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原文>
기위광야其爲廣也여 이허공이위량以虛空而爲量이요
기이소야其爲小也여 처극미이무적處極微而無蹟이라
시방무권十方無卷호대 비휴어소상지중匪虧於小相之中이요
섬진불서纖塵不舒호대 함시방이비애含十方而非碍로다
<해석>
그 넓음이 됨이여 허공으로써 분량이 되었고 그 작음이 됨이여 극미(極微)에 처하되 자취가 없는지라 시방(十方)에서 거둘 수 없다. 작은 모습에도 부족함이 없고 작은 먼지로도 펼 수 없지만 시방을 포함하여 걸림이 없다.
(* 참고 :
그가 넓어지면 허공 만큼의 크기가 돨 수 있고,
그가 작아지면 극히 미세하여 자취조차 (찾을 수) 없도다.
(허공만큼 펼쳐진 것을 말면 너무 커서) 시방(우주)조차도 거두어 들일 수가 없고,
작은 모습 안에 있더라도 (조금도) 이지러짐(흠축)이 없도다.
(그가)미세한 먼지만큼(의 크기로도) 펼쳐질 수가 없어도,
시방(우주를) 머금고 걸림이 없도다.
-香象주)
<강의>
적蹟 = 跡, 자취입니다.
극미極微는 지극히 작은 먼지로, 마음자리가 크기로 말하면 시방세계보다 큽니다. 작기로 말하면 현미경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작죠. 그자리가 대방광 진리, 법성이죠. 그것을 설명한 것이 화엄경입니다.
시방무권十方無卷은 석권席卷과 글자가 통합니다. 지극히 크다(지대至大)란 뜻입니다. 마음자리는 광대 무변한 시방세계보다 크고, 작기는 원자보다 더 작고, 그러나 이지러짐이 없습니다. 개미속에 들어가도 작은 것도 아니고, 코끼리속에 들어 갔대서 큰 것도 아닙니다. “묘하죠!” 마음자리는 지극히 크기도 하고 섬진보다 작아도 걸리지 않게 시방세계를 다 포함하고도 여유가 있습니다.
중용中庸에도 그와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고故로 군자어대君子語大댄 (군자가 큰 것을 말함인댄)
천하막능재언天下莫能載焉이요 (천하에 능히 실을 수 없다)
언소言小인댄 (작은 것을 말할진데)
천하막능파언天下莫能破焉이라 (천하가 능히 깨뜨릴 수 있다)
장자莊子
천하막대어추호지말天下莫大於秋豪之末(천하에 가을털끝보다 더 큰것은 없고)
이태산위소而泰山爲小 (태산도 오히려 작다)
막수호상자莫壽乎殤子 (단명하여 죽은 애보다 더오래 산 것이 없다)
이팽조위요而彭祖爲夭 (800년 살았던 팽조가 더 단명하다)
이 글들은 좀 궤변같지만 이런 원리에서 말한 겁니다.
<원문原文>
항거지해
恒居智海하사 분과덕어오위지문分果德於五位之門하시며
상주법당常住法堂하사 시진수어구천지상示進修於九天之上하시니
차방여시此方如是에 십찰十刹이 동연同然이로다
성중聖衆이 여운如雲하야 해회상입海會相入하니
지범부애智凡不碍라 상이경이납중형狀多鏡以納衆形이요
피차무방彼此無妨이라 약천등이공일실若千燈而共一室이로다
<해석>
항상 지혜의 바다에 계시면서 과덕을 5위(五位)의 법문에 나누시며 항상 보광법당에 상주하사 나아가 닦는 것을 구천의 위에 보이시니 이 곳에도 그와 같고 시방세계가 함께 그러하다. 성인의 무리들이 구름과 같아 바다와 같이 모여드니 지혜로운 사람과 범부가 걸림이 없음이여! 많은 거울에 온갖 형체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고 저것과 이것이 걸림이 없음이여! 천등을 한방에 함께 밝힌 것과 같다.
(* 참고 :
항상 지혜의 바다에 거하시면서 부처님께서 수행의 결과로 얻으신 공덕을 다섯 단계의 문으로 나누시다.
항상 보광명법당에 계시면서도 아홉 천상에 나투시어 수행함을 보이시고, 이 곳 사바세계도 그러하고, 시방법계도 함께 그러하다.
성인과 중생들이 구름과 같이 화엄의 바다에 모여 서로가 서로에 들어 가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과 범부가 걸림이 없어 많은 거울이 온갖 형체를 받아들임과 같도다.
서로가 방해됨이 없음이여! 마치 천등을 한 방에 함께 밝힌 것과 같도다.
-香象주)
<강의>
부처님 여래는 지혜의 바다, 반야에 늘 계시면서 부처님이 성불하신 과덕을 5위법문으로 말씀하셨다. <화엄경>에 5위법문이 많이 나온다. 법당은 보광명당으로 부처님께서 성불하시고 바로 설법하신 곳입니다.
구천九天은 보통 하늘을 가리킵니다. 화엄경을 연설하실 때 인간 3곳, 천상 4군데를 다니시면서 설법하셨습니다. 그것과는 상관이 없이 천상을 보통 구천九天이라고 많이 말하면서 구만리장천이라고도 합니다.
<주역을 보면>건乾괘가 하늘을 뜻하고 또 숫자적으로는 9를 말한다. 곤坤괘는 땅으로 6을 뜻한다. 그러면 9천九天이란 9九는 숫자적으로 하늘을 말한 것으로 볼 수가 있다. 1,3,5,7,9는 陽數(홀수)이고 2,4,6,8,10은 陰數(짝수)인데 양수 중에 제일 큰 것이 9이다. 그러니까 최고 높은 것이 하늘이다. 그래서 <주역>으로 보면 하늘은 그대로 九天이다. 부처님이 구천九天의 위, 천상에 올라가서 10지품 같은 것을 말씀하셨다.
차방此方은 이 세계, 사바세계를 말한다. 이 사바세계에서 만 화엄법문을 하신 것이 아니라. 시방세계에서 똑같이 그렇게 했다고 <화엄경>에 나온다. 다른 경전에는 그런 말씀이 없다. 다른 경전에서는 이 세계에서 설법하신 것만 말씀하셨지 다른 세계에도 이것과 똑같이 설법을 한다는 말이 없는데 <화엄경>은 독특한 최상승경이라 이 사바세계에서 법문하신 것처럼 시방세계, 모든 세계에서도 그와 같이 법문을 했다.
MBC나 KBS에서 방송을 하면 TV 하나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의 TV에 그대로 다 나타난다. 그러니까 하나에 나타날 때 동시에 수백 억만 개의 TV에 다 나온다. 그와 같이 시방세계에도 이와 똑같이 법문을 했다는 말이 <화엄경>에 나오기 때문에 여기서 그 말씀을 하셨다.
성인의 무리는 부처님 외에 보현, 문수, 미륵보살, 관세음보살같은 분들을 말한다. 해회海會라는 말은 물이 바다에 모이듯이 대중이 바다와 같이 많이 모였다는 뜻이다. 화엄해회華嚴海會에 서로 통해서 걸림이 없어서 거기에는 지역감정도 없고 세계감정도 없고 민족차별 감정도 없다.
화엄법문에는 모든 세계의 사람들이 다 와서 부처님의 법을 듣고 부처님께서는 설법을 하셔도 모든 세계 중생들이 다 들을 수 있게 법문을 하신다고 한다. 그것이 참 묘한 것이다. 우리들은 한국어로 하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못 알아 듣는다. 부처님과 범부의 그런 실력이 천지현격이다. 그래서 서로 들어가서 지혜로운 사람과 범부가 걸림없이 모두 다 한 자리에 모여서 화엄법문에 다같이 동참했다.
모두가 부처님의 화엄법문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많은 거울속에 온갖 물체를 다 비추어서 받아들인 것과 같다. 그래서 피차彼此가 걸림이 없다. 그것이 큰 방에 등불이 천 개를 켜놓은 것과 같다. 이쪽 등불이 저쪽 등불에 비치고 저쪽 등불이 이쪽 등불에 비치어서 서로서로 비추는 것을 교광공조交光共照, 빛을 서로 사귀어서 비춘다고 한다. <원각경>에도 그런 말이 나온다.
부처님과 부처님이 걸리지 않고 중생의 마음과 부처의 마음이 걸리지 않고 여러 수만 명의 중생이 한 방에 있으나 또는 한 사람이 한 방에 있으나 그 마음자리는 비좁지 않다. 사람이 많다고 해서 그 방안에 마음자리가 비좁아서 옹색하거나 압박감을 갖지 않는다. 방안에 수천만 명이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있더라도 육체와 육체는 걸릴 수가 있지만 마음자리는 서로 걸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무애자재無碍自在, 걸림없이 자유자재롭다.
천등千燈이 공조일실共照一室을 교광공조交光共照라 하는데, 천개의 등불이 서로서로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중생과 부처의 마음자리가 수만명의 중생이 한 방에 있으나 한명이 있으나 비좁지 않습니다. 마음자리는 걸림이 없으므로 무애자재합니다. 화엄해회華嚴海會라고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