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수 줄었다고 함부로 줄이면 안되는 이유
우리나라는 내국세의 20.79%를 유초중등교육을 위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하 교육교부금)으로 집행하도록 법으로 정해두었다. 장점은 국세가 많이 걷히면 교육재정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단점은 국세와 연동되어 예측하기 어렵고, 재정당국의 추경 여부에 따라 몇조 원의 예산이 널을 뛸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21년 재정 당국의 보수적 세수 추계로 초과 세수가 발생했고 그 결과 지난해 약 6조 원의 돈이 시도교육청으로 추가 교부되었다. 그 6조 원의 돈을 사용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일들을 떠올려보자.
2022년 올해는 어떤가? 본예산 기준 65조에, 2021년 국가결산에 따른 5조를 더 교부받았다. 그런데 지난 5월 윤석열 정부는 53조의 초과 세수를 내세우며 59.4조를 추경, 약 11조의 교부금이 자동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보수적 세수 추계로 예상치 못했던 61조의 초과 세수가 실제 발생했던 2021년과 달리 2022년에 53조의 초과 세수가 실현될지, 그 전망도 분분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생 수는 줄었는데 교육교부금은 늘었다고 아우성이다.
“남아도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대학 재정 활용 방안 검토해야”(한국대학신문)
첫 신호탄은 대학이 쏘아 올렸다. 유초중고 학생 1인당 교육비 지원 대비 대학생 1인당 교육비 지원금을 비교하며 학생 수가 줄어드는 만큼 교육교부금을 대학(고등교육) 재정에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이어졌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소리다. 박근혜 정부가 무상보육 공약을 내세우며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에 떠넘겼을 때 초등학생 언니의 점심값을 빼앗아 동생 보육료를 대라는 비판과 유사한 맥락이었다. 학령인구 감소는 유초중고등학교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아니라 대학에서도 일어날 일이다.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그 돈을 대학에 달라는 요구는 조삼모사다.
“초과세수에 손 안 대고 코 푼 교육재정.. 올해 교부금만 80조원”(이데일리)
“멀쩡한 책걸상 바꾸고 1인 1노트북.. 예산 빨리 썼다고 또 포상금-요지경 교육교부금 사용 백태”(서울경제)
“올 81조 역대급 규모 교육교부금.. 기재부 칼 들어도 교육감은 펑펑”(서울신문)
“흥청망청 교육교부금”(국민일보)
“교육청 16조 돈벼락, 교육교부금 개선해야”(중앙선데이)
교육재정,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으로 검색하면 연일 이런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교육부나 교육청, 학생이나 학부모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는 찾아보기가 참 힘들다. 이런 기사들을 찾아서 읽어보면 한숨이 먼저 나온다. “돈이 남아돌아 없는 신규 사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획재정부의 엉터리 세수 추계로 갑자기 6조(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약 6천억)의 돈이 하반기에 내려오니 학생 지원을 중심에 준 신규 사업을 구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기사 어디에도 ‘교육’의 논리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2일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보육 국가책임제를 실현할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축적된 돈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10조 원에서 15조 원을 전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무상보육 예산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충당하려고 했던 것과 비슷한 논리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축적된 돈들이 많이 남아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간의 내국세 결손에 따른 교부금 부족과 누리과정 예산을 위한 지방채 발행 등으로 상환해야 할 BTL과 지방채가 약 5조 원이다.
“교육교부금 올해만 81조... 재정전략회의서 손본다”(서울경제)
“나라빚 쌓이는데 교육재정은 흥청망청... 교육교부금 개편 시동”(뉴스1)
윤석열 정부가 교육교부금 내국세 연동 비율을 줄이거나 내국세가 아닌 GDP 연동으로 법령을 개편할지는 미지수다. 다만,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지출 범위를 지방대학이나 평생교육, 직업교육 등으로 확대할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교육교부금 개편 문제를 대통령 주제 국가재정전략회의 안건으로 상정할 예정이라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학생 1인당 교육비 1500만 원 시대, 체감하고 있나?
81조의 교육교부금을 학생 수로 나누면 1500만원이 넘는다. 유초중고등학교 학부모들은 내 아이 한 명에 1500만 원의 돈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무엇보다 공교육이 1인 평균의 금액으로 집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편교육, 보편복지의 원칙하에 ‘모든 학생의 기본’을 보장하기 위한 선별복지가 강하게 작동하는 영역이 교육이기 때문이다. 학생 1인당 교육비가 가장 높은 지역은 서울이나 경기가 아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교사에 의한 지역 간 교육격차가 가장 적은 공교육을 제공하는 나라가 되었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교사들은 화상으로 송출되는 각양각색의 가정환경을 보면서 어쩌면 ‘학교’가 가장 평등한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반대로, 학교의 그 평등함이 학생들의 사회경제적 격차를 가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상반된 듯한 이야기의 결론은 하나다. 적어도 학교는 모든 학생의 기본을 보장하기 위해 최후의 보루처럼 작동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득격차보다 무서운 부의 대물림 계단 37개
지난 5월 16일 김회재 의원은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분석해서 2030세대의 자산 격차가 35배가 넘는다고 발표했다. 상위 20%(5분위)의 자산은 약 9 억원인 반면, 하위 20%(1분위)의 자산은 2784만 원이라는 것이다. 이런 자산 격차의 원인은 부의 대물림 때문이다. 자산 격차 35배의 차이를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교사들이 줌 화면을 통해 보았던 것들이 수치로 현실화되었다.
‘사는 곳이 신분을 나타낸다’
이시효는 <감염도시의 불평등>이라는 책에서 “거주지, 즉 도시의 어디에 살고 있는가는 한 사람의 신분을 증명하고 공공 서비스 이용 기회와 사회적 혜택의 근거가 된다.”고 기술했다. 소득격차보다 무서운 부의 대물림은 사는 지역의 격차로 이어진다. 경기도민에서 서울시민이 되었다는 것이 처음에는 ‘해방’이었을지 모르지만 ‘강남’이 아닌 ‘강북’에 산다는 것이 다시 억압으로 작동하는 35배의 촘촘한 계단들이 도열해 있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 있는 학교의 시설은 가정환경에 비해 월등히 나은 공간을 제공해주지만, 어느 지역에 있는 학교의 시설은 별반 다를 바 없음에도 가정환경에 비해 너무나 열악하다는 ‘체감’의 차이를 발생시킨다.
81조 원의 돈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시도교육청의 예산은 크게 의무 지출과 재량 지출로 나뉜다. 의무 지출은 인건비, 누리과정 교육비, 국고보조 사업비, 이자 지출, 교과서․급식․학교기본운영비․교육급여․지방채나 BTL 원리상환금 등으로 꼭 지출해야 하는 명세로 고정비용과 같다. 의무지출은 본예산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재량 지출은 교수학습 활동지원, 교육복지지원, 학교시설 여건개선, 평생교육, 직업교육 등에 사용한다. 이는 시도교육청에 배부되는 교육교부금이 늘어나면 재량 지출 예산이 늘어나게 된다는 의미다.
1인 1디바이스 사업, 현장학습비나 방과후수강료 지급 등은 갑작스러운 추경에 의한 일시적 사업이 아니라 지속적인 사업이 되어야 한다. 모든 학생이 원격관리시스템(MDM)이 탑재된 같은 디지털 디바이스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는 매년 지속되어야 한다. 학교의 정규교육과정으로 운영되는 교육활동을 ‘수익자 부담’이라는 명목으로 후진적인 학부모 교육경비 부담을 더 이상 지속해서는 안 된다. 방과후 사교육 격차가 교육격차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는 현실에서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후를 ‘수익자 부담’으로 떠밀어 놓아서도 안 된다.
돌봄이 필요한 학생 20명당 1명의 사례 관리자가 필요하다.
37개 계단의 가장 아래, 하위 20%의 학생들이 코로나 시기에 겪었던 어려움은 간단치 않다. 코로나 이전부터 있었던 어려움이 ‘단절’로 더 커진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공적 시스템에 의해 진행되면 상호적 관계의 활동이 멈춘 것이 컸다. 학원 문은 열어도 학교 문은 닫게 했던 ‘경제 우선’ 논리가 대표적 예이다. 이런 학생들 사례 하나하나마다 얽힌 이야기가 구구절절하다. 각 사례에 맞는 맞춤형 지원을 설계하려면 지역사회전문가인 사례관리자를 반드시 배치해야 한다.
지역사회전문가들은 돌봄이 필요한 학생들을 발굴할 뿐 아니라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학령기의 삶 전반을 살펴주어야 한다. 보호자가 하기 어려운 부모 노릇을, 교사가 하기 어려운 생활의 보살핌을, 학년이 바뀌고 학교급이 바뀌면 지속되기 어려운 돌봄을 따라가며 지켜봐 줄 지역사회전문가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여러 법적 제한으로 마음대로 집행하기 어려운 것이 나랏돈이다. 적실한 곳보다는 적법한 곳에 써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 1일 지방선거에서 국민의 부름을 받은 지자체장들과 교육감들은 81조가 많건 적건, 모든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지원하기 위해 애써 주실 거라 믿는다. 무엇보다 모든 학생의 ‘기본권’을 챙겨주시길 바란다. 모두의 기본을 보장하는 교육을 위해서 81조 원은 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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