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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cg on 2015-09-27 11:04:54 in 소설 | 2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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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엔 오래 된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엄마, 또 다른 하나는 냉장고. 집보다는 방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이 좁고 습한 반지하에서, 오래 된 두 가지는 그렇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부엌과 방의 구분이 없는 습한 반지하. 구석의 싱크대 옆에 냉장고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리고 냉장고를 마주보는 곳에 이부자리를 편 엄마가 항상 누워 있었다. 엄마와 냉장고는 비효율적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위풍당당한 독재자처럼, 아니 실각해 실의에 빠진 독재자처럼, 둘은 무력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보다 먼저 태어난 냉장고는 자신이 견뎌온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냉장고는 세상의 모든 더러움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원래 흰색이었던 표면은 노란 기름때와 검은 먼지때로 얼룩덜룩했다. 가장자리는 잦은 이사를 겪으며 칠이 벗겨지고 뭉툭해져 있었다. 받침은 덜컹거리고 있었고, 냉동실은 자주 고장 났다. 냉장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냄새가 배겨 있었다. 그래서 냉장고는 아무것도 제대로 품지 못했다. 냉장고가 품을 음식도 별로 없었지만, 음식을 넣어주면 그 음식은 오래 지나지 않아 상해버렸다. 아주 오래되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냉장고였다. 그런 냉장고의 크기는 터무니없었다. 냉장고가 차지하는 면적은 좁은 3평짜리 방의 사분의 일이나 되었다. 작은 싱크대와 가스레인지를 합친 것과 맞먹는, 아니 좀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냉장고. 마치 싱크대와 가스레인지가 구석에 찌그러져있는 느낌. 냉장고는 그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냉장고는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래된 냉장고는 웅, 웅, 거리는 소음을 내고 있었다. 온 방안을 가득 채우는 소음이었다.
냉장고를 마주한 곳에 엄마가 누워 있었다. 엄마도 냉장고처럼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제는 흉터가 되어버린 팔뚝의 퍼런 멍, 늘어난 주름, 기미…그리고 엄마의 앓는 신음소리. 엄마는 냉장고 같았다. 엄마는 냉장고처럼 집안을 차지하고 있었다. 냉장고가 싱크대와 가스레인지의 공간까지 침범하고 있다면, 엄마는 내 공간을 침범하고 있었다. 엄마의 신음소리가 냉장고의 소음과 맞물려 방안을 채우고 있었다. 엄마와 냉장고는 공간의 모든 것을 차지하고 있었다. 면적, 냄새, 소음…엄마와 냉장고는 공간 그 자체였다. 엄마와 냉장고가 이 좁고 습하고 어두운 반지하방 자체였다.
엄마는 냉장고처럼 크진 않았다. 하지만 누워있는 사람이 차지하는 면적은 너무도 컸다. 이 집은 너무도 좁았다. 단칸방, 부엌과 마루와 안방과 내 방과 화장실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이 좁은 방에 오래된 것들이 차지하는 면적은 너무도 비효율적이었다. 냉장고와 엄마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냉장고는 아무것도 품고 있지 못했고, 엄마도 나를 품고 있지 못했다.
나는 엄마와 냉장고의 틈에서 살고 있었다. 무릎을 끌어안은 채로, 두 존재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두 존재가 언제쯤 견뎌내는 것을 멈출까를 가늠하면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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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내 기억 속에 없었다. 아빠는 내 기억의 바깥에서 존재했다. 엄마는 내게 아빠가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아빠라는 존재의 실체를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실체는 오로지 엄마와, 냉장고뿐이었다.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은 엄마와 냉장고였지 아빠가 아니었다. 엄마는 아빠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촌스러운 금테 안경을 낀 남자가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나는 엄마가 건네준 그 사진을 오랫동안 바라보았지만, 사진에서 아빠를 찾아낼 순 없었다. 아빠라고 지칭된 남자는 낯선 사람이었고, 단 한 번도 직접 마주한 적 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내게 아빠는 없었다. 내 기억 속에서 나를 바라봤던 사람은 오직 엄마와 냉장고뿐이었다.
어렸을 때, 나는 냉장고를 아빠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냉장고를 좋아했었다. 어린 나에게 냉장고는 무척 컸다. 냉장고의 표면은 뜨거웠고, 나는 그 표면에 달라붙어 온기를 느꼈다. 커다란 냉장고는 언제나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언제나 냉장고를 올려다보았다. 엄마는 항상 집에 없었다.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냉장고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TV에서 만화영화를 볼 때에도, 책장에서 그림책을 꺼내서 볼 때에도 언제나 냉장고와 함께 했다. 나는 항상 마루에 나와서 모든 일을 했고, 마루에 냉장고가 우직하니 서있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나는 아빠가 냉장고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사진 속의 그 남자가 냉장고가 된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자주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냉장고에 아빠가 혹시 숨어 있지는 않을까하고. 그러나 아빠는 그곳에 없었다. 이상한 냄새와 몇 가지 음식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았다. 냉장고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돈이 없어서였는지 바빠서였는지 나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다. 엄마는 언제나 바빴다.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 엄마는 해장국집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서빙을 했다. 그러나 어린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나는 엄마가 매일 해장국을 먹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 엄마가 부러울 뿐이었다. 점심시간에 잠깐 찾아와 밥을 차려주던 엄마는, 내가 스스로 밥상을 펼 수 있게 되자 더 이상 점심시간에 집으로 오지 않았다. 엄마와 나의 단절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 밥상을 피고 냉장고를 열어 엄마가 해놓은 반찬을 꺼냈다. 전기밥솥에서 밥을 푸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고, TV를 켜서 만화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나면, TV가 지루해지면 나는 냉장고에 등을 기대고 그림책을 읽었다. 그러다 또 다시 저녁을 차려 먹고, 책을 읽다 잠들었다. 냉장고의 곁에서. 엄마는 내가 잠에 들면 집에 돌아왔다. 엄마는 냉장고의 곁에서 잠들어 있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엄마의 손길에 잠에서 깨어났고, 또한 엄마의 손길에 의해 다시 잠에 들었다.
기억이 또렷하지 않다. 몇 가지 단편적인 기억들을 되짚어갈 뿐이다. 그러나 모든 기억엔 냉장고와 엄마가 있다. 엄마가 부재할 때에도 엄마는 존재했다. 나는 언제나 엄마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냉장고는 언제나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 냉장고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나는 냉장고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냉장고에 대한 나의 애정은 결국 사그라 들고 말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었다. 퇴근한 엄마에게 나는 냉장고가 아빠라고 장난처럼 말했다. 그때 엄마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얼굴이었다. 엄마는 울고 있었다. 엄마는 하염없이 울었다.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울음이 집을 가득 채웠다. 안방을 엄마의 눈물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도 함께 울었다. 엄마와 나의 눈물이 함께 그 집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냉장고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냉장고는 아빠가 아니었다. 냉장고는 냉장고일 뿐이었다. 냉장고는 아빠가 아니었다.
엄마는 내게 어떤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다. 만약 그때 엄마가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줬더라면, 나는 어쩌면 엄마와 냉장고를 싫어하지 않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냉장고를, 그리고 엄마를 좋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는 끝내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다. 엄마는 그저 눈물을 흘렸을 뿐이다. 엄마는 일그러져있을 뿐이었다. 커다란 냉장고는 그런 모녀를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방과 마루가 따로 있던 빌라에서 나와 우리는 원룸으로 이사를 갔다. 초라한 4층짜리 원룸텔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 원룸텔로 이사를 오면서 우리가 가지고 온 짐은 꽤 많았다. 그 짐엔 냉장고도 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박스가 열 개는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박스 열 개와 냉장고 하나. 용달을 불렀고, 기사님과 엄마가 냉장고를 옮겼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짜증을 내던 기사님의 모습과, 그런 기사님에게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는 엄마의 얼굴이 기억 한 편의 흉터로 남았다.
엄마의 허리는 점점 굽어갔다. 엄마는 당당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굽실거렸다. 밀린 월세를 내라고 소리를 지르던 집주인에게 엄마는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같은 층의 사람들이 문을 열고 엄마가 수모를 당하는 것을 훔쳐보고 있었다. 나는 403호에서 사태를 구경하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은 내 눈을 마주하고는 놀란 듯이 시선을 돌렸지만 끝내 문을 닫지는 않았다. 그의 눈은 사라졌지만 문 뒤로 그의 귀가 있었다.
그 사건이 있은 뒤 몇 달 뒤에 엄마는 이사를 가야한다고 했다. 겨우 친구들을 사귀고 있을 때였다. 한창 예민할 때였다. 나는 화가 났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 내게 엄마가 제시한 대책은 매질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매를 맞고 눈물을 흘렸다. 서럽게도 울었다. 그러나 냉장고는 그런 나를 외면했다. 나는 결국 그 상황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이사를 가야 했다.
두 번째 집도 원룸이었다. 첫 번째 이사 때보다 짐이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냉장고는 함께였다.
나는 전학을 온 학교에서 겉돌았다. 이제 곧 중학교로 진학할 시기였고, 반의 아이들은 모두 제각기 친구들이 있었다. 그 어떤 무리에도 끼기가 어려웠다. 나는 무리에 끼는 것을 포기했다. 나는 견디기가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다. 생리를 시작했지만 그 누구도 내게 생리란 무엇인지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 어떤 대처도 하지 못했다. 나는 갑작스레 찾아온 복통을 이해하지 못했고, 치마 사이로 첫 생리혈이 흐르는 사실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선생님이 화장실로 데려가려고 하는 것에 저항했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내 몸에서 피가 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막무가내였다. 선생님은 옆에서 내 바지를 벗기고, 팬티를 벗기고, 생리대를 넣어주었다. 나는 아직도 그 날을 기억한다. 또 다른 기억의 흉터, 기억의 잔상(殘傷). 나는 그 날 집에 울면서 들어왔다. 그러나 집엔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일을 나가 있었으니까. 엄마의 쪽지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내일 새벽에 들어온다는 쪽지. 나는 그 쪽지를 찢어버렸다. 또, 또 다른 기억의 흉터.
나는 다음 날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새벽에 들어온 엄마가 잠들어 있을 때, 나는 학교에 가는 척 하며 동네 아파트 놀이터로 향했다. 놀이터에서 홀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시간은 정말 더디게 흘렀다. 아무도 오지 않는 놀이터, 고요한 아파트 단지의 풍경. 몇 시인지 알 수 없던 고요한 침묵의 시간들. 고요를 견뎌내고 집에 가면, 엄마는 출근한 뒤였고 냉장고는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며칠 간 이어진 결석은 결국 들통이 났다. 엄마는 또 다시 매를 들었고, 때린 뒤에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차라리 하나만 했으면 했다. 매몰차게 때리거나, 아니면 나를 품에 안아주거나. 그러나 엄마는 두 가지를 다 했다. 나는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학교에 나갔지만 아이들의 수군거림은 계속되었다. 남자아이들은 내가 밑으로 코피를 흘린다고 놀려댔다. 여자아이들은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지 몰라서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나는 반에서 이질적인 존재가 되었고, 아이들은 그런 이질적인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어느새 반의 공공의 적이 되어 있었다.
중학교에 진학했다. 여중이었고, 같은 초등학교에서 올라온 아이들이 많았다. 중학교에서도 나는 이방인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이질적인 존재였다. 생리혈을 흘리고 다니는 아이라는 뒷이야기가 돌았다. 생리대를 제대로 찰 줄 알게 되었음에도 아이들의 수군거림은 끝나지 않았다. 내가 화장실에 가기만 해도 아이들은 내가 생리를 하러 간다고 이야기 했다. 아이들은 유치했고, 잔인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내뱉는 말의 결과 따윈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책임의 의미를 몰랐다. 아이들에게 책임이란 단어는 없는 것이었다. 책임은 오롯이, 당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었다. 학교의 생리가 그랬다. 견뎌내야 하는 것도, 책임을 지는 것도 오롯이 당하는 사람의 일이었다.
집에 오면 엄마는 없었다. 오로지 냉장고만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냉장고의 웅, 웅 거리는 소음이 나를 반길 뿐이었다. 거칠게 냉장고를 열면, 레트로프 식품들이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쉬어버린 김치, 3분 짜장, 3분 카레, 3분 햄버그…거칠게 냉장고의 문을 닫았다. 굶어도, 참지 못해 밥을 먹어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잠들면 집에 돌아왔다. 나는 좁은 원룸에서 혼자 곪아 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나와 냉장고는 함께 곪아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서로에게 위로를 건넬 정도로 사이가 좋지 못했다. 나와 냉장고의 반목은, 나의 일방적인 태도 속에서 현재진행형이었고, 그래서 우리 둘은 그저 서로 곪아 들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내일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단 한 번도, 단 1분 1초도 늦지 않고. 나는 시간 위에 놓인 존재였다. 아침이 되면 나는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가야 했다. 그리고 오후가 될 때까지 모든 것을 견뎌내야 했다.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에 또 다시 이사를 가야했다. 엄마가 내게 이사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적극 찬성했다.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으니까.
엄마는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집주인에게 허리를 숙였다. 그러나 집주인은 어림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엄마는 필사적이었다. 안정적인 직장을 구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가게가 이곳에서 차를 타고 1시간이나 가야 하는 거리였다. 그래서 꼭 이사를 가야 했다. 이미 집까지 보고 가계약까지 하고 온 상태였다. 엄마는 돈을 받아내야 했다. 그래서 엄마는 허리를 굽실거렸다. 결국 엄마를 외면하지 못한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면서 우리는 이 원룸을 벗어날 수 있었다. 좀 더 좁은 집으로 간다는 엄마의 말에, 나는 이 집보다 더 좁은 집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당장의 지옥을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출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애써 떨쳐버렸다.
엄마는 짐을 줄이자고 했다. 그러나 냉장고만은 그대로 안고 가야 했다. 엄마는 냉장고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엄마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옷과 동화책을 버릴 게 아니라 냉장고를 버리면 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중고로 사면 더 좋은 것을, 더 작고 간편한 것을 싸게 살 수 있지 않냐고 했다. 냉장고만 버리면 용달을 부를 필요도 없지 않았냐고 했다. 그러나 엄마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냉장고만은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소리를 질렀고, 엄마는 내게 매를 들었다.
그날, 엄마는 내게 냉장고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랑 화해를 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냉장고를 옹호하기 위함이었을까. 아무도 원치 않았음에도 찾아온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 태어나지도 않은 것을 죽일 생각을 했다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그것을 말린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내쫓아버린 외할아버지의 이야기. 혼인신고도 올리지 않은 엄마와 아빠에게 외할머니가 혼수라고 선물한 냉장고에 대한 이야기. 나를 낳고 산부인과에서 집으로 돌아온 날 아빠는 집에 없었다는 이야기. 집에 오로지 냉장고만이 있었다는 이야기. 그렇게 사라져버린 아빠에 대한 이야기. 모든 이야기엔 내가 있었다. 모든 이야기엔 냉장고가 있었다. 나는 엄마의 뱃속에서 모든 것을 듣고 있었다. 다만 기억하지 못할 뿐이었다. 내가 뱃속에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냉장고는 엄마의 곁에 있었다. 그렇게 엄마와 나와 냉장고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뻔한 비극이 우리들의 기묘한 동거의 기원이었던 것이다. 허무하고 가치 없는, 나의 기원.
그러나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한들 변하는 것은 없었다. 나는 엄마와 냉장고를 싫어하게 되었으니까. 내 삶에서 엄마와 냉장고는,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흉터로 남아버렸으니까. 우리 사이의 반목은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새로 이사를 간 집은 옥탑방이었다. 방과 부엌이 얇은 벽으로 나뉘어져 있는 구조의 방이었다. 냉장고는 부엌으로 추방되었다. 그러나 냉장고의 소음은 얇은 벽으로 막아낼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냉장고의 웅, 웅 거리는 소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냉장고의 그 웅웅거리는 소음은 좁은 옥상뿐만 아니라, 옥상을 나와 학교에 가서도 내 귀를 울리고 있었다. 나는 귀를 막았지만, 귀안에서 울리는 소리는 어쩔 수 없었다. 여전히 냉장고는 나와 같은 공간에 있었다.
나는 새로운 학교에 조금씩 적응했다. 친구를 사귀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이전 학교의 지옥 같은 일상에 비하면 훨씬 좋은 생활이었다. 적어도 뒤에서 수군거리는 아이들은 없었으니까. 아이들의 관심 밖에 있다는 것은 편한 일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냉장고만이 반겨주는 생활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이사를 와도 변한 것은 없었다. 엄마는 근처 24시 해장국집에서 일했다. 아침에 나가 밤에 들어오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집에 엄마는 없었다. 엄마가 들어오는 시각은 자정이었다. 나는 자정이 되면 신경을 곤두세웠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철제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TV를 끄고 불을 껐다. 미리 깔아놓은 이불에 몸을 숨긴 채 숨을 죽였다. 거칠게 문을 따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냉장고를 열어 물을 꺼내 마셨고, 신발을 벗었다. 나는 방문을 사이에 두고 모든 것을 귀로 보고 있었다. 엄마가 방문을 열 때가 되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나는 엄마가 나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을지 모른다. 피곤에 절어서, 그저 얼른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알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엄마가 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혹은 나를 바라보지 않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엄마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쓰러졌다. 새로 이사를 온 지 10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엄마는 주방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뜨거운 해장국을 그대로 다리에 엎질렀다. 다리는 화상을 입었다. 허리도 삐끗하고 말았다. 허리 디스크였다.
엄마는 몇 달 동안 일을 나가지 못했다. 엄마는 직장을 잃었다. 사장은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뻔한 위로였다.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엄마는 병원에 가지 못했다. 나는 싫어도 엄마와 함께 있어야 했다. 집에만 있는 엄마가 싫었다. 매일같이 신음을 내는 엄마가 싫었다. 학교가 끝나면 집에 돌아오지 않기 위해 궁리를 했다. 그러나 내가 갈 곳은 없었고, 나는 결국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엄마와 냉장고가 내는 소음으로 가득 찬 공간으로 돌아와야 했다.
1년의 계약기간은 끝이 났지만 계약을 연장할 수는 없었다. 밀린 월세는 보증금에서 까였다. 엄마의 품에는 얼마 되지 않는 돈만이 들어왔고 우리는 또 다시 새로운 집을 찾아야 했다. 언제나 반복되는 일이었다. 나는 반복되는 모든 일에 염증을 느꼈다. 모든 책임은 엄마에게 있는 것 같았다. 엄마가 세상을 잘못 살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지금껏 세상을 잘못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옥탑방을 나와 가게 된 곳은, 우리의 마지막 종착지가 될 곳은 반지하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짐은 줄었지만 냉장고는 함께였다. 냉장고를 옮겨야 하기 때문에 용달을 불렀다. 얼마 되지 않는 보증금에서 십 만원을 빼서였다. 모든 것은 냉장고 때문이었다. 소리만 나지 아무 기능도 하지 못하는 저 냉장고 때문이었다.
커다란 냉장고를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짐 옮길 비용은 주지 않은 채로 어떻게 부탁이라도 해서 캔커피 하나로 짐을 옮겨달라고 하려 했던 엄마의 속셈은 너무도 매몰차게 거절을 당했다. 옥탑방에서 냉장고를 내리는 것까진 도와준 용달 기사는, 그러나 이번 요구엔 마치 똥이라도 밟은 듯한, 그래서 그 똥을 밟은 신발을 올려다보며 내뱉는 듯한 한 마디를 남겼다.
“아, 씨팔.”
그 남자는 엄마가 건네주는 꾸깃한 십 만원을 거칠게 받아들고 떠났다. 용달차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엄마는 한숨을 쉬었고, 나는 짜증을 내었다. 남의 집 주택 앞에 덩그러니 우리의 짐이 놓여 있었다. 마치 온 세상이 우리를 내버린 것만 같았다. 짐은 너무도 단출했다. 나와 엄마의 짐은 합쳐도 박스 네 개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갖고 있는 거라곤 냉장고뿐이었다. 그런데 그 냉장고가 문제였다.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우리의 짐은 고작 상자 세 개인데 반해서, 냉장고는 너무나 컸다. 어울리지 않았다. 냉장고를 옮겨야 한다는 사실에 막막해졌다. 절대로 저 냉장고를 옮기고 싶지 않았다, 아니 옮길 수도 없었다. 허리를 피는 것조차 고역인 엄마나, 왜소한 내가 들 수 있는 크기의 냉장고가 아니었다. 애초에 감당할 수 없는 짐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쏘아붙였다.
“내가 냉장고 버리자고 했잖아! 새로 사자고!”
그러나 엄마는 애써 외면했다.
“얘, 조용히 해. 주인집 듣겠다….”
그 말에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세 들어 사는 주제에 첫날부터 주인집에 미움 받아서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은 나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몇 년간 전전했던 월세방들―원룸, 옥탑방, 그리고 반지하까지―에서 엄마와 내가 겪었던 수모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용달, 그 남자의 저주 같은 한 마디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엄마는 우선 가벼운 것부터 옮기자며 박스를 들었다. 허리 디스크가 있는 엄마는 가장 가벼운 박스를 옮기는 데도 식은땀을 흘렸다. 엄마의 뒤를 따라 들어간 반지하 방은 초라했다. 용달 기사가 저주처럼 내뱉은 말이 계속해서 맴돌았을 뿐이다.
박스 네 개를 다 옮기고 엄마는 기진맥진해 했다. 냉장고는 너무도 높이 서있었다. 엄마와 나는 냉장고를 올려다봐야 했다. 고개가 아플 정도로….
“저걸 어떻게 옮긴다.”
엄마의 무기력한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엄마가 세웠다는 대책이란 것은 너무도 터무니없었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깟 오 만원을 아껴보려다가 병원비가 더 나오게 생긴 터였다. 아니, 병원비가 문제가 아니라 이사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문제였다. 저 반지하에 냉장고가 들어가지 않는다면 이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우리를 도와줄까. 우리는 이곳에 처음 왔다. 우리는 낯선 세상에 내던져져 있는 상태였다. 우리에게 누군가가 손을 뻗을 순 있어도, 우리가 누군가에게 손을 뻗을 순 없었다. 그것이 엄마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포지션이었다. 우리는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그렇게 덩그러니 놓아져 있는 엄마와 나를, 그리고 냉장고에 손을 뻗어준 것은 집주인 아저씨였다. 집 앞에 덩그러니 놓아져 있는 엄마와 나와, 냉장고를 발견한 집주인은 서글서글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이고, 저번에 집 보러 오신 분 맞죠? 오셨으면 말씀하시지, 도와드릴 텐데요.”
그러면서 집주인은 냉장고를 한 번 슬쩍 훑어봤다. 그가 보기에도 냉장고는 무척 이상해보였을 것이다.
“음, 냉장고가 참 크네요.”
그는 이 냉장고를 들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는 듯했다. 그러다 잠시 기다리라며 문턱을 넘어 집으로 들어섰다. 그는 큰 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문이 열리며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나왔다. 집주인은 웃으며 자신의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서글서글한 미소가 그를 인심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방심하지 않았다. 지금껏 거쳐 왔던 모든 집주인들도 똑같았다. 첫 만남 때는 언제나 미소를 지었고, 미소는 그 사람들을 좋은 사람으로 둔갑시켰다. 그렇지만 며칠만 지나도 그들의 얼굴에서 미소를 보는 일은 요원한 일이 되었다. 엄마는 언제나 그 미소에 속아 넘어갔지만…나는 그들을 믿지 않았다. 절대로 믿지 않았다.
그는 내게 나이를 물었고, 내가 중학교 2학년이라고 대답하자 그의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친하게 지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빈말인 걸 알았다. 나는 웃었다. 그 웃음은 그에게 충분한 만족을 줬을 것이다. 나와 그의 아들은 절대 친해질 수 없었다. 반지하와 지상의 간극처럼, 그 간극은 지면이 흔들리지 않는 이상 깨어질 수 없는 차이였다.
그와 그의 아들이 냉장고를 들었다. 엄마는 옆에서 연신 허리를 굽히며 미안해했다. 나도 옆에서 거들었지만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터였다. 냉장고는 어렵사리 반지하방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냉장고는 문턱에 찍히고, 벽에 부딪혀서 새로운 상처를 갖게 되었다. 그와 그의 아들은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용달 기사에게 주려고 했던 식어버린 캔커피 하나를 그에게 쥐어주며 연신 미안해했다. 그의 아들은 짜증을 품은 표정으로 반지하방을 둘러보았고, 그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이제 이웃사촌이니까 서로 도우며 사는 건 당연하거라고 부담 갖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주인집 아들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그 시선은 주인집 아저씨의 말과는 다르게 부담스러웠다. 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일까. 나는 다른 감정도 아닌 불안 때문에 시선을 일부러 돌렸다.
엄마는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주인집 아저씨의 가식적인 가면이 언제 벗겨질 것인지를 가늠해봤다. 이미 우리의 첫 만남은 잘못되었다. 우리는 집주인에게 신세를 지고 말았다. 애초부터 대등한 관계가 아니었는데. 어머니의 굽어진 허리만큼 집주인과 우리의 관계가 맺어지고 말 것이다. 그 정도의 차이가 우리 사이에 가로놓일 것이다.
그 날 저녁, 엄마는 주인집에 돌릴 떡을 사왔다. 나는 무슨 돈이 있냐고, 떡을 할 돈이 있으면 용달 기사를 그렇게 보내지나 말지 그랬냐고 쏘아붙였지만 엄마는 막무가내였다. 신세를 졌으니 갚아야 한다고 했다. 주인집은 부부와 아들, 셋이서 사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내게 떡 접시를 넘기고 앞장섰다. 돌계단을 오르고, 주인집의 벨을 누르면서 엄마는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의 아들이 문을 열었다.
그는 우리를 집안으로 초대했다. 그들이 사는 집은 넓었다. 바로 그들 밑에 있는 우리의 공간과는 달랐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공간들과는 모든 것이 달랐다. 그들의 냉장고는 양옆으로 문이 열리는 최신식 냉장고였다. 정수기도 달려 있는 냉장고였다. 나의 눈은 쉴 새 없이 그들의 집을 훑었다. 소파, 커다란 TV, 옆에 놓여 있는 가족사진들.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러다가 문득, 나의 시선이 너무도 창피해져서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그의 아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아들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엄마는 집주인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항상 저자세였다. 무엇이 엄마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런 엄마가 창피했다. 그리고 엄마의 뒤에 숨어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어서 빨리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우리는 이 집의 이방인이었고, 침입자였다. 몰래 들어온 쥐 같은 존재였다. 그들의 집 지하를 갉아먹고 사는 쥐와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언제든지 우리를 잡아먹을 수 있는 포식자였다. 쥐들은 약삭빠름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엄마에겐 약삭빠름이 없었다. 엄마는 도망가기를 포기한 쥐 같았다. 나는 엄마의 옷깃을 잡아끌었지만, 엄마는 그런 내 손을 뿌리쳤다.
“언제든지 불편한 거 있으면 말씀 하세요. 도와드릴게요. 이제 이웃 아닙니까?”
나는 그가 내뱉은 문장을 꾸미고 있는 가식의 수식을 눈치 챘지만 엄마는 눈치 채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껏 당해왔던 수모는 모두 잊어버린 듯이 엄마는 또 다시 허리를 굽혔다. 허리를 한 번 굽히면 절대 필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엄마는 또 다시 허리를 굽힌 것이다.
나는 나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을 느끼면서 어서 이 시간이 지나가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우리는 이 공간을 망치고 있었다. 우리는 깨끗한 거울에 묻은 오물이었다. 언젠가 그들이 거울에 오물이 묻었단 걸 알게 된다면, 언제든지 닦여나갈 존재였다. 언제나….
전학을 온 학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방학을 했다. 아이들은 방학에도 학교를 나갔다. 그러나 나는 나가지 않았다. 수업료와 점심값을 낼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하루를 일하고 삼일은 몸져눕는 생활을 반복했다. 엄마는 더 이상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다. 엄마의 몸은 더 이상 중노동을 견뎌내지 못했다. 엄마의 신음소리는 냉장고가 내는 웅, 웅거리는 소음과 함께 어우러져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우울한 소음이었다. 모든 것을 끌어내리는 소음이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죽음으로 끌어들이는 유혹의 소음이었다. 그 소음을 피해 달아날 곳이 없었다. 모든 곳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에 가든 소리는 나를 괴롭혔다. 어둠이라는 세계로 도망을 쳐도, 꿈이라는 세계로 도망을 쳐도, 냉장고는 웅웅거렸다. 엄마는 간헐적인 신음을 뱉어내고 있었다. 나는 꿈에서 냉장고에게 쫓기고 있었다. 달리던 나는 무엇인가에 걸려 넘어졌다. 이부자리를 피고 누워 있는 엄마였다. 엄마는 나에게 걷어차였기 때문인지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냉장고가 넘어진 나를 향해 덮쳐오고 있었다. 웅, 웅, 웅, 웅, 하는 소리가 나를 덮치고 있었다.
악몽에서 깨어날 수 없었다. 악몽과 현실의 경계란 존재하지 않았다. 아침이 되느냐, 밤이 되느냐의 차이였을 뿐이다. 아침이 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오로지 전화의 알람소리 뿐이었다. 주택의 담이 너무도 높아서 우리 집엔 빛이 들지 않았다. 나는 아침이 되면 일어나 불을 켰다. 그러면 밝은 것도 어두운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의 빛이 방을 채웠다. 안개 같은 빛이었다. 안개처럼 흐릿한 빛이었다. 비오는 날, 그래서 먹구름이 낀 날 전등불을 킨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그런 빛이 싫었다. 흐릿한 빛이 내 몸을 감싸는 것이 싫었다. 그것은 마치…주인집 아들의 시선이 나를 감쌀 때의 느낌이었다. 그러나 집에 빛을 비추지 않으면 하루가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억지로 불을 켰다. 마치 닭장 속의 닭처럼. 목소리를 잃어버린 닭은 생명을 담지 못한 알을 낳음으로써 아침을 알린다. 아침을 알리는 행위를 해야 만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처럼. 나도 그런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무의미한 행동이라 해도.
불을 키면 엄마는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밥 먹어야지.”
냉장고의 웅, 웅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수명이 다했음을 알리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그런 냉장고에서 이미 수명이 다한 김치와 수명이 없는 참치 통조림을 꺼냈다. 마지막 남은 참치였다. 엄마는 김치와 참치를 녹슨 후라이팬에 볶았다. 볶음으로써 김치의 수명은 늘어날 것이다.
이런 나날의 반복이었다. 엄마는 삼일에 한 번 일을 나갔다. 아니, 삼일에 한 번 일을 나가는 것도 드물었다. 엄마에게 일거리가 잘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출부 소개소는 몸이 성하지 않은 엄마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는 소장에게 전화로 빌었다. 엄마의 하루는 비굴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침을 먹고 파출부 소개소에 전화를 하고, 그래도 일을 받지 못하면 엄마는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엄마는 구인광고가 담긴 정보지를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정보지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새벽에 챙겨가 버린 뒤였다. 엄마는 온 동네를 뒤져 겨우 하나를 가져올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허탕을 쳤다.
정보지를 구해온 날이면 엄마는 빨간펜으로 한곳, 한곳 동그라미를 쳤고 전화를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거리는 이미 누군가가 차지한 뒤였다. 아마 새벽같이 나가 소식지를 챙겨온 사람들이 얻어냈을 것이다. 엄마보다 네 시간은 먼저 소식지를 챙겨서, 동그라미를 치고 다이얼을 눌러 전화를 건 사람들이 일을 갖게 된 것이다. 아주 드물게 아무도 차지하지 못한 일자리가 걸릴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반색하며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뭐든 할 수 있다고, 당장 나갈 수도 있다고…그런 날이면 엄마는 곧장 옷을 갈아입고 새로 구한 일터로 나갔다. 그리고 밤이 되면, 땀과 피로에 절은 채로 돌아와 이부자리에 드러누워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파출부 소개소에 전화를 하고 정보지를 가지러 집을 나섰다.
이런 일상의 반복이었다. 반복은 곧 죽음과도 같았다. 죽음의 존재처럼 견디기 어려운 여름을 견뎌내는 일상이었다. 일상을 견뎌내는 것은 곧 반복을 견뎌내는 것과 같았다. 결국, 나는 죽음을 견뎌내고 있는 것이었다. 웅, 웅거리는 냉장고와 발버둥치며 앓고 있는 엄마의 곁에서.
방학이 끝이 날 무렵, 그러나 여름은 끝이 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그런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흐르는 그런 날이었다. 선풍기가 고장 난 날이었다. 엄마가 겨우 일자리를 찾아 나간 날이었다. 월세가 그세 두 달이나 밀려버린 날이었다. 집주인이 엄마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월세가 밀렸다고 통보한 지 이틀이 지난 날이었다.
나밖에 없는 집에 주인집 아들이 찾아온 것은 점심을 먹고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집에 어머니 안 계셔?”
그는 나를 훑어보며 말했다. 땀에 젖은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나의 추한 모습을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삼선 슬리퍼를 신은 발이 이미 문안으로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내 추한 모습을 숨길 수 없었다.
“네, 일 나가셨어요.”
“아. 음, 전할 말이 있어서 왔거든. 월세를 좀 빨리 내주셨으면 해서.”
그의 시선은 나를, 그리고 나를 넘어 방을 훑어보고 있었다. 나는 얼른 그를 보내고 문을 닫고 싶었다.
“제가 엄마한테 전해드릴게요.”
“음.”
“….”
그의 시선은 나를 훑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나의 다리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머리가 아찔해졌다. 덥고, 습해서, 추하고 추한 감정의 나락으로 빠져버리고 있었다. 이것은, 짜증이었다. 그리고 불안이었다.
그의 시선은 원룸 주인의 시선이었고, 옥탑방 주인 할머니의 시선이기도 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홀로 잠들어 있을 때, 문을 열고 들어왔던 원룸 주인의 시선. 잠든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 시선. 내가 일어나자 수도를 고쳐주러 왔다는 변명을 하고 도망치듯 나가던 원룸 주인의 다급한 시선. 소리도 없이 옥탑방에 올라와 창문을 들여다보던 주인 할머니의 시선. 문을 열고 들어와 내게 모든 것을 비난하던 할머니의 시선.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서 침을 삼키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저 시선. 세 명의 시선은 똑같았다. 날 것과도 같은 시선. 살아 숨 쉬는 시선. 무엇인가를 죽이고자 하는 끓어오르는 생의 시선. 나와 엄마는 도저히 갖지 못할 그런 시선. 먹이를 포착해낸 포식자의 시선.
냉장고가 웅, 웅거렸다. 그의 슬리퍼를 신은 발이 마룻바닥을 침범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뒷걸음치며 포식자의 침범을 허용하고 있었다. 몸이 벌벌 떨려왔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알지 못했다. 나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내게 비명은 오로지 포식자가 목덜미를 물어뜯었을 때에만 허락되는 것이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냉장고는 웅, 웅거렸다. 도와줘. 그러나 냉장고는 웅, 웅거리기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 소음이 점점 더 커질 뿐이었다. 그의 살아있는 숨소리가 죽어가는 냉장고의 소음을, 그리고 나를 덮어버렸을 뿐이다. 포식자가 내 목덜미를 물었다. 그러나 나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모든 것은 너무도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포식자의 힘은 너무나 강력했다. 포식자는 나를 잡아먹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잡아먹히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포식자는 나를 갈기갈기 찢었다. 나를 부위별로 분해하고, 분해해서…먹기 좋게 잘라서….
눈물을 흘리며 냉장고를 향해 손을 뻗었다. 냉장고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도망치기 위해서. 그러나 냉장고는 내게 손을 뻗어주지 않았다.
나는 시체가 되어 마룻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나의 잔해는 그가 남긴 사냥 성공의 흔적들과 함께 주워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잘게 분해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냉장고는 웅, 웅거리고 있었다.
모든 것은 너무도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천장에 곰팡이가 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가 쓰러졌다. 엄마의 몸에 이상한 반점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곰팡이 같았다. 나는 엄마의 곁에서 그런 엄마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엄마는 이제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엄마는 가끔 나를 돌아보았다.
“우리 딸…. 어떡하지. 엄마가 일을 못 해서….”
엄마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나는 그런 엄마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일주일 뒤 엄마는 신음소리를 내는 것을 멈추었다. 엄마는 작동하기를 멈추었다. 그러나 비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냉장고는, 나는 살아 있었다. 비는 멈추지 않았다.
밤이다. 아니, 낮일까. 밤일까. 나는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구분할 수 없다.
영원한 밤일까, 영원한 낮일까. 목소리를 잃어버린 닭은 끝내 거세당하고 말았다. 아침을 알릴 수 없게 된 닭은 아무런 의욕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웅, 웅 거리는 냉장고의 소음.
나는 엄마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엄마는 나를 바라보지도, 신음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엄마는 멈추어 있었다. 오직 냉장고의 소음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엄마는 잠든 것이다. 깨워도 일어나지 않을, 편안한 잠을. 얄미웠다. 나를 남겨두고 그렇게 편안한 잠의 세계로 도망쳐버리다니. 엄마의 몸을 툭, 하고 쳐봤다. 엄마는 깨지 않았다. 이거 봐, 엄마는 잠들어버린 거야. 나를 버리고 도망쳐버린 거야.
아냐, 더 이상 견뎌내기를 포기한 거야. 견뎌낼 수 없었던 거야. 그래, 충분히.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끝까지, 견뎌낼 수 없었을 뿐, 엄마는 충분히 강해지 못했던 것일 뿐이야.
냉장고는 웅, 웅, 거리는 소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웅, 웅, 웅, 웅. 여전히 자신이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멈추지 않았음을 과시하고 있었다. 소음은 온 세상을 울리고 있었다. 냉장고의 독주였다. 냉장고의 소음만이 이 세상에 허락된 소리 같았다. 냉장고의 소음은 그래서 고요하게만 느껴졌다. 조용히 들어보니, 냉장고의 소음은 심장박동 소리 같기도 했다. 나는 처음으로 냉장고의 소음에서 위안을 얻었다. 웅, 웅, 웅, 웅. 냉장고는 멈추지 않고 작동하고 있었다. 냉장고는 살아 있었다. 그리고 나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저 위에서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포식자들은 지하에 사는 쥐에 대해 무엇이라 말할 것인가? 이제 곧 우리는 닦여나갈 것이다. 거울은 닦아내면 그만이다. 더러운 오물은 닦아내면 그만이다. 그러면 거울은 다시 깨끗해질 것이다. 다시 거울에 오물이 묻으면 다시 닦아낸다. 오물이 묻고, 닦아내고, 묻고, 닦아내고…그것은 반복이다. 반복은 곧 죽음이다. 그들의 반복되는 행위에는 죽음이 수반되어 있었다. 모든 것은 반복된다. 반복의 범주에는 죽음도 예외가 아니다. 나는 가스레인지의 불을 켰다. 그리고 그곳에 엄마가 가져온 소식지를 올려 불을 붙였다.
냉장고 문을 열고 냉장고 안으로 들어갔다. 냉장고는 모든 것을 품을 수 있을 것처럼 컸다. 그래서 냉장고는 나를 품었다. 냉장고에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냉장고는 춥지도, 따뜻하지도 않다. 그래, 냉장고는 기능을 못 하는 것이 아니었다. 냉장고는 모든 것을 품어내기 위해 존재했던 것이다. 나를 품은 것처럼, 이렇게.
냉장고 문을 닫기 전 나는 불길이 엄마를 품은 것을 보았다. 모든 것은 깨끗하게 타버릴 것이다. 깨끗하게. 저 불은 원치 않았던 존재인 나를 품었던 그때로 엄마를 데려다줄 것이다. 원치 않는 존재를 죽일 수 있는 용기를 엄마에게 줄 것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겐 냉장고가 있으니까. 냉장고가 나를 대신 품어줄 테니까.
나는 눈을 감았다. 잠에 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꿈에서 엄마를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곳은 행복할까. 그곳에서 우린 행복할 수 있을까? 그렇다. 그곳엔 오로지 우리 셋이 있을 것이다. 나와, 엄마와, 냉장고가.
그러니 냉장고야, 부탁해. 나를 엄마에게로 데려다 줘. 그곳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거야.
나는 냉장고의 문을 닫았다.
첫댓글 누구 작품인가요? 많이 아프게 하는 내용이네요. 내가 겪었던 시간 만큼이나....
냉장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