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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 2014년6월1일 일요일
[10:05]백령고개 - [10:06]육백고지
전승탑 - [10:08~10:11]백령성지 - [10:13] 헬기장 - [10:16]차단기 있는 임도 - [10:39] 서암산 갈림길 - [10:55]독수리봉 - [11:03]헬기장 - [11:08]백암산정상(육백고지정상) - [11:23]헬기장 - [11:24]안부 사거리(질재) - [11:51]안부사거리(남이의용소방대표지판 5번) - [12:08]바위전망대
- [12:19] 713.5m봉(선야봉 갈림봉) / 중식 - [12:40] 중식 후 출발 - [12:59]성치지맥 분기봉(760m) – [13:05]게목재
- [13:14]신선봉(790m) - [13:31]암봉(바위전망대) - [13:58]안부 – [14:12]산죽봉 – [14:44]786.6m봉 - [14:58]무릉리 갈림 안부 - [15:15]쉼터(벤치 2개) - [15:22]봉수대 갈림길 - [15:28~15:30] 태평봉수대 - [15:38]봉수대 갈림길 - [15:52]작은 싸리재 - [16:36]중리 마을 중리1교
백령고개 : 잣고개 또는 육백령이라고도 불리는 이 고개에는 육백고지 전승탑과 백령성이 있으며 금산군 남이면과 진산면을 잇는 635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개에는 ‘백령정’이란 정자가 있다.
백령성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와 건천리에 걸쳐 있는 백제시대의 성곽. 충청남도 기념물 제83호. 길이 4,000m로 기록되어 있을 뿐, 연혁 및 유래를 찾아보기 어렵다. 단지 김정호(金正浩)에 의해 1834년(순조 34) 간행된 ≪청구도 靑邱圖≫에는 ‘백자령(栢子嶺)’이라 하였다가 1861년(철종 12)에 간행된 ≪대동여지도 大東輿地圖≫에는 백자령 대신 ‘탄현(炭峴)’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백제말까지 신라의 영토였던 김천∼무주, 논산∼부여를 잇는 가장 가까운 길로서, 험한 고갯길에 축조한 산성이기 때문에 백제의 요충지(要衝地) 구실을 하였다. 660년(의자왕 20) 나당연합군이 침공하자, 충신 흥수(興首)가 백마강과 탄현을 지킬 것을 의자왕에게 건의였으나 간신들에 의해 묵살되었고, 결국 그해 8월 사비성(泗沘城)으로 향하던 신라군에 의해 함락된 곳이 이곳 탄현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산성으로 1990년 5월 24일 충청남도기념물 제83호로 지정되었다. 백제시대에 견훤이 남이면 대양리(大陽里)에 경양현을 설치하고 금산의 서남방면을 방어하기 위해 수축한 성으로, 6·25전쟁 때의 전적지인 백암산(白巖山)의 육백고지 전승탑 뒷산에 있다. 축조 당시에는 4km에 달하는 테뫼식 석축산성이었으나 현재는 서벽·남벽·동남벽 등 400m만이 남아 있다. 일부가 남은 백령성 안쪽은 넓은 산판길 같은 평지가 있으며 성 안에는 백령성지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6·25전쟁 때는 공비들이 전라북도 운주(雲洲), 충남 논산(論山)으로 왕래한 길목으로서 지금도 초소의 흔적이 있다. 백령성에서 능선을 타고 1km쯤 올라가면 산봉우리에 봉화대가 있어 진악산의 관양불봉 봉수대와 서로 교신했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금산 백령성 [錦山栢嶺城] (두산백과)-
백령성은 남이면 건천리와 역평리 성치산(해발 759m) 동쪽에의 정상부에 있는 석성으로, 금산군 제원면과 추부면을 지나 충북 영동과 옥천으로 연결되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는 산 정상 부분을 둘러 쌓은 두른 테뫼식이며, 성의 둘레는 207m이다. 성벽의 동쪽, 남쪽, 북쪽은 대부분 허물어졌으나 서벽은 비교적 잘 남아있다. 성벽의 너비는 4m이다. 유물로는 백제시대 각종 명문와를 포함한 다량의 기와편과 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출처; 문화재 정보-
백령성은 남이면 건천리와 역평리 선치산(仙治山)의 동쪽에 있으며, 둘레가 약 200m에 이르는 백제의 테뫼식 산성(山城)이다. 이곳은 금산군 제원면과 추부면을 통하여 영동/옥천에 이르는 전략상 요충지이다. 김정호(金正浩)의 『청구도(靑丘圖)』에는 백자령(栢子嶺)으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탄현(炭峴)으로 나와있다. 금산군의 외곽성(外廓城)으로 알려져 있으며 서쪽을 제외한 동, 남, 북쪽은 거의 허물어졌다. 서쪽 벽의 남은 상태를 보면 바깥쪽 벽의 높이는 5.8m~6.9m 이고 안쪽 벽은 2.3m~3m이며, 성벽의 너비는 4m에 이른다. 성내에서는 백제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이 발견되며 산봉우리에는 봉수대(烽燧臺)가 있어 진악산(進樂山)의 관앙불봉(觀仰佛峰)의 봉수와 서로 교신하였다. 특히 견훤(甄萱)이 완산(完山)에 도읍을 정하고 도읍 방어를 위해 이 산성의 아래에 있는 남이면 대양리에 경양현(景陽縣)을 설치하고 백령성을 다시 고쳐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 관련 홈페이지 ; 금산 문화관광 http://tour.geumsan.go.kr / 문화재청 http://www.cha.go.kr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금산 백령성 (대한민국 구석구석, 2013.6, 한국관광공사)-
백암산(白岩山`650m)
: 충남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 대양리와 남이 자연휴양림이 있는 건천리 사이에 위치한 산이다. 백암산 정상 남동쪽 방면은 수십 길 바위벼랑이다. 그 아래 마을에서
올려다보면 바위벼랑에 햇살이 비치면 하얗게 보인다고 해서 ‘흰바위산’으로도 불린다. 백암산은 서쪽에
솟은 서암산과 함께 이름이 말해주듯 바위봉우리로 매의 형상을 하고 있다. 산줄기는 한국전쟁 당시 전략적
요충지로서 산속으로 숨어든 빨치산과 이들을 격퇴하려는 군경 토벌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치러진 곳이다. 이
산에서 양측 모두 수많은 이들의 고귀한 생명이 피를 흘리며 스러졌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에 있으며 높이는 650m로, 6·25전쟁 때 치열한 싸움이 있었던 600고지로 유명한 산이다.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에 있고, 대둔산에서 운장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속해 있다. 이런 지형적 여건으로 빨치산이 이곳을 중요 요새로 삼았고, 군경 합동 작전의 토벌 과정에서 양편 모두 2,500명 이상의 군인이 희생되었다. 이 전적을 기념하기 위해 산 아래에 육백고지전승탑과 충혼비가 세워졌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백암산 [白岩山] (두산백과)-
질재(백암마을재) : 금산군 남이면 대양리 백암마을에서 남이면 건천리 큰골을 잇는 고개로 백암마을 방향은 길이 뚜렷하다.
성치지맥 : 백암산 신선봉을 조금
지나 동쪽으로 분기하여 선봉(697m),성치산(670.4m). 덕기봉, 소사봉을 끝으로 금강의 지류인 봉황천(금산군 제원면)으로 가는 44.6km의 산줄기이다.
성재봉 태평봉수대[太平烽燧臺] :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31-2에 있으며, 전라북도 기념물 제36호이다.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무릉리와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 접경지역인
진등마을에서 북서쪽으로 직선거리 1,200m 정도 떨어진 성재 봉우리(해발 830m)에 위치하고 있다. 이 봉수대는 백제 때에 처음 축조되었다고
전하며, 조선 중기 1595년(선조 28)에 태평산성과 전주감영에 신호를 보내기 위하여 세웠다고
한다. 산봉우리에서 남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룬 자연 암반 위에 잡석으로 축조하여 남쪽이 북쪽보다 약 1m 정도 높게 쌓았으며 전체 높이는 4∼5m, 둘레는 32m 정도이다. 형태는
대체로 네모꼴에 해당하나 가장 윗부분의 한 변 길이가 동 9m 서
9.9m, 남 6.8m, 북 6.4m 정도로서
일정하지는 않다. 이 봉수대는 동남쪽의 장수군 장안산(長安山) 방면에서 승계하여 북서쪽의 완주군 탄현성(炭峴城)을 연결하는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는데, 봉수대가 자리하고 있는 이
성재는 삼국시대에 동쪽으로 진안군 용담면 성남리 산성이나 북쪽으로 탄현성(일명:쑥고개)과 연결되어 수도 방어의 요충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남쪽과 서쪽 벽이 훼손된 상태였으나 1995년에 거의 원형대로 보수되었으며
동쪽편의 돌계단도 보수 당시 만들었다. 그러나 석축 이외에는 봉화를 올리기 위한 어떤 시설물도 남아있지
않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태평봉수대 [太平烽燧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은 싸리재 :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와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중리마을을 잇는 고개로 완주와 진안의 5일 장을 보러 많은 보부상들이 넘나들던 길이다.
[10:02] : 백령고개에 도착하여 출발 준비를 한다.
[10:05] : 출발하여 육백고지 전승탑 입구 계단을 오른다. 육백고지 전승탑 앞에는
충혼비와 육백고지참전공적비가 양쪽으로 세워져 있다. 그 사이를 지나 전승탑 뒤 좌측 오름길을 오르면
[10:08] : 백령성지 석비가 소나무 앞에 세워져 있고, 조금 더 오르면 기념물 제83호인 금산백령성 석비를 만난다. 그리고 그 뒤로 석축이 허물어진
봉우리(405m)에 닿는다. 넓은 공터 같은 봉우리 한쪽에
백령산성 목관시설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후삼국시대 때 견훤이 궁예의 남하를 막기 위해 쌓았다 하는
성이 백령성이고, 6.25 직후 공비토벌을 위해 육백고지 기슭에서 장렬히 전사한 이들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탑이 전승탑이다.
[10:13] : 헬기장을 지나 내림길을 내려가면
[10:16] : 차단기가 있는 시멘트 도로에 닿고 건너편 능선으로 이어지는 통나무 계단길을 올라
[10:22] : T자형태의 내림길 능선에 접속하여 우측으로 오르는 도중에
[10:30] : 전망이 트이는 바위를 지나
[10:39] : 서암산 갈림봉(610m)에 도착하니 남이의용소방대에서 설치한 2번 안내판이 있다. 잠시 내려서고 완만한 마루금을 진행하다가
[10:41] : 내림길을 내려가고 오르는데 선야봉 줄기와 천등산이 조망되는 지점을 지나
[10:45] : 암봉인 무명봉에 닿는다. 이어지는 암릉길을 가는데 작은 싸리재 방향의
마루금이 조망된다. 암릉길을 진행하는데
[10:49] : 독수리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10:53] : 독수리봉에 올라 지나온 서암산 방향 마루금과 선야봉 줄기, 그리고 백암산
방향의 능선을 조망한다. 독수리봉에는 쌓여가고 있는 돌탑과 소나무 한 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다.
[11:00] : 내림길을 내려 갔다 오르니 봉우리 주변을 석축으로 돋군 흔적이 보이는데 도착해보니
[11:03] : 헬기장이다. 헬기장을 지나 오르니
[11:08] : 백암산(654m)으로 남이의용소방대에서 설치한 3번 안내판이 땅바닥에 누워있다. 나뭇가지에는 백암산을 알리는 팻말들이
걸려있다.
[11:12] : 백암산을 내려갔다가 오른
[11:15] :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다가
[11:18] : 암릉지대에서 우측으로 내려가서 닿은 곳이
[11:23] : 헬기장이다. 이어지는 마루금은
[11:24] : 안부 사거리에 닿는데 이 곳이 질재이다. 남이의용소방대에서 설치한 4번 안내판이 백암가는 길 방향에 쓰러져 있다. 이어지는 오름길에
나뭇가지 사이로 백암산이 보인다.
[11:30] : 봉우리(560m)에 닿고 바로 내려갔다가 오르며 뒤돌아 보니 지나온 봉우리와
백암산이 조망된다. 곧 이어 도착한
[11:35] : 봉우리를 넘어 내려갔다 오른
[11:40] : 봉우리를 지나 또 다른 봉우리에서 내려 갔다가 오르는데
[11:44] : 암반지대를 지나 오르니
[11:45] : 봉우리에 닿고 바로 내림길이 이어지고, 다시 오른
[11:50] : 봉우리도 바로 내려 가고
[11:51] : 안부 사거리에 닿는데 남이의용소방대에서 설치한 5번 안내판이 서 있다.
[11:53] : 봉우리에 닿고 내려갔다가 오른
[12:04] : 봉우리는 좌측 사면으로 우회한다.
[12:08] : 좌측으로 전망바위가 보이는 지점에서 주변을 조망해보고
[12:13] : 산죽지대를 지나
[12:17] : 713.5m봉에 닿는다. 삼각점(금산459)이 있으며 이 지점에서 선야봉 능선으로 분기 된다. 나뭇가지에는
왕사봉이란 팻말이 붙어 있으나 왕사봉은 작은 싸리재와 큰 싸리재 사이에 있는 싸리봉(금만봉 분기봉)에서 분기되어 칠백이고지로 가는 능선 상에 있다.
[12:20] : 713.5m봉을 출발하여 내려가는데 내림길 옆으로 식사할 만한 자리가 있어
[12:22] : 점심식사를 한다.
[12:40] : 식사를 마치고 출발하여 내림길을 이어가다가 올라
[12:45] : 봉우리에 닿고 바로 내려서서 완만한 마루금을 진행하며 오른
[12:51] : 봉우리는 우측 사면으로 우회하여
[12:52] : 내려갔다가 올라
[12:59] : 봉우리에 도착하니 성치지맥 분기봉(760m)이다. 내림길을 내려서니
[13:05] : 게목재로 무릉원 안내판이 나무등걸에 달려있다. 오름길을 진행하여 도착한
봉우리가
[13:13] : 신선봉(선봉)(790m)이다. 산죽밭을 지나 내려갔다가 오른
[13:27] :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고 올라
[13:31] : 바위 한 개가 우뚝 서 있는 봉우리에 닿는다. 이어지는 오름길에 만나는
[13:34] : 봉우리는 좌측으로 우회하여 내림길이 이어지고
[13:36] : 암릉길을 진행하여
[13:41] : 봉우리를 좌측으로 우회하는데 암릉봉이다. 우측 절벽 방향의 바위에서 계곡
사이의 마을들이 조망된다.
[13:45] : 암릉길을 내려가서 오르는
[13:47] : 봉우리는 우측으로 우회하여 내려간다. 오름길에
[13:50] : 산죽지대를 지나 오른
[13:52] : 봉우리에서 암릉지대를 내려가
[13:58] : 안부에 닿는다. 이어지는 오름길은 완만한 둔덕을 넘어 계속 오르고
[14:01] : 바위지대를 좌측으로 우회하여 진행하다가 우측으로 우회하여
[14:04] : 봉우리에 닿는다. 이어지는 산죽지대를 지나
[14:10] : 봉우리(719.9m)에 닿는데 나뭇가지에 표지기들이 많이 달려있다. 산죽 지대를 내려섰다가 오르니
[14:12] : 산죽 지대 봉우리이다. 산죽지대를 내려서고 오른
[14:16] : 능선 형태인 봉우리는 바로 내려간다.
[14:19] : 다시 봉우리에 오르고 산죽지대를 지나
[14:22] : 산죽지대인 봉우리에 닿고 이어서
[14:23] : 커다란 암봉을 좌측 사면으로 진행하여
[14:25] : 봉우리에 닿고 내림길에 이어 산죽지대를 올라
[14:34] : 도착한 봉우리 우측으로 조망이 터진다. 피암목재로 오르는 도로와 운장산과
연석산의 산줄기가 조망된다.잠시 조망을 즐기고
[14:35] : 출발하여 진행하는데 암봉을 좌측 사면으로 우회하여
[14:38] : 봉우리(787.3m)에 오르니 암릉지대이다. 이어지는 등로는
[14:44] : 봉우리(786.6m)에 닿는데 표지기들이 많이 달려있다. 이어지는 내림길에
[14:52] : 삼거리 갈림길을 만나는데 정맥길을 좌측 내림길로 이어진다.
[14:56] : 나무들이 쓸어져 등로를 막고 있는 지대를 지나 도착한 안부가
[14:58] : 무릉리와 봉수대로 갈라지는 지점이다. 봉수대를 오르는 길은 통나무 계단길이
이어지다가 산죽지대를 지나 오르면
[15:15] : 벤치 2개가 있는 쉼터에 이르게 되고 이 지점에서 우측으로 시야가 터진다. 피암목재를 향해 오르는 도로가 구불구불 이어지고 건너편 운장산 산봉우리가 보인다. 계속해서 오르면
[15:20] : 봉우리에 닿고 산죽지대를 지나
[15:22] : 태평봉수대 갈림 능선에 닿는다. 태평봉수대는 좌측으로 오름길이 이어지고, 정맥길은 우측 내림길이다.
[15:28] : 성재봉(824m) 태평봉수대 석비와 안내문이 태평봉수대 석축 아래에 있고, 봉수대 오르는 길은 봉수대를 끼고 한바퀴 돌아야 한다. 봉수대 위에
오르면 시야가 사방으로 트인다.
[15:30] : 봉수대를 출발하여 다시
[15:38] : 갈림길에 도착하여 내림길을 이어간다. 다시 오른
[15:49] : 봉우리에서 작은 싸리재를 향한 내림길이 이어지고
[15:52] : 강우량 무인측정기 탑이 있는 작은 싸리재에 도착하여 좌측 임도 따라 중리(진등) 마을로 내려간다.
[16:36] : 중리1교 앞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