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 여행

[최원석]

모교 졸업 50주년을 맞은 2017년 세 번째 특별행사인 산티아고순례여행을 10월10일에 시작해 10월24일에 돌아왔습니다. 연 초부터 준비한 여행은 애초엔 14명이 참가키로 했으나 박인환이가 출발 1일전 가담하여 15명이 함께 했습니다. 애초의 지원자는 권충국, 김종하, 김순화, 김승렬, 김창호, 서규석, 심윤식,원경하,이재묵, 정진동, 정학성, 정한성, 조시행과 단장 역할을 한 최원석입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여행은 누구나, 특히 천주교 신자들, 하고 싶은 도전입니다. 우리의 모교가 천주교 재단의 보살핌과 후원으로 자라오고 있는 배움의 터이기 때문에 더욱 뜻깊은 도전이었습니다. 세계 기독교인의 3대 성지의 하나로 꼽히는 성 야곱이 묻혀있다는 산티아고 대성당 순례를  칠순을 바라보는 15명의 친구들이 해냈다는 건 대단하고 자랑할 만한 일입니다.    
우리의 순례여행은 대성당까지 100km이상 걸어 도달하면 순례로 인정하는 증서를 받을 수 있는 사리아에서 출발해 6일 동안 120km여 걸어 대망의 성지에 도착했습니다. 몇몇이 겪은 조그만 육체적 고통을 제외하곤 모두가 건강하게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걸 진심으로 자랑스럽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첫째 날 10월10일(화) 인천-마드리드

스페인 마드리드에 가기 위해 아침 8시50분에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중국동방 항공편을 타야한다. 대한항공을 타고 갈 인환이를 제외하고 14명 모두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 6시30분에 나타난다. 새벽 일찍 서둘렀음에도 불구하고 활기가 넘치고 밝다. 여행의 묘미다.
정시에 출발해 환승을 해야 하는 상하이 국제공항에 1시간 30여분 후에 도착한다. 환승 라운지에서 거의 3시간을 보내고 마드리드행 여객선에 승선한다. 길고 긴 13시간 30여분의 비행 끝에 마드리드 국제공항에 거의 녹초가 된 상태로 내린다. 이미 인환이가 도착해 일행을 반긴다.
공항에서 메트로를 (지하철) 타고 이미 예약해둔 시내에 위치한 2성급의의 호스탈에 도착하니 밤 10가 넘어서고 있다. 마드리드에 하루 밤만 머무는 까닭에 낭만과 정열의 도시의 분위기를 다소나마 맛보려고 지독한 피곤함도 무릅쓰고 30여분 후 밖으로 나온다.
깊은 밤에도 불구하고 즐비하게 서있는 길거리 카페-레스토랑에서 남녀노소 구분 없이 손님들이 음주를 즐기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도 주변을 조금 걷다 숙소 근처의 노변 카페-레스토랑에 자리 잡고 품질이 뛰어난 포도주와 생맥주를 정갈한 안주로 마시며 내일 아침 일찍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아름다운 마드리드를 떠나야하는 아쉬움을 달래본다.
발길을 떼기 아쉬운 회연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비용을 지불하고 나니 스페인의 물가가 우리에 비해 엄청 싸다는 걸 실감한다. 포식할 정도로 맛있는 안주를 즐기고 거나하게 포도주와 맥주를 마셨는데 일인당 20유로도 채 안 된다.천국이 따로 없다.
12시 쯤 호스탈에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지치고 지친 몸을 침대에 던진다.

둘째 날 10월11일 (수)  마드리드-사리아

어제 밤 12시 넘어 잠자리에 들었으나 한두 명을 빼곤 거의 모두가 무척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잠을 설친 듯싶다. 몇몇은 새벽 두세 시경 일어나 서성거리다 밖으로 나간다.
늦게 여행에 참여한 인환이는 우리의 산티아고 순례 시작점인 사리아에 가는 기차를 7시15분에 타야하기 때문에 이미 새벽 5시부터 호스텔 밖에서 단장과 창호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5시30분 쯤 인환이를 데리고 약간의 실수를 저지르며 차마틴역에서 도중에 한 번 갈아타고 사리아로 가는 기차를 태워 보내고 호스텔에 돌아온다. 8시가 임박했는데도 밖은 아직도 어둡다. 모든 친구들이 일어나 산책을 하거나 침대에서 뒹굴고 있다.
우리도 오후 1시15분에 출발하는 바꿔 타지 않고 사리아에 가는 기차를 타려고 10시경에 호스텔을 나선다. 사리아 까지는 5시간50여분 타고 가야하기 때문에 호스텔 부근에서 기차 안에서 마실 포도주와 먹을 안주를 구입한다.
실수를 통해 얻은 지혜로 아침보다 30여분 일찍 역에 도착하니 11시가 채 넘지 않았다. 역과 주변을 살피도록 40분의 자유시간을 준다. 다시 모여 역사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푸짐한 음식을 포도주와 매주를 곁들여 즐긴다. 정시에 출발한 기차는 저녁 7시경 사리아역에 도착한다. 예약된 알베르게에 (호스텔) 도착해 짐을 푼다. 이미 인환이도 와 있다. 바로 길 건너에 서있는 성당에서 순례길의 패스포트일종인 크리덴셔얼을 2유로 주고 각자 구입한다. 순례길 가는 곳 마다 찍어주는 도장이 없는 크리덴셔얼은 설사 순례를 완수했다 하드래도 인정이 되지 않는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있다. 8시 쯤 숙소를 나와 사리아의 역사적 유적이 있는 언덕 위를 아주 오래 전부터 돌로 덥힌 길을 따라 오른다. 워낙 작은 구 지역에 유적이 있기 때문에 30여분이면 충분하다. 유적을 구경하고 내려오는 길에 들어선 카페-레스토랑에서 푸짐한 만찬을 포도주와 함께 즐긴다. 워낙 술을 즐기는 창호, 진동, 재묵이가 제일 활기차게 보인다. 밤 10시에 숙소가 문을 닿기 때문에 마지못해 회연을 마친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6일간의 대장정 순례를 생각하며 잠을 청한다.

셋째 날  10월12일 (목)  사리아-메르카도이로 (18km)

새벽 2시 쯤 4명이 같이 있는 방에서 자던 윤식이 침대에 걸터앉아 괴로워한다. 잠을 잘 수 없기 때문이다. 어제 밤 어느 누구보다도 곤히 자 호스탈을 나서기 전까지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잠의 삼매경에 빠졌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진동과 창호의 강력하게 하모니를 이룬 코고는 소리다. 특히 우람한 체격에서 나오는 창호의 천둥 같은 소리는 소문난 진동의 바이브레이션을 압도하고 만다. 소리를 멈추거나 줄이려고 단장이 창호의 얼굴을 돌려 놓아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윤식이 포기한 상태로 다시 드러눕는다. 다른 방에 있는 친구들의 상태가 궁금해진다.
4시 경 화장실에 가려고 방을 나서니 다른 방에 자던 친구들이 일어나 하는 일도 없이 부산하다. 70대에 들어서는 노인(?)들이라 남이 곤히 잠들어 있어야 할 시간에 깨어있는 고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단장이 8시에 시작하려던 첫 순례 시간을 7시로 수정하고 알베르게 로비에서 오늘의 일정을 알려주려고 6시20분부터 기다린다. 한성이를 비롯한 5명이 설명을 듣고 아침을 하려고 문을 나선다. 나머지 친구들한테 일정을 알려주고 단장은 재묵, 충국, 창호와 함께 7시에 행군을 시작한다. 사리아를 벗어나기 전 허물어진 옛 성터 밑에 놓인 푸엔테에서 마실 물을 챙긴다.
걸음을 재촉한다. 등불이 없이는 아무 것도 구별할 수 없는 칠흑에 감싸인 굽이굽이 진 들길과 산길을 헤쳐 나간다. 당연히 평화스럽고 수려한 주변의 경관을 음미할 순간마저도 없다. 8시가 갓 지나 먼동이 트면서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부터 단장은 홀로 속력을 내어 걷고 있다. 오늘 밤 묶을 알베르게의 침대가 30여개로 한정되어 있어 확보하려고 서둘러 길을 재촉하는 거다. 10시를 조금 지나 머물려는 숙소에 도착한다. 순례길 위에 있는 알베르게에서는 대게 아침 9시전에 묵고 있던 순례자를 내보내고 청소 등 재정비를 하고 오후 1시부터 다음 묵을 순례자를 받아들인다.
너무 일찍 도착해 침상이 있는 방에 들어갈 수 없으나 2개의 방과 1개의 침대를 확보한다. 친구들이 오기까지는 최소한 2사간 정도 혼자 있어야 한다. 밀리고 밀린 잠이 엄습한다.

넷째 날   10월13일 (금)  메르카도이로-오스피탈 (20km)

지난 밤 묵었던 알베르게는 참으로 깨끗하고 조용하다. 거의 모든 순례자들이 숙소에서 운영하는 카페-레스토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길을 다시 나선다. 결국 머무는 순례자는 우리를 빼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저녁 만찬은 순례길에서 보편적이고 유명한 순례자의 메뉴로 한다. 거의 모두가 일인당 10유로인데 비해 이곳은 3유로를 더 받는다. 더 받는 만큼 나온 음식이 꽤 정갈하고 맛과 질이 탁월하다. 또한 순례객의 메뉴는 와인과 물이 요구한 만큼 거의 무료로 공급되니 시행, 진동, 충국, 창호 같은 애주가가 포함된 우리한테는 크나 큰 이득이다.
성대한 만찬을 끝내고 10시에 소등을 하고 잠자리에 든다. 이틀 전 코고는 고통에 시달렸던 윤식이가 창호가 준 귀막이를 끼고 눕자마자 나가떨어진다. 예상과는 달리 이번엔 창호대신 윤식이 제법 크게 곤다. 그래서 세상은 때로는 공평하고 재미있는 것 같다.
4시부터 찬구들이 하나 둘씩 깨어나 부산스럽다. 원래 밤 10시에 소등한 알베르게는 다음 날 새벽 6시부터 등을 다시 켤 수 있으나 우리만 들어있는 2방의 등을 한 시간 앞당겨 켜고 오늘의 순례를 준비한다. 어젠 첫 순례 행군이라 적응하는 하는 차원에서 18km 정도 걸었으나 오늘 부턴 매일 20km 이상 걸어 5일 후 대망의 산티아고에 도착하려고 한다.
8시에 먼동이 트는 관계로 과반이상의 친구들이 아침을 들고 출발하려고 한다. 창호 그룹은 7km 떨어진 제법 큰 도시이며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유물을 간직한 포르토마린에서 아침을 하겠다며 6시에 길을 나선다. 한 시간 뒤 윤식을 조장으로 해 규석, 순화, 종하, 학성이가 같은 마음으로 뒤를 잇는다. 물론 단장으로부터 일정을 세밀히 듣고 나선다.
단장은 6시30분에 홀로 핸드폰 라이트를 켜고 길로 선다. 포르토마린 입구에 들어서자 두 방향이 제시된다. 하나는 도로를 따라 도심에 진입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역사의 채취가 담긴 굽이굽이 이어지는 300m의 낮은 돌로 만들어진 좁은 성곽 길을 따라 도심에 이르는 거다. 자연히 후자를 택한다. 녹녹치 않다. 경사가 가파르고 미끄러워 비가 올 경우 피해야할 정도로 위험하다. 바로 이 길이 중세기에 두 천주교 세력이 전략적 요충지인 포르토마린을 차지하려고 피비린내 나는 끊임없는 살육전을 벌인 역사의 현장을 상기시켜준다.
성곽 길을 내려서자마자 미노 강위에 서있는 긴 다리가 야경 속에 눈에 들어온다. 내려다보니 흐르는 강물은 보잘 것 없으나 다리 위부터 깊이가 대단하다. 바로 저수지를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준설했기 때문이다.
준설 전 놓여있던 역사가 깊은 성당과 건물들은 포르토마린의 높은 지대에 옮겨져 장엄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나타나는 로마시대의 유물인 가파른 돌계단을 오른다. 옛 로마의 탁월한 건축기술을 엿볼 수 있다.포르토마린을 벗어나자마자 다시 들과 낮은 산길로 이어지는 행군 속에 빠져든다. 오늘의 목표지는 오스피탈에 있는 갈리시아 자치지방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다.
오스피탈 바로 전 마주치는 가파르진 않지만 제법 힘든 언덕길을 기어오른다. 모두가 버거워 하는 길이다. 거의 모든 순례자가 언덕길을 따라 진행한다. 바로 옆 인류학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 유적지인 카스트로마이오르를 힘들어 지나쳐 버린다. 지칠 대로 지쳤지만 역사의 현장을 찾아본다. 낮은 구릉 으로 쌓여 움푹진 곳에 빽빽이 들어선 켈트식의 돌로 만든 주거지역이 눈을 사로잡는다. 30여분 둘러보고 구릉 위에서 저편에 연이어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안쓰럽게 보인다.
다시 길을 재촉해 10여분 만에 목표로 정한 알베르게에 10시 조금 넘어 도착한다. 오후 1시에 문을 여니 근처의 카페-레스토랑에서 아침 겸 점심을 들며 시간을 보낸다. 1시가 가까울 무렵 창호 일행이 나타나 숙소에 함께 들어선다. 2시30분 경 종하가 혼자 나타난다. 순례여행 전부터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선다. 순화가 배낭을 짊어질 수 없도록 어깨가 아파 뒤처지고 있다고 한다. 단장이 급히 나가 순화의 배낭을 짊어지고 잔여 병을 숙소로 인도한다. 내일부턴 친구들의 건강을 고려해 배낭을 목표지점까지 배달시키는 방법을 적극 추진하기로 마음을 잡는다. 아울러 택시를 이용해 다다르는 것도 허용하려고 한다.

다섯째 날   10월14일 (토) 오스피탈-파라스데레이 (22km)

지난 밤 만찬은 예의 카페-레스토랑에서 순례자 메뉴로 한다. 2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첫 코스는 세 종류의 전채 중 하나를 택일하는 거고 둘째 코스는 세 종류의 음식 중 하나를 선택하는 거다. 끝마감은 디저트다. 포도주와 물은 원하는 만큼 당연히 제공된다. 대체적으로 10유로 정도이니 큰 부담이 아니다.
오스피탈 자체가 워낙 작은 마을이라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유일한 카페-레스토랑에서 잠시 쉬어 간다. 저녁 7시에 시작된 만찬에 우리가 들어서니 꽉 찬다. 게다가 시끌벅적하게 회연을 벌이니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 전체가 들썩거리는 분위기다. 성대하게 저녁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몸을 눕힌다. 총 30개의 침대 중 절반은 우리가 차지하고 대여섯 명의외국 친구들이 나머지 침대 이곳저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제껏 우리들만 방을 독차지했기 때문에 알베르게의 규약을 무시해왔으나 이곳에서는 지켜야한다.
모든 순례자들은 알베르게에 들어오는 순간 등산화를 벋어 선반에 넣고 침대가 있는 방에 들어가야 한다. 소등도 10시에 해야 한다. 그 동안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알려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친구들이 등산화를 자신의 침대 근처에 놓아두는 결례를 거리낌 없이 벌인다. 모두 다 단장의 늦게 알려준 잘못 때문이다. 잠 못 이루는 밤을 이리저리 뒤척이다 새벽 2시경 여행기를 쓰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간다. 글을 쓰고 있는 중 한성이를 필두로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곧 이어 배낭을 꾸리며 출발준비에 여념이 없다. 잠이 없는 “늙은 아이들”의 기백이 가당치 않다.
6시가 되기도 전에 윤식, 학성이를 제외하곤 모두가 출발준비를 마친다. 창호 팀은 곧 길을 나선다. 나머지는 7시30분에 여는 카페-레스토랑에서 아침을 하고 출발하려고 한다. 한 시간 뒤 윤식과 학성이를 깨워 함께 레스토랑에 가니 7시 10분을 지나고 있다. 매우 쌀쌀하다. 맑고 깊은 하늘에 총총히 박혀 밝은 빛을 뿜어내고 있는 별들을 헤아리며 추이를 애써 잊는다. 마침내 문이 열린 레스토랑에서 일률적으로 토스트와 밀크커피로 아침을 한다. 단장은 아침을 마치자마자 추위를 이길 겸 급피치를 내 길로 내닫는다.
오늘의 최대 목표는 오스피탈에서 8km 떨어진 지점에서 왕복 5km 의 우회 지점에 서있는 스페인의 국보 건축물인 11세기에 수녀의 집으로 지어져 14세기부터 탈바꿈한 교회다. 월요일과 공휴일에 닫혀있는 교회는 순례자와 관광객한테 80세가 넘은 관리자의 안내로 들어가 볼 수 있다.
들어가면 오른 쪽 벽에 놓인 석관과 그 위에 안치된 산타아고 기사단의 용사의 조각상이 가장 눈길을 끈다. 댄 브라운의 추리 소설인 다빈치코드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스코트란드에 있는 로잘린 교회에 놓인 템플기사단의 용사들의 조각상을 상기시킨다. 아울러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경건하고 아름다운 조각품들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다만 연로한 안내자가 영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하고 안내문구들도 스페인어로 돼있어 교회의 깊은 내력과 아름다움을 재대로 파악할 수 없어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깊은 인상과 대단한 만족감을 가지고 교회를 나온다. 되돌아 우회지점에 닿은 후 오늘의 종착지인 파리스데레이로 걸음을 재촉한다. 내일 부터는 산티아고 순례 안내책자대로 진행하면 된다는 부담이 다소 적은 일정에 힘을 얻은 탓인지 단장은 더욱 피치를 내 걷는다. 얼마 안가 혼자다. 우회 길을 걸은 부담 탓인지 7km여의 마지막 거리가 천근처럼 무겁게 무겁다. 남은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부우며 마침내 예정된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또 혼자다. 창호 일행이 진작 도착해야 했을 터인 데 보이지 않으니 불안하다. 방을 배정받고 와이파이 비밀코드를 받아 핸드폰으로 창호와 연락을 취한다. 근처에 있다고 하니 안심이다. 30여분 후 창호 일행이 들어선다. 다시 한 시간이 지난 뒤 나머지 친구들이 하나둘 씩 나타난다.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 숙소의 여자 안내인이 우리에게 배정한 12개의 침대가 있는 방이 3일 전에 이미 예약한 14명의 다른 그룹에게 배정된 것을 착각한 거다. 잘못을 바로 잡고 침대를 다시 배정 받는다. 침대의 숫자가 여의치 않아 한성이를 비롯한 5명은 부득이 근처의 알베르게로 옮긴다. 파라스데레이는 제법 큰 도시라 카페-레스토랑이 즐비하게 깔려 있어 저녁을 그룹별로 하도록 하고 상응한 비용을 나눠준다. 여행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마음에 맞는 친구들이 세 그룹을 지어 자기들만의 오붓한 시간을 즐기는 여유를 갖는다.

여섯째 날  10월15일 (일) 파라스데레이-리바디소 (28km)

지난 밤 각 그룹끼리 흩어져 자유 시간을 즐기며 저녁을 한 결과는 꽤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다른 숙소에 머문 한성이 이끄는 팀은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피자로 하루를 마감했다 한다. 윤식의 팀은 숙소가 운영하는 카페-레스토랑에서 7시 전에 저녁을 마쳤다고 한다. 이유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윤식이가 근처 성당에서 7시에 시작하는 미사에 참석하기 때문이란다. 항상 스스로 외톨이로 지내는 인환이도 미사에 참석했다고 한다.
창호가 이끄는 팀은 슈퍼마켓에서 푸짐한 음식재료와 빵, 과일을 구입한다. 물론 품질 좋은 포도주를 챙기는 건 당연하다. 단장도 함께 한다.숙소에 돌아와 부엌에서 창호와 충국이 능란한 솜씨로 음식을 만들어 식탁에 올려놓는다. 얇게 썬 하몽을 치즈로 말아 그 속에 빵을 넣어 먹는데 그 맛이 독특하고 대단하다. 단장을 제외하곤 사온 2병의 포도주가 재묵까지 가세해 연신 들이키니 얼마 지나지 않아 동이 난다.워낙 푸짐하게 음식을 준비해 저녁을 하고 남은 양으로 다음 날 아침과 점심까지도 마련해 둔다.
새벽 6시인데도 메인 알베르게에 머무는 친구들이 이미 깨어나 부산하게 움직인다. 각 그룹은 그들만의 아침을 마친다. 오늘부턴 순례여행 책자에 표시된 하루 일정을 그대로 따라 하기 때문에 도착지점에 있는 알베르게서 순례자가 몰려드는 관계로 침상확보가 쉽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한다. 유일한 길은 더욱 더 빨리 도착해 침상을 미리 잡아놓는 거다. 단장은 7시에 길을 나선다. 창호 그룹은 이미 아침을 마치자마자 출발했다. 오늘은 이번 순례 중 제일 긴 25.8km를 (안내책자의 거리) 걸어야한다. 다소 우려하는 친구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먼 거리라도 완만하게 경사진 내리막길을 따라가기 때문에 문제가 될게 없다고 자신감을 집어넣어 주었다. 아울러 중간지점에 서있는 중소도시인 메리데에서 명물인 문어요리를 꼭 들어 볼 것도 주문했다.
거대하고 하늘을 깨뚫을 듯 서있는 유칼립투스가 울창한 끊임없는 숲길을 걸어 나간다. 상그러운 내음이 코를 찌른다. 다만 아쉬운 것은 가을의 색이 깊었는데도 이곳 갈리시아 지방의 낙엽은 우리의 화려함과는 달리 극히 단조롭다. 거의 늙어 보이는 황갈색뿐이다. 숙소를 나선지 2시간여 만에 메리데의 중심지인 오랜 역사가 배인 구 지역에 닿는다. 심신이 제법 탈진한 상태라 배낭을 돌 벤치에 내려놓고 휴식을 갖는다. 그러나 주변의 14세기에 지어진 장엄한 성당과 여러 오랜 풍상을 겪은 건물들이 일어서게 만든다. 게다가 매 일요일마다 펼쳐지는 장의 풍경이 바쁜 길손의 눈을 잡고도 남음이 있다.
다시 길을 재촉한다. 걷고 또 걸어도 종착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미 온몸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조그만 언덕을 기어오르는데 여간 고역이 아니다. 뒤에 오고 있는 친구들이 걱정스럽다. 마지막 남은 기력을 쏟아 부으며 마침내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오후 1시가 조금 넘었다. 해가 중천에 더 있어 꽤 따갑다. 침상을 확보하고 대충 샤워를 마친 뒤 탈진한 몸과 마음을 침대에 내던진다.
4시가 지나자 친구들이 하나둘씩 기진맥진한 상태로 나타난다. 메리데에서 문어요리로 점심을 하며 쉬었기 때문에 도착이 더욱 늦어진 거다. 강렬한 햇살의 공격을 받아 거의 모든 친구들의 얼굴이 새빨갛다. 몇몇은 농담조로 단장이 속였다고 아우성이다. 알베르게는 깨끗하게 지어졌고 시설 또한 훌륭해 지친 친구들의 마음을 다소 달래준다. 특히 부엌시설은 여태껏 본 중에서 가장 탁월하다. 그러나 무용지물이다. 일요일이라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스페인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기 때문에 음식재료를 구할 수 없다.
대안으로 길 건너편에 있는 카페-레스토랑에서 저녁 7시부터 푸짐한 음식과 포도주 맥주를 즐기며 길고도 긴 행군의 여독을 날려버린다. 시끌벅적한 만찬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10소등에 맞추어 몸을 누인다. 연이어 걷고 있고 게다가 오늘 28km를 걸어 적지 않은 친구들이 물집 등 여러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더욱이 내일은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더욱 걱정스럽다. 비가 세차게 온다면 친구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무거운 마음을 갖고 잠을 청한다.

일곱째 날  10월16일 (월)  리바디소-오 페드로우조  (24km)

어제 가장 힘든 행군을 마친 뒤 예상대로 많은 친구들이 말은 안 해도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게 보인다. 새벽 3시경 아래층에서 여행기를 쓰고 있는데 가장 잘 걷는 친구들 중의 하나인 시행이가 내려와 발이 아파 배낭을 다음 목적지에 부치겠다고 한다. 흔쾌히 받아들인다. 그렇지 않아도 순례 셋째 날부터 힘들어하는 친구들의 육체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원한다면 배낭을 부치는 걸 허락하려고 마음을 굳혔었다.
순례 첫날부터 배낭을 부치고 있는 인환이를 빼곤 어느 누구도 의향을 피력하지 않았다. 심한 어깨 통증과 물집을 겪고 있는 순화와 학성은 눈치만 보고 있다. 어제 행군을 마치자마자 순화한테 배낭을 부치라 권유하자 주저 없이 반색한다.
오늘은 일기예보에 따르면 오전 6시에 비가 내리다 7시 이후에는 그친다고 한다. 그러나 네 번의 순례경험으로 터득한 정보론 갈리시아 지방의 악명 높은 변화무쌍한 기후는 항상 비를 대비하게끔 만든다.
하여간 비가 온다는 건 이번 순례에서 후미를 맡아 소임을 충실히 하고 있는 진동이를 빼곤 기나 긴 도보 여행을 처음 해보는 친구들한텐 커다란 고역이다. 결단을 내린다. 배낭을 부치기를 원하는 친구들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10명의 친구들이 참여한다. 단장을 제외한 모두가 7시경 길에 나선다. 단장은 10개의 배낭을 부치는 걸 확인하고 떠나기로 마음을 정했기에 숙소에 남는다. 대부분의 숙소에서는 7시에 관리자가 나타나 배낭 부치는 걸 도와준다. 그러나 이곳은 그렇지 않으니 난감하다.
막힌 골목도 새어나갈 틈이 있는 것처럼 구원의 손길이 나타난다. 어제 저녁 세탁기 주변에서 만났던 인상 좋은 스페인순례자 프레디한테 도움을 요청한다. 그가 배낭배달 전문회사를 전화로 연결해준다. 15분 후에 나타난 회사의 직원한테 배낭들을 넘겨주고 문을 나선다. 7시30분을 지나고 있다. 예보대로 비는 그쳤다. 어두운 길을 급피치를 올려 내닫는다. 먼동이 터온다. 알베르게를 나오자마자 오르는 짧은 가파른 언덕을 제외하곤 오늘의 순례길은 대단히 평탄하다. 걷기 시작한지 30분이 지나자 다시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미약하게 내리지만 갈 길이 20여km 남아 있어 걱정이 엄습한다.
많은 순례자들이 잠시 멈춰 서 배낭에 비막이를 씌우고 파초를 뒤집어쓰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어지간해선 멈추는 걸 싫어하는 단장도 별 수 없다. 지체된 짧은 시간을 벌기위해
속도를 배가시킨다. 30여분 뒤 규석, 순화와 종화를 지나치며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전진한다. 그들이 두 번째로 출발한 팀이기에 제일 먼저 떠난 창호 팀 중의 최소한 한 명은 머지않아 만나리라 기대하며 더욱 속력을 낸다. 그러나 제법 걸었는데도 잡히지 않는다.
대망의 산티아고가 바로 코앞이라 다양한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이 줄지어 걸어가고 있다. 마침내 1시가 채 못 되어 오늘의 종착지인 오 페드로우조 입구에 들어선다. 정통 순례길 을 따라 걷는다면 앞으로 10분 안에 마음에 두고 있는 알베르게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여유도 있고 해서 조용한 숲길을 선택한다. 불행하게도 길을 헤매다 원점으로 다시 돌아와 진행한다. 마침내 알베르게에 들어서니 1시10을 넘어서고 있다. 부쳤던 배낭들이 이미 도착했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윤식 그룹이 나타나고 다시 한 시간 후에 한성 그룹이 들어선다. 제일 먼저 떠난 창호 팀이 나타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길을 잃어 해매고 있으리라는 우려감이 가슴을 짓게 누른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창호가 카톡으로 근처의 피자집에 있다고 알려주니 안심이다. 숙소에서 100여m 떨어진 피자집으로 향한다. 도중에 100유로를 기계에서 인출한 진동이를 만나 함께 피자집에 들어선다. 창호 팀은 세 번째 포도주병을 들이키고 있다. 두 번째 대형 피자가 어지럽게 테이블에 놓여있다. 대단한 애주가며 포식자들이다.

여덟째 날   10월17일 (화)  오 페드로우조-산티아고 (22km)

드디어 산타아고 순례의 정점을 찍는 날이다. 몇몇이 물집 등 여러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나 어느 누구도 포기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와 인내로 대망의 성지를 목전에 두고 있다.
오늘 걸을 거리가 20km (안내책자) 밖에 안 돼 모두가 자신만만하다. 지난 5일 간의 고된 행군이 자신감을 심어준 거다.
새벽녘부터 내리고 있는 비가 9시에 그친다는 예보가 있어 7시를 조금 지나 창호 그룹을 제외한 모두가 알베르게 식당에서 어제 저녁 준비한 음식으로 아침을 들고 떠날 채비를 마친다.
예보보다 빠르게 8시경 비가 거의 멈추자 한성의 팀이 떠나고 10여분 후 윤식의 패가 뒤따른다. 단장은 10개의 배낭을 산티아고의 묵을 아파트에 부치기 위해 배달전문 회사의 차를 기다린다. 8시15분에 도착한다고 했으나 9시가 되어도 나타나지 앉자 초조해진다.
비록 걸을 거리가 짧지만 너무 늦게 출발하면 날씨가 급작스레 변해 햇살이 강력히 내리 쬐면 걷는 게 무척 힘들다는 걸 몇 년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단장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9시를 조금 지나 알베르게의 20대의 여성 관리자 제시카가 들어선다.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배낭운송 비용을 주고 나서려는 순간 차가 도착한다. 서둘러 기사와 함께 배달주소를 기입하고 배낭을 차에 넣고 길을 나선다. 첫 그룹보다 1시간30여분 늦게 출발한 셈이다. 거리가 짧아 최소한 한 팀 정도는 단장보다 먼저 아파트에 도착하리라 생가하며 급피치를 올린다. 그간 익숙했던 울창한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길 양편 산림을 뒤덮고 있다. 10여km 지나자 규석과 학성이가 눈에 들어온다. 새벽 일찍부터 순례의 성공적인 끝맺음과 배낭배달에 신경을 집중한 탓인지 허기가 엄습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떼기가 대단히 힘들다.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카페를 찾으려고 심혈을 기우리나 보이지 않는다. 3km 정도 더 걸어가니 작은 카페가 나타난다. 재빨리 들어가 정신적으로 더욱 무겁게 느껴졌던 배낭을 내려놓고 햄버거와 밀크커피로
허기를 달랜다. 점심까지도 해결한 셈이다. 다시 일어서 나서는데 한성의 패가 들어선다. 같이 잠시 있자는 제의를 뿌리치고 걸음을 재촉한다.
몬테고조 (해발 370m) 지점에 이르니 윤식 그룹이 보인다. 산티아고가 바로 코앞인데 내놓기를 거부한다. 오히려 남은 4km가 친구들을 매우 괴롭힐 거라 생각하며 다시 혼자 앞서 나간다.
마침내 오후 1시를 조금 넘어 산티아고 대성당 주변에 닿는다. 머무를 아파트를 찾으려고 미로처럼 얽힌 구 지역의 이고저곳을 살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아파트가 들어 서있는 건물에서 젊은 스페인 청년이 단장인 내 이름을 묻는다. 우리가 나타나기를 얼마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를 따라 1,2,3층에 나누어진 방들을 점검한다. 각방마다 3명씩 수용하는데 무척 청결하고 모든 부대시설이 완벽하다. 나머지 5명이 묵을 방은 50여m 떨어진 아파트에 있다고 한다. 부쳤던 배낭들도 이미 도착했다. 1층 방에 대충 짐을 풀고 친구들을 마중하기 위해 아파트를 나선다. 2시30분을 지나고 있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창호 팀이 나타나고 곧 연이어 두 패가 뒤를 잇는다. 한성의 그룹은 동 떨어진 아파트에 묵는다. 불행하게도 순례여행을 임박해서 참석한 인환은 다른 곳에서 머물러야 한다.
저녁 6시에 인환이를 뺀 모두가 모여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간다. 내일 충분히 돌아볼  시간이 있어 대충 훑어보고 저녁을 들려고 한다.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갈리시아의 악명 높은 기후의 변덕이 산티아고 입성 첫 날부터 심술을 부린다. 세차진 않지만 제법 내린다. 서둘러 성당의 정면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황금의 광장으로 들어선다. 모두가 핸드폰으로 사진박기에 여념이 없다. 밀려드는 허기를 재우려고 아쉬움 속에 광장을 떠나 카페-레스토랑을 찾아 나선다. 돌로 깔린 미로처럼 연결된 좁은 골목길을 누빈다. 줄지어 서있는 카페-레스토랑들이 유혹한다. 매우 유명한 관광지인 까닭에 가격이 만만치 않고 게다가 거의 모두가 7시에 열어 들어 갈 수가 없다. 마침내 열린 한 곳에 들어가 2층으로 올라선다. 직원이 재빠르게 우리 14명의 테이블을 새롭게 만든다. 각 팀마다 들고 싶은 음식과 주류를 택한다. 여행을 많이 하고 미식가인 창호가 주문한 음식이 보기가 가장 좋고 맛도 일품인 것 같다. 모두가 충만하게 만찬을 즐기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이 총 비용을 지불한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는 아니지만 대단하다. 내일 쓸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틀을 산티아고에서 머무는 걸 감안해 음식 재료와 음료 등을 구입하기 위해 부근의 슈퍼마켓으로 간다. 개인 당 10유로를 나누어 준다. 필요한 물품들을 싸들고 아파트에 도착하니 10시를 가리키고 있다. 내일 아침 9시에 황금의 광장에서 다시 모여 본격적인 대성당 탐사와 주변의 역사가 깃든 건물들을 살펴볼 작정이다. 그 보다 먼저 순례자 도움 센터에서 산티아고 순례를 인정하는 콤포스텔라 증서를 받아 쥐는 게 최우선의 일이다. 기대에 부푼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잠을 청한다.

아홉째 날  10월18일 (수)  산티아고

산티아고에서의 둘째 날이다. 친구들을 본격적으로 안내하려고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진다. 새벽녘에 여행기를 쓰고 있는데 어제 오후부터 내리고 있는 비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비가 온다고 해서 보고 싶은 곳을 못 보는 건 아니지만 계획에 다소의 차질이 빗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가슴을 짓누른다. 판초를 뒤집어쓰고 황금의 광장으로 간다. 모든 친구들이 약속한 정시에 모였다.
산티아고 순례 증서를 받기 위해 순례자 도움 센터로 향한다. 단장이 알고 있던 자리에 센터가 보이질 않는다. 혹시 착각했나 하며 이곳저곳을 기울인다. 그래도 찾지 못해 이침 일찍부터 나와 대성당을 탐사하고 있는 순례자들한테 물어 사무실을 찾는다. 5성급 호텔인 파라도르 서쪽 밑에 자리 잡고 있다. 2년 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런 것도 모르고 찾아 나서다 낭패를 겪은 거다.
친구들이 증서를 받아 챙기고 본격적인 대성당 탐사를 시작한다. 고딕 형식으로 지어진 성당의 정문은 서쪽으로 향해있다. 중앙 입구에 서있는 타워는 양편의 타워보다 낮지만 순례자와 관광객의 눈길을 가장 끌어 들인다. 바로 성당의 수호자이자 스페인의 수호자인 야곱이 순례자의 지팡이를 오른 손에 들고 광장을 내려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야곱 타워를 볼 수 없다. 새롭게 단장하느라고 많은 받침대로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쪽 문도 닫혀있어 반 시계 방향으로 돌아 처음 나타나는 남쪽 문을 통해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10가 채 못 되었다. 친구들한테 성당과 산티아고의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 만큼 전해주고 스스로 이곳저곳을 살피라고 30분의 자유 시간을 준다. 성당 내부 구경을 마치고 동쪽, 북쪽 문을 안내하려고 했으나 창호 팀을 빼곤 자기들끼리 둘러보겠다고 한다. 대신 거대한 향료의 운행으로 끝맺는 12시에 시작하는 미사를 참석하기 위해 성당으로 들어오겠다고 다짐한다.
창호팀과 다시 외톨이 된 학성이를 데리고 두 문을 답사하고 성당으로 들어가려고 남쪽 문으로 올라서는데 많은 순례자와 관광객이 줄지어 서있다. 11시20분도 안되었는데도 말이다. 재빨리 줄에 서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이미 긴 의자는 빈  자리가 없다. 유명한 향료의 운행을 좀 더 잘 보기 위해 돌기둥 밑 받침대에 자리를 잡는다. 미사가 정시에 시작한다. 거의 모두가 스페인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 없다. 신도들의 행동만 주시하고 따라서 한다. 50여분이 지나자 성당 제일 높은 돔에 걸려있는 거대한 향로가 운행을 위해 내려진다. 마침내 거대한 양의 향이 태워지고 향로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운행을 위해 세차게 밀쳐진다. 양편 끝 높은 천장에 거의 닿을 만큼 치솟은 다음 서서히 속도를 잃어가며 백색의 연기를 내뿜는 향로가 정지하는 순간 숭고하고 장엄한 미사의 끝이다. 모두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인상을 가슴에 담고 발길이 떼이지 않는 대성당을 나선다.
점심은 각 팀마다 따로 하도록 하고 오후 3시10분에 산티아고의 아름다운 아라메다공원과 다른 명소를 보기 위해 황금의 광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오전 일정을 마친다.
점심과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정시에 모인다. 비가 더욱 세차져 모두가 판초 또는 우비를 뒤집어 쓴 상태다. 공원에 서있는 아름답고 다양한 수목들이 연이은 일정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준다. 특히 천년 이상 되어 보이고 성인 두 사람의 팔을 펼쳐도 남음이 있는 거대한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친구들의 경의와 감탄의 대상이다. 30여분의 공원 답사를 마치고 비가 더욱 세차게 내려 더 이상의 관광을 포기한다. 대신 저녁에 날씨가 좋아지면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진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친구들이 어제 들렀던 슈퍼마켓에서 먹고 마실 거리를 구비하는 걸 잊지 않는다.
단장은 영어 철자 하나 잘못 기입해 처음부터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인환이의 비행기 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자 산티아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닌다. 마침내 아라메다 공원 앞에 있는 여행사에서 표가 철자 두 개가 틀려도 유용하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그 동안 쌓였든 고민의 무게가 한꺼번에 날아가 버린다. 인환이한테  알려주니 무척 고마워한다. 숙소에 돌아오니 8시가 넘었다. 이미 같이 묵고 있는 창호의 방에서는 진동과 학성이 까지 합세해 포도주 파티가 질퍽하게 벌어지고 있다. 오늘 밤이 산티아고의 마지막 밤이라 포도주로 아쉬움을 달래고 싶어서 그런가 보다. 12시를 넘어서야 마지 못 해 광란의 파티가 끝난다. 아무리 노력해도 계속 감기는 눈을 마침내 재운다.

열째 날    10월19일 (목)    산티아고-피니스테레

아주 오래 전에 세상의 끝이라고 잘못 알려져 지금까지도 그대로 불리는 피니스테레에 가는 날이다. 인환이도 함께 가기 때문에 묵고 있는 파라도르에 가 데리고 나와 아파트에 진을 친 친구들과 합류시킨다.
10시에 아파트에서 출발해 10여분 걸어 피니스테레로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산티아고 종합터미날에 닿는다. 이미 비시즌이라 버스 배차가 축소 조정되어 우리가 탈 버스가 오후 1시에 출발한다. 두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친구들한테 각자 3유로를 나눠주고 차를 타기 전 까지 터미널 안에 있는  카페-레스토랑에서 시간을 보내라고 권유한다.
창호 팀은 어제 마시다 남은 2병의 포도주와 맥주 그리고 아침 일찍 구운 스테이크로 술판을 깔아놓는다. 진동이가 빠질
리 없다. 포도주가 한 시간 못되어 동이 나자 창호가 터미널 밖으로 나가 30여분 후에 5병을 구입해 돌아와 술판을 다시 회생시킨다.
출발 15분 전 술판을 끝내기를 아쉬워하는 일행을 다른 친구들과 함께 아래에 있는 승강장으로 이끈다. 승강장에는 많은 순례자가 기다리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우리와 같이 피니스테레에 가는 승객이다. 1시를 조금 넘어 배낭을 짐칸에 실은 버스가 출발한다. 60여석의 자리가 거의 꽉 찼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거의 모든 친구들이 졸거나 잠에 떨어졌다. 50여분을 달려가자 대서양과 맞닿은 해안 길이 아름다운 자태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아쉬운 건 아침부터 내리고 있는 빗줄기가 더욱 세차져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반감시키고 있는 점이다. 3시를 조금 지나 매우 예쁘고 아담한 어촌마을인 피니스테레에 도착한다.
예약해둔 호텔에 들어가 방을 배정받는다. 비도 오고해서 각 팀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권유하고 일인당 20유로를 할애한다. 단장은 창호그룹과 판초를 뒤집어쓰고 5시30분 호텔을 나선다. 곧 부둣가에 닿는다.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풍경이 핸드폰 카메라에 끊임없이 찍힌다. 비가 그쳐 판초를 벗어들고 왕복 1.5km의 방파제 아래 길을 걸어 나간다. 방파제 끝 위에 서있는 등대와 주변에서 파도에 넘실거리고 있는 망망한 대서양을 바라본다. 너무 웅장하고 아름다워 가슴을 막히게 할 지경이다. 예기치 않았던 무지개까지 떠올라 그렇지 않아도 절제할 수 없는 들뜬 마음을 더욱 부채질한다.
근처의 옛 성곽 터를 둘러보고 배가 출출해 공용 알베르게에서 일하는 예쁜 젊은 여성한테 물어 맛좋기로 소문 난 카페-레스토랑을 7시 조금 넘어 찾아 들어선다. 저녁은 8시부터 시작한다기에 술을 좋아하는 창호가 포도주를 시켜 들며 기다리기로 한다. 학성이가 불쑥 나타나 함께하기를 요청해 허락한다. 정시에 창호가 음식을 주문한다. 나온 양이 얼마나 어마한지 주위의 스페인들이 눈을 크게 뜨고 우리를 힐끗힐끗 살핀다.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남은 음식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호텔에 돌아오니 거의 10시다. 저녁에 나가기 전 밤 9시30분 호텔 로비에서 내일의 일정을 위해 모이자는 약속이 우리로 인해 깨져버렸다. 친구들한테 카톡으로 사죄의 글을 보내고 내일 아침 8시30분에 만나가기로 한다. 피곤하고 무거운 몸을 침대에 누이며 긴 하루를 마감한다.

열하루째 날     10월20일 (금)  피니스테레, 무시아

오늘은 피니스테레를 샅샅이 탐사하려고 한다. 세상의 끝이라고 알려졌던 곶은 호텔에서 4.9km 떨어져 있다.
약속한대로 8시30분에 친구들이 로비에 모였다. 일정을 설명해주고 미리 마련한 산티아고 순례를 기념하는 모교의 마크가 찍힌 플레카드에 각자 서명을 하고 곶으로 출발한다. 고용 알베르게로 이어지는 좁은 길목에서 첫 번째 명소인 성당을 마주한다. 황금 수염의 예수의 상을 품고 있어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러나 좀처럼 열려있지 않아 볼 수가 없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골목길을 지나 차도와 병행으로 나있는 낮은 경사의 산길을 따라 진행한다. 아쉽게도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왼편으로 펼쳐진 거대한 푸른 대서양을 비안개 때문에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무척 애석한 일이다. 마침내 9시40분경 “0km”가 부각된 표지석 지점인 곶에 도착한다. 비가 더욱 세차게 내린다. 조금 내려가 여러 모양의 바위에 감싸인 경사로에  선다. 이미 대여섯 명의 순례자들이 이곳저곳에 모여 담소를 하거나 명상에 잠겨있는 듯하다. 바로 이곳에서 순례자가 기 여정을 마치는 의미를 되새기고 지니고 있던 물건을 걸어놓거나 태우며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는 장소이다. 까맣게 그슬린 바위들이 곳곳에 보인다.  우리도 가져온 플레카드가 재묵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비바람이 세차게 부는 와중에도 근처의 타워에 걸려 휘날린다. 당연히 기념사진 찍는 건 언급할 필요도 없다.
비바람이 더욱 세차져 서둘러 자리를 떠나 표지석 근처의 호텔에 부속된 카페-레스토랑에서 차가워진 몸을 녹인다. 잠시의 달콤한 휴식을 끝내고 다음 대상지를 찾아 낮은 산을 기어오른다. 정상에 있는 태양의의제단들과 신성한 바위 그리고 건너편 조금 낮은 산 중턱 부근에 있는 프랑스 태생의 휘에르모 성인의 기거하던 은둔지의 잔해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워낙 날씨가 나빠 한치 앞도 분별하기 어려워 아무 것도 찾지 못하고 눈물을 머금고 포기한다. 내려온 도중 더욱이 길을 잘 못 들어 가시덤불을 필사적으로 헤쳐 나오는 고생까지 친구들이 겪는다. 모든 게 단장의 잘못이다.
배낭이 있는 호텔로 돌아가 이번 여행의 마지막 장소인 무시아에 가기 위해 택시를 구한다. 4대가 필요한데 2대 밖에 없단다. 방법은 두 대가 왕복 한 시간 터울로 우리들을 태워가는 거다.
단장은 첫 번 출발 팀과 함께 5년 전 처음 순례에서 머물었던 알베르게에 닿는다. 이미 알고 있던 헝가리 여인 로자스가 반갑게 맞이한다. 처음 만났을 땐 봉사하는 일꾼이었는데 지금은 의젓한 주인으로 변했다. 그녀에게 주비해온 선물을 전한다.
이미 1시가 훨씬 넘어섰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그녀가 알려준 근처의 카페-레스토랑에 함께 온 친구들과 들어간다. 거대한 게를 주문해 포도주와 곁들여 여유 있게 전심을 즐긴다. 한 시간여 뒤 모든 친구들이 다 모였으나 진동이를 뺀 한성의 그룹이 다른 곳으로 옮긴다. 참으로 애석하고 부끄럽게 느껴진다.
오후가 깊어지자 날씨가 맑아진다. 얄미울 정도로 작으면서도 예쁜 어촌마을인 무시아의 정경이 눈에 들어오니 친구들의 탄성이 줄을 잇는다. 내일 하루를 더 머물기 때문에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고 친구들이 무시아를 있는 그대로 탐색하고 즐기도록 한다.
저녁은 각 팀별로 한다. 단장은 로자스와 바다가 내다보이는 카페-레스토랑에서 정겨운 대화를 나누며 저녁을 즐긴다. 그녀가 주문한 백포도주 한잔한잔 들어갈 때 마다 더욱 더 추억의 날개가 펼쳐진다. 1시간30분여의 달콤한 식사를 끝내고 비를 맞으며 알베르게로 돌아온다. 단장이 같은 음식점에 있었던 걸 몰랐던 창호와 충국이 돌아오자마자 식당 겸 로비에서에서 다시 술판을 벌인다. 단장은 10시30분 쯤 감기는 눈을 억제치 못하고 침대에 몸을 던진다.

열두째 날     10월21일 (토)  무시아

무시아의 두 번째 날이다. 날씨가 화창하다면 동화 속에서 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어촌마을을 백퍼센트 즐길 수 있다는 건 말할 나위도 없다. 특히 비가 내려 피니스테레의 매력을 제대로 못 느낀 친구들한테 무시아만은 완전무결하게 알려주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다행히 아침 일찍 여행기를 쓰고 있던 중 날씨가 좋으리라는 직감을 갖는다. 9시에 모든 친구들이 모였다. 기원했던 만큼 날씨가 화창하고 하늘이 드높고 푸르다. 다만 아쉬운 건 진동이가 지난 밤 핸드폰을 잃어버린 일이다. 구입한 지 3년이 지나 금전적인 손해는 없으나 기록된 친구나 지인들의 번호가 날아갔으니 진동이가 애써 감추려고 해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친구들을 무시아의 명소로 안내한다. 확 트인 해안 마을길을 따라 마주치는 커다란 소리를 내며 우는 하얀 파도가 눈을 사로잡는다.20여분 만에 성모 마리아 교회에 도착한다. 마리아가 선교활동이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무시아에 숨어든 야곱을 격려하기 타고 온 돌로 만든 배가 이곳에서 부서진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교회다. 교회 앞에 널린 여러 모양의 바위들이 성스럽게 여겨지고 있다. 특히 부채모양의 바위는 돛으로 불리고 주변의 바위들은 선채로 여겨진다. 돛을 중심으로 7번 시계방향으로 돌면 복을 받는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친구들이 얘기를 듣고 세심히 둘러보고 사진을 찍기에 쉴 틈이 없다.
토요일인 까닭에 평소엔 문이 닫힌 교회가 10에 열린다. 단장도 처음으로 교회를 들어가 보는 행운을 갖는다. 설교단 뒤 벽 중앙에 안치된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상이 교회의 의미를 대변해준다. 아주 작은 평범한 교회이지만 무척 경건해 옷깃을 다시 한 번 저미게 한다. 교회 안 뒤에 있는 조그만 가게에서 성물을 사려고 순례자와 관광객이 줄지어 서있다.
교회를 나와 바로 뒤 언덕길을 따라 조그만 산으로 기어오른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2002년에 이곳에서 대형유조선이 침몰해 깨끗한 바다가 오랫동안 오염된 슬픈 여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세운 성스러운 자리와 걸맞지 않는 두 조각의 기념비다.
해발 150m도 안 되는 산의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사방의 전경이 숨을 멈추게 할 정도로 환상적이고 아름답다. 특히 파도가 넘실되는 거창한 대서양과 하모니를 이룬 어촌마을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가슴 깊이 파고든다. 산에서 내려와 좁은 골목길 이곳저곳을 누비며 마을 중앙에 다다른다. 11시30분이 흐르고 있다. 오후 일정은 1시30분에 시작하기로 하고 각자 자유 시간을 갖도록 한다. 진동의 핸드폰을 찾기 위해 로자스와 함께 근처에 있는 작은 경찰서에 가 신고한다. 점심을 마치고 약속대로 정시에 모여 오전과는 달리 반대편에 놓인 해안 길을 유유자적하게 걸어간다. 건강이 다소 문제가 생긴 경하와 그를 돌보려는 한성이는 뒤에 남는다.
2시간여 해안가를 상큼한 공기를 마시며 즐기다. 아울러 주변 산림의 정초한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산책을 마치고 저녁을 하는 8시까지 자유롭게 시간을 쓰도록 한다. 알베르게에서 5분도 안 걸리는 해안 광장에서 볼 수 있는 7시40분에 펼쳐지는  일몰을 놓치지 말라고 거듭 당부한다. 한편 성모마리아 교회에서 7시에 미사가 열리는 관계로 친구들한테 선택의 길을 열어둔다. 결국 점심을 들고 산티아고 떠난 인환, 윤식과 미사에 참석한 경하, 한성이를 제외하곤 바다 속으로 몸을 던지는 태양을 목격한다. 그러나 수평선에 구름이 짙게 덥혀 기대한 만큼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일몰은 볼 수 없다.
알배르게에 돌아오니 오후에 로자스와 장를 보아온 재료로 그녀와 헝가리에서 잠시 들른 그녀의 친구인 일급 요리사가 고유의 헝가리 음식을 만드느라고 여념이 없다. 가다리고 기다리던 저녁이 8시 정시에 시작된다. 알베르게에 묵고있는 다른 9명의 외국 순례자들도 함께 한다. 서로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며 만찬을 즐기니 국제적 행사와 다를 바 없다. 바로 이런 분위기가 카미노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징이다. 종교, 국가, 종족의 구별 없이 하나가 되는 게 카미노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9시30분 경 마지못해 식사를 접고 참석한 외국인들과 작별인사를 나눈다. 창호와 몇몇이 식당에서 그대로 주저앉아 남아 있는 자니워커를 비워가며 여운을 끌고 간다. 밤 11시에 소등에 맞춰 침대에 몸을 누인다. 내일이면 스페인을 떠나야 하는 아쉬움이 가슴을 후빈다. 마음속에 잔잔히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다.

열셋째 날   10월22일 (일)

그간 깊숙이 정이 들었던 스페인을 떠나는 날이다. 무시아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떠날 채비를 마친다. 오후 1시30분 택시 3대에 나누어 타고 한1시간여 달려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한다. 4시30분에 아이베리안 여객기를 타고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 터미널 4에 5시40분경 도착한다. 상하이로 11시15분에 출발하는 중국동방 항공기를 타려고 터미날 1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데 자칭 루마니안이라는 친구가 다가와 도움을 준다. 친절하게도 순환버스 타는 지상의 역에 안내해놓곤 9유로를 내라고 강요한다. 하도 기가 차지 않고 빨리 그 놈의 더러운 인상을 보지 않으려고 10유로를 내던지 듯 건네준다. 공항에서 하루 종일 우리처럼 어리버리한 여행자를 노리는 전문 사기꾼인 것 같다. 나름대로 해외여행을 많이 한 단장이 처음으로 당한 황당한 사건이다.
잊기 어려운 더러운 돌발 사고를 뒤로하고 상하이행 여객기에 몸을 싣는다. 정시에 출발해 길고긴 10여 시간의 비행을 거쳐 상하이 공항에 23일 저녁 6시15분에 도착한다. 승객 검사대에서 24시간 자유체류 도장을 여권에 받고 배낭을 찾아 공항 문을 나서니 상하이에서 미국 건축회사에 3년째 근무하고 있는  단장의 둘째 자 막내아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를 운송하기 위해 그가 빌린 두 대의 봉고차를 타고 예약해 논 시내에서 조금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 있는 호텔에 도착하니 9시를 넘어서고 있다. 대충 짐을 풀어 놓고 그가 예약해둔 근처에 있는 음식점으로 부리나케 내닿는다. 문을 닿을 시간이 다가오거 있기 때문이다. 식당에 들어서니 어마어마한 다양각색의 중국 음식이 두 병의 질 좋은 백주와 함께  15명의 원탁테이블에 놓여있다. 친구들 모두가 맛있는 성찬과 좋은 술이라며 단장의 예쁜 아들을 칭찬하기에 바쁘다. 거의 모든 음식과 맥주 등 술을 마시고  호텔에 돌아오니 11시가 지나고 있다. 같은 방에 있는 창호가 돌아오는 도중에 구입한 두 병의 백주로 다시 술판을 연다. 진동이가 빠질 리 없다. 새벽 2시가 넘어 판이 끝난다. 대단한 용사들이다. 빠질 것 같은 눈을 급히 재운다.

열넷째 날   10월24일  (화)

아침 7시경 일어나 밖으로 나가 허름한 식당에서 명성이 높은 완자탕을 창호 그룹과 함께 든다. 반주가 자연히 겻 들여진다. 간밤에 그렇게 마시고도 4병의 맥주를 짧은 시간에 들이킨다. 인간의 형상을 지닌 거대한 하마처럼 여겨진다.
어제 이용한 봉고를 타고 터미널 1에 오후 1시쯤 도착 한다. 2시간 후 여객기에 몸을 실어 5시40분 경 인천공항에 내린다. 짐 찾는 벨트에서 서로 작별인사를 나누며 15일의 순례여행 문을 닫는다. 모두가 건강하게 힘든 행군을 마친 게 고맙고 자랑스럽다. 친구들과 갓 쌓은 추억을 되새기며 집으로 향하는 리무진버스에 지친 몸을 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