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스타이그'는 무척 재밌는 사람입니다. 늦은 나이에 그림을 그려서 좋은 어린이책을 끊임없이 그려낸 사람입니다. 윌리엄 스타이그가 그리는 그림을 보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그리는 그림인데도 그림에서 살가움과 따스함을 짙게 느낄 수 있습니다. 미국사람들 가운데에는 부시처럼 전쟁에 미친 사람도 있지만 윌리엄 스타이그처럼 평화를 애틋하게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힘 여린 이들을 돌보고 보살피는 마음을 지닌 사람도 있음을 그림책 <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을 보며 느낍니다.
<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은 미국에서 1982년에 처음 나왔고 우리 나라에는 1994년에 옮겨져 나왔습니다(1994년에 `다산기획'에서 옮겨서 펴낸 뒤 1995년에 `비룡소'에서 다시 옮겨서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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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스타이그가 그리는 그림책에 나오는 주인공은 보통 `힘 여린 이'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힘 여린 이'이지만 않아요. `힘 센 이'도 자주 나오는데, 힘 센 이로서 어딘가에 생명이나 이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깃들거나 잠들어 있습니다. 개구쟁이 마음이 있거나 따뜻하게 서로를 헤아리는 마음가짐을 지니기도 하고요. <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은 <생쥐와 고래>라는 그림책과 마찬가지로 `생쥐'가 주인공입니다.
<생쥐와 고래>에 나오는 `생쥐'는 `들쥐'였다면 <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에 나오는 `생쥐'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엿한 `의사선생님 쥐'입니다.
때는 언제인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도심지 한복판에서 치과 의사 일을 하는 드소토 선생님이 나옵니다. 드소토 선생님은 몸집이 작으면서도 몸집 큰 다른 짐승들 아픈 이를 잘 고쳐 준답니다. 자기 몸집과 비슷한 두더쥐나 얼룩다람쥐 들은 치과 의자에 앉혀서 고치고, 몸집 큰 짐승은 바닥에 앉힌 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고칩니다. 몸집이 아주 큰 짐승은 따로 마련된 특별한 방에 가서 도르래를 타고 올라가서 고치고요.
드소토 선생님은 몸집 큰 짐승들에게 남달리 인기가 있었다는군요. 손놀림이 아주 조심스럽고 부드러워서 큰 짐승들은 이를 고치는 동안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고 해요.
.. 선생님은 쥐이기 때문에, 쥐에게 위험한 동물은 치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말은 간판에도 써 있었지요. 그래서 현관의 종이 울리면,
선생님과 부인은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아무리 겁 많아
보이는 고양이라도 병원 문을 열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고양이 썩은이를 고쳐 주면, 이를 고쳐 주는 바로 그때 덥석 드소토 선생님과 아내를 잡아먹으려 할 테니 고쳐 주려 하겠어요? 아예 처음부터 상대를 않겠죠. 그런데! 그런데, 어느 날 일이 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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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여우 한 마리가 단추를 누르고 치과 앞에서 슬픈 얼굴로 서 있더랍니다. 드소토 선생님은 `간판 좀 보라'고, `당신은 고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여우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큰길가에서 엉엉 울면서 `제발 도와 달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드소토 선생님과 사모님은 걱정에 잠깁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자기들을 잡아먹을지 모르는 여우를 고쳐 주어야 할까요? 아니면 차갑지만, 자기들 목숨을 지키고자 돌려보내야 할까요? 드소토 선생님이 살아가는 그 도심지에는 다른 치과도 반드시 어딘가에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여우는 드소토 선생님 치과 앞에서 계속 애원을 했고, 드소토 선생님은 아내와 깊이 이야기 나눈 끝에 여우 썩은이를 고쳐 주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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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고 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니 보따리 내놓으라고도 한다지요. 옛말은 틀리지 않기에 그만큼 단속을 하고 깊이 생각을 하며, 무겁게 행동으로 옮깁니다. 하지만 우리들 사람은 인정에 끌리고 마음이 여려서 `마음 나쁜 사람'이 속으로 품는 꿍꿍이 속셈이 곧잘 넘어가 버려요. `마음 나쁜' 게 죄는 아니라고 여기며 불쌍히 여겨서 도와 주려 하잖아요. 하지만 이렇게 도와 주고 나면 뒷통수를 맞는 일이 많으니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드소토 선생님과 사모님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에요. 여우는 이를 고치는 동안 잠들면서 잠꼬대로 이런 말을 했거든요.
.. "음, 음 음냐 음냐...... 날로 먹으면 정말 맛있을 거야. 소금을
솔솔 뿌리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채로 포도주랑 꿀꺽하면......" ..
여우는 이를 고치고 돌아가는 길에 "내일 치료가 끝나고, 의사 선생님을 잡아먹으면 나쁜 일일까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참말로 말이죠, 위험한 여우입니다. 드소토 선생님과 사모님도 이 일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썩은이는 뽑았고 새 이를 넣어야 하는데, 지금 여우의 속생각을 다 알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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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여우에게 새 이를 심어 주는 날입니다. 밤새 잠 못 이루며 꾀를 생각한 두 생쥐는 여우에게 새 이를 심은 뒤 약을 한 가지 더 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죽을 때까지 이가 안 아프게 하는 약"이 있다며, 그 약을 바르지 않겠냐고 물은 거예요. 그때 여우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어요.
.. "난 이 생쥐들을 잡아먹어서는 안 돼. 하지만 어떻게 참을 수 있겠어?" ..
드소토 선생님은 약을 바르며 "다시는 우리를 만날 필요가 없을 거예요" 하고 말합니다. 여우도 속으로 "아무도 너희들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걸"이라고 생각하고요. 참말, 끔찍한 여우지요? 고마운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하지만 여우는 드소토 선생님을 잡아먹지 못했습니다. 드소토 선생님은 싱긋 웃으며 여우 환자를 돌려보냈고, 여우는 멋쩍은 채 어기적어기적 집으로 돌아갔고요. 어떻게 해서 그리 되었을까요? 궁금하지요? 드소토 선생님은 멋진 꾀를 써서 여우에게 `고마움을 배신으로 갚지 말라'는 깨우침을 줍니다. 드소토 선생님이 어떤 꾀를 썼는지 궁금하신 분은 그림책 <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을 펼쳐보세요. 빙그레 웃을 만한 꾀를 잘 써서 서로에게 좋게좋게 일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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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아쉬울 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은인으로 여기며 도와 달라고 하다가, 아쉬움이 가시면 세상에 둘도 없을 무서운 적이 되어 힘 여린 이를 괴롭히는 이들을 말입니다.
어려울 때는 돕고, 즐거울 때는 어깨동무를 하며 즐겁게 지내면 좋아요. 하지만 우리 세상의 적잖은 사람들은 자기들만 즐거웁길 바라고, 자기 아닌 사람들은 괴로움에 빠져도 모르쇠로 지내거나 남의 일로만 여깁니다. 전쟁을 밥먹듯 저지르고 살육과 학살과 탄압을 식은 죽 먹기로 일으켜요. 전쟁무기 만들 돈으로 가난하고 힘 여린 나라를 도우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라크 재건에 엄청난 돈이 든다지요? 처음부터 이라크를 무기로 다스리지 않고 평화롭게 이라크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힘겨운 나라를 도왔다면,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안에서도 힘들어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면, 그러면서 애꿎은 우리 나라나 북녘을 괴롭히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림책 <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평화롭게 살아가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 즐거움과 보람을 이야기합니다. 고마움을 받으면 고마움으로 되갚으며 살갑게 살아가자는 이야기도 하고요. 부시 같은 사람이 미국에 있으나 윌리엄 스타이그 같은 사람도 미국에 있다는 게 참 놀라우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