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봄 462 >제311회 아동문예신인문학상
-약력
1983년 영주 출생
아동문학소백동인회 회원
어린이도서연구회 영주지회 도서관부차장
-쓰레기 수거차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쓰레기봉투 앞에
초록색 트럭이
멈춰 섰다
약속한 옷 입으셨나요?
아무 옷이나 입으면 못 타세요
어머,많이 담아 옷이 터졌네요.
몸에 맞게 입혀 달라고 하세요.
매듭도 단단히 묶으시고요.
거기 누워 계시면 안 돼요.
203호는 오늘도 지각인가 봐요?
내일 타셔야겠네요.
자,이제 출발합니다.
멀어지는 쓰레기 수거차
머문 자리
운동장처럼 깨끗하다
-오히려 좋아
빨간 불로 바뀐 신호
"오히려 좋아"
지친 내 다리
잠시 쉴 수 있으니까
한여름의 소나기
"오히려 좋아"
시들해진 꽃잎
웃으며 반겨주니까
티비 없는 우리 집
"오히려 좋아"
알콩달콩 우리 가족
이야기 주머니 열리니까
아빠 한 뼘
엄마 한 뼘
천천히 자라는
내 마음
-단골손님
깜깜한 밤 시장 골목
여기저기 빛나는 두 눈
호랑이처럼 용감하다
생선집
어묵집
족발집
맛집 찾아 바쁘네
줄 서는 법도 없고요
계산하는 법도 없지요
흔적만 남기고 가는
염치없는 단골손님
길고양이
-산속 작은 산
나는
산속 초록마을에
살고 있어요.
비가 온 뒤 땅을 열고
고개를 빠끔 내밀어
쑥쑥 자랄 준비를 해요.
곧 아버지만큼 클 거래요.
겉모습은 다르지만
내 속은 아버지 모습을 꼭 닮았지요.
땅속줄기에서
돋아나는 어리고 연한 싹
산속의 작은 산
내 이름은 어린 죽순입니다.
-나만 모르는 띠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할머니들이 이야기 나눈다.
"기복이 할멈 올해 몇인교?"
우리 할머니
"내 소띠 아인교"
"자는 말띠고,
자는 토끼띠고,
자는 호랑이띠제"
"기복아,니는 원숭이띠다"
내 두 눈이 동그래졌다.
"할머니,
우리 태권도장엔 그런 띠 없는데요?"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신다.
오늘은 흰 띠 말고
띠가 하나 더 생긴 날이다.
<당선 소감>
초등학교 시절 일기쓰기를 좋아하던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이른 결혼을 하고 아내로서,엄마로서 해야 할 이들에만 매달려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때 아동문학소백동인회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선생님들은 깊고 작은 방에 숨어있던 내 안의 아이가 문을 열 때를 기다렸다는 듯 동심의 보석들을 캐내는 방법을 하나 둘 가르쳐 주셨습니다.그 보물들이 바로 어린이들의 마음을 살찌우는 동시였습니다.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이들의 정서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아야 할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의 생활 속을 파고드는 동시여야 된다는 것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갈고 닦으며 동시 작가로서의 길을 걷도록 하겠습니다.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아동문예>와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시의 길로 이끌어 주신 김 선생님과 아동문학소백동인회 김장환 회장님을 비롯한 회원 여러분께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또한 글동무 어린이도서연구회 영주지회 회원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우리집 막내의 근사한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되었다고 밝히면서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가족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자 합니다.
<심사평> 김동억
시심과 동심이 조화를 이룬 작품
갑진년 새해 새봄을 맞아 계간으로 새롭게 발돋음하는 아동문예의 신인문학상 응모 작품을 읽게 되어 가슴이 설레였다.다행이 보내온 열 작품 모두가 시심과 동심이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수준이 고르고 동심적인 상상력과 어린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담겨 있어 기꺼운 마음으로 김연경 시인의 [쓰레기 수거차]외 4편[오히려 좋아],[단골손님],[산속 작은 산],[나만 모르는 띠]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쓰레기 수거차]는 동화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쓰레기 수거차를 의인화한 작품으로 한 편의 동화를 읽는 기분이 든다.쓰레기 배출시의 유의할 점과 쓰레기장의 바람직한 환경을 은연중에 말하고 있다.즉 쓰레기는 정해진 봉투에 담아 매듭을 잘 묶어서 배출 시간에 맞게 배출해야 수거해 갈 뿐만 아니라 주위가 깨끗해진다슨 내용이다.참 재미있게 진술하였다.
[오히려 좋아]는 화자가 빨간 불로 바뀐 신호등,한 여름에 내리는 소나기,티비 없는 우리 집이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좋다고 하였다.왜 짜증나고 속상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화자는 이런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조급해 하지 않고 여유로움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단골손님]은 시장 골목의 도둑고양이를 늘 정하여 놓고 거래를 하는 손님으로 비유하고 있다.요즈음 주택가나 시장 골목에는 주인 없이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고양이들이 많다.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그러나 가게 주인의 입장에선 얼마나 난처하겠는가? 그런데도'흔적만 남기고 가는/ 염치없는 단골손님/ 길고양이//'로 끝을 맺고 있다.동물 애호정신의 발로이다.
[산속 작은 산]은 죽순을 산속의 작은 산에 비유하였다.죽순은 대나무의 땅속줄기에서 돋아나는 어린 싹이다.죽순의 모양이 산봉우리처럼 뾰족하기 때문이리라.어린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동심적인 상상력이 무한하다고 할까?
[나만 모르는 띠]는 할머니들이 모여서 나누는 띠 이야기를 들은 화자의 솔직담백한 심경을 토로한 동시다.요즈음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젊은 사람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띠라고 하면 태권도장에서 사용하는 흰 띠,검은 띠로 생각할 수도 있다.그런데 "기복아,니는 원숭이띠다." 라고 할 때 얼마나 당황하였겠는지 짐작이 간다.띠(12간지)란 사람이 태어난 해의 지지를 동물 이름으로 상징하여 이르는 말이다.즉 쥐띠,소띠,호랑이띠,토끼띠,용띠,뱀띠,말띠,원숭이띠,닭띠,개띠,돼지띠 순서로 모두 12띠가 있다.나이 든 사람들이 나이 대신 사용하는 말이다.그러니까 `오늘은 흰 띠 말고 / 띠가 하나 더 생긴 날이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아 재미를 더하고 있다.
이처럼 동심적이 상상력과 순수한 마음을 지닌 신인을 만나 기쁘기 그지없다.큰 박수와 함께 더욱 정진하여 동시의 꽃을 활짝 피우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