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양창식 총회장이 참아버님 성화 1주년을 기념하면서 천복궁 주일 대예배 때 ‘문선명 총재, 그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설교하신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편집자 주>
인류의 참스승, 구세주 참아버님
사랑하는 식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여러 내외 귀빈들을 모시고 자랑스러운 한국인,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한 생(生)을 불꽃처럼 살다 가신 영원한 인류의 스승 문선명 총재님의 업적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문선명 총재님은 16세에 인류구원의 소명을 받으시고 하나님 해방과 인류구원, 평화세계 실현을 위해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전력투구하는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존귀와 영광의 보좌에 계셔야 할 하나님께서 인간의 타락 이후 슬픔과 한의 하나님으로 계신 것을 아시고 하나님을 심정적으로 해방시켜 드리기 위해 인류구원과 평화세계 실현을 위한 생애를 사신 것입니다. 무엇을 하시든, 어디를 가시든 총재님께서는 모든 삶의 목표를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실현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적 뜻을 미국과 전세계로 전파
문 총재님은 1954년 5월 1일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립하시고 일본과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선교의 기반을 만드셨습니다. 특별히 50세 되시던 1971년 12월, 하나님의 뜻 실현과 자유세계 수호, 조국의 통일을 위해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발을 디디셨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소수의 선교사들과 함께 미국 개척을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현재 우리에게는 많은 아름다운 교회가 있지만 총재님이 처음 미국에 마련했던 교회는 작은 한 채의 주택에 불과했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총재님은 매년 미국 50개 주를 이웃집처럼 드나드시면서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자”고 외치시며 잠든 미국의 양심을 일깨우셨습니다.
사실 1970년대 초, 미국은 정치․경제․군사 등 전 분야에서 풍요롭고 강성한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젊은이들은 마약과 프리섹스 등으로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습니다. 그때 총재님께서는 미국을 위해 기도하시면서 “미국이 하나님의 섭리적 뜻 앞에 바로 서야 된다. 미국의 건국정신이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미국을 세우신 근본적인 중심에 바로 서지 않으면 미국뿐 아니라 세계가 흔들릴 수 있다.”고 하시며 “불이 나면 불을 끄기 위해 소방수가 외부에서 오고 환자를 고치기 위해 의사가 오는 것처럼 나는 미국의 불을 끄기 위해 소방수로 왔다. 병이 난 미국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로 왔다.”고 외치시면서 미국을 향해 건국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설파하시며 하나님이 미국을 축복하신 이유를 상기시키셨습니다.
총재님의 강연은 미국 도처에서 쉼 없이 열렸습니다. 2만 5천명이 운집한 가운데 맨해튼 메디슨스퀘어가든에서 포효하듯 하늘의 말씀을 전하셨고, 양키스타디움에서는 10만여 명의 군중을 모아놓고 말씀하셨습니다. 1976년 9월18일에는 미국 워싱턴 모뉴먼트에서 30만 군중을 모으시고 ‘하나님의 뜻과 미국’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이 가야할 새로운 비전에 대해 말씀하시며 특별히 “미국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뜻 앞에 바로 서야 한다”고 강력히 외치셨습니다.
이 장소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3년 20만 명을 모아두고 ‘I have a dream’이라는 명연설을 했던 곳으로 유명했는데, 문 총재님께서 30만 명이라는 역사에 없었던 기록을 다시 쓰신 것입니다.
그런데 2000년에 문 총재님께서 다시 이 기록을 깨셨습니다. 미국에서 태동하고 이슬람의 전통을 준수하는 ‘네이션 오브 이슬람(Nation of Islam)’ 종단과 함께 우리 가정연합이 공동으로 ‘1million Family March(100만 가정대회)’를 개최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오색인종이 다 모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손자 손녀 3대권이 하나된 대대적인 가정대회로서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행사를 열었던 것입니다. 또한 1978년에는 로버트 케네디(RFK)스타디움에서 전세계의 뜨거운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키시며 수만 쌍의 축복결혼식이 개최되기도 했습니다.
세계적 차원의 승공운동 전개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문선명 총재님께서는 공산주의의 세계적 확산을 가장 염려하셨습니다. 총재님은 일생동안 공산주의를 철저히 반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부정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인간의 존재 가치를 물질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총재님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공산주의의 팽창을 누구나 걱정하고 반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80년대 공산주의는 전세계 땅 덩어리의 3분의 2, 인구의 3분의 2를 잠식했습니다.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에는 핵무기가 5,678기가 있었지만 미국은 소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런 세계적 상황을 총재님은 대단히 걱정하셨습니다. 전세계를 적화하려는 소련의 야욕과 팽창주의, 군사력 확대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미국을 강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강한 미국을 만들기 위해 총재님께서는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 레이건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영화배우 출신이긴 하지만 미국을 강력하게 이끌어 세계 공산주의를 제압하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워싱턴타임스를 전면에 내세워 레이건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도록 하셨습니다. 워싱턴타임스는 레이건이 압도적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미리 예언하는 보도를 하면서 운세를 몰았습니다. 투표도 하기 전에 이런 기사가 나가자 사람들은 기왕이면 이길 사람을 찍어주자고 하여 91%나 되는 선거인단 수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레이건은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그 후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의 공산주의 팽창정책에 맞서는 SDI, 즉 우주 방위 전략을 구축할 것을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의회를 움직여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워싱턴타임스는 또 전면에 나서서 여론을 조성하여 결국 강한 미국 체제를 갖추게 하였습니다.
총재님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입니다. 도미(渡美) 전 1968년 한국에서 국제승공연합을 창설하시고 수백만 명을 교육했습니다. 미국에서 이와 같은 조직으로 ‘CAUSA International’을 만드셔서 남․북미 지도자들을 끊임없이 교육하셨습니다. 총재님은 “공산주의는 안 된다. 1917년에 출발한 공산주의는 70년을 넘기지 못한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반드시 망한다.”고 예언하시며 1985년 8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세계평화교수협의회 국제회의에서 몰튼 카플란 교수로 하여금 ‘공산주의 종언, 공산주의의 붕괴’를 선포하도록 하셨습니다. 결국 카플란 교수는 그 놀랍고 엄청난 예언적 문 총재님의 메시지를 그곳에서 선포하였습니다.
그 이후 폴란드가 무너지고, 동독이 무너지고 드디어 1991년 12월 25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소련 연방의 해체를 발표하면서 공산주의는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이 역사적 사건의 배후의 가장 강력한 주역이 바로 문선명 총재님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냉전 종식의 세계적인 지도자였던 로널드 레이건 미국 전 대통령은 “여러분(워싱턴타임스)은 저와 같이 20세기의 제일 중요한 10년(1980~1990)을 워싱턴에서 보냈습니다. 우리가 같이 소매를 걷어 붙이고 일하다 보니 냉전을 종식시켰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20세기 가장 위대한 여성 지도자요 ‘철의 여인’이라 일컬어졌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은 “워싱턴타임스 창시자 문선명 박사께서 이 신문을 창설했을 때도 쉽지 않았고, 지금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워싱턴타임스가 살아있고 번영하는 한 보수주의적 견해가 흐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두 정상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세계적인 냉전 종식과 평화세계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문 총재님께서 얼마나 크나큰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순결한 사랑과 참가정 운동 전개
문 총재님은 199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순결과 참가정운동을 확대하셨습니다. 총재님이 지향하시는 순결한 사랑, 행복한 가정은 건강한 사회의 기초요 평화세계의 통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가정운동은 본연의 인간성 회복이요 잃어버린 사랑의 질서 회복 운동이며, 평화세계 구현을 위한 초종교․초인종․초국가적 기반을 만드는 운동입니다.
현재 미국은 매년 7월 네 번째 일요일을 ‘부모의 날’로 제정하여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부모의 날’은 1993년 세계평화여성연합 한학자 총재님께서 미국 국회에서 상․하원 의원들에게 가정의 가치에 대해 강연을 하신 날을 기념하여 제정되었습니다. 한학자 총재님의 강연을 들은 의원들이 그날의 감동을 모아 성명서를 발표하고 200여명의 상․하 의원들이 서명을 해서 7월 네 번째 주일을 ‘부모의 날’로 정하게 된 것입니다.
‘부모의 날’이 되면 미국은 50개주 전역에서 그해 가장 훌륭한 부모를 선정합니다. 각 주를 대표해 뽑힌 50커플의 부모가 워싱턴 국회에 모여 기념행사를 하고, 그 지역의 상․하 의원들이 메달과 상품을 증정합니다. 국회의장은 물론 대통령까지 만나는 일정이 매년 열리고 있으며 가정의 가치를 중심으로 NGO 활동가들과 국회에서 연대 세미나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참가정운동을 확대하시는 이 기간에 총재님은 축복결혼식에 더욱 박차를 가하셨습니다. 서울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은 총재님이 축복결혼식을 거행하시는 단골 장소였습니다. 이곳은 최대 10만 명이 수용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여기에서 전세계 수십, 수백만 쌍이 축복결혼으로 참된 가정 이상을 출발하였습니다. 이처럼 축복결혼에 주력하신 이유는 세계평화라는 큰 그림도 결국 하나의 참된 가정을 기초로 해서 실현될 수 있다는 핵심을 간파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공산국가인 소련․북한을 참사랑으로
더불어 총재님께서는 1990년대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의 사상적 대안을 제시하셨습니다. 1990년 문 총재님은 세계 언론인 대표와 전․현직 정상 50여 명을 대동하고 모스크바에 도착하셨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만나신 총재님은 상상할 수 없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첫째, 소비에트연방 체제를 해체하라. 둘째, 핵개발을 중심으로 한 세계 적화전략을 포기하라. 셋째, 공산주의의 상징인 레닌 동상을 철거하라.” 정말 획기적이고 충격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더 나아가 총재님은 “소련의 미래를 짊어질 3,000명의 젊은 인재들을 미국으로 보내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공산주의 종주국의 대통령에게 한 민간지도자이자 종교지도자가 이런 제안을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시대의 흐름을 읽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결단을 했습니다. 자기 당대에 개혁과 개방을 주장하면서 공산주의의 종언을 선포, 실천했던 것입니다. 소련 연방을 해체했으며 3,000명 청년들의 미국 교육도 실시했습니다. 총재님은 미국에 온 소련 학생들에게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중요성 등을 철저히 교육해서 돌려보냈습니다.
개혁과 개방은 항상 보수주의의 반대를 받게 됩니다. 소련 내부에서도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그리고 KGB 국장이 합세하여 혁명을 주도한 것입니다. 이들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감금시키고 군대를 동원하고 탱크를 앞세웠습니다. 삽시간에 공산주의로 회귀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반란을 막아낸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미국에서 교육 받은 3,000명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주축이 되어 탱크 앞에 목숨을 걸고 누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이 반란을 3일 천하로 막을 내리게 했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목숨도 살린 것입니다.
옐친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권좌에서 평화롭게 물러난 고르바초프는 나중에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한국에 도착하자 그는 곧바로 총재님이 당시 계셨던 한남동으로 왔습니다. 정말 기막힌 역사의 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련 해체 이듬해인 1991년 문 총재님은 북한으로 향하셨습니다. 총재님에게 북한은 5년형을 내린 후 죽음의 수용소인 흥남감옥에 수감시켰던 원수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총재님은 조금의 적개심도 없이 가을하늘 같은 맑은 마음으로 평양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리고 소련에서와 마찬가지로 목숨을 걸고 그들을 살리기 위한 천도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총재님은 만수대 의사당에서 고위층 지도자들에게 2시간 동안 하나님 주의를 설파하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김 주석을 만나 “한반도의 비핵화 문제, 남북정상회담 개최 건의, 이산가족 상봉 등 주요 이슈들을 논의, 합의문을 나누었습니다. 나아가 남․북간 학술교류, 경협사업, 북한돕기운동, 평화자동차 설립 등이 진행되었습니다. 양측 최고책임자의 합의에 따라 평화자동차 공장은 남포에 있는 30만평의 부지에 세워졌고 또 평양에는 보통강호텔, 나아가 세계평화센터가 건립되었습니다.
초종교․초인종․초국가적 평화운동
2000년대 들어서면서 총재님은 “초인종 초종교 초국가의 이념이 중요하다. 국경과 종교, 문화를 뛰어 넘어서 인류가 하나의 길을 가야 한다.”고 갈파하시며 본격적인 평화운동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세계에는 크고 작은 90여 곳이 분쟁 중에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화약고는 중동의 종교적 갈등과 남북한의 사상적 갈등입니다. 문 총재님은 이 두 화약고를 해결하고 평화롭게 하지 않는다면 평화세계는 요원하다고 하시면서 미국에 지휘 본부를 두시고 이 두 곳을 위해 직접 선두에 서셔서 진화 작업을 지금까지 해 나오셨습니다.
그 가운데 저는 총재님의 지시를 받아서 중동문제에 많이 관여를 했습니다. 사실 21세기가 개막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평화의 새 천년이 시작되길 바랬습니다. 그러나 2001년은 평화와 화해로 출발하는 한 해가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갈등과 분열, 분쟁의 결정적 세기가 다시 열리고 말았습니다. 그 상징적 사건이 9․11사태였습니다. 저는 9월 11일 처참히 붕괴된 세계무역센터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당시 열흘 후 메디슨스퀘어가든에서 개최될 12,000쌍 성직자 부부의 축복식을 위해 아침 9시 50분 여러 종교지도자들과 함께 종교회의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요란한 경적이 울리고 밖이 굉장히 소란스러웠습니다. TV를 켜 보니 긴급속보로 무역센터 빌딩 하나가 무너진 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CNN이 붕괴 현장을 카메라로 잡고 있는데 또 다른 여객기가 나머지 무역센터 빌딩으로 그대로 돌진하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하와이 진주만을 일본이 침략한 경우는 있었지만, 미국 본토를 공격한 것은 세계무역센터 사건이 처음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비행기 4대를 4개 조의 이슬람 극열주의자들이 납치를 하여 2대는 경제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 1대는 정치의 상징인 백악관, 1대는 군사력의 상징인 국방성 펜타곤을 공격하려 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백악관을 공략했던 비행기는 펜실베이니아로 갔고, 펜타곤은 한쪽만 공격을 당했습니다. 배후가 이슬람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의 상징인 미국을 공격한 것은 곧바로 종교적 충돌, 문명의 충돌이 벌어진 것을 의미했습니다.
당시 문 총재님은 알라스카 코디악에 계셨습니다. 동부지역과 5시간 차이가 나는 그곳은 새벽 훈독회를 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저는 총재님의 보좌관에게 연락하여 TV를 켜서 총재님께 알리도록 하였습니다.
소식을 들은 총재님은 사흘 동안 거의 식음을 전폐하시다시피 하시면서 기도실에서 깊은 정성을 들이셨습니다. 사흘 후에 메시지를 전해오셨습니다. “미국이 지금 십자가에 달렸다. 그러니 대통령부터 미국 조야의 모든 국민이 다 회개하고, 기도해야 한다. 만약 9․11이 그대로 3차 대전으로 이어지면 세계는 끝장이다.”
총재님께서는 이 싸움을 반드시 진화시켜야 한다고 하시며 열흘 후 미국의 모든 주요 종단지도자들을 맨해튼에 모으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중동 평화운동의 단초를 마련하는 중요한 모임이 되었습니다.
어디서 어떤 형태의 테러가 발생할지 모르는 불안감을 뒤로하고 맨해튼센터에서 열린 이날 모임에는 미국 각계 조야 대표들 2,0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주지사, 이슬람 대표, 기독교 대표, 불교 대표 등 각 종단 지도자들이 모여 조찬기도회, 회개기도회 등을 열었습니다. 행사가 성공리에 마무리되자 부시 대통령도 우리에게 감사의 글을 보내왔습니다.
그 후 문 총재님 미국 50개주 전역에서 순회강연회를 전개하셨습니다. 초종교 초인종적 평화세계 창건을 위한 한 획을 그으신 것입니다. 이러한 기반 위에 한학자 총재님께서 일본 5대 도시를 순회하시며 말씀을 전하실 때는 부시 전 대통령 내외가 동행하였습니다. 이것은 정말 간단한 사건이 아닙니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 내외가 한 종단의 지도자를 모시는 입장에서 동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 분의 가치와 이념, 철학에 동의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때 언론에서는 부시 전 대통령을 향해 비판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부시 전 대통령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는 문 총재님이 하시는 참가정의 가치를 중심으로 한 평화세계 실현에 절대 동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행사에 간다.”고 분명히 밝혔던 것입니다.
중동평화 운동
기억하시는 바와 같이 지난 2003년 3월 17일은 이라크 전쟁이 벌어진 날입니다. 전쟁이 일어난 것에 대단히 염려하시며 “이라크 전쟁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면 세계대전이 돼 버린다. 이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총재님은 “이라크와 미국의 갈등의 진원지는 예루살렘이다. 가서 중동의 모든 주요 지도자들을 미국으로 데려오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총재님이 예루살렘을 말씀하실 때 처음에는 그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중동의 상황은 아주 심각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수상과 팔레스타인 대통령이 철천지원수가 되어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형언하기 힘든 여러 난관을 헤치고 이들을 워싱턴으로 초청하여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중심으로 화해를 시키는 역사적 장면을 만들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스라엘에 대해 잠시 말씀드리면 유대인들은 예수님 사후 전세계로 흩어지게 되었다가 1948년 유엔과 영국의 도움으로 다시 이스라엘을 건국하였습니다. 초기에는 50만 명이 모였다가 아프리카, 소비에트, 미국 등 전세계에서 모여들어 지금은 700만 명이 살고 있는데 수백 개의 핵폭탄을 보유한 세계 4대 군사강국으로 급부상했으며 1억 5천만 명의 아랍세계를 완전히 제압하고 있습니다.
본래 이 지역에는 30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지역에 담을 쌓아 분리시켜 버렸습니다. 이 담은 두꺼운 콘크리트 장벽으로써 길이가 850km입니다. 서울과 부산 간 거리가 400km이고, 이스라엘은 남한의 4분의 1 크기밖에 되지 않은 아주 작은 나라인데 그곳에 850km의 담을 쳐 놓은 것입니다. 담을 쌓는 바람에 여권이 없이는 왕래도 불가능합니다.
교회가 갈라지고 학교가 갈라지고 이웃이 갈라지는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입장에서 보면 보안장벽입니다만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분리장벽입니다. 이 치열한 공방이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기 몸에 폭탄을 매고 폭력을 행사하고, 이스라엘은 율법에 나온 대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써 5배 이상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양측이 지난 10여년 동안 1만명 가까이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입니다. 수천명이 이스라엘의 정치 감옥에 수용돼 있습니다.
문 총재님은 이 상황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하시면서 전세계 각계 지도자 3,000명을 이스라엘로 데려오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내 황금성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 드리려 했던 모리아산이 있던 곳입니다. 이 장소는 이슬람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출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성 주변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완전히 에워싸고 있고, 황금성 안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는 종교가 이슬람인지, 타 종교인지를 다시 확인합니다. 타 종교일 경우 폭탄 테러를 할까봐 금속탐지기 등으로 철두철미한 보안검색을 합니다. 이 삼엄한 장소에 우리가 3,000명의 평화지도자를 데리고 들어갔다는 것은 참으로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성지를 놓고 양측이 엄청난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쪽에서는 오늘날 자신들의 억울한 사정을 이해하고,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은 문 총재님밖에 없다면서 우리 통일그룹에 대해서 아주 우호적인 입장입니다. 가정연합이나 UPF에서 왔다고 하면 이 황금성은 언제든지 개방됩니다. 그래서 황금성 안에 3,000명이 일시에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통곡의 벽 앞에서는 초인종․초종교․초국가적 차원에서 2만 명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하나의 길을 가야 한다!”라고 외치며 평화 행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문 총재님은 유대교․기독교․이슬람 지도자들을 미국으로 부르셔서 서로 포옹하게 하시고 하나가 되게 하시는 행사도 자주 주관하셨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지도자와 이슬람 지도자는 원수지간이기 때문에 절대 한 자리에서 만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한 자리에 부르시고 서로 포옹하도록 유도하셔서 정말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을 만드시기도 하였습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미국에서 본격적인 종교일치, 화해운동을 전개하면서 백악관 대표들과 함께 중동으로 100여 차례 넘는 순회를 하며 평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많은 대회와 행사를 했습니다. 당시 저는 한 달에 두세 번씩 중동에 가는 강행군을 펼쳤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총재님의 지시로 예루살렘에서 예수님 왕권 즉위식을 거행했던 것입니다. 총재님께서는 “인류의 구세주․메시아․평화의 왕으로 오셨던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기 때문에 역사에서 예수님을 빼면 의미가 없다. 그런데 단 한 번도 그런 대접을 못 받고 가셨다. 지금이라도 그분을 평화의 왕으로 모셔야 한다.”고 하시며 왕권즉위식을 개최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왕관과 용포를 봉정하면서 예수님을 인류의 구세주․메시아․평화의 왕으로 추대하는 행사를 그곳에서 성대히 거행하였습니다. 이렇듯 문 총재님의 활동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에서 평화를 주제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고 두 나라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평화대사관이 세워졌습니다.
문 총재님께서는 이와 같은 세계적인 활동들을 그냥 전개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론과 근본 체제를 수많은 진리의 말씀을 통해 세워오셨습니다. 500페이지 가까운 총재님의 말씀집만 해도 700권 이상 출간되었습니다. 남기신 말씀이 너무도 방대하여 지금도 녹취 중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들을 근본으로 한 주제별 정선이 전세계적으로 3,000종에 이르고 있습니다. 문 총재님의 이 위대한 진리의 말씀은 실적과 더불어 영원히 청사에 빛나게 될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총재님의 섭리적 행보는 1951년 부산 피난시절 포장박스를 모아 얼기설기 지은 초라한 토담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총재님께서는 이곳에서 인류를 구원할 『원리원본』이라는 진리의 초석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이후 1954년 서울에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립하실 때에도 ‘세대문 집’이라 불리는 8자 방 2개에 불과한 작은 집에서 공식적인 섭리의 출발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불과 60여 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지나 오늘날 서울 용산에 천복궁교회가, 청평에는 섭리를 지휘하시는 천정궁이 장엄히 세워져 있으니 이 어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은 메시아․구세주․재림주․참부모
문선명 총재님께서는 사리사욕이 없이 오직 천의(天意)를 따라 위하여 사는 참사랑의 숭고한 삶을 인류를 위해 사셨습니다. 그 위대하신 어른이 지난 2012년 9월 3일, 음력으로 7월 17일, 하늘나라로 홀연히 떠나셨습니다.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문 총재님은 본질적으로 종교지도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분은 정치인도 사업가도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평화세계를 이루기 위해서 메시아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많은 기독 성도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신다면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지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내버려 두고 오로지 천국 가는 길만 안내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땅 위의 문제, 땅의 갈등을 해결하자고 하실 것입니다.
일부 기독교 종파처럼 자기만의 예수님이 절대로 아닙니다. 석가, 공자, 마호메트 그 성인들과 함께 어우러져 평화의 세계를 이루고자 노력하실 분이 다시 오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인류의 메시아․구세주․참부모․참스승으로 오신 문선명 총재님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섭리적 뜻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셨습니다. 하나님 해방과 인류구원 그리고 영원한 평화세계 실현이라는 위대한 지표를 이루시고 성화하셨습니다. 이제 그 업적이 지구성 끝까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총재님의 깊은 뜻을 우리 모두가 헤아리기를 바라고 여러분 모두가 동참하기를 고대하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