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그럼, 첫 번째 질문부터 드릴게요."
"네, 그러시죠."
"항간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우준성씨와의 열애설에 관련된 이야기인데요."
기자인 듯 보이는 사람과 마주앉은 테이블의 그녀. 우준성이란 이름에 슬쩍 미소를 띠며 이어지는 기자의 질문을 계속해서 들어주고 있다. 옅은 갈색 빛 웨이브진 긴 머리, 가녀린 팔과 다리, 어깨가 드러나는 탑 상의와 하이웨스트 청 팬츠. 조금 아찔해 보이는 킬 힐, 하얀 피부에 돋보이는 핫 핑크 빛 립스틱을 바른 입술. 많이 앳돼 보이는 그녀는 어설프게 성인인 채 해보이려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한쪽다리를 반대편 다리에 꼰 채, 불편하게 앉아있다.
"HeeRa. 예명이신가요?"
"아, 네. 원래 이름은 배수정이에요."
"좀 전에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하려고 하는데요, 그러니까 우준성씨랑 처음 만난 건 버라이어티 쇼에서 촬영차 만났다고요?!"
"네, 그렇죠."
같은 시각, 어느 작은 납골당 근처 식당 안. 해맑은 얼굴로 그저 이렇게라도 우연스럽게 마주쳤다는 현실이 운명이네, 어쩌네 하면서 신나있는 준성. 별님은 그런 준성의 태도가 싫지만은 않은 듯 피식 웃음을 내뱉고 만다.
"어, 웃었다! 웃었다! 누나도 아니라고 생각하진 않는 거다. 그쳐?"
"야, 적당히 해. 너 너무 오버가 심하다 얘."
"쳇, 두고 봐요. 내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거 누나도 곧 알게 될 거에요."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근데... 가수 아닌가?"
"어?! 절 아세요?"
"아, 우리 딸이 그 뭐라더라? 스..스..스삔가 뭔가, 거기 노래를 겁나 잘하는 놈이 하나 있다면서, 팬이거든 근데 그놈하고 닮은 거 같아서. 같이 온 사람은 누구? 여자친구?"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아직 여자 친구는 아니고, 작사가 누나에요."
"아, 그랴? 이쁘게 생겼네, 맛있게들 먹구 가."
테이블에 놓인 음식을 한번 눈으로 훑어주고, 식사를 시작하는 준성. 별님은 조금 매운 음식을 시켜서 인지, 말은 안하고 있는데 미간이 찌푸려지면서 애써 티내지 않으려고 혀를 살짝 날름거릴 뿐, 계속해서 밥을 퍼서 입안으로 꾹꾹 눌러 넣고 있다. 그 모습을 본 준성이 말없이 정수기 쪽으로 다가가서 물을 두잔 떠온다.
"아, 덥다. 마셔요."
"고마워."
"많이 매워요?"
"어? 아... 어, 좀 맵네."
"아! 근데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 누나 납골당엔 누구 보러 온 거에요?"
"납골당? 음.... 그러는 넌 누구 보러 왔는데?"
"할머니요. 우리 외할머니!"
"외할머니? 오늘이 기일이야?"
"아니요! 제가 이상형을 만났는데, 그 이상형이랑 잘되게 해달라고 부탁하러 왔어요."
너무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 같아 보이는 준성의 말에 피식 또 한 번 웃어버리는 별님. 준성은 별님이 납골당에 온 이유가 너무 알고 싶지만, 선뜻 대답하지 않는 별님에게 무슨 사연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더 이상 재차 묻고 확인하려고 하지 않는다.
"누나, 누나. 우리 영화 언제 보여줄 거예요?!"
"아, 맞다. 나야 시간 늘 괜찮지만, 니들이 많이 바쁘잖아."
"우리 한 며칠 안 바쁠 예정. 그럼 오늘! 그래, 오늘 만난 김에 영화 봐요."
"오늘?!!"
"왜요? 안 돼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다들 시간이 맞을까?"
"가만 있어 봐요. 여보세요? 야야, 우리 오늘 영화 볼래? 어? 어! 응, 같이 있어! 응, 알았어~"
"뭐래?"
"올 수 있는 애들만 추려서 만나기로 했어요. 우선 그전까지 우리 뭐 할래요 이제?"
"뭐? 너 이렇게 한가로이 놀아도 돼? 야, 내가 그거 가사 쓴 거 좀 특별한 거야. 제대로 안 부름 곡 주지 말라고 할 거야 오빠한테."
"일단, 다 먹었으니까 가요, 가요."
백에서 지갑을 꺼내 밥을 사주려는 별님을 막아서고 자신의 카드로 결제하는 준성. 뻘쭘해진 별님의 손에 들린 지갑은 다시 백 속으로 들어간다. 차려 자세로 서 있는 별님의 손을 잡아채는 준성. 다짜고짜 근처 공원을 찾아 나서기 시작하고, 그늘진 벤치에 자리를 잡고 선다.
"으흠! 음! 잘 들어봐요. 사랑한다 말할 수도 없게, 미안하다 말할 수도 없게, 고맙단 말 그 말조차 하지 못한 채. 그렇게 당신을 보냈죠."
별님은 순간 들리는 노랫말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자신이 10년 전 일을 떠올리며 부모님께 하고 싶었던 말에 대한 속 이야기를 들켜버린 듯 왈칵 눈물이 흐른다. 준성은 별님이 작사한 노래를 이만큼 연습했다 보여주려고 했던 건데 영문도 모르는 별님의 눈물에 부르던 노래를 멈춘다. 재킷 안주머니에서 잘 세탁된 하늘색 빛 손수건을 별님에게 건네는 준성.
"고마워. 미안... 놀랬지."
"당연하죠. 이 노래. 누나 얘기에요?"
"응."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내가 첫사랑일수 있는 나이가 아니죠 에휴."
"뭐라는 거야."
"누나, 내 첫사랑이에요. 첫사랑. 히히"
"고맙다. 기분 좋은 말."
"아, 진짠데... 진짜라고요."
"그래, 고맙다고요. 우준성."
귀걸이를 찾아준 사례로 영화를 쏘기로 한 별님과 함께 준성의 멤버들이 오기에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영화관에 들어선다. 갑자기 잡고 있던 별님의 손을 놓고, 남자화장실로 향하는 준성.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오는 준성의 모습에 박장대소를 하는 별님.
"야, 너 진짜 웃겨. 우준성이라고 표 내려고 작정한 거야?"
"그렇게 티나요?"
"야, 그 반지 뭐야. 커플링이야?"
"아핫! 이거요? 이쁘죠? 내가 자꾸 외롭다고 떠드니까, 팬들이 약 3만 명 정도 되는 제 개인 팬들이 수제작 해서 선물로 보내준 거예요. 팬들을 여자 친구라 생각하라면서."
"와.. 팬의 힘이란 게 그런 거구나."
"좋을 때도 있지만, 맨날 좋기만 한건 또 아니구... 그렇다고 싫다는 건 더더욱 아니고... 암튼 좀 복잡 미묘해요."
때마침 준성의 휴대폰이 울려준다. 별님은 휴대폰 벨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옮기고, 별님의 움직이는 시선을 따라 준성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든다. 발신자로 뜨는 저장명 "최단신 꼬맹이" 최연승을 가리키는 지칭명으로 보이는 듯 한 이름. 입 꼬리를 쓰윽 올리며 즐거운 표정으로 전화를 받는 준성.
"어디야?! 어? 그래?! 알았어!!!"
"야! 우준성!"
"안녕하세요, 누나."
"응, 안녕."
"예매는?!"
"쏘시는 누나께서 미리 해놓으셔야 됐던 거 아냐? 우린 몸만 왔지."
"아, 놈들 진짜. 가자, 티켓부터 끊어야지."
갑자기 준성이 들고 있던 가방과 선글라스를 별님에게 쥐어준다. 영문도 모른 채 받아 들고 멀뚱멀뚱 표를 끊으려고 향한다. 준성은 별님이 표를 끊을 동안 멤버들을 강제로 이끌고 매점으로 가서 이것저것 먹을 간식을 주문하고, 인당 하나씩 배분해준다. 티켓을 들고 6관이라고 적혀있는 입구 쪽에서 준성의 일행들을 향해 손짓한다.
"누나, 우리한테 티켓주구, 먼저 들어가요."
"어? 어……."
먼저 들어선 영화관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애인, 친구들을 동행하여 영화를 보러 온 풍경. 자상하게 자신의 아들, 딸을 앉히고, 음료를 먹이면서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부모를 보면서 내심 그리워지는 별님. 관객들이 어느 정도 착석을 하고, 상영관안 모든 불빛이 암전된다. Sweet.B멤버들이 앉을 자리로 누군가가 들어오자 별님이 손짓 하며 자리가 있다고 오두방정을 떤다.
'작사가님. 우리에요.'
'아, 네?'
'리더 윤준입니다.'
'아, 네... 앉으세요.'
그렇게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을 보답한 별님.
지친 저녁. 도착한 집안 침대 위에 널브러진다. 백은 바닥에 나뒹굴어 어딘가에 자리를 잡아 멈추고, 암흑 속에서 숨을 고르는 별님. 요란스럽게 울려대는 별님의 휴대폰 벨소리.
"아으으으... 여보세요."
"전별! 녹음 스케줄 잡혔어. 내일 오후 4시부터니까. 늦지 말고 와."
"아, 내일... 하루도 쉴 날이 없군."
"오늘 어디 갔었어?"
"알잖아. 오늘 무슨 날인지."
"아, 오늘 그날이었어?!"
"응."
"얼른 쉬고. 내일 보자 전별!"
"알겠습니다. 언니."
해가 중천에 뜬지 한참 된 듯한 침대풍경. 미리 맞춰 놓았던 알람이 오후 3시를 알리며 울려대기 시작하고, 알람소리를 피하려고 뒹굴 거리다 침대에서 떨어지는 별님. 그제야 눈을 슬쩍 떠보고, 시계를 보더니 호들갑스럽게 욕실로 들어가는 별님. 한껏 샤워를 하고 나와서 개운해 보이는 표정으로 의상을 고른다. 출출함이 때를 잊은 지 오래인 별님은 냉장고 문을 열고 시리얼을 우유에 타서 떠먹기 시작.
약속시간이 어느덧 20분 남짓 남은 상황. 먹던 그릇을 싱크대에 담가두고, 급하게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서는 별님.
퇴근길이라기엔 조금 이른 시각.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별님을 스치며 각자의 일에 바쁜 듯 움직이고. 지하철을 타러 가려고 걸음을 재촉하던 별님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 그 인파 속으로 들어서자 신문이 즐비하게 꽂혀있고, 그중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기사 하나.
‘HeeRa ♥ 우준성 열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