묘 동원자좌
29세 자 희석(熙錫)
자 윤직 임오생 정유 7월5일 졸. 묘 남장산 건좌 부인 반납박씨부유양,을유생
30세 순기(舜基)
자명근 경신7월7일생 배 함안조씨부 용득정묘6월18일생
31세 진화(鎭化)
자 경식 1951년8월18일생 배 경주김씨 부 치환1956년5월
32세 현태(賢泰)
1974년8월17일생
31세 진준(鎭俊)
갑오 8월1일생
31세 진원(鎭源)
정유8월6일생
31세 진식(鎭植)
기유12월22일생
26세 자 징호(澄鎬) 사벌 배미기 뒤편 가장산
성범의 아들 용호, 동호, 징호, 종호 사형제중 셋째이다. 용호 쪽은 진구, 방태쪽으로 소문중 종손 집안이다. 동호 쪽은 광일 회장,시태(현 배미기 소문중 총무) 집안이다. 징호 할어버지에서 진수(생존. 사벌 배미기. 육군 령관)집안, 고 수욱 집안, 및 희숙할아버지대가 모두 징호 할아버지 손이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로 종호 쪽은 수인, 대영 집안으로 건식에게는 15촌 할아버지가 된다.
징호: 이름은 이선. 무오년에 태어나 을묘년에 돌아가셨다. 묘는 배미기 뒤편 가장산에 있다. 부인은 김해김씨로 병신생이며 묘는 엄정 문중산에 있다.
27세 자 승봉(承奉) 배미기 산막산
이름은 군서. 무인생 경술년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동래정씨이다. 묘는 배목산막산 동록 쌍분이다.
28세 남근(南根) 산막산 동편
자 영근(榮根)
이름은 문칠 기해생 산막산 동편. 부인 김해김씨 장가장산선영하 쌍분
자 남근(南根)
이름 문일 계묘생 경자졸 할머니 경주김씨 계묘생 묘 산막산
(29세 희태 조)
29세 희태(熙泰): (진수 조부)
이름 현숙 계유생 경술 졸 산막산 부인 밀양박씨 묘 산막산
30세 장기(璋基)
이름 장근 병신1월 7일생 1965년 을사 9월5일 졸 묘 산막산 남록 건좌 부인 인동장씨 부 광섭 신축 4월 20일 묘 산막산 건좌
31세 진수(鎭守)
1926년 병인9월28일생 대구사범학교
졸.
육군소령, 부산경찰서장 역임. 부인 경주
김씨 무신3월6일생 신묘3월10일졸 묘 가
장산 상봉 묘좌 후부인 경주김씨 부 유목
을해 11월 2일생
32세 자 호식(浩植)
1949년기축2월1일생 영남대학교공대기계공학과졸, 현대중공업 근무. 덕산이씨 윤숙 부영정, 임신 5월 17일생
33세 자 정환(正桓)
33세 자 성환(成桓)
33세 여 소은(昭垠)
32세 여 은숙(銀淑) 남편 경주최 성해
32세 여 해숙(海淑) 계사 11월7일생 남편 신태석
32세 여 미숙(美淑) 정미7월11일생 남편 배경신
31세 진태(鎭泰)
1933년 계유2월23일생 상주농잠학교졸 사벌농촌지도소장등 역임. 배 단양노씨 부 재형 을해 11월 22일생
32세 자 호동(浩東)
1962년 임인 4월28일생
33세 자 태규(泰奎)
33세 여 선희(宣姬)
32세 자 호준(浩俊)
1963년 계묘9월14일생
33세 자 태영(泰泳)
33세 자 수경(修慶)
32세 여 용숙(用淑)
1960년8월14일생
32세 여 현숙(賢淑)
1967년1월3일생
31세 종원(종원)
1935년 을해 11월 17일생, 체구가 크고 호남형임. 경주김씨 부 인호 기묘 6월5일생
32세 자 호선(浩善)
1963년 계묘 1월8일생. 경찰관.
32세 자 호근(浩謹)
1970년 경술 12월 11일생
사위 김보기 김해인, 사위 최성락 경주인, 사위 김영태 김해인
32세 여 경애(敬愛)
1961년7월25일생
32세 여 경숙(敬淑)
1965년5월20일생
32세 여 경희(敬姬)
1969년12월20일생
30세 환기(煥基)
이름 도철 신축2월16일생 병신12월15일 졸 묘 가장산 후록 상봉하 간좌 부인 김해김씨 부 명배 기유생
(30세 환기 후손- 홍제)
31세 진하(진하)
1933년 계유12월19일생 부인 밀양박씨 부 우석 을해12월 5일생
32세 자 홍제
1960년 경자 2월2일생
32세 자 광제
1963년 계묘 7월 9일생,,30세 중기 (重基)
이름 장우 무신 6월 1일생 묘산막산 정좌 부인 김해김씨 부 수현 병신 9월 3일생 묘 산막산 정좌
사위 정봉진 금성인,
(30세 중기 후손-진흥)
31세 진탁(鎭卓)
1934년 갑술 12월 17일생 부인 경주김씨 부 경출 무인 3월 19일생 2008년 월 일 졸
32세 자 용수(溶洙)
1959년 기해 5월 6일생
32세 자 찬수(贊洙)
1965년 을사 3월 20일 생
31세 진영(鎭榮)
1936년 병자 4월 7일생 부인 밀양박씨 부 여광 계미 3월15일생 년 월 일 졸
32세 자 현수(鉉洙)
1965년 을사 11월 5일생
32세 자 상수(相洙)
1969년 기유년 5월 27일생
(건식 계열)
30세 희숙(熙淑). ‘희숙청년회’
이름 응구 을축생 신해졸 묘 아버지 묘 왼쪽. 부인 여흥민씨 기일 8월12일 묘 배목 동촌앞산 후부인 안동권씨 부 영섭 신유4월9일생 무인6월18일졸 묘 개금산갑좌 생2남2 녀 3번째부인 경주김씨 부 순호 병인12월 1일생 신축 5월27일 졸 묘 산막산 2남1녀
자; 영기, 용기, 경기, 길기,
사위 조남규 풍양인 사위 민정호 여흥인 사위 송석응 여산인 사위 이덕평 경주인
30세 영기(英基)
이름 재웅 무자 11월 24일생 무자2월28일졸 묘 배목동촌산막산 부인 밀양박씨 부 치선 갑신생 임자 12월17일졸 묘 할아버지 산소 아래. 후부인 경주이씨 부 규환 을미 9월9일생. 졸.
30세 용기(龍基)
이름 억용 경자 3월 30일생 정해 2월6일졸 묘 산막산 갑좌 부인 달성서씨 계묘 3월2일생 부 용근. 졸.
30세 경기(京基)
이름 실경 신축 10월8일생 부인 경주김씨 김해보 기해 1월8일생 병진 6월29일졸 묘 산막산 희숙 시아버님 아래 자리함.
30세 길기(吉基)
이름 억석 무신 7월26일생 기미10월19일졸. 묘 산막산 간좌 부인 경주김씨 부 용팔 을묘 7월5일생 임자 7월24일 졸 묘 산막산 간좌 쌍분
사위 김학의 경주인, 사위 김의배 김해인
(30세 영기 후손)
31세 진찬(鎭燦)
이름 창기 기유12월 8일생 을묘4월8일졸 묘 배목앞산도로좌측 해좌 부인 김씨 부 점인 병오12월18일생갑진11월9일 졸 묘배목앞산
큰 집
안장수
사벌 배미기 아랫녁에 큰 집이 있네
웃채와 행랑채가 맞대어 있는 집
대문은 바람에 삐걱이고
동구 앞 샘 옆엔 향나무 등걸이 굵었네
어릴 적 큰 집은 신비로웠지
가까이 접하기 어려웠어
명절 큰 집 큰방에 모여 절을 하고
떡과 가오리 먹던 기억 아련히 침 흐르네
순계군파보와 가첩을 들여다 보며
우리도 종가집이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 집
그 집의 장자
여든 둘의 나이에 이사를 했네
가족들 모다 두고
호국의 얼
국립영천 호국원으로 이사를 했네
언덕위의 집, 계단마다 수많은 이들이
항아리 속에서 빗살무늬 토기를 빚으며 사는 집
이사 가던 날
새 두 마리가 충혼탑을 돌며
까아악 까아악
배고파라, 울었지
영결종천, 영천으로
형님 이사 갔지만
사위 박서방에게도, 딸 정희에게도
나타나
배미기 큰집 흙담 내음새 풍기며
배내똥 내음새 흘리며
빙긋이 웃고
향불처럼 사르르
모습감추네
큰 집은 헌 집으로 다소곳이 가슴에 저려오고
지금은 새 집으로
맞은 편 우체통의 기쁜 소식 기다리는 집
나는 솟대 위의 새가 되어
낙동강 경천대 강물 위 백사장에 평사낙안하고
삼방산을 휘돌아 건네 산막산 두달 전 사초하던 일
떠 올리고
엄정촌을 날아올라
영육의 큰 집
영천에 편히 쉬다
07.11.20
32세 자 수욱(洙昱)
자 수익(守益) 병인 8월10일생. 경찰관(지서장)으로 근무. 빨치산토벌 공로로 국가유공자. 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선거 출마. 사벌면투표구선거관리위원장. 졸. 2007년 11월14일 별세. 2007년 11월 16일 영천국립호국원에서 장례.
33세 자 건식(建植)
1953년 계사11월5일생 상주농과대학졸업 안동경찰서 계장.
34세 자 지형.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졸. 군복무중.
34세 자 지웅. 대학생.
33세 여 정숙(貞淑) 남편 밀양 박성일
33세 여 정님(貞任) 남편 벽진 이충기
33세 자 홍식(弘植 )
1957년 정유 8월23일생
34세 자 지민. 대학생.
33세 자 준식(俊植)
1964년 갑신9월28일생
34세 자 지석.
34세 여 수연.
32세 귀수(貴洙)
자 인수(仁洙) 1934년 갑술4월25일생 부인 남평문 영자 경신생
33세 자 영호(永晧)
자 永浩 1960년 경자5월14일생
34세 자 유리
34세 자 두리
33세 자 동식(東植)
1962년 임인 6월7일생
34세 자 지만
34세 여 윤경
33세 자 동호(東浩)
1965년 을사 10월2일생
34세 자 지습
34세 여 지원
산막산 춘색(山幕山 春色)
_ 고(故) 구성(久成) 혹 윤성(允成)님을 기리며
달이 뜨네. 산막산 너머 달이 뜨네.
“다 걱정하지 마라. 만고광명이 청산유수니라.”
보름 전, 숭산 스님이 열반입적하시며 법언을 남기셨지.
해가 솟네. 둥두렷이 붉은 해가 어두운 하늘에 붉게 물들이네.
백두대간 산행을 하면서 봉화 춘양에서 찬 밤을 세우고
강원도 태백산 신단수에 이르렀지. 마구령을 넘고 도리기재를 기어올라 함백산 기슭 버려진 배추밭을 보고 가슴 아파했지.
그로부터 며칠간 숭산스님의 유언도 잊고 세속잡사에 여념이 없었지.
한 닷새 지났나. 갑신년도 저무는 12월 양력 16일, 대설 지난지 딱 열흘 째라. 하늘은 찌푸려 새침하여 차가웠지만 대설이 지나도, 성탄이 다가와도 눈은 내리지 않았네.
그날따라 소리개가 스산히 창공을 맴돌았지. 어디서 “워워우워워~” 지붕에서 옷가지를 흔들며 초혼(招魂)소리에 식은 땀을 흘렀네.
아니나 다음날, 달구벌 동산 영안실에서 영면하셨네. 구성 아재, 형아야... 못난 동생 만 하룻만에 말을 몰아 달려갔지.
구성(久成). 일정서기 한문 잘 몰라 윤성(允成)으로 호적 올렸다네.
시서화에 능하시고 풍월따라 산으로 덕가못으로 정처없이 다니시는
창기(昌基)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옛 상산(商山) 상주중학 시절엔 문명을 드날렸지. 하나 일제말기 보리고개, 자유당 어지러운 세상, 6.25동란속에 배움일 팽개치고 가족부양 우선일세.
건네 산에 밭을 뜨고, 술도가 짐자전거 마을마을 다 다녔네.
어느 덧 장성하야 팔뚝 장사 되었고나.
나무대문 밀어내고, 동구밭 샘물떠서 정화수로 모셔 놓고
화동이라 모동이라 대구땅까지 양조장과 가구점에서 보낸지 기십년이라.
오년 전 집안 어른 모셔놓고 백원 청자식당에서 용띠해 환갑연을 조촐히 연다더니, 아직은 너무 젊어 겸연쩍어 못하겠소.
작년 벌초때 하신 말씀, 오년 후 칠순때에 달성공원으로 모신다더니.
님이여. 구성 아재님이여, 형님이여.
우식 아들, 딸들 남겨두고 그래 그렇게 가셨소 그려.
이제 봄기운 감돌아 우리 당내간, 족숙간 한자리에 모여 산소에 황토흙 얹으며 술따라 감소고우(感召孤于) 함께 축원드리려는 데
정작 님은 한 마리 노고지리로 사벌창공을 날아다니는가요.
달이 뜨네. 해가 솟네.
삭주(朔州) 구성(龜城)이 몇 천리냐? 길이 멀어 못오시나(소월)
쫒아가고 달려가도 님은 하늘 저멀리에서 우리를 보고 웃고 계시네.
희숙할배 후손들이 정을 도타이 살아가라고, 못다한 이승살이 눈물
훔치며 손을 흔드네.
상주라 사벌땅 배미기에 한 사나이 태어나고 자랐다네.
하늘에 부름받고 진철당숙 가신 저 하늘로 낙엽처럼 가시었네.
사월이라 꽃 피는 호시절에,
님 가신지 석달 보름만에, 한식.청명.식목일 겹친 이 좋은 날
조상님께 헌화하며 마지막에 한잔 부으며 이 글을 읊노니
구성 아재님, 형님이여. 우리 마음에 영원히 부활하여 꽃이되고 나무가 되고 낙동강물이 되어, 영원히 피고 지고 흘러 넘치소서.
을유년 한식.청명 가토일에 訥松 올림
♡ 4월 5일 집안에 가토를 함께 하자는 감성을 그을는 雜詞
32세 윤수(允洙)
자 윤성(允盛 )1940년 경신11월2일생 부인 의성김 순자 병술6월23일생, 부 경팔.
33세 우식(佑植)
1972년 임자 11월 28일생
34세 여 지선
34세 자 지수
31세 진도(鎭蹈)
경오12월20일 생 부인 경주김씨 부 희욱 신사 5월6일생
32세 자 柄旭
1970년 경술 3월10일생
(30세 용기 후손)
31세 진귀(鎭貴)
1926년 병인 8월30일생 부인 여산송씨 갑술 8월9일생 부 대전
32세 자 한수(漢洙)
1963년 계묘 5월11일생
33세 자 현준
33세 자 현우
32세 자 경수(敬洙)
1965년 을사 9월 21일생
33세 자 관현
31세 진철(鎭哲)
1931년 신미 10월4일생 부인 인동장씨 부 신암 무인 5월15일 생
32세 자 태수(泰洙)
1960년 경자 9월4일생
33세 자 준영
33세 자 기영
32세 자 택수(澤洙)
1970년 경술 9월 14일생
33세 자 지영
33세 자 세영
31세 진해(鎭海)
1934년 갑술 11월4일생 부인 김해김씨 부 대식, 신사생
32세 자 성하
33세 자 혁재
33세 여 예린
32세 자 용하
33세 여 소희
33세 자 현민
(30세 경기 후손)
31세 진국(鎭國)
을축 4월11일생 1985년12월 2일 졸부인 경주김씨 홍심 1930년 2월4일생 부 학호, 묘 산막산 서편 밭 위.
32세 자 광수(광수)
1951년 신묘 2월 6일생, 사벌탁구장 및 사벌상회 운영. 현대중공업 근무. 현대중공업근무시 사내 웅변대회에서 4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사랑아 통곡한다’로 준우승. 현재 선박회사 근무중.
32세 여 혜영
생일 12월 20일 서울 을지로 백병원 남편 광산김씨 김형규 일본사업.
32세 자 주식(주식)
1980년 10월 27일생 현대자동차근무, 아내 경주김 미성 유치원교사.
33세 여 은별
2008년 8월 일생
32세 자 철희(철희)
1982년 12월 27일생. LG화학 근무
32세 자 장수(章洙)
1956년 병신 4월 14일생, 덕담리 450번지에서 태어나, 사벌초등학교, 상주중학교, 상주고등학교, 영남대 국어국문학과 중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행정학과 졸업.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마쳤다. 문예한국이란 문예지를 통하여 ‘보금자리’란 작품으로 수필에 입문하였고, 시도 쓴다. 호는 사벌을 사랑하는 뜻으로 사송(沙松) 또는 현재 생활하고 있는 문경시 영순면 김용리 230번지 마을 앞을 흐르는 영강 쪽 동네를 뜻하는 눌곡(訥谷)으로 쓰기도 한다. 1976년 국가행정직 5급공무원, 행정서기보로 공직을 시작하여 현재 순흥안씨 관향지인 영주시선거관리위원회 사무국장(국가공무원 서기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순흥안씨 뿌리찾기에 관심을 가지고 순흥안씨 1파 탐진, 죽산 족보와 세보 및 안향실기, 안축평전등 자료를 가지고 나름대로 연구에 몰입했다. 부인은 성주이씨 이연화, 부친은 용술, 1962년생 소띠이다. 자녀로는 1남 상식, 1녀 상은 이다.
33세 자 상식(상식)
1984년 10월 14일 문경시 모전동에서 태어났다. 공군 방공포대를 병장으로 제대하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4학년 생이다.
33세 여 상은(상은)
1987년 4월 15일 문경시 모전동에서 태어났다. 문경여고를 졸업하고 대구 계명대학교 사회복지학부 4학년에 재학하고 있다.
32세 여 순임(순임). 남편 윤희억
자 윤민규, 녀 윤민영
32세 자 영수(榮洙)
1962년 임인 1월 20일생 상주대행정학과졸, 포항소방서,상주시청, 여천군청 등 근무. 우방아파트관리소장, 문경고시원장. 경주김 .미향 1968년10월12일생, 부친 김연기
33세 자 상영(상영)
학비어약(鶴飛魚躍)
대덕산 푸른 언덕 병동 위, 해오라기 한 쌍이 날개짓하며 북향하다
뇌졸중 환자실엔 숙모가 단학(丹鶴)으로
난간엔 숙부가 백학(白鶴)으로, 창공에 마음실어 보낸다.
병동은 큰 어항이나 수조
침실에는 가사(假死)의 물고기가 생과 영의 경계 넘나들고
복도에는 휠체어를 탄 치어나 성어들이 코에 호스를 달고
비닐종이에 든 노오란 물을 흡입한다
바닷물은 노오랗다
숙모의 모로 누인 얼굴을 누구는 ‘가자미’*라 했던가
숙모가 시골마당에 쓰러져 광어모습으로 누워있을 때
조카는 회집에서 광어 세꼬시를 씹고 있었지
해오라기는 삼강 솔숲에 나래를 펴고
수조의 고기들은 동해에서 해돋이의 찬란함에 은비늘을 떤다
*가자미: 문태준의 시 ‘가자미’에서 차용.
31세 진동(鎭東)
1931년 신미생 4월22일 생 부인 춘천박씨 부 성구 병자 3월3일생
32세 자 수철(洙徹)
1963년 계묘 5월 5일생
33세 여 소희
33세 여 소현
33세 자 재선(재선)
32세 자 수길(洙吉)
1971년 신해 11월 21일생
33세 자 재영
33세 자 건우
31세 여
사위 장칠성 인동인 사위 이재선 경주인 사위 김한수 김해인 사위 최오복 경주인 사위 김학문 경주인
(30세 길기 후손)
31세 진모(鎭模)
1935년 을해 2월 26일생 부인 평택임씨 부 용출 임오 1월4일생
32세 성수(成洙)
1963년 계묘 4월12일생
33세 자 현민
33세 여 단비
32세 상수(相洙)
1971년 신해 3월 10일생
31세 진현(鎭鉉)
이름 영(榮) 1939년 기묘 6월 17일 생 부인 풍산유씨 술자 1월12일생
32세 자 지수(지수)
1970년 경술 8월29일생
33세 자 현웅
33세 자 현서
32세 자 익수(益洙)
자 익진(益瑱)1972년생 임자 11월 4일생
33세 자 무혁
31세 진포(鎭浦)
1945년 을유 2월17일생 부인 광산김씨 경인 4월20일생
32세 자 왈수(曰洙)
이름 성일(成一) 1972년 임자 6월 29일생
33세 자 현준
31세 여 사위 김()수 경주인, 김정수 경주인
26세 종호(宗鎬. 수인, 대영집안(건식과 17촌간)
자 치선 신유5월5일졸 묘남장산 자좌 부인경주이씨 부영일 신유생기3월18일 묘가장산
27세 승윤(承允)
자 윤서 신사생 기1월23일 묘가장산기좌 부인 한양조씨 한수 묘산막산간좌
28세 욱근(郁根)
자 문오 임술생 경자1월29일졸 묘산막산계좌 부인 전주이씨부상식 신유생6월10일 묘 산막산자좌
29세 희용(熙鎔)
자 응숙 임신생 기6월21일 묘배목후산건좌 부인 김해김씨부원하 정묘생 을해12월18일졸 묘 쌍분
30세 수기(壽基)
자 재도신묘생 기2월19일 묘배목전산건좌 부인김해김씨부현업정해생기9월23일 묘가장산간좌
31세 진동(鎭東)
자 창석 갑인생기12월25일 묘배목전산막산자좌 부인인동장씨부수한정사생기11월4일 묘 쌍분
32세 만수(晩洙)
자 수만 1934년 갑술2월28일생 계묘8월3일졸 묘 배목앞산자좌 부인 신창맹동순 갑술 7월7일생 부 영조.
33세 대영(大永)
1958년3월3일생
32세 인수(수인): 출계(진원)
32세 용수(수용): 출계(진만)
31세 진원(鎭院)
자 창준 술오생 기 6월22일 묘가장산 사좌 부인김녕김씨 부 영화 을사6월10일졸
32세 인수(仁洙). 수인.
생부진동자 수인1936년병자2월5일생 부인 동래정 정자 기묘10월5일생 부 운달
33세 상돈(祥敦)
1966년병오2월5일생
33세 상호(祥鎬)
1971년 신해10월7일생
31세 진만(鎭萬)
자 창만 무술생 기정월18일 묘 가장산 사좌 부인 김해김씨부수익기2월6일
32세 용수(龍洙)
생부 진동 자수용 1940년생 경진12월10일생 부인 청주한금복 갑신 12월10일생
33세 상준(祥俊)
1973년 계축 정월17일생
33세 상걸(祥傑)
1974년 갑인 7월6일생
30세 광기(光基)
자 광식 을사9월12일생 갑진12월17일졸 묘배목전산자좌 부인 김해김씨 신해생기6월8일 묘 쌍분
31세 진창(鎭暢). 창덕
자 창덕 1937년 정축7월3일 부인 춘천박씨 부 태진 신사오월24일
32세 흥태(興泰)
1969년 기유 7월25일생
30세 정기(貞基)
자 정식 술신11월24일생 기7월7일 묘배목전산을좌 부인 안동권씨부상촌 병진생 묘 쌍분
31세 진남(鎭南) 개천
기묘 7월1일생, 부인 남양홍씨 병술 정월4일생 부 영용
32세 종수(鍾洙)
1968년 술신 4월14일생
32세 순신(順信)
1973년 계축 1월15일생
31세 진환(鎭煥)
신묘9월6일생
31세 진복(鎭福)
을미7월4일생
31세 여 김정남 경주인
31세 여 황병희 장수인
31세 여 정광일 동래인
희숙할아버지청년회 명단
* 희숙외에도 희성(진구, 방태), 희중(경태, 풍양 와룡),희태(호식),희용(창덕)할아버지 쪽에서도 연락처(전화번호, 주소, 사진)등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첫댓글 우~~~~~메! 이많은걸 치느라고 무쟈게 고생 많았겠소.하지만 보람은더 클 거외다. 박수 갈채를 보냅니다 홍식
당신의 시 를 보노라니 자꾸 눈물이 나네요, 처절토록 서글픔도 밀려 오네요, 내겐 당신의 노래가 소월님의 초혼 보다도 더한 애틋함으로 가슴저리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