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산책]『천수경』⑤
천수 수행의 중심은 다라니 독송
국내에서만 공부해온 사람은 누구나 유학에의 꿈을 꾼다. 내게 그 꿈의 성취는 교토에서의 1년(2002. 8∼2003. 8)으로 현실화되었다. 그 새로운 체험은 『천수경』을 보는 나의 눈을 더욱 깊게 하였다. 사람, 책, 그리고 현장이 새로웠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일본에 가기 전 『천수경』에 대해서 나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자신하였다. “원본 『천수경』 자체에는 무슨 사상이 나타나 있는가?” 지도교수 다나카 선생의 이 질문에 나는 그것이 교만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사실 일본에 가기 전에 쓴 몇 편의 『천수경』관련 논문은 ‘독송용 『천수경』’에 몰려있었을 뿐, 그 성립의 모태가 되는 ‘원본 『천수경』’에 대해서는 진지한 성찰이 부족했다. 그런 나의 허물을 돌아보게 한 것이 다나카 선생이었다. 「원본 천수경과 독송용 천수경의 대비」(『불교학보』 제40집)라는 논문은 선생의 질문에 대한 대답 찾기의 결과였다.
‘원본 『천수경』’을 새롭게 자세히 읽었을 때, 그것은 ‘고본(古本) 『천수경』’과 그 이후의 부가부분으로 나눌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관세음보살이 이러한 다라니를 설하고 나자, 대지는 여섯 가지로 변화하여 진동하였고,…무량한 중생이 보리심을 발하였다.” (대정장 20, 107c∼108a)라는 부분은 바로 경전을 맺는말이 아닌가. 거기까지가 ‘고본 『천수경』’이며, 그 이후가 부가부분이다.
관음신앙은 타력신앙 아니다
그렇게 나누어 놓고 보니 ‘고본 『천수경』’과 뒤의 부가 부분에 나타난 신앙적 입장이 다르지 않은가. ‘고본 『천수경』’ 에서는 관세음보살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설하면서 그것의 독송을 강조하고 있으며, 부가 부분은 다라니의 독송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부연·해석하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부가 부분에서도 매우 중요한 핵심적 내용이 제시되고 있지만 28부의 신중들이나 31가지의 치료법 등이 나오는 등 좀더 잡다하다.
교토박물관 맞은편에는 ‘산쥬산게도(三十三間堂)’라는 관음도량이 있다. 거기에는 1001분이나 되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과 이십팔부의 신중들이 모셔져 있다. 아, 신앙의 뜨거움이여!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근대 이전의 우리에게는 신라 경덕왕 당시 분황사에 천수천안 벽화가 있었다고 하는 경우(『삼국유사』 盲兒得眼조)가 거의 유일한 것이 아닌가 싶다. 왜 우리와 일본의 『천수경』 신행에는 이와 같은 차이가 생겼던 것일까?
우리의 경우는 ‘고본 『천수경』’을 중심으로 『천수경』을 받아들였으며, 일본은 부가부분을 중심으로 『천수경』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천수경』 신행은 다라니를 독송하는 행적(行的) 측면(내지 그것이 함의하고 있는 禪的 측면)을 강조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는 관세음보살 그 자체에 대한 믿음을 중심으로 하는 신적(信的)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물론, 일본이라고 해서 다라니를 독송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보편성은 우리보다 훨씬 적다. 겨우 선종의 3종(임제·조동·황벽종)에서만 독송할 뿐이다.
한국천수신앙의 특징은 ‘자력’
이러한 차이에 대해서 우리가 대륙과 육로로 이어져 있음에 반하여 일본은 바다에 가로막혀 있다는 점, 그래서 우리에게는 보편성 지향이 강한 반면 일본은 그들의 특수성에 자족(自足)하는 경향이 강해서라고 볼 수도 있다.
여기에는 앞서 말한 바 의상스님의 경우에서 보듯이 관세음보살 돕기라고 하는 행적 측면과 결부되어서 『천수경』적 관음신앙은 단순히 타력적 믿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는 일본의 신앙적 특수성 역시 존중하지만(재미있어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전통을 더욱 자랑하고 싶고 이어가고 싶다. 그것이 『천수경』 성립의 본의(本意), 관세음보살의 본의에 더욱 부합하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김호성
동국대 교수
[출처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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