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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일산악회의 신년화두(新年話頭).............인감대!(忍堪待)
♣ 인감대(忍堪待)의 유래......
♣ 인감대란 말은 중국 송나라때 어느 임금님이 너무 성격이 급하고 신경질을 잘부려서
항상 병치레가 끊이질 않고 백성들의 원성이 잦자 하루는 왕비가 선대부터 믿고 의지하는 신하를 불러 임금의
성품과 고충을 이야기하고 약을 지어오라고 하자 신하가 전국에 있는 명의를 찾아다녀도 신통한 처방이 없던 차에
어느 깊은 산골에 있는 당대의 최고의 명의인 노인을 찾아가서 한참을 기다려서 처방을 받았는데....
♣ 약봉지를 열어보니 약은 없고 인(忍) 감(堪) 대(待)라고 쓰인 종이가 있을 뿐이었다.
속았다고 생각하고 다시 그 집에 갔으나 노인도 집도 없어졌다.
♣ 다시 발길을 돌려 몇달만에 집에 돌아와보니 문앞에 자기 부인의 신발과 낯선 남자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것이 아닌가?
신하는 부인이 자기가 없는 사이에 다른 외간남자와 불륜을 저지른다는 증오감에
헛간에 들어가 날카로운 낫을 들고 방문을 열려고 할 때,약봉지에 쓰여진 인(忍) 감(堪) 대(待)가 생각나서
낫을 놓고 한숨을 돌리고 쉬면서 자리에 앉아 버렸다.
♣ 그러던 중 조금 있으니 방안에 있던 남자가 방문을 열고 나오는것이 아닌가?
그 남자를 쳐다보니 방안에서 나온 그 남자는 다름아닌 처의 아버지인 장인이었다.
잘못했드라면 부인과 장인을 한꺼번에 살해할 뻔할 것을 참고, 견디고 기다리는 사이에 무사히 넘긴 것이다.
♣ 다음날 임금과 왕비를 알현하고 명의가 처방해준 처방전 인감대(忍,堪,待)를 바치고 지난밤에 자기집에서
일어났던일을 고하였다.
♣ 그 일이 있은후 임금님이 명의의 처벙전대로 실행한후에 훌륭한 임금님이 되었다는 유래가 있습니다.
♣ 서울목일산악회회원들께 "인감대"라는 신년화두를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께서 선물로 드리오니
참을인(忍), 견딜감(堪), 기다릴대(待)라는 말처럼 현 경제사정이 어려우시겠지만
참고, 견디고, 기다려서 올 한해 건강하시고,
소원하시는 일이 모두 다 성취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하고 기원하겠습니다.
# 목동아파트 출발
♣ 산행준비를 해서 목동아파트에 도착하니 이미 동백관광버스가 도착했다.
옆지기가 베낭을 가지고 버스앞에 내려서 우리가 좋아하는 가운데쯤 자리를 잡으러가고 나는 차를 주차장에
주차시키고 왔다.
♣ 아침6시 반정도 되었는대도 아직도 밖은 어둑어둑 하였다.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과 운영진들에게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오르니 이미 많은 회원분들이 오셔서 반갑게
새해 인사를 나누었다.
♣ 긴 인생을 살아가면서 서로 같은 방향을 보면서 살아간다는 건 즐겁고 행복한 일인것 같다.
부부는 살아가면서 서로 닮는다고 한다.
같이 고민하고,같이 즐거워해서 그런가 보다.
그래서 오래산 부부는 얼굴도 닮아간다고들 한다.
그런데 우리부부는 좀더 오래 같이 살아야 할것 같다.
나는 뚱뚱하고 옆지기는 너무 날씬해서 전혀 안 닮아 보이니 말이다.ㅋ
♣ 하물며 남남끼리인 회원들이 등산을 좋아해서 산이라는 매개체를 중심으로 날마다는 아니지만 비록 한달에 한번씩이지만
몇년을 한결같이 모인다는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지만 이렇게 모일수있다는 건 모두다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이하
운영진들이 수고해주시는 덕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한해도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회장님이하 운영진의 노고에 감사드리고요.
앞으로 다가올 한해도 계속 수고를 부탁드려요!
♣ 아침7시 10분쯤이 되자 버스가 목2동에 있는 도시가스앞으로 출발하였다.
거기서 매번 참석해주시는 목동산악회 문형수 회장님과 총무님 두분을 모시러 간단다.
# 목동산악회 문형수회장님
♣ 목동산악회 문형수 회장님은 내가 처음 목일산악회에 들어가 등산을 하던 2년전부터 뵈온 분이다.
마른체격에 언제나 뒷자리를 좋아하시어 뒷자리에 앉으시는 분이다.
♣ 우리는 어릴때 버스를 타면 뒷자리에 타곤 했다.
특히 그 당시만해도 포장이 안된 시골길의 버스는 달릴때마다 버스 뒷자리가 힘하게 덜컹거렸다.
버스가 덜컹거릴때마다 우리는 더욱더 다리를 굴려 움직여서 머리가 버스천정에 닿을정도로 다리를 굴리며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추억이 있어서인지 목동산악회 회장님도 뒷자리를 아주 좋아하셨다.
그런데 산행을 계속 다니면서 저절로 느꼈는데 뒷자석은 항상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앉아 계셨다.
뒷자리는 바로 술자리였던 것이였다.ㅋ
♣ 지난달 명성산 산행때는 목동산악회 회장님이 병원에 입원을 했었는데 우리 산악회 산행에 동참하시려고
병원에서 탈출도 하셨든 좋으신 분이다.
목동산악회 문형수회장님은 산신령을 무서워하시는 분 같았다.
산신령이 계시는 산정상에서는 목동산악회 회장님을 볼수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오면 항상 밑에는 계신다.ㅋ
# 인사말씀
♣ 목2동 서울도시까스엎에서 목동산악회 회장님과 총무님들을 태우고 우리 버스는 올림픽대로를 따라 달리었다.
♣ 운영진들이 김밥과 계란과 사과와 생수를 나누어 주었다.
김밥을 먹고나니 회장님 사모님께서 오댕국물을 직접 따라주셨다.
산악회원 개개인에게는 계란두개와 사과1개그리고 생수 한개지만,그 수많은 계란을 삶느라고 뜨거운 불앞에서 얼마나
계란이 터지지않도록 불을 조절해가면서 고생하였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 나도 놀토때면 옆지기 몰래 계란을 삶아 먹은적이 있다.
옆지기는 콜레스톨이 많다고 계란을 먹지말라고 한다.
하지만 먹지 말라는 것은 더 먹고 싶은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놀토일에 옆지기가 미용실로 출근하고 나면 나는 냄비에 계란을 9개정도 넣고 그다음에 물을 넣고
까스불을 켠다.
♣ 물이 펄펄 끓으면서 계란중 몇개는 옆구리가 터져버려 냄비에 계란 흰자위가 둥둥떠 다닌다.
그런데 목일산악회 운영진이 삻은 계란은 터진것이 하나도 없고 껍질 벗기기도 참 좋다.
이 역시 기술을 요하는 숙련된 작업인 것 같다.
♣ 오늘은 신선주 총무님이 집안에 무슨 일이 있어서 대전에 내려가셔서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이 회장겸 사회겸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하시었다.
기축년 새해를 맞이하여 새해인사를 하시고 장옥선 산악대장님의 B코스인경우 비로봉에서 다시 상원사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원점산행을 하라는 당부 말씀이 있었다.
♣ 목일산악회 장옥선 산악대장님의 산행 안내가 끝나자 벅순주산악회장님이 "인감대"라는 목일산악회 신년화두를 회원들에게
일일이 나누어 주시면서 새해의 무사안녕과 소원성취를 빌어주셨다.
# 여주휴게소 도착
♣ 버스는 올림픽대로를 거쳐 중부고속도로를 따라 영동고속도로를 달렸다.
얼마쯤 달렸을까?
산행의 설레임으로 인해서 어젯밤 한숨도 못자고 눈만 감고 있어서 피곤해서 깜빡 졸고있는데
여주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 우리는 언제나 화장실도 같이가서 남자와 여자화장실앞에서 헤어진다.
나는 화장실을 다녀온후 여주 휴게소 사진을 한장찍고 버스를 탓는데 옆지기는 아직도 오지않고 잇다.
♣ 버스가 출발할 시간이 되었는대도 오지않는 옆지기를 조마조마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기다리느라고 아직도 화장실앞에 있는지 궁금해서 버스에서 내릴려고하는 찰라!
저만치서 옆지기가 손에 무엇을 들고 나타났다.
♣ 손에 들고 잇는것을 보니 여자 스타킹같은 거였다.
환하게 웃으면서 옆지기는 아랫도리가 추워서 자기도 휴게소 마당에서 파는 등산용스타킹을 사서 입었으니
나도 다음 휴게소에서 등산용 스타킹을 입으란다.
♣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안입는다고하니 섭섭해하는 눈치였다.
겨울에도 나는 하의 내복을 입지않는다.
전에는 상의와 하의 내복을 사서 상의만 입으니 하의는 걸레로 썼으나 지금은 상의와 하의 내복을 별도로 나누어서 팔아서
이제는 상의 내복만 사니까 나는 집에 하의내복은 아예없다.
♣ 아침에 춥다고 하의내복을 입으라고 해서 마지못해 하의내복을 찾았으나 사지않았으니 없는것은 당연했다.
♣ 그게 마음에 걸려는지 내 하의 등산용 스타킹을 사가지고왔으니 이를 어쩌랴!
마누라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고 했으니 몇번 손사래를 치다가 결국은 다음 휴게소에서 갈아 입기로 했다.
♣ 마음속으로는 휴게소가 안나타났으면 했으나 시간은 흐를 뿐이고,우리버스는 평창 휴게소에 멈출뿐이였다.
# 평창휴게소 도착
♣ 이윽고 버스는 평창휴게소에 멈추었다.
♣ 옆지기가 등산용스타킹을 가지고 내리라고 눈짓을 했다.
나는 주머니속에 등산용 스타킹을 넣고 화장실로 같이 갔다.
♣ 그런데 왠걸!
휴게소 화장실마다 줄을 여기도 길게 저기도 길게 줄을 서있는게 아닌가?
♣ 그러나 내가 누구랴!
잔머리가 세상에서 두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 아니드냐!
♣ 얼른 화장실 밖으로 나가서 장애인 화장실로 가서 안에 누가 있는지 확인을 하니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등산용 스타킹을 갈아 입는데 장애인 화장실이라 널직해서 참 좋았다.
잠시동안 마음의 장애인이 된 듯했다.
# 상원사 주차장 도착
♣ 평창휴게소를 출발한 버스는 한참을 달려서 오대산 상원사입구에 도착했다.
입장료문제로 한참동안 정차했었는데 1인당 2,500원이나 되었다.
국립공원들이 모두 입장료를 안받는 것으로 알고있고 또 산행할때마다 입장료를 준 적이 몇번밖에 안되었지만
오대산 입장료는 1인당 2,500이라니 산행입장료치고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비싸고 비싼 입장료를 지급하고 상원사 주차장에 버스가 도착했다.
목일산악회 박순주 회장님께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단체사진 촬영이 있다고 방송을 하셨다.
♣ 등산할때는 개인마다 체력에 따른 산행하는 속도가 있으니 정상에서 단체 사진을 찍는 일은 쉽지않다.
그래서 산행지에 도착하자마자 단체 사진을 찍고 정상에서는 목일산악회 장옥선 산악대장님을 중심으로 도착한 회원만
사진을 찍는다.
♣ 그런 다음 서울목일산악회 카페에는 단체사진과 정상사진을 동시에 올려놓는다.
# 중대사자암으로 출발
♣ 상원사로 가는길은 아직도 눈이 녹지않고 얼어서 빙판길이였다.
상원사를 지나 중대사자암으로 출발하였다.
나무계단을 지나 도착한 중대사자암은 5개의 지붕이 반절은 땅에 묻힌듯이 보였다.
담옆에는 겨울에 쓸 땔 나무감이 가지런히 쌓여있었고 지붕위에는 햐이얀 눈이 소복히 쌓여있었으며 처마에는 고드름이
열려 있었다.
♣ 먼 산에는 아직도 나무사이사이로 눈이 하얗게 쌓여있었다.
중대사자암에서는 화장실을 "근심푸는곳"으로 씌여 있어서 비록 속세를 떠난 스님이지만 근심이 있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 비로전을 둘러보고 돌아서니 동자승이 두손을 모아 약수를 주는 약수터가 추위에 얼어서 물이 안나오는게 조금 아쉬웠다.
그옆 잡화점에는 스님이 상체를 드러내놓은 모습의 인형이 가는이의 발길을 붙잡고 미소를 머금게 하였다.
# 적멸보궁으로 출발
♣ 적멸보궁에 대해서.......
♣ 고려 때 고승인 일연(一然) 스님은 “국내의 명산 중에서도 가장 좋은 곳이요,
불법이 길이 번창할 곳이다”라고 오대산을 말하고 있다.
오대산은 바위와 암벽이 별로 없는 육산(陸山)이라고 합니다.
육산이란 어머니의 품과 같은 흙이 있어서 동물은 물론이고
식물들이 잘 자라는 산이란 뜻이다.
경치로 말한다면 기암괴석이 즐비한 악산(嶽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생명을 키우는 데는 육산이라야 한다.
그러나 일연스님이 오대산을 ‘불법이 길이 번창할 곳’ 즉 종교적 성지로 지목한 것은 이런 자연적 조건 때문
만은 아니다.
이 산이 바로 부처님의 정골(頂骨)사리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오대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찾아오게 하는 것은 바로 오대산 주봉인 비로봉 아래 적멸보궁이 있기
때문이다.
오대산에 적멸보궁이 들어선 것은 자장율사에 의해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자장율사는 중국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의 진신(眞身)을 찬견하고자 정관 10년(636)
입당을 결행했다.
스님은 태화지(太和池)에 있는 문수석상 앞에서 7일 동안 간절한 기도를 했는데 어느날 꿈 속에 문수보살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너희 나라 동북방 명주 경계에 오대산이 있다.
그곳에는 일만 문수가 상주하니 그곳에서 나의 진신을 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자장이 우리 나라의 오대산을 진성(眞聖)이 거주하는 곳으로 믿게 된 것은 중국 오대산에서
만났던 문수 현신(現身)의 깨우침때문이었다.
자장은 귀국 후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을 지내며 왕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으나 문수 진신을 친견하는 꿈을
버릴 수 없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오대산으로 들어와 모옥을 짓고 문수의 진신을 친견하기 위한 기도를 했다.
그러나 자장은 문수의 진신을 좀처럼 친견할 수 없었다.
자장은 오대산의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기도를 계속했으며 원녕사(元寧寺), 갈래사(葛來寺) 등에서도
기도를 했다.
오대산에 월정사와 상원사, 사자산에 흥녕사(지금의 법흥사), 태백산의 갈래사(지금의 정암사) 등이
창건된 것은 이런 인연에 의해서다.
중대에 터를 잡고 그 위에 적멸보궁을 지은 것도 자장 율사의 간절한 구도심과 관계가 깊다.
오대산은 중대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각각의 오류성중(五類聖衆)이 상주한다는 믿음이 산명(山名)으로
나타난 것이다. 즉 동대에는 관세음보살, 서대에는 아미타불, 남대에는 지장보살, 북대는 석가모니불, 중대에는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것이다.
자장율사는 이러한 믿음으로 이산 저 봉우리에서 기도를 했다.
특히 중대는 자장이 친견하고자 했던 문수 보살이 상주하는 도량이었다.
따라서 자장 율사는 중국 오대산에서 모셔온 사리 가운데 가장 소중한 정골 사리를 이곳 적멸보궁에 모시고
기도를 했다.
중대를 일명 사자암이라고도 하는데 사자는 문수보살이 타고 다니는 짐승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중대는 보궁의 불사리를 공양하는 분수승(焚修僧)이 머무르는 곳인 탓에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향각은 깎아지른 절벽에 석축을 쌓아 올린 뒤 지었는데 조선 초기 태종대에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향각 앞에는 기도객의 눈길을 끄는 이상한 단풍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 나무는 근세 고승으로 추앙받는 한암 선사가 서울 봉은사에 머물다가 1926년 오대산으로 거처를 옮길 때
짚고 온 단풍나무 지팡이 이다.
스님이 지팡이를 향각 앞에 꽂아 두었는데 어느덧 지팡이에서 잎이 피고 뿌리가 내렸다고 한다.
스님은 단풍나무 지팡이가 뿌리를 내리듯 한번 오대산에 들어 온 뒤로는 다시 산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
"삼춘에 말 잘하는 앵무새보다는 천고에 말없는 학이 되겠다”던 스님의 다짐처럼 이 단풍나무는 해마다
푸르름을 더해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말없는 가르침이 되고 있다.
적멸보궁은 오대산의 주봉인 비로봉에서 흘러 내린 산맥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그 중앙에 우뚝 서 있다.
풍수지리를 보는 사람들은 이곳을 일러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이라 하여 천하의 명당으로 꼽는다.
부처님이 계신 적멸의 도량 적멸보궁, 그러나 적멸보궁은 ‘보배궁전’ 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조촐한
모습으로 중생을 맞는다.
보궁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른 보궁과 마찬가지로 불상은 없고 부처님이 앉아 계심을 상징하는 붉은 색의
방석만이 수미단 위에 놓여 있다.
그러면 오대산 보궁 어디에 사리를 모셔 놓은 것일까?
하지만 불사리가 어느 곳에 모셔져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보궁 뒤에는 약 1m 높이의 판석에 석탑을 모각한 마애불탑이 소담하게 서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불탑도 하나의 상징일 뿐 과연 어느 곳이 사리가 모셔져 있는 곳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이 산 전체가 하나의 불탑이요, 부처님의 진신사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
일찍이 오대산에 오류성중의 진신이 상주한다는 믿음이 그것을 말해준다.
적멸보궁에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4분정근이 행해지고 있으며 매년 음력 4월 1일부터 5월 1일까지 정골사리
봉찬회가 주관하는 대법회가 한달간 열린다.
이 때가 되면 영동 지장은 물론 전국의 불자들이 보궁 참배를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온다고 한다.
--------문헌 참조(특정종교와 관련없음)---------
♣이제 역사배우기를 마쳤으니 적멸보궁으로 올라가볼까요?ㅋ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니 "잔물버리는 곳"이란 팻말이 서있었다.
"잔물이라!"
"오줌인가?"아니면 "남은 생수물인가?"
산행후기는 써야하는데 잔물이 궁굼해서 못 살겠는거에요.
그래서 오대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로 전화를 했지요.
♣오대산 관리사무소측의 답변.....
종교적인 의미로 잔물은 "마음의 때"를 의미한다 본답니다.
표지판 위치와 주위 형세그리고 불교에 관한 종합적으로 백팔번뇌가 아닌가 싶답니다.
사람이 부처님 인데 오직 청정한 부처의 마음만을 가질 진데, 세상 살이에 얽메어 욕심과 번뇌 정욕,
근심 걱정에 휩 싸이는 고로 이러한 마음을 다 비우라는 의미에서
**잔물 버리는 곳**이라 한 것 같답니다.
그런 연후에 성스런 불당을 찾아 예를 갖추라는 의미인 것 같답니다.
♣관리사무소의 답변이라 조금은 미흡한것같으나 스님에게 직접 전화할수는 없어서 그냥 통과하기로 했지요!ㅋ
♣올라가는 언덕길 양쪽에는 많은 눈이 쌓여있었다.
아마도 봄이 올때까지는 녹지않을 만큼 많은 눈이다.
♣올라가는 길옆에 안내문은 "이곳은 성지인 적멸보궁내이므로 1KM내에서는 야영및 취사를 금지한다"는 팻말이
서있었다.
♣적멸보궁으로 올라가는 6개의 통나무를 땅에다 박고 그위에 "ㄷ"자형 철근을 박아 놓았다.
이게 또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지요.ㅋ
눈이 많이 내리는 오대산이므로 이곳을 찾는 이들이 겨울철에 미끄러지지않도록 하기위함으로 여겼어요.
♣적멸보궁앞에는 안내소가 하나있고 적멸보궁에는 참배하는 불자들로 가득하였다.
♣산악회장님 사모님과 회원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비로봉으로 발길을 돌렸다.
# 비로봉으로 출발
♣적멸보궁에서 비로봉까지는 1.5KM정도 되는 거리다.
올라갈수록 하얀눈이 수북히 쌓여있었다.
길가의 나무들은 하얀눈속에 하늘에 닿을만큼 크게 서있었다.
우리가 다녀간 이후에도 낮이고 밤이고 이곳에 서서 천년을 지키리라!
여기저기 고목들도 눈에 띠었다.
특히 주목나무는 살아서 천년을... 그리고 죽어서 천년을...서있는다고 한다.
♣눈이 많아지자 나와 옆지기는 아이젠을 신었다.
등산을 하기전에는 겨울에는 선에 눈이 있어서 미끄러운데 어떻게 등산을 할까?
궁금했었는데 아이젠이란 물건이 있었다.ㅋ
눈길에 아이젠을 신으니 이젠 미끄럽지 않았다.
비로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험한곳은 나무계단으로 되었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험한 산길을 올라가는 가보다.
잠시동안 쉬면서 회원들과 과일을 나누어 먹었다.
특히 눈속에서 힘들때 먹는 얼은 귤은 일품이었다.
♣옆지기는 가을이되면 제주도 친구에게서 귤을 두박스나 산다.
일일이 까서 적당 량을 담은 다음 비닐봉지에 넣어서 냉동실에 얼린다.
그리고는 등산때마다 거의 1년동안 한봉지씩 꺼내가지고 와서 회원들과 같이 나누어 먹는다.
오늘은 길가에 서서 올라가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다.
♣쉬었다가 한참을 오라가니 어떤 낯모르는 사람이 과자를 내민다.
아까 귤을 얻어먹은 보답이란다.
작지만 서로 나누는 미덕이 돗 보이는 장면이다.
♣여기저기에 고목들이 많이 보이고 겨우내내 낙옆이 다 떨어져 홀로 쓸쓸히 서있는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한참을 숨이 턱까지 차도록 오르니 비로봉 정상(1,563m)이 보였다.
이미 목일산악회 산악대장님은 걸음이 빠르셔서 안보이고 늦게 도착한 회원들을 비로봉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또다시 상왕봉으로 출발하였다.
# 점심식사
♣비로봉에서 조금더 가니 목일산악회 장옥선 산악대장님이 서계셨다.
시간상그리고 장소적으로 봐서 점심을 먹고 상왕봉으로 가자고 하셨다.
♣오대산 정산에서 점심식사라!
그것도 발아래 산들이 겹겹이 쌓여있고 온 산에는 흰눈이 쌓인 오대산!
♣운영진이 정성껏 담아준 도시락과 집에서 가져온 반찬들>>>>
배추김치,무우김치,토란국,멸치조림,쥐포조림,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게,송이버섯 볶음.파김치,컵라면,
잣과아몬드볶음,달걀후리이및 감자채볶음등.....
정말 진수성찬이었다.
♣어어어어!
이를 어쩌랴!
한 회원은 부인의 밥과 반찬을 다 가지고 있었는데 사모님이 점심을 여기서 먹는줄 모르고 상왕봉으로
먼저 가버렸다고 했다.
같이 간 회원들과 나누어서 점심을 들고 또 그분은 산행을 많이 하셔서 이럴때를 대비해서 떡이나
쵸코렛등 비상 식량을 항상 가지고 다니신다.
정말 산행에서는 예기치 않은 상황을 대비해서 항상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 상왕봉으로 출발
♣점심을 먹고나니 한결 추운것도 없어지고 멋진 산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래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한것 같다.
♣나는 오대산 정상에서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일부 회원들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눈이 많이 쌓여있으니
아이젠을 착용하는 회원들도 보였다.
♣여기서 상왕봉까지는 2.3km거리다.
♣정상주변에는 주목나무 군락지였다.
주목나무 보호팻말도 보였다.
♣조금더 가니 비상시 착륙을 위한 헬기장도 보였다.
산길이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하면서 그리 어렵지않은 산행이였다.
♣내리막길 여기저기서 쿵하고 넘어지는 회원들도 잇다.
우리회원들과 다른 산악회 회원들과 엉켜서 산행을 계속했다.
눈이 녹아서 그렇치 아직남은 눈이 60cm정도 되는 걸보니 1m이상 눈이 내린것 같다.
♣추운 산정상에 고사목이 쓸쓸히 서있다.
♣드디어 해발1,491m의 상왕봉 정상에 도착했다.
이제야 목일산악회 장옥선 산악대장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산밑에서 목일산악회 박순주 회장님과 회원전체가 찍은 단채사진과 함께 산 정상에서 산악대장님과 찍은 사진을
언제나 카페 메인페인지 상단에 올린다.
# 하산하는 길
♣이제는 오대산의 정상인 비로봉과 상왕봉을 정복했으니 하산할 시간이 되었다.
상원사 주차장까지는 5.8km라는 표지판이 서있었다.
♣하산하는 길은 눈도 많이 쌓이고 미끄러운 길이였다.
목일산악회 회장님 사모님의 뒤를 바싹 따라가면서 넘어지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을려고 했는데
사모님은 안 넘어지고 도리어 내가 넘어질뻔 하여 동영상을 3분 찍다가 포기했어요!ㅋ
♣나는 카페에 올릴사진을 찍으면서 천천히 하산하였다.
여기저기에 멋돼지 식흔이라는 표지판도 보였다.
멧돼지가 나타나서 흙이나 곤충이나 작은 포유동물을 잡아먹은 흔적이라는 표지판!
♣버스에서 목일산악회 장옥선 산악대장님이 큰길이 나오면 길을 따라가다가 산길로 들어가라고 했는데
사진을 찍으며 선두와 뒤떨어지고 옆지기와도 헤어져서 그냥 큰길을 따라 걸었다.
큰길로 나오니 구급함도 있었다.
구급함에 가까이 가보니 열쇠가 채워져 잇어서 안내문을 자세히 읽어보니 오대산 사무소로 연락을 하면
비밀번호로 되어있는 구급함을 열수있게 해놓았다.
정말 머리좋은 공무원들이 많아서 기분이 좋았다.
♣큰길주변에는 낙뢰시 발생시 안내문도 있었고 상원사까지 가는 큰길은 4.7km나 되었다.
내려오면서 보니 나무사이로 빛바랜 초생달이 떠있었다.
♣큰길을 따라 내려오다보니 산악대장님의 말대로 지름길로 오는 회원들을 만났다.
그런데 산길이 험하여 고생을 하였다고 하였다.
큰길은 평지라서 거리가 길어서 힘들었었는데 지름길은 산길이 험하여 고생하였는가 보다.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과 운영진들이 돼지고기를 넣은 김찌찌게에다 라면을 넣어서
끓였는데 거기다가 밥을 말아서 먹으니 그 맛이 일품이었다.
♣오후 4시가 반쯤 서울로 향하였다.
그러나 강원도지역은 겨울철 스키시즌이라 길이 많이 막히였다.
정요섭기사님이 국도로 방향을 돌려서 운전하시고 버스속에서는 총무님이 안계셔서 이재홍총무가 임시로
총무를 맡아서 노래자랑을 시작하였다.
♣오후 4시반쯤 오대산을 출발을 했는데 길이 막히어서 5시간만인 9시반경에 목동아파트 A상가앞에 도착하였다.
♣끝으로 오대산 산행을 위하여 애쓰신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과 장옥선 산악대장님그리고 운영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안전하게 운전해주시느라고 수고하신 정요섭 기사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회원 여러분!
기축년 새해에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 하시고자하는 일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추운 겨울날씨에 감기조심하시고 항상 행복하세요!
서울목일산악회 카페지기"너랑나랑"(김재홍)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