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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오십대라면 후줄근한 ‘쉰 세대’ 또는 ‘젖은 낙엽’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중앙SUNDAY가 50대 남성 50명을 인터뷰·전화·e-메일로 설문한 결과 이는 선입견이었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긴장을 느끼면서도 의욕과 희망을 강하게 보였다. 특히 신체적 나이와 무관하게 젊은 기운과 마음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설문에서 응답자 대부분이 기분상의 나이를 30~40대로 써냈다. 영화감독 이준익씨는 18세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나이를 굳이 의식하고 살진 않는다는 뜻이다. 인터뷰 과정에서 “내 나이가 벌써…” 하며 혼잣말을 하는 사람도 적잖았다.
장래에 대해선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자세를 보였다. 나이 오십을 한마디로 표현해 달라는 주문에 응답자들은 대개 밝고 적극적인 단어들을 썼다. 건축가인 이한종 이일공오 대표는 당당히 ‘전성기’임을 선언했다. 조정묵 아시아나항공 선임기장도 ‘황금기’라 했다. 이 대표는 “내가 하는 일을 이제 제대로 잘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뭔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시작’을 키워드로 삼는 응답자도 많았다. 한대화 한화이글스 감독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규정하며 “나이 오십에 감독을 시작하면서 모든 게 새롭고 중요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배재규 삼성자산운용 상무도 ‘인생의 시작’이란 표현을 썼다. “어떤 일을 하든 축적된 연륜으로 시행착오를 피해가면서 시작과 마무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노재영 서울대 농업생명과학정보원 팀장은 ‘즐거운 인생을 살기 위한 출발점’이라는 낙관론을 폈다. 그는 “지금이 인생의 클라이맥스 같아 주변 눈치도 덜 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나이 오십은 인생의 중요한 상승 국면이다. 새로운 지평을 열거나, 목표 지점에 안착해 뿌듯한 달성감을 얻는 수확의 시기이기도 하다. ‘활주로’ ‘정상에 오르는 마지막 베이스캠프’ ‘후반전의 시작’ ‘즐거움’ ‘개안(開眼)’이라는 답변도 그런 맥락이다.
‘65세까지 돈 벌겠다’ 35%
오십이 돼 좋은 점도 많다. 연륜과 여유가 생긴 덕이다. 주호영 한나라당 의원은 “세상을 헐떡이지 않고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도 “어떤 일을 할 때 ‘나이가 적어 아직 이르다’는 말을 안 듣게 돼 편하다”고 했다. 고진 갤럭시아커뮤니케이션즈 대표는 “경험에서 나오는 여유로움으로 디테일을 챙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50대는 구조조정·명퇴·정년을 의식해야 할 나이이긴 하다. 그러나 결코 뒷전으로 물러나거나 은퇴할 때는 아니다. 이는 중앙SUNDAY와 인터넷 여론조사 전문회사 마크로밀 코리아의 공동조사에서 확인됐다. 조사는 지난 7일 수도권의 50대 남성 300명(직장인 또는 자영업자)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퇴직 후 뭘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인생 2모작으로 새 일이나 직장을 찾겠다’는 응답이 44%로 1위를 차지했다. 그럼 언제까지 일해 돈 벌 수 있겠느냐는 질문엔 ‘65세까지’가 35%로 가장 많았다. 이어 ‘60세까지’가 26%, ‘70세까지’가 19.3%의 순이었다. ‘80세 이상’이라고 답한 사람도 5%나 됐다. 대체로 소득이 높을수록 근로가능 연령이 길게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퇴직 후에도 일을 함으로써 사회적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계속 받는 게 좋다”고 권한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경제활동을 하면서 남에게 짐이 되지 않는 사람’은 노인의 범주에서 제외한다. 물론 불안과 스트레스도 적잖다.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오십 된 남자가 짊어져야 할 짐은 무겁기만 하다. 사회적 지위에 따른 책임감, 퇴직·전직에 따른 스트레스, 노후에 대한 걱정…. 또 집에 돌아오면 노부모를 모셔야 하고 아직 독립하지 않은 자녀도 챙겨줘야 한다. 그렇다고 아내와 깨 쏟아지게 지내는 것도 아니다. 여러모로 낀 세대다.
그래서 갑자기 외롭고 쓸쓸해져 방황하기도 한다. 이른바 ‘사추기(思秋期)’다. 인터뷰 과정에서 노후 걱정이나 배우자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을 땐 실명을 밝히길 꺼리는 응답자도 있었다. 부인과 더 애틋한 사이가 됐다는 사람이 많았으나, 평소 배려해 주지 못한 데 대해 “미안함만 쌓여간다”는 사람도 꽤 있었다. 또 한 응답자는 “주도권이 아내에게 자꾸 넘어가는 것 같아 불안하다”며 서운해 하기도 했다.
건강.아내.돈.친구.취미.퇴직 5友를 꼭 챙겨라
전업화가의 삶은 결코 쉽지 않다. 문화센터 한 달 수입은 고작 30만원. 화실에서 회원을 가르치는 것을 합쳐 한 달 수입 100만원이 안 된다. 화실 월세와 관리비를 내고 교통비ㆍ점심값을 쓰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새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내와의 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며 “늘 미안하고 때로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코 후회하진 않는다. 꿈에 그리던 삶이기도 하거니와 화가로서의 생활에 대한 묘미도 느끼고 있다. 그는 소박하지만 여전히 꿈을 품고 있다. 화단에서 인정받아 그림을 그리면서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이 50세 언저리에 시작한 새로운 삶이지만 60세 이후 삶의 질은 어느 누구보다 풍족하리라고 생각한다.
도전과꿈
화가 조씨의 삶엔 50세 남자의 도전과 꿈, 불안이 모두 들어 있다. 지천명 남자의 꿈은 오색 무지개다. 그중 가장 많은 ‘색(色)’은 세계여행이다. 물론 여행이라고 다 같은 여행은 아니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이주민), ‘퇴직 5友(건강ㆍ아내ㆍ돈ㆍ취미ㆍ친구)와 여행을 떠나고 싶다’(김철환), ‘지금까지 가족들과 세상을 보면서 여유를 갖지 못했다. 가족과 여행 다니고 싶다’(임재무·조정식·박중욱·양승호·박천일·조정식), ‘배낭여행으로 세계일주’(고진),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며 최고급 와인을 마시고 석양을 즐기고 싶다’(배재규), ‘아내가 원하는 터키 여행을 하고 싶다’(김수곤), ‘내가 지나온 모든 장소를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다’(고철현) 등 다양하다. 익명을 요구한 답변자 중에서는 ‘못 가본 곳에 가보고 싶다’‘백두대간 종주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대답한 사람들도 있다.
전원생활(김한영·조정묵·권영진·조태영·안판석) 또는 휴식(김경문)을 누리고 싶다거나, 봉사활동(홍석용·강신우·황성윤·송기동·임봉수·김시곤·김연규)을 하고 싶다고 말한 사람도 많았다. 이 밖에 ‘책 쓰기’(곽승준·이주철·오대영), ‘악기 배우기’(송기동·이한종·허진호),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서연종),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고 싶다’(김형수)는 등의 다양한 꿈이 있었다.
휴식ㆍ여행ㆍ취미가 아니라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을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더 많은 우승과 역사에 남는 명승부(윤성효), 창의적인 사업 아이템을 찾고 싶다(신철수), 성공한 창업(고인수), 가족 상담사(오영호), 고교 상담교사(김경준), 국가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이홍균), 몸짱(김대진), 비영리 소극장 운영(이준경), 스크린 골프장 운영(노재영), 자영업 성공, 실버타운 건설ㆍ운영 등 구체적인 꿈이었다.
걱정과 불안
미래는 여전히 ‘꿈과 도전’이지만 현실에선 50대 이후의 ‘걱정과 불안’도 있다. 기업에 다니는 50세에겐 은퇴가 몇 년 앞으로 다가온 게 현실인 탓이다. 전문직이나 교수 등 안정적이고 정년이 긴 직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십이 되면서 가장 큰 걱정 거리는 뭔가’는 사생활 보호와 솔직한 답을 얻기 위해 익명으로 물었다. 가장 많은 답은 노후와 건강ㆍ자식 걱정이었다
특히 생활 속의 고민이 많이 묻어났다. ‘아직 본격적인 시작도 못한 것 같은데 전반기 인생을 마감하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지적하며 ‘시간이 별로 없다’고 초조해 하기도 했다. 또 ‘아내와 성(性)생활 유지’가 걱정되는가 하면 ‘돌봐야 할 사람들을 오래 돌보지 못하고 먼저 죽지 않을까’ 하며 죽음이 추상적 단어가 아니라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데 눈을 뜬 사람도 있다. ‘이뤄놓은 게 별로 없다’거나 ‘내가 안정된 자리에 있어야 딸아이가 좋은 가문으로 시집을 갈 텐데’ 하는 불안감도 눈에 띄었다. 같이 나이 들어가는 아내의 우울증을 걱정하기도 했다.
아내와의 사이는 ‘오십 남자’의 ‘결혼 적금통장’ 같은 느낌이다. 살아온 삶에 따라 다르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부분 애틋함과 미안함, 연민을 얘기한다. 솔직한 답을 이끌기 위해 역시 익명으로 ‘50세가 되면서 아내와의 사이는 어떤가’라고 물었다.우선 결혼 적금통장을 잘 관리한 경우다. ‘인생의 친구ㆍ동반자ㆍ여동생ㆍ이모 등 다용도 패밀리’ ‘오래된 친구’ ‘여자에서 친구로 변하는 느낌’ ‘둘만의 행복’ ‘서로를 위하는 보이지 않는 배려’ ‘이제야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새롭게 연애하는 느낌’ ‘진짜 내 편’ 등의 답변이다. 단둘의 시간이 많아지고, 서로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며, 아내를 더 존중하게 됐다는 사람이 많았다.
나의 아내
아내와의 삶이 녹록지 않은 경우도 있다. ‘섹스가 없어져 간다’고 호소하는가 하면 ‘항상 아이들보다 뒷전으로 취급하니 서운하고 서먹하다’ ‘아픈 데 없이 잘 살고 있어 고맙지만 무언가 섭섭하기도 하다’는 불만도 토로했다. ‘좋다가 싫다가 밉다가 한다’며 오락가락하거나 ‘뜨겁거나 차가운 시기를 보내고 이제는 미지근한 사이’처럼 적당히 타협하기도 했다. 이와는 달리 ‘져주고 산다’고 아예 물러서거나 ‘내 복이거니 내 팔자이거니 하며 산다’처럼 달관한 이도 있었다.
또 중앙SUNDAY와 마크로밀 코리아가 50대 남성에게 부부관계의 빈도를 물어본 결과 ‘보름에 한 번’인 사람이 전체의 25.7%로 가장 많았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이라고 답한 사람도 21.3%에 달했다. 하지만 ‘안 한 지 6개월이 넘었다’는 답도 19%나 됐다.‘현재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는 질문도 익명으로 물었다. 가족의 건강, 가족과의 행복 등 표현의 차이는 조금씩 있었지만 ‘가족’이라고 답한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다음으로 많은 답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다. 구체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거나 ‘입신양명’이라고 말한 경우도 있었다. 교수들은 주로 ‘학문적 성취’를 꼽았다. ‘건강 또는 성(性)생활’이란 답도 있다. 이외에도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것’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사람들과의 관계ㆍ신의’ ‘바르게 행동하면서 사는 것’ ‘이상과 현실의 조화’등을 꼽기도 했다.
가져온곳:중앙 sunday
첫댓글 50이면 한참 나이구만요.
동감입니다 많은 참고 고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