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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3:1-14, 세례요한의 등장과 사역, 24.3.10, 박홍섭 목사
누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전해줍니다. 1장과 2장이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탄생과 유년 시절을 다루었다면, 3장부터는 본격적으로 이들의 공적 사역을 설명합니다. 세례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선지자이므로 누가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보다 세례요한을 먼저 언급합니다. 3장도 1-20까지 세례요한의 이야기를 먼저 하고 그다음 21절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먼저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그때가 언제인지를 보십시오. 1-2입니다.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당시는 로마에서 잔인한 독재자 티베리우스가 1대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를 이어 2대 황제로 15년이나 세계를 통치하고 있었고, 로마의 지배를 받는 유대에는 비겁하고 유약한 본디오 빌라도가 총독으로 다스리고 있었으며, 나머지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헤롯 대왕의 세 명의 아들인 헤롯과 빌립과 루사니아가 각각 갈릴리 지역과 이두래와 드라고닛, 그리고 아빌레네를 분봉 왕으로 다스리며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정치적인 상황이 이러했다면 종교적으로는 안나스와 가야바가 전임과 현직 대제사장으로 로마와 결탁하여 유대 사회의 종교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겉으로는 이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 같았던 이때, 하나님은 요한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당신의 구원 역사를 펼쳐가십니다. 다시 2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앞서 언급한 정치지도자와 종교지도자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제공하는 목적도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 있는 요한에게 임했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대비하는 역할도 합니다. 하나님은 정치지도자들의 화려한 궁정이나 종교지도자들의 웅장한 성전이 아니라 빈들, 곧 광야에 있는 요한에게 말씀으로 임하여 당신의 구원 경륜을 역사 가운데 펼쳐가십니다.
세례 요한에게 말씀이 임한 장소가 어디라고요? 광야의 빈들입니다. 성경에서 빈 들과 광야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부르시고 연단시키는 부르심의 장소요 훈련의 장소로 자주 등장합니다. 여기는 사람이 의지할만한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치와 경제와 종교계의 어떤 어지러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 모든 야망과 허망한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형편, 그래서 철저하게 하나님을 배우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믿음의 훈련과 연단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바로 빈들과 광야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구원하신 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광야의 빈 들에서 애굽의 노예근성을 빼고 하나님의 사람은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믿음의 훈련을 시킨 후 약속의 땅으로 들여보내셨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 이방인의 사도로 사역하기 전 훈련받았던 장소도 아라비아 광야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지도자가 되기 위하여 40년 동안 연단을 거쳐 부름을 받은 장소도 광야였습니다. 이처럼 빈들은 우리를 낮추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는 가장 적합한 환경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광야와 같고 빈 들과 같은 환경으로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말씀에 붙들림을 받기 위해서는 누구나 광야의 ‘빈 들’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빈 들의 과정을 거쳐야 자기를 부인하는 낮아진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혹시 지금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나를 낮추시는가? 왜 내 삶을 이렇게 힘들게 하시는가? 왜 아무것도 바랄 수 없게 하시고 모든 것을 가져가시는가? 하는 생각이 드시는 분이 있습니까? 말씀에 붙들리기 위하여 준비하는 기간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아무것도 없는 빈들의 시간을 허락하시고 텅 빈 광야 인생이 되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떡으로만 살던 인생을 말씀으로 사는 존재로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낮추고 연단해서 하나님만 바라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철저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의 몸이 이 화려한 도시에 있어도 광야의 정신과 빈들의 생각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고, 그래야 도시의 정신에 함몰되지 않고 말씀에 붙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례요한을 빈 들에서 훈련 시키고 준비시키다가 때가 되자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키십니다. 요한에게 말씀이 임했다고 했는데 그 말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3절입니다.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하나님께서 빈들에 있는 요한에게 주신 말씀은 바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회개의 세례에 관한 말씀입니다.
요한은 이 말씀을 주로 요단강 부근에서 전파했습니다. 요단강 부근은 지구에서 가장 낮은 육지입니다.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가 가장 낮은 곳에서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 전파되고 있음이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이 소리를 통하여 예수님이 오실 길과 사역이 준비됩니다. 4-6을 보십시오.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은 회개하라고 외치는 세례요한의 소리를 통해 마음이 산이나 언덕과 같이 높아서 회개하지 못하는 교만한 심령을 낮추십니다. 헤어나오지 못할 절망과 실의에 빠진 골짜기 같은 심령은 돋우어서 하나님의 은혜 앞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뒤틀리고 비뚤어져서 의심하고 불신하는 마음을 곧게 해서 진실한 마음으로 주 앞에 서게 하십니다. 죄악으로 상하여 깨어지고 일그러진 울퉁불퉁한 마음, 거스르고 완악하게 된 심령을 부드럽게 다듬어서 죄 사함의 은혜 앞에 감사와 순전함으로 반응하게 하십니다. 오랫동안 광야의 빈 들에서 준비된 세례요한이 이제 때가 되어 이런 내용이 담긴 죄 사함의 은혜와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세례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렇게 질타합니다. 7-9을 보십시오. “요한이 세례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자신에게 세례받으러 나왔다면 자신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일 텐데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합니다. 이 소리를 들은 사람은 당황스럽지 않겠습니까? 누가 너희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다고 하냐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무섭게 몰아붙이는 세례요한 앞에서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왜 이렇게 합니까?
이사야 40:1-5에 답이 있습니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자, 누가는 그냥 회개하라고 외치지 않고 너희는 독사의 자식들이니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심판의 도끼에 찍혀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일갈했습니다. 누가는 그런 세례요한의 메시지를 보면서 이사야 선지자의 이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가 인용한 이사야는 선지자의 이런 사역이 하나님의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자기 백성을 향한 당신의 위로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진정한 위로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상태를 감추지 않고 정직하게 알려줘 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만 아니라 모든 인간은 독사의 자식들입니다. 겉보기에는 멀쩡하여도 속은 허물과 죄로 죽어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며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행하면서 하나님을 거슬렀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요 독을 품고 살면서 다른 사람과 자신을 죽이고 있는 독사의 자식들이 우리의 영적 실상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이 선택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어서 회개할 필요가 없으며 하나님 앞에서 상 받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요한은 너희들 역시 죄 사함을 얻기 위해 회개해야 할 독사의 자식들이며 하나님은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할 수 있다고 하면서 혈통과 육정으로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음을 분명하게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무엇인가 남다른 점이 있어서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다 독사의 자식들이지만 누구든지 죄 사함의 은혜를 얻고 구원의 역사를 맛보려면 회개하고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함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이들을 택하고 불렀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인생이든 하나님의 구원을 보려면 낮은 마음으로 자신이 독사의 자식임을 인정하고 죄 사함의 세례를 받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렇게 요단강 부근에서 세례요한이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하자 그 외치는 소리를 들은 무리들이 묻습니다. 10-14이죠.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들었다면 우리도 물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나님은 묻는 자에게 대답해주십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독사의 자식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묻는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세례요한을 통하여 회개란 골방에서 하나님 앞에서만 용서를 구하는 소극적인 행위가 아니라 이웃들 앞에서 구체적인 행동의 변화를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만 향하던 삶의 방향이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돌이킴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에게 맡기고 허락한 너희 일상에서 너희의 분수를 지키고 맡은 소유와 재능과 시간과 건강과 힘과 지위와 환경과 여건을 이웃과 지체에게 나누라고 하십니다. 옷을 두 벌 있다면 옷 없는 자에게 나누고, 먹을 것이 있으면 없는 자와 나눠 먹으라고 하십니다. 세리와 군인처럼 자신에게 힘이나 권리가 부여되었다면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착취하지 말고 겁박하지 말고 정직하게 섬기며 봉사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기에 합당하지 않는 부끄러운 일들, 폭력과 착취, 육욕에 눈멀었던 삶을 회개하고 은혜를 받은 자로서 마땅한 모습을 나타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앞에 우리는 어떠합니까? 회개의 열매가 우리의 일상에서 긍휼과 자비의 모습, 정직과 공의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을 이렇게 몰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 하나님께서 나를 광야로 내모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시는 분이 있습니까? 왜 하나님은 자꾸 나를 낮추실까? 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을 만나도록 준비시키는 시간인 줄 아시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서 하나님을 기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초라하게 만들고 무너뜨리고 있다면 빈 들에서, 요단강에서, 세례의 물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릴 수 있도록 우리의 높은 마음을 낮추고 낮은 마음을 돋우고 구부러진 길을 펴시는 시간입니다. 평탄해진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이 들릴 수 있도록,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만지시는 시간입니다. 독사의 자식과 같은 나에게 하나님의 진정한 위로가 임하여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만드는 시간인 줄 믿고 그 손길을 잘 받아들여서 회개의 은혜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