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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야기
2권 사랑 원론편
제 2장 사랑이란 2
5. 사랑의 힘
사랑은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서양철학의 실수가 지식만을 세운 것입니다. 지식의 세계는 나중에는 분별밖에 없습니다. 철학사조의 인식론으로는 오늘의 세계를 수습할 도리가 없습니다. 지식은 알면 알수록 세분화됩니다. 누가 더 세밀히, 누가 더 깊게 아느냐입니다. 높다는 관념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꾸 파고들어가다 보니 세분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식을 중심으로 한 서양문명의 최후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식으로 분립되고 고립된 상태에서 자기만의 행복을 누리려고 하면 이 세계는 파괴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정서적인 사랑은 분립이 아닙니다. 사랑의 마음은 하나입니다. 분립이 아닌 포괄적입니다. 포괄적인 동시에 포용적입니다. 포용과 포괄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릅니다. 사랑은 안팎에 포용적인 관계를 맺어서 순환작용을 합니다. 그다음에는 상응적입니다.
상응적이라는 것은 뭐냐? 언제나 할아버지 절대주의가 아닙니다. 손자 절대주의가 아닙니다. 할아버지도 손자가 되고 손자도 할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상응작용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것만이 전체 분야에 적응시킬 수 있는 하나의 주체성 혹은 환경권이 될 때, 그 주체성과 환경에 포용될 수 있습니다. 그 환경과 주체성이 뭐냐? 지식도 아니고 권력도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배고플 때에 어머니 품에 안기면 배고픈 걸 잊고 그 자리에서 잠을 잘 수 있습니다. 귀한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사랑이 귀한 것입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남편이 죽어 갈 때는 애지중지하던 다이아몬드를 팔아서 병원비로 쓸 수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감동시켜서 이 세상 비밀 보따리 가운데 제일 좋은 것, 제일 귀하다고 하는 것까지 끄집어내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끔 하는 것은 뭐냐? 돈을 가지고도 안 되고, 지식을 가지고도 안 되고, 권력을 가지고도 안 됩니다. 그것은 사랑으로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사랑하는 아내가 사지에 들어가면, 아무리 호랑이 같고 도둑놈 같고 깡패 같은 남편이라도, 아무리 세상에서 제일 나쁜 명사를 갖다 붙일 수 있는 남편이라도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 사랑하는 아내를 구해주려고 하는 힘이 나옵니다. 이걸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랑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139-196)
참사랑에는 만사가 오케이
우리는 무엇을 중심으로 해서 삽니까? 나는 요즈음 공부하는데 지식 가지고 살지 할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부모에게 아들딸이 필요한데, 왜 필요하냐 하는 논리적 근거가 없습니다. 왜 자식이 필요하냐? 자식이 없으면 영원한 세계인 영계에서 완전한 합격품이 못 됩니다. 저세계에서 합격품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갖춘 거기에 100점을 맞을 수 있는 조건이 없습니다. 할아버지도 100점, 어머니도 100점, 자기도 100점, 자기 아들딸도 100점으로 꽉 채울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단 하나 참사랑뿐입니다.
그 참사랑은 어디에서든지 100점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도 100점, 낮은 데서도 100점, 높은 데서도 100점, 동에서도 100점, 서에서도 100점, 남에서도 100점, 북에서도 100점, 전후에서도 100점, 어디든지 통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만사가 다 오케이입니다. 100점은 어디서나 환영합니다. 눈도 환영하고, 코도 환영하고, 입도 환영하고, 손도 환영하고, 다 환영합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자기 아내의 가슴을 만지려고 하면 그것만은 안 돼요! 그럽니까? 여자들이 시집가서 신랑한테 아이구, 내 젖가슴을 만지기 위해서는 천년 공을 들여야 돼! 그럽니까? 사랑하는 남편이 만지지 않겠다고 해도 자연히 손을 끌어당겨서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줍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합니다. 누가 따로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젖가슴을 만지면 그걸 주무르게 돼 있고, 손이 궁둥이로 가면 다 알게 돼 있습니다.
참새들이 어떻게 그렇게 짝짓기를 해서 알을 낳고 새끼를 치겠습니까? 하나님이 지휘봉을 들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가르쳐줬겠습니까? 만나면 자연히 아는 것입니다. 전기가 통합니다. 교육이 필요없습니다. 자연이치로, 천리법도에 의해서 하기 때문에 가르쳐줄 필요가 없습니다.
할아버지들이 사랑의 맛을 보고는 아이구, 옛날에 먹던 것 싫어! 오늘날 문명의 향취와는 달라! 싫어! 사랑 냄새 집어치우고 다른 냄새면 좋겠다! 이러겠습니까? 모든 세포가 하, 맛있다! 할 수 있는 맛은 빵도 아니고 밥도 아닙니다. 그래서 사랑은 모든 것의 핵을, 초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정수(精髓)와 같은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한 사랑으로 상대하면 무사통과입니다. (139-198)
사랑은 하나로 만드는 조화의 모체
우주를 보면 달도 둥글고 태양도 둥그렇습니다. 물질의 최소단위가 원자인데, 원자도 전부 둥그렇습니다. 둥근 데는 혼자 둥글 수 없습니다. 혼자서는 절대로 둥글 수 없습니다. 주체와 대상 관계가 활용적 조화를 원만히 발휘하려니 둥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존재들은 이상권을 필요로 하고 거기에 작용을 하고 관계를 맺으려고 하기 때문에 자연히 둥글어집니다.
우리 인간들 가운데 원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여자하고 매일같이 싸움하는 사람은 원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원만한 사람은 동으로 방향을 취했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취했으면 취했지 부딪치지 않습니다. 꼭대기를 꾹 누르면, 푹 들어갔다가 다른 데로 가서 나오는 것이지 자기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우주가 둥글다고 했는데, 자기 혼자 있어서는 둥글어질 수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관계되어 있어야 둥글어집니다. 그 원형을 만들 수 있는 모체, 조화의 모체는 사랑의 작용입니다.
남자가 남자로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 관계는 어떤 기관의 국장이나 과장 같은 사회적 조직체의 주체 대상 관계가 아닙니다.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는 그런 관계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절대적으로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무엇이 작용하느냐? 돈, 지식, 권력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작용합니다. 그것은 입체적인 동시에 전체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녀 총각들이 사춘기가 되면 숨쉬는 숨결이 가빠집니다. 그것이 어느땐 낮지만 높아집니다. 자기 혼자서는 아무리 손을 높이 들고 높아지려고 해도 높아질 수 없지만, 남자나 여자라는 상대가 보이면 뒤에서부터 파장이 와서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다리가 들리고 팔이 들리고 몸이 들려 끌려갑니다. 그런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도 사랑의 대상 가운데 가서 쉬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피조세계 가운데 그런 존재가 누구겠습니까? 그런 존재는 내가 제일 높다, 하나님도 내가 말 타고 다니듯이 타고 다닌다는 그런 배포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부려먹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존재가 하나님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존재가 있으면 그런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 이리 와요! 해도 따라옵니다. 그 말은 사랑의 상대적 존재가 되면, 하나님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원한 존재이므로 한번 있다가 없어지는 사랑의 상대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존재를 필요로 합니다. 그런 존재는 피조세계에서 아무리 찾아봐야 사람 외에는 없습니다.
그럴 수 있는 힘이 있으면 아무리 포악한 주권자라도 그 앞에는 머리를 숙입니다. 아무리 포악한 독재자라 하더라도 그 독재자를 머리 숙일 수 있게 하고, 독재자를 녹여낼 수 있는 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164-78)
사랑에서만 평화․이상․행복의 개념이 나온다
완전한 플러스가 있으면 완전한 마이너스는 자연히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좋은 남자를 얻어가려고 생각하지 말고, 좋은 여자를 얻어가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좋은 남자가 되고 좋은 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완전한 여자와 완전한 남자는 살짝만 스쳐도 손끝에 벌써 전기가 통합니다.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평화(平和) 하면 평(平)으로 화(和)한다는 말입니다. 여자의 사랑과 남자의 사랑은 동등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중심으로 평화의 개념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평화나 이상, 행복은 어디서 나오느냐?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남자는 여자, 여자는 남자, 아버지 어머니는 아들딸이 있어야 합니다. 주체와 대상 관계를 이뤄야 행복합니다. 주체와 대상 관계에서 사랑이 엮어져야 행복합니다.
사랑을 공통분모로 하면, 돈도 권력도 다 흡수됩니다. 장관이 되어 있는 아내가 과장인 남편이 들어올 때 당신은 과장밖에 못 되니 내 방에 못 들어와! 내 근무처인 장관 방에는 부장 국장을 거쳐서 차관까지 사인이 나야 들어오는데, 과장급인 당신이 어떻게 장관 방에 들어와서 사랑하려고 해? 그럽니까? 아내가 아무리 장관이라도 남편이 서슴없이 방에 들어와서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하며 좋아서 덮치면 좋다고 하지 도적놈 왔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에는 그런 특권이 있습니다.
사랑은 최저의 자리에서 최고의 자리로 비상해서 타고 앉고, 두들겨 패더라도 좋아합니다. 그러니 사랑의 매는 행복한 것입니다. 사랑의 주먹은 고마운 것입니다.
요즘 세대차를 말하는 젊은 사람한테서 그런 개념을 찾아볼 수 있습니까? 너 하나 했으면 나 하나 하고, 일대일주의입니다. 나 하나 있는데 너 하나 없으면 퉤! 합니다. (139-202)
사랑의 힘은 죽음을 초월할 수 있는 위대한 힘
총각들은 처녀들을 보면 마음이 설렙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여자같이 못생긴 존재가 없습니다. 여자들이 웃으면 조그마한 얼굴이 더욱 조그마하게 됩니다. 서양 여자들은 더더욱 조그마합니다. 코가 높고, 눈두덩이 나오고, 볼이 튀어나와 있는데다 마음이 상해서 울 때나 하하하 하고 웃을 때는 꼭 원숭이 사촌 같아서 볼품이 없습니다.
그런 여자를 대해 남자는 자기 생명을 겁니다. 아무리 잘난 남자라 하더라도 생명을 건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교육했습니까? 할아버지 할머니도 안 했고, 학교에서도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가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앞에 사랑줄을 매어 놓으면 아무리 가지 말라 해도 사랑줄을 따라갑니다. 남자와 여자가 다리가 들려 흔들흔들 하더라도 떨어지면 안 된다며 목을 걸고 있습니다. 떨어지면 여자보다는 남자가 무거우니까 남자가 먼저 떨어질 텐데 여자가 다리가 짧기 때문에 먼저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 공평합니다. 그러니까 할 수 없이 여자는 남자를 붙들 수밖에 없습니다.
여자는 들렸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남자를 붙드는데, 남자도 들려서 여자를 붙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둘 다 끝장이 납니다. 그렇게 붙들고 끝장이 나도 좋다 하게끔 할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을 가진 힘이 사랑의 힘입니다. 지식의 힘도 아니요, 권력의 힘도 아니요, 돈의 힘도 아닙니다. 사랑의 힘입니다.
그 위대한 능력을 가진 힘 자체는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이냐? 그 위대한 힘을 가지고 세계를 주름잡자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주체는 선한 존재입니다. 진정한 사랑으로 남편을 위할 때는 남편은 그 아내를 원수시할 수 없습니다. 도박장 같은 나쁜 데 가려고 하는 남편 목을 붙들고 앙앙거리며 살을 물어뜯어서 큰 상처를 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남편인 자기를 위해서란 것을 알면 그 아내를 원수시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 그렇게 살을 물어뜯는 것은 악이 아니라 선입니다. (139-207)
사랑은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다
그러면 악을 어떻게 소화하느냐? 이것이 이 지상세계의 문제로 되어 있습니다. 이 악한 세계를 무엇으로 소화할 것이냐? 군사력으로? 경제력으로? 지식의 힘으로? 황금의 힘으로? 이 악한 세계를 어떻게 소화해야 되느냐? 사랑의 힘으로 소화해야 됩니다.
능력이 많고 권능이 많고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굴복시킬 수 있는 하나의 비법이 뭐냐? 힘 가지고도 안 되고, 지식 가지고도 안 되고, 돈 가지고도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욕심은 하나님까지도 싸워서 이기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그런 사람의 대표자입니다.
하나님까지도 내가 굴복시킬 수 있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내가 빼앗아 하나님보다 높은 존재가 되고 싶다. 하나님 이상이 되고 싶다 할 때, 그것은 힘이나 지식이나 돈 가지고 되지 않습니다. 오직 참사랑으로만 됩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 참사랑에 걸리면 하나님도 내 독에 따라 들어가 있으세요 할 때는, 어, 그러자! 합니다.
늙어 죽게 된 할아버지 상투 끝에 증손자가 올라가자마자 미끄러져 내리면서 오줌 똥을 쌌다고 합시다. 그 할아버지 얼굴로부터 온 몸이 범벅이 되었다면 그걸 용서할 법이 있습니까? 할머니 할아버지도 아이구!, 어머니 아버지도 아이구!, 삼촌들도 아이구, 큰일났다 하며 야단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증조할아버지는 그놈의 자식, 혼을 내줘라! 하지 않습니다.
이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위대한 힘, 위대한 능력, 위대한 조화단지가 사랑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이 사랑의 도리를 가지고 가면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인체에 느끼는 모든 감각은 신경계통을 통해 뇌에 전달됩니다. 구린내 나는 발 냄새도 머리의 신경계에 들락날락합니다. 그것을 반대하는 것이 없습니다. 사랑으로 엮어진 궤도를 따라서 신경을 위하고 살을 위하고 몸 전체를 위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만이 평화의 기쁨이 됩니다. (139-209)
참사랑은 절대적 측정기준
사랑은 입체적으로 작용합니다. 사랑의 물결은 평면적인 원형 물결이 아니라 입체적인 파동까지 일으켜서 구형세계를 창조해 냅니다. 평면적 구형세계를 완성하면 입체적으로 상대적인 세계까지 창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최고로 멋진 것입니다. 두 사람이 사랑하지만, 이 사랑을 확대한 사랑권의 인연이 온 지구성의 동과 서, 남과 북에 연결됩니다. 그럼으로써 이와 같은 기반 위에 입체적이요 구형적인 사랑이 찾아옵니다.
영계에서는 구형의 사랑을 합니다. 사랑의 모든 진맥은 하나의 핵을 중심으로 교차점을 이루어 구형을 이룹니다. 이 교차점, 통과하는 중심점은 하나입니다. 천주가 그 기준을 통해서 연결되는데, 그것이 사랑의 핵입니다. 이걸 통하지 않은 것은 전부 파멸입니다.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느냐 하면, 바로 그 중심점에 계십니다. 그 중심점에 계시는 하나님은 좋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의 자극이 모든 세포를 통해 거쳐가기 때문에 하나님은 매양 기쁘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왕좌에 앉아서 천년 전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만년 후에도 하하하! 좋은 세계다! 좋은지고, 행복한지고, 이상적인지고! 할 것입니다. 다른 데서는 이런 결론을 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이냐? 완전한 사람의 측정기준을 세우자는 곳입니다. 절대적 측정기준이 되는 것이 뭐냐? 참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비로소 역사 이래 처음으로 참부모를 말했습니다. 절대적 측정기준이 되는 사랑을 중심으로 참사랑과 연관성을 지닌 참부모를 말했습니다. 참부모가 있으면 절대적 측정기준을 연결할 수 있는 출발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 서로 완전한 측정기준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가정의 표준은 가정만의 표준이 아니라 우주의 핵으로서의 표준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수정은 아무리 깨뜨리고 깨뜨려도 모양이 그대로입니다. 통일교회가 그렇습니다. 아무리 깨뜨려도 모양이 그대로고, 아무리 합해도 모양이 그대로입니다.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그럴수록 필요합니다. 사랑이라는 수정 결정체를 가정에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크면 종족이 되고, 민족이 되고, 국가가 되고, 세계가 되고, 천주가 됩니다. 그리고 영계까지도 측정하는 분모가 생겨나게 됩니다. (139-204)
사랑은 천하를 심판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참사랑을 가지고 천하를 심판하면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아내가 아무리 성이 나서 나 죽는다! 하더라도 남편이 사랑으로 품으면 가라앉습니다. 이렇듯 사랑은 놀라운 것입니다. 사랑은 차별이 없는 무등급의 세계입니다. 교회는 그것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하나되는 도리를 가르쳐주는 곳이 교회입니다.
선생님이 영계의 모든 곳에 고속도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깊은 산골짜기든 나라 끝에 있는 곳이든 연결시킬 수 있고 거리를 가깝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달릴 수 있는 차만 있으면 됩니다. 그 차는 사랑의 차입니다. 사랑의 자동차만 타고 있으면 어디든지 달려갈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댄버리에 있을 때, 영계와 육계가 거짓 부모로 말미암아 닫혀졌던 담을 헐고 참부모를 만날 수 있는 문을 열어 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에 있는 조상들이 사랑의 본심,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도리를 가지고 한 단계씩 끌어 올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계 통일운동이나 지옥 해방운동도 이 사랑의 도리로써만 가능합니다. 사망권까지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사랑에만 있습니다. 생명의 길만 가지고는 사랑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 세상의 사랑은 돈보다 못한 사랑이 됐습니다. 사랑 때문에 생명을 버리겠다는 것은 그래도 참사랑입니다. 오늘날 아내를 위해서 죽겠다고 하며 결혼한 사람 있습니까?
그래서 선생님은 그런 세계를 놓고 얼마나 고심을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현실적으로 나와 관계돼 있는 영향권입니다. 이것을 처리할 능력이 없어서는 이 시대권에 심판당하지 심판할 수 있는 사람이 못 됩니다. 옳고 그르다고 결론 지어놓은 것이 그르지 않아야 역사시대에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이런 도리를 중심으로 한 논리적 기반에서 결정을 지어놓은 것은 역사시대에 심판하려야 심판할 수 없습니다. 심판할 무엇이 하나도 없습니다. 영원한 세계에 가서 심판자의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사랑을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139-228)
사랑의 힘은 통일권의 힘
사랑의 힘은 통일권의 힘입니다. 이 통일권의 힘은 어디든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곳은 순식간입니다. 이 우주의 참된 사랑은 사랑의 신경기관이 대번에 압니다. 사랑은 배우지 않고도 주관할 수 있습니다.
이 땅 위에서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고아가 뭐냐?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은 사람을 고아라고 합니다. 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을 고아라고 하느냐? 영계와 영원히 연결시킬 수 있는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독신으로 사는 사람을 불쌍하다고 하느냐? 과부 3년이면 보리쌀이 서 말이고, 홀아비 3년이면 이가 서 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서 말 단지를 다 집어던질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과부로 살면 팔자가 사납다고 합니다. 왜 사나우냐? 사랑의 길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홀아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아내나 남편이 죽으면 슬퍼하느냐? 그것은 우주의 보호권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가정을 중심한 사위기대 이상권을 이루어 영원한 세계의 공식으로서, 하나의 참 모델로서 불합격되니 영원한 이상적 사랑의 요소권에 불합격된 것만큼 우주의 힘이 몰아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엉엉엉 하고 울음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나는 파괴돼 들어간다. 사랑세계에서 낙방하는구나. 아이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시련 도장에서 훈련받아야 될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극복해야 됩니다. 제2의 생을 촉진시키는 변화 과정이 죽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슬픈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세계로 비약하는 것이요 승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인들은 누가 죽었다고 울고불고하면 안 됩니다. 그가 얼마나 지상세계에서 사랑을 받아 사랑의 도리에 부합될 수 있는 우주 보호권에 연결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가 남긴 사랑권을 세상 모든 만민이 그 자리에 돌아가서 전통으로 이어받으려고 하는 운동이 벌어져야 되는데, 그 운동의 본거지가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과거와 다른 사랑을 느낍니다. 봄바람이 붑니다. 사탄세계는 아무리 봄이라 해도 찬바람이 불지만, 통일교회는 아무리 쌀쌀한 겨울일지라도 봄바람이 붑니다. 꿈이 있습니다. (139-215)
6. 사랑의 위력
참사랑의 맛과 위력
참사랑에는 모든 것이 꽉찹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눈에 사랑이 들어가면 하나님이 사랑에 취합니다. 하나님도 사랑의 침을 한번 맞으면 아편에 취하듯 취합니다.
가정에서 아버지가 사랑에 취해 있으면 어머니도 좋아하고, 아들딸도 좋아하고, 전체가 다 좋아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찌푸리고 있으면 어머니도 할 수 없이 찌푸리게 되고, 아들딸도 찌푸리게 됩니다. 또 어머니가 참사랑에 취해 있으면 아버지도 그 참사랑에 녹아납니다. 그 아들딸도 그 참사랑에 녹아납니다. 그 다음에 아들딸이 참사랑에 취해 있다면 어머니도 녹아나고, 아버지도 녹아납니다.
이렇듯 만민은 전부 사랑의 줄을 달고 다닙니다. 이렇게 줄이 하나씩 있다면 누구한테 불평하지 않습니다. 전부 참된 사랑의 단지를 찾아 빨 수 있는 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줄을 가지고 사랑의 상대자를 찾아 사랑을 빨아먹으면 그 맛이 그 어떤 것보다도 아주 달콤합니다. 그러므로 그 맛을 알게 되면 줄을 끊고 자꾸 파이프를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은 가다가 아이고, 이젠 됐다고 취해서 늘어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맛을 감정할 줄 아는 사람은 아이고, 더 맛있다, 더 맛있다 하면서 자꾸 잘라 버리고 줄을 따라갈 것입니다. (106-98)
참사랑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참사랑은 만능입니다.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자기가 이상을 그리면 이상을 그린 상대가 나타납니다. 남편이 못생겼다 하더라도 사랑하게 되면 못생긴 것이 아니라 잘생긴 것처럼 보입니다. 사랑 가운데는 못생긴 것도 다 숨겨집니다.
우리는 자기의 얼굴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매일같이 자기의 얼굴을 거울을 통해 보고 있지만 자기의 얼굴을 알지 못합니다. 사진을 보면서 아,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 하지, 거울을 통해 얼굴을 볼 때는 그런 생각을 안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못생긴 사람 중에 내가 제일 못생긴 사람 같고 잘생긴 사람 중에 내가 제일 잘생긴 사람 같습니다. 또 길쭉하다고 생각했는데 둥글게도 보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의 눈으로 보게 될 때는 자기처럼 잘생긴 사람이 없습니다. 눈 가까이에 무엇을 갖다 대면 보이지 않습니다. 적당히 떼어놓고 초점을 맞추고 봐야 확실하게 보입니다. 너무 가까우면 감지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언젠가 어떤 아주머니를 대해 사랑을 가지고 두 시간쯤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처음에는 별로 반응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얼굴 빛이 점점점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점점점 환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랑을 가지게 되면 빛을 발하게 됩니다. (106-98)
그러므로 아무리 화가 났던 하나님이라도 조그마한 참사랑의 손자가 아장아장 와서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할 때는 하나님도 ������오! 하면서 항복합니다. 그만큼 사랑이 위대합니다. 천하가 다 걸려 있는 그 순간에도 참사랑이란 한마디에는 전부 다 해방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104-139)
사랑은 지극히 낮은 자리에서 높은 자리로 비약할 수 있다
그러면 사랑이 왜 필요하냐? 사랑은 위대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리 머슴살이하는 머슴이라 하더라도 주인의 딸과 사랑관계를 맺게 될 때는 머슴한테 전부 다 내줘야 됩니다.
그래서 사랑은 지극히 낮은 자리에서 지극히 높은 자리로 비약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강한 담벽이라도 격파할 수 있습니다. 그런 위대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혼란한 세상에서 인류를 사랑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느낀 사람은 혼란이 문제가 아니고 비약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시골에 있는 순박하고, 무식하며, 갖추지 못해 부족한 것이 많은 처녀와 사랑관계를 맺게 되면, 그 처녀는 그날부터 대통령과 같은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받게 됩니다. 이렇듯 아무리 낮은 자리에 있었더라도 높은 자리에 순식간에 도약할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오늘날 인간이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하나님이 아버지고, 내가 아들임에 틀림없다고 할 수 있는 사랑관계를 맺으면 하나님과 같이 안방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사랑만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남자 여자가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사랑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하나될 때는 하나님이 소유한 모든 것의 상속권이 그 사랑의 대상 앞에 부여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천국가겠다고 야단하지만 하나님이 살고 있는 그 나라, 하나님이 주관하는 그 나라에 어떻게 갈 수 있느냐? 믿음 가지고도 안 됩니다. 오로지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진대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막연한 사랑이 아니고 구체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모셔 올 수 있는 것도 사랑입니다.
선생님이 미국의 댄버리 교도소에서 생활할 때, 세계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습니다. 미국은 2억4천만이 살고 있는 자유세계의 지도국가 위치에 있으며, 수만 명의 목사를 비롯하여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많이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무엇이 안타까워서 하나님이 댄버리 교도소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선생님을 찾아와 깨웠겠느냐? 10억 가까운 기독교인들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2억4천만의 미국인 가운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하나님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대상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감옥에 있는 선생님에게 하나님이 찾아와서 남미 니카라과 문제를 네가 책임지지 않으면 미국이 큰일난다고 통보했겠습니까? 누구보다도 선생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아니면 안 되겠기 때문에 미국에 들어가서 사랑의 깊은 얘기를 속삭일 수 있는 자는 너밖에 없지 않느냐? 하면서 선생님을 찾아와 통보했습니다. 천지의 기밀을 토로할 수 있는 사람은 사랑의 길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습니다.
한국의 풍습을 보면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비밀 얘기를 할 때, 어머니가 옆에 있으면 나가라고 해놓고 아들하고만 의논합니다. 왜 그러냐? 아내의 사랑은 변할 가능성이 있고 아들의 사랑은 변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요사스럽게 변하는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이 사랑으로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감옥에 있는 선생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142-37)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기 위한 작용의 모체는 사랑
힘의 세계에는 계열이 있습니다. 강한 힘, 작은 힘을 통해서 질서가 형성됩니다. 그러나 힘 가지고는 위 아래를 하나로 만들 수 없습니다. 동서남북을 엮을 수 없습니다. 힘은 직선작용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혜의 왕이어서 땅 위에 인력이라는 것을 만들어 지구성의 모든 운동하는 것은 포물선을 그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계열을 동화시킬 수 있느냐? 상하․좌우․전후를 무엇이 연결시킬 수 있느냐? 서로 상대끼리 주고받는 힘으로만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이 있기 전에 작용이 먼저 있어야 하고, 작용이 있기 전에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우주는 힘으로 되어 있다고 막연하게 말하는데, 그 힘보다는 작용이 먼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전기가 먼저냐, 전기작용이 먼저냐? 전기작용이 먼저입니다. 논리적으로는 작용이 먼저입니다. 힘이 먼저가 아닙니다. 힘의 배후에 작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작용은 혼자 할 수 있느냐? 작용 뒤에는 그 작용을 하게 하는 플러스 마이너스, 주체 대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역사를 통해서 이루려는 그 하나의 목적의 세계도 주체 대상으로 된 통일권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세계와 공산세계, 하나의 유심세계와 유물세계가 주체 대상관계로 나타나서 싸웠습니다. 이것이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하나로 만들어야만 본래 하나되어야 하는 우주의 근본된 힘의 작용 원칙에 따라 마이너스극과 플러스극, 남극에 있는 플러스극과 북극에 있는 마이너스극이 하나되어 통일세계가 벌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기 전에 하나의 작용을 먼저 찾아야 되고, 하나의 작용을 찾기 전에 하나의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모체를 찾아야 됩니다. 그 분모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입니다. 이상도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말이요, 행복도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말이요, 모두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사람 가운데 그 분모가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인간의 몸과 마음이 상대적 입장에서 사랑이라는 공통분모를 중심으로 한번 빙 돌아 봤느냐? 돌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언제 몸과 마음이 하나될 것이냐?
사람의 몸은 4백조 개에 달하는 세포로 되어 있습니다. 이 세포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사람과 보이는 몸의 사람이 있는데, 이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몸이 마음은 내 것이다 하고, 마음이 몸은 내 것이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너를 필요로 하고, 너는 나를 필요로 한다 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귀한 사랑도 내게 있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에게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 것의 주인은 여자고, 여자 것의 주인은 남자입니다. 주인을 서로 엇바꿔 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들이 자기 것인 양 요사스럽게 바람을 피우고 돌아다니면서 세상을 다 망쳐 놓았습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아내의 주인은 남편이고, 남편의 주인은 아내입니다. 무엇을 중심한 주인이냐? 사랑을 중심한 주인입니다. 사랑을 왜 좋다고 하느냐? 사랑할 때는 몸 마음의 모든 세포가 같이 작동하기 때문에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타락한 사랑은 작동하면서 떨어져 내려옵니다. 악한 사랑은 같은 자리에서 출발할지라도 작용하면서 자꾸 떨어져 내려오게 됩니다. 작용하면서 행복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고, 분열과 탄식의 요인이 되어 자꾸 파괴와 분열작용을 일으킵니다. 원자분열, 파괴작용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타락한 사랑, 악한 사랑은 다 깨집니다.
그 깨진 사랑의 조각이 우리의 가슴에 다 들이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쪼개져 내려온 사랑이 휘젓고 있기 때문에 세계 인류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 내가 왕초인데 하는 할아버지도 다 병이 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요사스러운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청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라볼 때 이 세상은 악마의 터전입니다. 세계적 악마, 국가적 악마, 사회적 악마, 가정적 악마, 부부적 악마, 개인적 악마, 전부 다 악마의 세계가 되어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 마음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 싸우는 것이 선한 편이냐, 악한 편이냐? 싸우는 것은 사망의 경계선과 접하고 있는 것이요, 화평은 생명과 번식과 발전과 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망적 사랑은 지옥과 통하는 것이요, 선의 사랑은 천국과 통합니다. (140-288)
사랑이란 하나되게 하는 것
몸과 마음이 하나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드는 것은 인간의 그 무슨 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들 수 있는 것은 뭐냐? 보다 높은 하나님의 사랑의 힘밖에는 없습니다. (61-280)
무엇이 우리의 몸 마음을 하나 만드느냐? 그리고 남자와 여자는 무엇이 하나되게 하느냐? 하나되게 하긴 무엇이 하나되게 해? 그냥 그대로 하나되지라고 할지 모르나 남자와 여자를 하나되게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합하게 하는 힘입니다. 사랑이란 남자와 여자를 하나되게 하는 힘입니다. 서로가 완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그가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바울이 영적인 체험을 한 후에 자신이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몰랐다고 한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33-24)
내가 나를 찾는 가치의 정착점이 생기는 때는 사랑을 할 때입니다. 남자가 남자로 태어난 그 가치가 정착할 수 있는 자리에 가는 것은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혼하지 않으면 사람 축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사랑을 알게 될 때에 비로소 남자로서의 완성체가 되고, 여자로서의 완성체가 됩니다. 사랑을 중심으로 완성이 벌어집니다. 이것이 일반 사회의 도의적 관념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5백명이면 5백명의 가는 방향이 제각기 있습니다. 교수든 누구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자랑할 수 있는 재산이란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어 공의의 결실을 갖춘 것입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데는 어떻게 하나되느냐? 이것은 돈 가지고는 안 됩니다. 돈 가지고 몸 마음을 하나 만들 수 없습니다. 지식 가지고도 안 됩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 살까지 간다는 말이 있는데 맞는 말입니다. 습관성, 고질된 타락성을 벗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역사성을 지니고 세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역사를 밟아 치울 수 있고, 세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자각된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것을 정복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하나될 것이냐? 남자 여자가 생리적인 모든 것이 다르고, 모든 구성의 본질 방향이 다르지만 사랑으로 하나됩니다.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도 일시적이지만 하나될 수 있는 길을 취해 나가고 있습니다. (211-264)
참사랑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문을 연다
우리 인간은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 욕망은 나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좋은 것입니다. 욕망이 없으면 몸과 마음이 이상경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영원히 꽃을 피우고 싶어합니다. 폭발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사랑의 대상끼리 화합하게 되면 폭발을 일으킵니다. 전기도 플러스 선과 마이너스 선을 갖다 대면 스파크가 일어납니다. 또 사랑은 광명한 힘으로 모든 것을 점령합니다. 그것을 이길 수 있고 그 힘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사랑에는 그런 폭발작용이 있습니다. 사랑의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접선할 때 폭발하면서 나오는 빛은 우리 인간은 볼 수 없지만, 그걸 볼 수 있는 하나님은 졸다가도 어! 하고 놀랄 정도로 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라는 존재는 모두가 사랑 얘기만 하면 입을 벌립니다. 모든 세포가 햐! 하고 문을 다 엽니다. 얌전하게 다물고 있던 입도 벌리며 햐! 하고, 눈도 번쩍 뜨고 귀도 쫑긋 한다는 것입니다. (179-114)
그러면 남자 여자의 4백조나 되는 세포들이 어떻게 조화하느냐? 이것들이 참사랑에 부딪쳐서 춤을 추는 그때가 조화하는 때입니다. 참사랑이 아니고서는 그것들을 진동시키지 못합니다. 영적인 오관과 육적인 오관이 한꺼번에 진동해서 공명권을 이뤄야 합니다.
무엇에 의해 4백조 개나 되는 남자의 세포와 여자의 세포가 한꺼번에 조화할 수 있느냐? 어떻게 남자 여자의 4백조나 되는 세포가 한꺼번에 공명할 수 있느냐? 무엇이 그런 공명을 일으키게 하느냐? 남자의 모든 세포들이 만세! 할 때는 여자의 모든 세포도 만세!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지식이나 힘으로는 안 됩니다. 참사랑만이 그렇게 만듭니다. (207-92)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을 붙들 것이냐, 박사학위를 붙들 것이냐? 또 돈을 취할 것이냐, 사랑하는 상대를 취할 것이냐? 사랑하는 사람을 붙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우리 몸과 마음을 하나로 만들지 못합니다. 지식이 아무리 있더라도 몸과 마음, 오관 전체를 한 초점에 모을 수 없습니다. 눈과 코와 귀와 모든 것을 한 초점에 모을 수 없습니다. 권력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서 최고의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에 의해서 영육 오관의 초점이 맞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적 오관과 육적 오관이 있는데, 이 둘의 초점을 하나 만들어서 폭발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에 의해서만 강력한 자극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부정하고 세포들이 전부 하나될 수 있는 것은 사랑에 의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참사랑의 힘만이 영적 육적인 세포를 하나로 만들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은 그렇게 못 합니다. 참사랑이 최고봉입니다. (189-194)
첫사랑의 위력
물질적 환경세계는 전부 주체 대상 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식물도 그렇고, 동물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다 그렇습니다. 왜 그렇게 되어 있느냐? 사랑으로 이성(二性)이 조화된 것은 전부 다 그런 입장입니다. 플러스 마이너스가 그 나름의 사랑을 중심으로 존재합니다.
하루살이는 8년 동안 수중에서 도를 닦고 밖에 나와서 하루 공중잔치하고, 한 번 만나고는 죽습니다. 사랑이 그렇게 좋은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결혼하게 되면, 남편과 첫사랑의 인연을 맺게 된다면 아이고, 남편 죽으면 나 죽는다 그럽니다. 첫사랑의 매력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인들에게 연애하지 말고, 딴 짓 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첫사랑의 인연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타락했을망정 첫사랑은 그런 힘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똥구더기 같은 사랑판입니다.
처녀라면 똥구더기한테 시집가고 싶겠습니까, 숫총각한테 시집가고 싶겠습니까? 숫총각한테 시집가려고 합니다. 숫총각은 뭐냐? 여자가 처음으로 만지는 생식기입니다. 숫처녀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 여자의 생식기 이야기를 하면 쌍소리 한다고 합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쌍소리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본연의 세계에서는 쌍소리가 아닙니다. (187-47)
남녀는 첫사랑을 가지고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이의가 없습니다. 첫사랑으로 맺어지면 인종 피부색 등의 문제를 다 초월합니다. 잘나고 못난 것도 다 초월합니다. 사춘기의 사랑은 빙빙 돌아갑니다. 그리고 시적이요 극적이요 문학적입니다. 희극과 비극이 교차되는 그런 때입니다.
사춘기에는 나뭇잎이 데굴데굴 구르는 것만 봐도 하하하 하고 웃습니다. 어디를 가도 통할 수 있고, 화합할 수 있는 소질이 풍부한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든지 가서 붙기만 하면 다 소화합니다. 다 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사랑은 무엇이든지 몽땅 점령합니다. 첫사랑의 안경을 끼고 보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상대가 어떻게 생겼든, 무엇을 먹든, 무엇을 어떻게 하든 전부 좋아합니다. 냄새나는 발을 갖다 대도 냄새가 안 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랑은 첫사랑 외에는 없습니다. (118-308)
첫사랑은 영원히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첫사랑에는 잘나고 못난 것이 없습니다. 첫사랑에 미치면 못생겼어도 보면 볼수록 예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사랑의 인연을 맺은 남자 여자들은 서로 미남 미녀로 보입니다.
첫사랑의 눈은 색맹입니다. 첫사랑의 눈으로 보면 시커먼 것이 하얗게 보이고, 하얀 게 시커멓게 보입니다. 그리고 첫사랑을 맺은 그 상대는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214-49)
사랑만이 상대적인 것을 하나 만들 수 있다
남자 여자는 수평입니다. 수평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또 종적으로 볼 때는 상하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상대권을 중심으로 모든 이상형이 그려지기 때문에 모든 말도 상대적으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 하면 남자 여자입니다.
그러면 남자 여자는 무엇으로 하나되느냐? 남자 여자는 각기 반쪽 세계입니다. 60억 인류가 아무리 많더라도 분모를 따져 보면 남자 여자입니다. 거기에는 나쁜 남자 나쁜 여자도 있고, 오색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하여튼 남자 여자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둘을 하나 만들 수 있는 모체가 무엇이냐?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또한 남자들을 하나 만들 수 있는 본질이 뭐냐? 지식 가지고 되느냐? 지식세계는 단어 하나만 더 알아도 너는 모르니 나를 따르라 하는 세계입니다. 전부 다 높아지겠다고 하고, 낮아지는 것은 다 싫어합니다. 그러면 돈 가지고 할 수 있느냐? 안 됩니다. 권력 가지고도 안 됩니다. 오직 사랑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전부 상대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큰 사람은 작은 사람을 사랑하고, 또 뚱뚱한 사람은 마른 사람을 사랑합니다.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은 반대 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흑백문제 해결, 동서 격차 문제의 해결 등 모든 역사적 내용의 암적인 것들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봐도 사랑밖에 없습니다. (198-72)
통일교회는 앞으로 오색인종이 하나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하나기 때문에 동서남북 방향과 계층이 다르다고 해서 그 축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같기 때문에 마음에 피는 꽃은 하나님의 사랑의 꽃입니다. 그러므로 남극에 가서 피나, 북극에 가서 피나, 동극에 가서 피나, 서극에 가서 피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초민족적인 결혼관이 가능합니다. (101-74)
그래서 사랑은 남자의 사랑도 귀하고 여자의 사랑도 귀합니다. 천하를 점령한 장군이나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이라 하더라도 여자의 사랑 앞에는 무릎을 꿇기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사랑이란 그렇게 위대합니다.
아무리 가냘픈 여자라고 해도 자기가 사랑하는 남편을 사랑으로는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올라가라면 올라가고, 내려가라면 내려가고, 돌아가라면 돌아갑니다. 거기에 사랑이란 뿌리가 철옹성같이 달려 있으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입니다. (174-31)
극과 극을 왕래할 수 있는 힘은 사랑의 힘
이렇게 보면 사랑이란 것은 혼자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에서 성립합니다. 이 모양은 둘의 자리로 보이지만 이 둘은 하나입니다. 하나가 위가 되면 하나는 아래가 되고, 하나가 동이 되면 하나는 서가 되고, 하나가 남이 되면 하나는 북이 되고, 하나가 앞이 되면 하나는 뒤가 됩니다. 어느 곳, 어느 환경에서나 자연스럽게 맞출 수 있는 능동성을 지닌 것이 사랑입니다.
선생님은 국제결혼을 많이 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결혼시킨 가정들과 언젠가 2주일 정도 같이 생활해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일본 여자와 미국 남자가 결혼한 부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옛날에는 서로 원수처럼 생각했는데, 사랑을 가지고 결혼해서 살다보니 국가 감정 같은 것은 자연히 사라지고 행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사람과 미국 사람, 서양 사람과 동양 사람은 전부 다릅니다. 키로부터 모양으로부터 말하는 것이 전부 다릅니다. 밥 먹는 것까지 전부 다릅니다. 80퍼센트 이상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사는데, 선생님이 그들에게 어색한 것이 없느냐고 물으니까 사랑이면 그만입니다라는 것이 그들의 답이었습니다. 그거 옳은 말입니다.
그것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교육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든 것이 다르지만 너희들은 하나돼야 한다고 해서 하나될 수 있느냐? 아무리 교육해도 안 됩니다. 그런데 사랑은 한번 불이 붙게 되면 화(和)해 버리고 동일화시킵니다. 국경을 삼켜 버리고, 문화 배경의 모든 것을 삼켜 버리고, 전통의 복잡한 것도 소화시키고 완전히 하나 만듭니다. 이것을 볼 때, 사랑이 위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사랑을 놓고 죽느니 사느니 하고 야단합니다. 사랑을 놓고 생명을 바치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한마디에 30년 50년 살던 일생을 한꺼번에 뒤집어박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던 사람이 한마디 함으로써 냉정하게 극으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극과 극으로 수시로 왕래할 수 있는 힘의 작동이 사랑의 힘입니다.
그 사랑은 만민이 좋아하는 사랑이요, 만민이 환영하는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 가운데서 태어나고 싶고, 살고 싶고, 죽고 싶어합니다.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193-138)
사랑이 없는 곳이 바로 지옥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 남자를 짓고 여자를 지었습니다. 지을 때 사랑을 중심으로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도 사랑입니다. 우리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에서부터 나왔으니, 근본에서 나왔으니 근본에서 나온 결과적 존재가 그러니 하나님도 사랑을 제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걸 볼 때 참된 사랑은 이웃이 보호해야 되고, 만물이 보호해야 되고, 천운이 보호해야 되고, 하늘땅이 보호해야 된다 하는 결론을 내리더라도 모순이 아닙니다. 귀한 것은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생활하는 아내와 남편에게 가장 귀한 것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은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그 사랑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서로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는 곳은 지옥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참된 사랑이 없는 곳이 사망의 세계, 곧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는 세계는 살벌한 세계입니다.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 부처끼리 살더라도 사랑이 있다면 냉기가 돌지 않고 훈훈합니다. 그렇지 않고 앙상한 뼈만 남은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혼자 산다고 할 때는, 누가 들어갔다가 5분도 안 돼서 뛰쳐나오고 싶을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둘이 이마를 맞대고 역사를 말하면서 살면, 그 말을 듣고 싶고 알고 싶어합니다. 거기에는 무궁무진한 판도가 깃들어 있습니다. 신비스럽다면 무한히 신비스럽습니다. (211-236)
7. 사랑을 중심한 조화의 세계
사랑에는 종적인 것과 횡적인 것이 화합해야 한다
인간은 태어나서 20세까지는 부모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때까지는 사랑에 대한 준비기간입니다. 그 다음에 20세가 넘으면 부모의 사랑을 떠나서 부부의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부부 사랑의 인연이 두터워지면 두터워질수록 거기에서 또다시 자녀의 사랑으로 시작합니다. 이렇게 돕니다.
우리 일생을 생각할 때, 타락이 없었다면 본연의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랄 때까지 키움을 받아 일생을 살아갈 준비를 합니다. 일생 동안 사랑을 갖추어 살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준비해서 모든 사랑의 인연을 어디에 갖다 퍼붓느냐? 종적인 부모로부터 자기가 받은 사랑을 횡적으로 퍼붓습니다. 그것이 부부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남자 여자는 횡적인 면에서 하나됩니다.
또 부자의 관계는 뭐냐? 부자의 관계는 종적인 면을 대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관계의 사랑은 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을 버릴 수 없고 자식이 부모를 버릴 수 없습니다. 부부의 사랑은 횡적인 인연이기 때문에 사방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부부의 사랑은 횡적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종적 사랑이 깊으면 깊을수록, 높으면 높을수록 그 사랑의 체험을 한 남성이면 남성, 여성이면 여성이 서로 사랑의 인연을 맺어서 가정에서 받은 그 깊고 높은 사랑을 중심하고 가정생활을 합니다. 깊고 높은 사랑의 인연으로 부부생활을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1백 퍼센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부부간에도 1백 퍼센트의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종적인 사랑과 횡적인 사랑은 화합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종적인 사랑이 1백이라면 횡적인 사랑도 1백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횡적인 사랑이 작아질 때는 반드시 섭섭함을 느낍니다.
갓 결혼한 젊은 부부들은 서로 당신은 나를 얼마나 사랑하오? 하고 묻습니다. 조건을 걸고서 당신의 어머니 아버지보다 나를 더 사랑하오? 당신의 할아버지 할머니보다, 당신의 형제보다, 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오? 이렇게 묻는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사랑하는 남편이면 남편, 아내면 아내가 아니야. 당신을 사랑하는데 우리 어머니만큼은 사랑하지 못해. 우리 아버지만큼은 사랑하지 못해 하고 대답하면 싫어합니다. 왜 싫어하느냐?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145-274)
화합하고 싶은 것이 사랑세계의 본질
하나님은 종적으로 운동해야 되고, 우리 인류 조상은 횡적으로 운동해야 됩니다. 여기에 또 형제가 운동함으로써 구형을 이룹니다. 우주는 사랑을 표제로 해서 지었기 때문에 주체 대상권을 벗어난 존재가 없고, 구형을 이루지 않는 존재가 없습니다. 이 구형을 이루지 못하면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이 나옵니다. 화(和)해야 됩니다. 화하면 어떻게 되느냐? 둥그래집니다.
원만한 사람을 둥그렇게 꽉찼다고 하는데, 무엇으로 꽉차야 되느냐? 돈으로 꽉차면 싸움이 벌어집니다. 지식으로 꽉차면 잘났다고 하기 때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권력으로 꽉차면 압력이 있기 때문에 어디 가든지 자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꽉차게 될 때는 어디든지 자유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자기에게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밤이나 낮이나 좋다고 하지, 싫다고 손을 뿌리치는 법이 없습니다. 남편 손이 차면 녹여주려고 손을 가슴에 가져가고 그럽니다. 거기에서는 화(和)합니다. 안으로도 화하고 겉으로도 화하고, 종으로도 화하고 횡으로도 화하고, 전후로도 화합니다. 남편이 위로 가면 아내도 위로 가고 싶고, 내려가면 내려가고 싶고, 좌로 가면 좌로 가고 싶고, 우로 가면 우로 가고 싶고, 이렇게 같이 화합하고 싶은 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가화(家和)는 만사성(萬事成)입니다. 싸움하면 깨져 나가지만 화합하면 하나됩니다. (219-19)
그래서 사랑은 무한히 확대할 수 있습니다. 옆으로 넓히면 무한정 넓어질 수 있습니다. 또 좁히면 무한히 좁아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용서도 크지만 말 한마디에 그 사랑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부부의 사랑, 부부의 생활이 그렇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함으로써 지금까지 사랑했던 전부가 한꺼번에 깨져 버릴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사랑은 무겁다면 태산보다도 무겁고, 가볍다면 공기보다도 가볍다고 할 수 있습니다. (145-275)
정서적인 면을 유발시키는 상대적 여건이 많아야
좋아할 때 좁은 틈바구니에 가서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를 막론하고 넓은 자리에서 상대적인 모든 것이 갖추어졌을 때 흐뭇하고 기쁩니다. 좁은 곳보다는 넓은 곳을 좋아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넓은 광장이 있어서 좋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좋은 것, 제일 좋다는 것 하나를 택정합니다.
그러면 제일 좋은 것은 어떤 것이냐? 집이 작지만 작은 그곳을 제일 좋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뭐냐? 내 몸과 마음이 사랑을 중심으로 나를 유치하고 끌어당기는 그 무엇이 귀합니다. 아무리 푸른 빛이 동산에 꽉찼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 빨간 꽃 한 송이가 내 몸과 마음의 정서를 집약시킨다 할 때는, 사랑의 마음을 유발시킨다 할 때는 그 빨간 꽃 한 송이가 푸른 동산의 주체입니다. 그 주체는 반드시 내 마음과 몸의 깊고 넓고 높음을 대표할 수 있는 심정의 대상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것은 사랑을 걸고 있는 대상입니다.
꽃은 우리 정서를 1백 퍼센트 집약시킬 수 있고, 또 1백 퍼센트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꽃을 좋아합니다. 꽃에서 향기가 나는 줄 알기 때문에 좋다고 하면서 자연히 얼굴을 갖대 댑니다. 향기를 맡기 위해 자연히 꽃에 얼굴을 갖다 댑니다. 그건 왜 그러냐? 거기에 사랑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20대까지 부모의 사랑을 흠뻑 받고, 부모의 사랑을 중심으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 형제의 사랑을 흠뻑 받아야 합니다. 사랑을 받더라도 많은 사람한테 받을수록 좋습니다.
한국에서는 한때 한 자녀 갖기를 장려한 때도 있었지만, 선생님은 대한민국 인구가 1억은 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통일교회처럼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자꾸 애기를 낳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사람은 아무리 약을 먹고 아무리 가족계획을 한다 하더라도 가족계획의 그 계수가 맞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식도 많은 것을 좋아하고 돈도 많은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사는 것도 넓고 큰 것을 좋아합니다. 큰 동산에 나무가 한 그루만 있는 건 좋아하지 않습니다. 많은 나무가 있는 걸 좋아합니다. 나무도 한 종류보다 여러 종류가 있기를 바랍니다.
왜 여러 종류가 필요하냐? 우리 정서를 자극시킬 수 있는 상대적 여건이 많기 때문입니다. 정서를 자극시키는 상대적 여건이 많다는 것은, 내가 그러한 충격, 그러한 문제, 그러한 상대를 통해서 자극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동산에는 여러 가지 나무가 있어야 되고, 꽃도 여러 가지 꽃이 피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많은 종류를 원합니다. 무엇이든 적은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가를 따집니다. 식구가 많은 데서 자랐느냐, 과부 가정에서 자랐느냐 하는 것을 따집니다. 과부 가정에서 자랐다면 아이고, 모지겠구나! 생각합니다. 원만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식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층층시하에서 연단을 받고, 좌우 생활을 거치면서 팔방으로 화합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를 가더라도 자리잡습니다. 어디에 있더라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145-276)
어울린다는 것은 서로 화합한다는 것
처음으로 양복을 입고 길을 나섰을 때, 특히 여자들이 처음 양장을 입고 나갔을 때 참 어색할 것입니다.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습관화되면 자연스러워집니다. 왠지 모르게 자연스럽습니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어울린다는 것은 어디에 갖다 맞추더라도, 어디에 갖다 주체로 모셔놓더라도 그것이 상대와 상치(相馳)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서로 화합한다는 것입니다.
실내에 장식해 놓는 꽃꽂이도 그렇습니다. 척 봤을 때 중심으로부터 동서남북 사방이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대개 보면 앞만 잘 해놓았지 뒤는 딴판입니다. 하나님이 꼭대기에서 볼 때 앞만 치장하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 얼굴을 보면, 눈이 왜 얼굴 위쪽에 있느냐? 눈이 올려다보는 시간보다 내려다보는 시간이 많습니다. 밑에서 바로 보면 좋을 텐데 왜 위에서 내려다보게 되어 있느냐? 눈은 올라갔다내려갔다 하면 안 됩니다. 눈이 모든 것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 상하 고저의 환경여건을 반드시 어느 정도까지 측정해 낼 수 있어야 하겠기 때문에 얼굴 위쪽에 있습니다. 적이 있으면 공격하는지 안 하는지도 봐야 합니다.
머리가 옆으로 왔다갔다 하고 위로 올라갔다내려갔다 하는데, 그건 무엇 때문이냐? 눈 때문에 그렇습니다. 눈이 머리 꼭대기에 있으니 얼마나 어지럽겠습니까? 균형이 안 맞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야! 눈도 참 적당히 자리잡고 있구만 하고 압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조화로워야 합니다. 화합, 화동해야 합니다. (145-278)
조화 속에 천지가 화동한다
산이 좋다는 것은 뭐냐? 산세의 높고 낮음이 확실해야 합니다. 거기에다 푸른 나무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푸른 나무가 갖춰져 있더라도 새가 없으면 안 됩니다. 나무 없는 산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막에 가면 얼마나 삭막합니까?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점수를 준다면 그건 30점도 안 됩니다. 아주 삭막합니다. 보고 또 보아도 정서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만일 산에 나무와 풀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그 풀과 나무의 고마움을 아는 사람은 그것이 없으면 그리워합니다. 또 아무리 나무가 있다 하더라도 그 나무에 새가 없다면 얼마나 처량하겠습니까? 산에 짐승이 없으면 처량합니다. 거기에 어흥 하는 호랑이가 있다면 더욱 멋질 것입니다.
명곡은 어떤 음악이냐? 선생님이 음악 전문가는 아니지만, 음악의 음계에는 반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반음을 빼놓으면 맛이 없습니다. 반음을 넣어 나가기 때문에 멋진 음악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냥 매끈한 것이 좋은 게 아닙니다. 매끈하더라도 규칙적으로 변화가 있으면서 매끈해야 더 멋있습니다.
왜 그러냐? 상대가 있어서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햇빛이 비치면 그림자가 생겨야 됩니다. 그림자 없는 것이 좋은 게 아닙니다. 똑딱 하고 정오가 되는 순간만 그림자가 없지 24시간 전부 흑백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잘난 사람만 있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요리 봐도 미인, 저리 봐도 미남, 발끝에서 머리 끝까지 전부 일등 미남 미녀구만. 아이고, 좋아라! 이럴지 모르지만, 일등 미남 미녀만 세상에 꽉차 있으면 미남 미녀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잘난 사람이 있으면 못난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그 얼룩덜룩한 가운데서 드러나야 그것이 맵시가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종합할 수 있는 하나의 주체성, 비교의 기준이 됩니다. (145-280)
참된 사랑의 힘만이 이상적 통일권을 형성한다
선생님은 여왕벌을 보고 이야! 여왕벌이 인간세계에 고귀한 이상적 사랑의 핵을 표시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왕궁적 기준에 있는 사랑의 핵의 일체가 움직일 때는 전체가 따라갑니다. 바다를 건너면 죽더라도 따라가야 합니다. 그 핵이 지옥으로 들어가면 그 지옥이 왕궁이 됩니다. 동서남북 상하 전후 좌우 어디나 환영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이러한 입장이 이상경입니다.
오색인종이 지구성에 사는데, 흑인은 흑인끼리 좋아하고 백인은 백인끼리 좋아하는 게 이상경이 아닙니다. 전부 혼합되어서 알록달록한 게 좋습니다. 그렇게 알록달록하던 것이 나중에는 두 가지로 결정납니다. 먼저는 알록달록하던 것이 자꾸 빛깔이 더해지면 까매집니다. 자꾸 하면 그것이 까매지는데, 전체를 화합해서 자꾸 더 하면 결국 희어집니다. 알록달록하게 칠한 팽이를 돌리면, 처음에는 까맣다가 아주 빨리 돌리면 희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조화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은 도대체 뭐냐? 사랑의 힘입니다. 참된 사랑의 힘만이 몸과 마음을 완전히 이상적 통일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건 돈 가지고 할 수 없습니다.
남자 여자는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우리 오관이 전부 한가운데로 모일 때는 사랑을 중심으로 모입니다. 상대끼리 모이면 밤을 새워도 졸음이 안 옵니다. 눈도 피곤하지 않고, 귀도 피곤하지 않고, 말을 많이 해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밤새껏 구린내를 맡더라도 구수합니다. 그러니 사랑은 조화무쌍합니다. (221-306)
사랑은 울뚝불뚝한 조화의 극치
만일 사랑이 없다면 일생 동안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 사는 남편은 불행할 것입니다. 매일같이 색깔이 달라지는 변화무쌍한 꽃이 피어도 관심이 없는 세상인데, 네 가지밖에 없는 그 얼굴을 매일같이 보고 산다고 생각하면 비참합니다. 얼굴에는 눈, 코, 입, 귀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얼굴이 얼마나 밋밋하고 단조롭습니까?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한 얼굴을 가진 여자가 난 미인이야 하면 어떻습니까? 여자가 매일같이 우리 남편이 내 얼굴을 보면 얼마나 좋아하겠나! 하고 생각한다면 정상적인 여자가 아닙니다. 밥도 매일같이 같은 반찬, 같은 밥, 같은 식으로 같은 시간에 먹으면 재미 없습니다. 화장하는 것도 매일 같은 일인데, 그런 얼굴을 하고는 남편 앞에 나를 좋아하겠지 하고 버티고 나선다면 그런 여자의 모습은 처량합니다. 그런 여자를 사랑 없이 일생 동안 들여다보고 산다면 비참할 것입니다.
만일 사랑이 누구든지 그릴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형태가 어떻다고 알 수 있게끔 돼 있다면, 그런 사랑은 하루도 못 가서 싫증 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고, 없는 것 같은데 있습니다. 나쁘다고 생각하면 좋고, 좋다고 생각하면 나쁜, 천태만상의 기괴한 신기루 같은 내용을 작동시키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은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있으면 사랑하지 않습니다. 다이아몬드 광맥을 찾으려는데 그 광맥이 어디에 있다는 걸 대번에 안다면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가면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연구나 훈련, 실험이 필요없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모르니까 기다려야 되고, 모르니까 만나야 되고, 만나고 또 만나도 모르니까 또 만나야 됩니다. 만나서 다 알면 끝장이 납니다.
모든 것은 서로가 알면 몇 푼짜리 안 됩니다. 훌륭하다는 여자들이 갖고 있는 사랑 밑천이 얼마나 된다고 일생 동안 팔아먹고 살겠다고 합니다. 그게 값으로 얼마나 나가겠습니까? 그러나 사랑은 왠지 모르게 조화를 일으킵니다. 본 사람도 없고, 만져 본 사람도 없지만 두루뭉수리면 두루뭉수리고, 모가 났다면 모가 났고, 뾰족하다면 뾰족하고, 납작하다면 납작하고, 천지에 부동자세로 반석같이 박혀 있어서 조화를 부립니다.
그러니까 사랑이 필요합니다. 슬퍼하는 사람에게 사랑이란 감투를 씌워주면 슬픈 것이 자리를 비키고 물러갑니다. 사랑은 조화통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이 없는 곳에는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곳은 삭막합니다. 사랑이 떠난 곳에는 언제나 투쟁이 있지만, 사랑이 있는 곳에는 투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눈이고 코고 입이고 모두가 제멋대로 세상에서 제일 흉측망측하게 생긴 남자라 해도, 그 남자에게서 흘러 나오는 사랑은 생긴 것처럼 그렇게 밉살스럽지 않습니다. 얼굴이 번지르르한 남자보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났고, 얼굴도 울뚝불뚝하고, 손도 두꺼비 모양으로 큰 남자에게서 흘러 나오는 사랑이 더 멋집니다.
만물상이 왜 보기 좋으냐? 울뚝불뚝하고 별의별 모양의 것들이 서로 어우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될 것이 바로 되고, 바로 될 것이 옆으로 나고, 가로로 갈 것이 세로로 가고, 그것들이 어울려서 미를 갖추게 될 때 만물상이라 합니다. 예쁘장한 남자의 가슴에서 흘러 나오는 사랑보다 울뚝불뚝하게 생긴 남자의 가슴에서 불타오르는 사랑은 오색의 빛깔일 것입니다.
동네에서 풍채도 좋고 얼굴도 잘생긴 미남자와 미모가 뛰어나 아침에 해를 본 듯하고 보름밤에 달을 본 듯한 미녀가 같이 살고 있다고 합시다. 그들의 사랑은 둥근달 같고, 아침 태양 같고, 세상 만사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 미남 미녀에게서 흘러 나오는 사랑의 모양은 어떻겠습니까? 그건 민들민들해서 자극이 없을 것입니다. (175-197)
사랑에는 신비한 조화의 둥지가 있다
사랑의 힘은 영원히 좋다고 하는 자리에서 영원히 돌아갈 수 있는 힘입니다. 사랑에는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달라붙으려고 합니다. 4백조 개나 되는 세포가 한꺼번에 달라붙습니다. 모든 피조물의 내밀적(內密的) 신비한 기관이 내가 있음을 자랑하노라! 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은 사랑의 길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의 옷을 짜는 아내는 아무리 힘이 들더라도 남편이 좋아하는 표정을 한순간 보기 위해서 뜨개바늘로 뜨는 일을 몇년이라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그렇게 위대합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일생 동안 독수공방 생활을 하더라도 수절을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영원히 움직일 수 있는 동시에 영원히 멈출 수 있습니다. 영원히 공격할 수 있는 동시에 영원히 양보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는 그러한 신비한 조화의 둥지가 있습니다.
그 둥지 가운데 품겨 사는 사나이가, 그 둥지 가운데서 태어나는 아들딸이, 그 둥지 가운데서 사는 인생이 얼마나 가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매일같이 찾아와서 구경하고 싶고, 만져주고 싶고, 속삭이고 싶은 우주의 주인공이 있다면 얼마나 가치 있고 행복하겠습니까? 그러한 우주의 주인공으로서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사랑입니다. (163-114)
천지만물의 조화는 사랑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천지만물의 조화는 오목과 볼록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광물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쌍쌍으로 되어 있습니다. 화학 선생이 이것을 안다면 실험실에서 연구할 때도 그 실험물의 상대를 찾아서 작용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상대를 찾아서 작용시키면 아무리 작용하지 말라고 해도 작용합니다. 하나님이 요놈아, 작용하지 마! 하더라도 하나님이 작용하게 만들어 놓지 않았소? 하면서 작용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당당하게 작용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좋아합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 아무리 남자의 볼록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볼록을 찾아가서 하나되겠다고 하면 미치광이입니다. 남자로서 볼록을 가졌으면 여자의 오목을 찾아가야 됩니다.
여자의 무엇을 찾아가야 되느냐? 젖을 먹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자가 해주는 밥을 얻어먹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요즘엔 빵집이 많아서 여자가 없어도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전화 한 통화면 24시간 줄을 지어서 먹을 것을 쌓아 놓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 때문에 여자를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명사가 없다면 남자세계에서 여자가 필요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세계에서는 아내가 필요없습니다. 오히려 있는 것이 불편합니다.
그러므로 여자를 찾아가는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 때문에 여자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남자 여자의 조화는 사랑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천지 만물도 사랑이 있어야만 조화가 이루어지게 돼 있습니다. (184-209)
우리는 어떤 인연을 맺을 것인가
우리 인간은 사랑 때문에 생겨났고, 사랑 때문에 삽니다.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를 좋아합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좋아하는 것은 어머니 아버지를 이용하여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는 자기 아들딸들에게 부모를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부모를 사랑하라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자식을 다리 놓아서 세계의 사랑을 찾아가기 위함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이걸 몰랐습니다.
그러면 남자는 왜 여자가 필요하고, 여자는 왜 남자가 필요하냐? 사랑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남자 여자가 사랑하는 것은 인류와의 횡적인 다리를 놓기 위해서고, 형제가 사랑하는 것은 전후에 다리를 놓기 위해서고, 부모와 자식이 사랑하는 것은 종적인 다리를 놓기 위해서입니다. 종적, 횡적, 상하, 전후, 좌우관계입니다.
인간이 우주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고정된 한 자리에서는 불가능하므로 확대해야 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세계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합니다. 높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도 세계 제일 가는 아들딸을 갖고 싶어합니다. 형제도 제일 가는 형제, 남편도 제일 가는 남편, 아내도 제일 가는 아내를 원합니다. 그것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쭈그러지지 않은 사랑의 구형을 원만히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의 구형을 이루면 어디에서도 부딪치지 않고 상충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에서는 모든 것이 움직입니다. 자던 사람도 움직이고, 놀던 사람도 거기에 박자를 맞춰서 움직입니다. 사랑의 감성을 느끼는 감도에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전부가 움직입니다. (136-119)
8. 평화와 행복과 완성의 기원
평화와 행복과 기쁨의 기지
사람은 무엇인가를 의지하고, 그 의지한 목적과 상대적 관계를 맺기를 바랍니다. 그 의지하려고 하는 것은 영원히 계속될 수 있는 행복의 중심체입니다. 그 행복의 중심체와 관계를 맺고 의지하며 살고 싶어합니다. 그게 우리의 본성입니다.
역사시대를 거쳐 온 세계 인류를 볼 때, 행복을 추구한 중심존재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철학에서도 해결하려고 하는 중심문제였습니다. 신이 있느냐, 절대자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 절대적인 존재가 있다면 거기에 절대적인 평화가 있고, 절대적인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욕망을 두고 보면 제일 좋은 것과 관계를 맺고 싶어합니다. 제일 절대적인 것, 제일 귀한 것이 있으면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인연을 맺고 싶어합니다. 세계에 그럴 수 있는 것이 어디에 있다 하면 모든 사람은 그것과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나를 중심으로 제일 가깝고, 제일 좋고, 제일 행복스런 자리에 갖다 두고 싶어합니다. 그런 자리가 가정을 중심으로 보면 부자의 관계, 부부의 관계에 종착됩니다. 이것은 서양 사람이나 동양 사람이나 모든 인종과 종교를 초월해서, 역사를 초월해서 공통적인 것입니다. 시대가 변천해도 변하지 않는 결론입니다.
그러면 부자의 관계라든가 부부관계에서 무엇을 중심으로 갖고 싶으냐? 거기에는 돈도 있고, 지식도 있고, 힘도 있고, 자기가 자랑할 수 있는 여러 가지가 많은데 무엇을 중심으로 갖다 놓고 싶겠느냐?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갖다 놓고 싶은 것이 아니라 변치 않는 것을 갖다 놓고 싶어합니다. 여기에서 사랑이란 개념이 나옵니다.
사랑이 변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걸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은 일방통행이고 영원하고 유일하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만이 그럴 수 있는 최후의 정착지입니다. (205-196)
평화와 행복은 사랑의 상대관계에서만 성립된다
우리 인간은 고독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닮아 태어난 인간이 그러니 하나님도 고독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뭘 좋아하느냐? 사랑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없는 분이기 때문에 그러느냐? 하나님은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을 갖지 못했습니다. 선생님도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혼자 아, 사랑스러워!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있을 때, 그 대상을 대해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혼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습니다. 행복도 느낄 수 없습니다. 평화도 한 나라를 놓고 하는 말이 아니라 상대 국가와의 사이에서 성립되는 상대적 관계를 놓고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랑이나 평화, 행복은 상대적 관계에서만 성립됩니다. 혼자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혼자서 아, 나 혼자 사랑이다. 사랑이다 하면 그건 미친 사람입니다. 나 혼자 평화지, 평화지 하고, 나 혼자 행복, 행복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사랑과 평화, 그리고 행복은 상대관계를 중심으로 해서 연결되어야 합니다. 사랑을 찾으면 행복은 자동적으로 생기고, 사랑을 찾으면 평화도 자동적으로 생깁니다. 그건 부산물입니다.
하나님도 절대적인 존재지만 사랑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자는 바로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자로서 인간이 완성된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타날 때, 비로소 하나님은 행복한 하나님, 기쁨의 하나님입니다. (145-267)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왜 했느냐? 하나님도 사랑 때문에 피조물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기 위해서 인간을 지었습니다. 더 나아가 자랑하기 위해서 지었습니다. 무엇을 자랑하기 위해서냐? 사랑을 자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사랑을 자랑하면 누가 막을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은 자랑스러운 사랑으로서 영원무궁토록 계속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인간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이 눈이 술에 취한, 아편에 취한 이상으로 사랑에 취한 눈이 되었을 것입니다. 머리카락까지 사랑의 젓갈이 되었을 것입니다. 소금에 절여서 담근 젓갈과 마찬가지로 사랑에 젓 담근 바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내 숨결은 사랑의 박자에 흡수된 숨결일 것이고, 내 느낌은 그 사랑의 느낌일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의 동반자, 하나님과 동등한 가치, 동등한 자격을 가질 수 있게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동등한 가치, 동등한 자격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에 의해서만입니다. 사랑에는 권위라든가 상하관계가 없습니다. 전부 평등이요, 일체요, 통일입니다. 그러므로 통일, 일체, 평등은 사랑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습니다. (85-54)
사랑은 우주를 포괄하고 전체를 화합시킬 수 있다
사랑이 우리 인류의 평화의 기지, 행복의 기지, 희망의 기지라 할 때, 하나님은 어디에 가 있고 싶겠느냐? 사랑하는 부부, 남자 여자가 진짜 사랑하는 곳에 있고 싶고, 부자가 진짜 사랑하는 곳에 있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대해 바라는 결론이요, 인간이 하나님을 대해 바라는 결론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과 인간은 평화의 세계, 행복의 세계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무엇을 중심으로 인연되게 하고 싶으냐?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인 나, 부부․부자관계를 중심으로 인연되게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면서 사랑이 언제나 내 발 아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나를 조정하고, 사랑이 나를 끌고 다니기를 원합니다.
사랑이 간섭할 수 있는 내용은 우주적인 개념입니다. 사랑이 야, 너 왼쪽으로 가지 말고 오른쪽으로 가라 하는 사랑을 싫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랑의 한계성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사랑이 얼마나 큰지 모르고,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지만 거기에 순응하다 보면, 울면서라도 따라가다 보면 이상적인 상대를 만나게 됩니다.
사랑 그 자체는 우주의 최고와 더불어 관계를 맺으려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나 자신이 그것을 관여하고 나 자신이 이렇게저렇게 했다가는 모든 면에서 손해가 납니다. 이런 개념을 딱 정리해 놓고 나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미국 여자들은 나만을 위한 사랑, 내가 좋아하는 사랑만을 좋아하지, 사랑이 좋아하는 건 싫어! 했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고독단신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말하는 사랑의 개념은 우주를 포괄하고 전체를 화합시킬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사랑은 모든 사람이, 하늘땅의 모든 물건들이 문을 열고 환영합니다. (205-198)
사랑의 중심에 평화와 행복과 완성의 기원이 있다
우리가 4대 성인을 말할 때, 예수님을 비롯해 석가모니, 공자, 마호메트를 말합니다. 그들은 전부 종교의 교주들입니다. 이것을 볼 때, 종교만이 국경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나라마다 지식을 가진 박사들이 많았지만 그 박사들은 그 나라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그 나라에 속해서 그 나라만을 위했지 세계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종교는 세계적입니다. 인류를 표방하고, 그 기반 위에서 평화의 세계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종교는 평화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평화의 세계는 인간만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바라는 평화의 기준과 인간이 바라는 평화의 기준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무엇으로 일치되어야 하느냐? 사랑으로 일치되어야 합니다. 사랑에는 하나님도 치리받고 싶어하고, 사람도 치리받고 싶어합니다. 이렇게 볼 때, 지금까지 하나님의 한이 뭐냐? 참된 사랑에 지배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참된 왕이지만 저 말단 백성이 참된 사랑을 가졌다면 말단 백성의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그 사랑은 모든 것을 통과합니다. 간격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혁명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전후를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의 중심입니다. 모든 작용은 이 중심을 통해야 합니다. 그러니 사랑은 평화의 기원이고, 행복의 기원이며, 전체 완성의 기원입니다. (139-61)
또 사랑은 역사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런 사랑을 가지고 죽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그 예수님의 사랑의 전통을 따라서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세계를 걸고 사랑했다는 조건으로 기독교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는 왜 지배당하는 자리에 들어갔느냐? 사랑 앞에는 지배당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역사가 그렇게 귀결되었습니다. (139-59)
그러니 사랑을 놓고는 살 수 없습니다. 권력을 놓고는 살 수 있어도 사랑을 놓고는 살 수 없습니다. 사랑 위에 권력이 필요하고, 사랑 위에 지식이 필요하고, 사랑 위에 돈이 필요합니다. 사랑을 터전으로 한 지식이나 권력이나 돈은 세계가 환영합니다. 사랑을 촉구시킬 수 있는 권력, 사랑을 촉구시킬 수 있는 지식은 모두가 환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지식을 가지고 들어가는 곳이 아니요, 돈을 가지고 들어가는 곳이 아니며, 권력을 가지고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오직 사랑을 체휼한 그 재산만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139-83)
사랑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공동의 것
사랑의 길은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습니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만년 역사가 불변의 도리를 찾아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사랑도 불변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유일한 것입니다. 유일하고 절대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를 대할 때 절대성을 가지고 대해야 합니다. 아내로 말미암아 천국이 찾아옵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남자가 아무리 고생하면서 노력하더라도 사랑의 길을 찾아가지 않으면, 정도(正道)를 따르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런 천국을 나에게 소개하기 위해서 찾아온 사람이 아내라는 사람이고 남편이라는 사람입니다. 그 둘이 틀어지는 날에는 천국이 깨져 나갑니다. 우리 인생 본연의 이상과 꿈이 깨져 나갑니다.
사랑은 혁명할 수 없습니다. 참새 수컷과 암컷이 서로 사랑하고, 자기 새끼들을 사랑하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혁명할 수 없습니다. (139-64)
만물 중에 사람이 가장 귀하다(萬物之衆 惟人最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었는데 동물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남자는 여자 없이 살겠다고 하고, 여자는 남자 없이 살겠다고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근본을 무시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이는 다 갖고 싶어합니다. 여자들이 결혼하는 것은 싫지만 아이는 갖고 싶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할 수 없이 양자를 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귀한 물건이 천한 물건이 되어 버렸습니다. 왜 천해졌느냐? 본질의 사랑을 담아야 할 텐데, 그 사랑을 담지 못했으니 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누구에게도 존경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앞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선생님의 신세를 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한다고 미국의 정보기관이나 연방경찰이 죽이려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왕자는 죽지 않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볼 때, 진정한 사랑을 점령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 사랑에 점령당하고자 했지, 그 사랑을 점령하겠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여자가 남자한테 시집가는 것은 사랑을 점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도 사랑이 필요하고 여자도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의 것이 아닙니다. 둘의 것입니다. 둘의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중심으로 남편과 아내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사랑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이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아무리 혼자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습니다. 여자와 남자가 하나되어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야 가질 수 있는 공동 소유물입니다.
사랑을 소유하면 왜 기쁘냐? 사랑을 소유한다는 것은 바로 사랑에 지배받는다는 말입니다. 사랑에 지배받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기 때문에 기쁩니다. 남편을 잃은 할머니들을 보면, 옛날에 할아버지와 사랑을 하던 때를 그리워하면서 이제 영감 곁으로 가야지 이렇게 간절히 생각합니다. 그 가야지라는 말은 죽어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죽는다는 말 자체는 나쁘지만, 사랑을 중심으로 죽음의 고개를 넘어 사랑을 찬양할 수 있는 동반자를 다시 만나는 자리기 때문에 죽음 고개도 슬프지 않습니다.
이렇듯 사랑은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런 요사스러운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할머니를 죽음길로 끌고 가도 그 할머니는 나 죽는다. 살려 달라 하지 않고 순응해서 갑니다. 사랑은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자식이 죽을 자리에 가면 자식 대신 부모가 그 자리에 가도록 만드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씌워진 이후부터는 그것을 벗어날 수 없고, 그런 운명의 길을 스스로 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벗어나라고 해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난 남편과 같이 사는 여자들은, 남편 옆에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더 예쁜 여자가 나타나면, 속이 뒤집어지고, 눈이 뒤집어지고, 귀가 막히고, 말문이 막혀서 죽으려고 하는 모습을 세상에서 많이 봅니다. 왜 그러냐? 사랑을 가지고 천년 만년 살고 싶어하는 내적 성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엄숙한 것입니다. 결혼은 하늘땅이 합하는 것이요, 동과 서가 합하는 것이요, 남과 북이 합하는 것이요, 상과 하가 합하는 것입니다. 둘이 하나되면 사랑은 어디로 가느냐? 모든 환경의 중심 자리에 갑니다. 그러니 내가 가정을 갖지 못하면 이 사회에서 불완전합니다. 누가 믿어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주 존속의 원칙에 불합격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139-64)
참사랑을 하기 위해 미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가정은 나라의 축소체입니다. 가정은 무엇으로 하나되어야 하느냐? 사랑으로 하나되어 돌아야 합니다. 그 돌아가는 중심이 사랑입니다. 참사랑만이 중심입니다. 그래서 참사랑은 어디에 가나 절대 주인입니다. 선생님은 욕을 먹으면서도 중심의 자리, 참사랑의 자리까지 나왔습니다.
사람은 미쳐서 살아야 합니다. 무엇에 미쳐서 살아야 하느냐? 세상 사람들은 돈에 미치든가, 권력에 미치든가, 술에 미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둥글등글 모 없이 세계 어디에 가든지 환영받을 수 있는 참사랑에 미쳐 살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참사랑에 미친 사람입니다.
참사랑에 미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자기보다 어린 사람을 보면 자기 동생같이 생각하고 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자기 어머니 아버지같이 생각하고, 누나같이 생각하고, 형님같이 생각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날 광야와 같은 황무지가 된 이 세계에서 그런 마음을 갖고 일생을 사는 사람은 천국 가지 않겠다고 해도 천국에 갑니다. 안 가겠다고 도망가면 거꾸로 다리가 먼저 천국에 들어갑니다. 쇠가 지남철에 가서 딱 달라붙는 것처럼 그렇게 됩니다.
그러니 남자들은 미녀를 보면 아이구! 저렇게 예쁜 여자를 내가 따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면 자기 동생과 같이 생각하고, 딸과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또 자기보다 나이가 많으면 누나와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미국 여자들은 아주 적극적입니다. 선생님하고 키스하고 싶으면 그저 직행입니다. 선생님이 안 된다고 해도 인사한다고 와서 볼에 입을 맞춥니다. 그런 세계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미국에 가자마자 우리 통일교인들은 선생님에게 절대로 키스 못 한다고 엄명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가자마자 엄명을 내리지 않았다면 아마 선생님 볼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적극적인 여자들은 틀림없이 선생님의 볼을 뜯어가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야단하는 여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여자들을 대해서 누이동생과 같이 생각하고, 딸과 같이 생각하고 안타까워하면서 바른 길로 이끌어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자기 어머니 아버지보다 낫고, 누구보다 나으니 선생님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무엇 때문이냐? 사랑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 오면 마음이 편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선생님이 미국에 있을 때는 미국이 꽉차 있지만 선생님이 없을 때는 텅 빈 것 같다고 말합니다.
어느 대가집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고 다른 식구들도 있는데, 집에 들어와서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가 없으면 아무도 없구만 합니다. 그건 벼락을 맞을 사건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사랑하고, 형제도 사랑하지만 대표로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합니다. (139-70)
새로운 평화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기원은 사랑뿐
인간세계에는 인륜 도덕이 있습니다. 아내와 남편 사이에도 인륜 도덕이 있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무엇이고, 남편은 무엇이냐? 남편은 인류역사에 남성을 대표한 남성이요, 여자는 인류역사에 여성을 대표한 여성입니다. 인류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인류 개개인을 대해서 사랑할 수 없으니 남성 대표요 여성 대표인 자기 남편과 아내를 자기가 대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남편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인류 전체를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사랑한다면 깊고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랑을 해야 되는데, 그럴 수 없으니 대표의 남자와 대표의 여자로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편 앞에서 아내가 옷을 벗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다른 남자들이 있는데 여자가 옷을 벗으면 그건 미친 여자입니다. 그렇지만 남편 앞에서 아내가 옷을 훌훌 벗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렇게 옷을 벗는 자리는 인류를 대표해서 사랑함으로써 자유 천지에서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을 차지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간에는 인륜 도덕의 개념을 초월하는 사랑의 특권이 있습니다. 그 사랑은 누구나 다 찬양합니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옷을 벗고 나타나는 아내의 아름다움과 귀함은 천지에 새로운 표준이 됩니다. 이상의 표준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남편 앞에서 옷을 훌훌 벗는 아내의 행동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지 않고 벗는 아내의 행동은 무례한 짓입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를 대표한 자리에서 남성 여성이 사랑해야 비로소 진짜 하늘땅과 연결됩니다. 그리고 하늘땅에 종적인 사랑과 횡적인 사랑을 연합시키기 위해서는 하나님도 벌거벗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는 벌거벗었습니다. 그때 아담 해와는 부끄러운 줄 몰랐습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랑만이 완전 해방입니다. 인륜 도덕 이상의 해방권을 갖추어 새로운 문화권을 창건할 수 있다는 논리적 기원은 사랑을 기조로 한 터전 외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139-73)
9. 참된 행복의 씨
인간에게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냐
우리 인간에게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냐? 그리고 여자에게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고, 남자에게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냐? 여자에게는 여자가 제일 귀한 것이 아니요, 남자에게는 남자가 제일 귀한 것이 아닙니다. 남자에게는 여자가, 여자에게는 남자가 제일 귀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는 왕과 바꾸라고 해도 안 바꿉니다. 왕 하면 제일 좋은 말이고, 마피아 두목 하면 제일 나쁜 말입니다. 제일 좋은 것도 싫다는데, 제일 나쁜 거야 물어 볼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왕하고도 안 바꾸니 나쁜 것하고는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나쁜 것은 보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볼 때, 자기가 그렇게 사랑하는 남편은 그 나라 왕보다도 잘생겼습니다. 귀를 보나, 턱을 보나, 얼굴을 보나 다 잘생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하고도 안 바꿉니다.
미인이란 어떤 사람이냐? 미인이라고 별거 없습니다. 아무리 미인이라도 남편이 아름답게 봐줘야 미인의 자격이 있습니다. 아무리 곱고 아름답다 하더라도 남편이 똥개 새끼로 여긴다면 그거 뭘합니까? 미인 박복(美人薄福)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애꾸눈이지만 남편의 사랑을 받는 여자하고, 미인이면서 다이아몬드로 반지니 목걸이니 귀고리를 해서 치장을 했더라도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쫓겨날 형편에 있는 여자하고 어느쪽이 더 행복합니까? 애꾸눈으로 보기에는 아름답지 않지만 남편의 사랑을 받는 여자가 더 행복합니다. 이렇게 만드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174-234)
인간에게서 제일 귀한 것이 생명입니다. 그리고 사랑입니다. 남자에게 제일 귀한 것은 여자고, 여자에게 제일 귀한 것은 남자입니다. 남자에게 왜 여자가 제일 귀합니까? 여자에게서 사랑을 빼 버리면 제일 보기 싫습니다. 가슴이 툭 나오고 궁둥이가 커서 울퉁불퉁하니 보기 싫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전부 좋은 아들딸을 낳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다는 것입니다.
만일 아기를 안 낳는 세상이어서 궁둥이가 작아야 된다고 하고, 젖가슴이 없어야 된다고 하면, 젖가슴이 나오고 궁둥이가 크면 그거 얼마나 추물이겠습니까? 그렇지만 젖가슴이 나옴으로써 사랑하는 아들딸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고, 또 궁둥이가 큼으로써 큰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의 손이 작지만 두둑한 아내를 안고 사랑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자의 젖가슴이 큰 것은 아기에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궁둥이가 큰 것도 아기를 낳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슴이 나오고 궁둥이가 큰 것을 곡선미라고 하면서 다 좋아합니다.
인간에게 제일 귀한 것은 생명이고 사랑입니다. 그래서 여자에게는 남자가, 여자에게는 남자가 귀합니다. 이렇게 볼 때, 여자의 것은 여자의 것이 아닙니다. 여자가 여자의 것을 자기의 것이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에 요사스런 사망의 구렁텅이가 생겨납니다. 여자는 남자의 사랑에 빠져 죽어야 합니다. 사랑의 함정에 빠져서 천년 사연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랑의 왕국으로 직행한다고 할 때, 그게 멋집니다. 마찬가지로 남자도 여자의 사랑의 늪에 빠져서 죽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행복의 기원이 되는 씨를 헤쳐 보면, 사람에게 제일 귀한 것이 생명입니다. 그 다음에 남자에게 제일 귀한 것은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돈도 아닙니다. 여자입니다. 그리고 여자에게 제일 귀한 것도 남자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이상적 씨가 되고, 행복의 씨가 될 수 있는 본연의 내용입니다. (174-236)
남녀의 참된 행복의 씨가 무엇이냐
그러면 도대체 남자에게는 여자가 왜 귀하냐? 여자를 통해서 역사가 찾아지기 때문입니다. 위하는 사랑을 통해서만이, 후손을 통해서만이 미래의 세계가 내 것이 됩니다. 사랑을 통해서만이 아버지의 것이 내 것이 됩니다. 또한 횡적인 평면 세상에서 동서로 갈라놓은 절반은 남자고 절반은 여자인데, 이 동서는 사랑을 통해서만 점령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이, 과거․현재․미래까지도 사랑의 핵을 중심으로 돕니다.
그래서 어머니 사랑, 아버지 사랑의 품 가운데 들어가 살고 싶어합니다. 어머니의 사랑 또는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만 살고 싶어하는 아들딸은 없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잘났든 못났든, 병신이든 어떻든간에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서 살고 싶어합니다. 그게 소원입니다. 오늘날 행복의 씨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 다음엔 참된 부부의 사랑 가운데에 남자도 살고 싶고, 여자도 살고 싶어합니다. 남녀의 참된 행복의 씨가 사랑입니다. 다 갖고 있고, 다 보고 있고, 다 알고 있는데도 찾지 못했습니다. 찾아야 합니다. 남자보고 너, 무엇 가운데서 살고 싶어?라고 물으면 부부의 사랑 가운데서 살고 싶어 합니다. 그게 남자의 꿈입니다. 행복의 기원이요, 과정이요, 종착점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것은 머리 끝도 좋고, 발 끝도 좋고, 뒤도 좋고, 앞도 좋고, 어디든지 다 좋습니다. 속도 좋고, 겉도 좋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만드는 조화의 힘을 무엇만이 갖고 있느냐? 남자도 아니요, 여자도 아닙니다. 남자 여자를 두루뭉수리 하나로 만들어 조화를 이루게 할 수 있는 힘이 사랑입니다.
남자 여자의 행복이 어디에 있느냐? 나는 세계 여자 가운데 대표적 여자, 60억 인류 가운데 30억 여성을 대표한 여성을 찾아가야 합니다. 30억 여성을 대표한 한 여성과의 사랑의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 60억 인류 가운데 30억 남성을 대표하여 내가 이 천지에 태어났다고 보는 것입니다.
요즘 여자 남자들은 아이고, 대학 가야 행복이 있지. 대학을 나와야 돼. 행복으로 가는 길은 대학이야 그러고 있습니다. 대학에 가면 행복할 수 있습니까? 서중자유천종록(書中自有千種祿)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글 가운데에는 많은 녹(祿)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옥 같은 여자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옥 같은 여자라도 영원히 품고 남을 수 있는, 벗어날 수 없는 사랑의 철옹성이 있어서 나를 포용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 들어가서 코를 골며 자는 사람, 그런 남자나 여자를 행복하다고 합니다. (174-238)
행복과 불행은 어디에 있는가
그러면 행복하다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전체를 대해서 결핍을 느끼지 않는 자리입니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꽉찬 자리,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없는 자리가 행복한 자리입니다. 이렇게 볼 때, 모든 것이 완전히 채워진 자리가 행복한 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받고 싶을 때 무한히 받을 수 있고, 주고 싶을 때 무한히 줄 수 있는 자리가 행복한 자리입니다.
사람이 불행하다는 것은 무엇을 두고 불행하다고 하는 것이냐? 내가 받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받지 못하는 것이 불행한 것이요, 또 진정한 의미에서 주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줄 수 없는 것이 불행합니다. 그러니 언제나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 언제나 줄 수 있고 언제나 받을 수 있는 자리가 행복한 자리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자기의 상대적인 환경이 응해줄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면 소원의 중심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부모 앞에는 자녀가 있어야 합니다. 부모 앞에 자녀가 없으면 그 부모의 행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부모의 기쁨은 있을 수 없습니다. 또 자녀 앞에 부모가 없어서는 그 자녀의 기쁨도 없습니다. 혹은 어떤 남성이 있으면 남성 앞에 그 상대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여성이면 여성 앞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부부가 있으면 그 부부는 반드시 하나돼야 합니다.
하나되는 데는 무엇을 중심으로 하나되어야 하느냐?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서로의 소원이 보다 높은 사랑을 중심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서로가 하나되는 자리에서만 내일의 행복을 자극할 수 있으며, 오늘의 행복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부가 있으면 부부 앞에는 반드시 자녀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의 가정이 이루어지는 데 있어서 위로는 부모가 계시고, 아래로는 자녀가 있어야 하며, 또한 부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부모는 부모끼리 하나되어야 하고, 부부는 부부끼리 하나되어야 합니다. 또 자녀는 자녀끼리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를 중심으로 하나될 것이냐? 인간만으로는 안 됩니다. 인간만 가지고는 최고의 이상,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부모, 부부, 자녀, 이 여섯 사람이 하나된 가운데 거기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우리 인간은 제한된 존재입니다. 한계권을 넘어갈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절대권이 아니라 상대권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절대적인 사랑의 주체를 중심으로 부모도 하나되기를 바라고, 부부도 하나되기를 바라고, 자녀도 하나되기를 바랍니다. (60-40)
하나님도 혼자서는 기뻐할 수 없다
하나님이 아무리 절대적인 분이라 하더라도 그 절대적인 자리에서 상대적인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로서의 절대자는 반드시 상대를 위해서 이상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훌륭한 사람,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자나 예술가, 정치가 혹은 아무리 높다는 성인이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기뻐할 수 없습니다. 기쁨은 혼자서는 느낄 수 없습니다. 상대적인 여건을 갖춘 그곳에 기쁨이 있습니다.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아무리 높은 인격자라도 그가 기뻐할 수 있는 통일된 기준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는 기뻐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최고의 자리가 있다면 그 자체도 반드시 상대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혼자서는 기뻐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기쁨은 어디에 나타날 것이냐? 더 높은 자리를 찾아 나가는 데서 기쁨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자리를 찾아 나가는 데서 기쁨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절대자기 때문에 하나님이 끝이라면 최고의 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상대적인 자리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떠한 물체를 볼 때, 햇빛이 비치면 거기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생깁니다. 이와 마찬가지의 형태로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주체 되는 그분이 주는 데는 높은 것을 위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낮은 인간과 만물을 위해서 주고 싶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은 것은 하나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실현의 대상은 미물에서부터 우리 인간에까지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을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것은 작은 것으로서 하나님의 일부분의 상대입니다.
이렇게 작은 것을 절대적인 하나의 상대적 여건으로 지었기 때문에, 작은 것으로부터 사랑을 시작해서 점점점 큰 것으로 사랑을 해 나왔습니다. 이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점점점 차원 높은 의미의 자극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으로 해서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60-42)
하나님은 생명의 기원이요, 사랑의 기원
하나님은 행복의 터전이요, 생명의 씨가 되는 분입니다. 생명은 위대합니다. 또 하나님은 생명의 씨인 동시에 이상의 옷입니다. 하나님의 행복의 터전을 통해서 이상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참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생명의 기원이요, 사랑의 기원입니다. 또 남자의 기원이고, 여자의 기원입니다. 어머니의 기원, 아버지의 기원입니다. 형님, 누나, 형제들의 기원입니다. 이 기원을 상실한 무리는 제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그 머무는 곳에서는 아름다운 본연의 씨의 자리를 찾아갈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통일을 하려고 하는데, 통일은 천지인(天地人), 하늘과 땅이 있는 동시에 사람이 있으니 이 3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사랑을 추구해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중심으로 참부모가 나타나야 합니다. 이 말은 놀라운 말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가 나타나야 참된 하나님이 현현할 수 있습니다. 참된 하나님이 현현하는 곳에 비로소 참된 생명의 기원과 참된 사랑의 기원이 싹틉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와 동서남북 사방을 한 중심으로 해서 동으로 뻗친 힘은 사랑의 센터를 통해야 됩니다. 남북이 통해야 되고, 전후가 통해야 되고, 상하가 통해야 됩니다. 이게 7수입니다. 전후 좌우 상하 중앙까지 7수입니다. 이 7수는 완성수입니다. 이 말은 중앙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중앙을 거치지 않는 그 어떤 힘이 아무리 작용을 해야 다 허사입니다. 아무런 존재 의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으로 어머니도 통하려고 하고, 자식도 통하려고 하고, 아버지도 통하려고 합니다. 나랏님도, 성인도, 성자도 통하려고 하고 하나님까지도 통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정을 중심으로 작든 크든 세포 하나에 전부 들어가 있습니다. 사랑의 본질이 그렇습니다.
요즘에는 바나나 나무면 바나나 나무 세포를 가지고 조직배양을 해서 나무를 기릅니다. 그렇게 기른 것을 온실에서 재배해 바나나가 주렁주렁 열리게 합니다. 결국 보이지 않는 세포 하나에서 바나나가 열린 셈인데, 이것은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세포에 그 소성(素性)이 다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랑을 중심으로는 한 세포인 동시에 한 개인이 되고, 한 개인인 동시에 한 가정이 되고, 한 가정인 동시에 한 나라가 되고, 한 세계, 우주, 천주입니다. 개인의 센터는 만민이 공통입니다. 개인 센터의 자리가 아래라면 가정 센터의 자리는 위입니다. 가정은 그 자리를 통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종족의 센터, 민족의 센터, 국가의 센터, 세계의 센터로 올라가야 됩니다.
아담 해와가 성숙해서 센터, 곧 중앙을 찾아가야 하니 하나님이 따먹지 말고 기다리라고 한 것입니다. 아담 해와를 만들자마자 사랑의 중심자리에 갖다 놓을 수 없습니다. (
행복의 씨는 어디에 있느냐
기쁨을 느끼는 그 본질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통해서 기쁨을 느끼는 거기에 행복이 있습니다. 행복은 뭐냐 하면 다 찼다는 것입니다. 꽉차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가 이지러지면 안 됩니다. 공 같은 것이 이지러지면 그것이 이지러진 만큼 힘을 가해야 이동하게 됩니다. 그 공이 꽉차면 자기 본연의 자리를 찾아가려고 이동합니다. 그러한 운동을 빨리 하는 것이 공입니다. (169-240)
그러면 행복의 씨는 어디에 있느냐? 타락해서 잃어버렸으니 찾아야 됩니다. 그래서 참된 하나님을 찾아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하나님은 복귀의 하나님입니다. 본래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원한에 사무친 하나님, 불쌍한 하나님입니다. 기쁨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낙망의 하나님입니다. 그러기에 원상대로 하기 위해서는 낙망의 하나님을 해방해줘야 합니다. 무엇으로 해방해주느냐?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안 됩니다. 어떤 사람으로도 안 됩니다. 참사랑으로 해방해줘야 합니다.
희생이란 자기 투입입니다. 왜 투입해야 하느냐?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는데, 크기 위해서는 나쁜 것을 먼저 잡아 벗겨내야 합니다. 나쁜 것을 벗겨내려니까 자꾸 투입해야 됩니다. 결국 투입하는 것은 희생이 아닌 자기 발전입니다. 외적으로 투입하면 내적 발전이 오는 것이고, 내적으로 투입하면 외적 발전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투입한다고 나쁜 것이 아닙니다. 돈을 벌려면 원금을 투입해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투입은 제2 창조를 추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결단은 발전적인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장사는 이익을 바라서 합니다. 하나님도 별수없습니다. 그러므로 후퇴하지 않고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것으로 남아지는 기반을 이루는 것은 사랑을 중심으로 한 발전적 투입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남자 여자는 사랑하는 부부로서의 사랑에 취해 살아야 합니다. 부모를 모시고 있으면 부모님의 사랑 가운데에, 가정의 사랑 가운데에 살고 싶어해야 합니다. 그게 이상이요 행복입니다. 행복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174-250)
천년 만년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의 모체는 사랑
집안에서 할아버지 사랑이 큽니까, 할머니 사랑이 큽니까? 할머니의 사랑이 큽니다. 여자의 사랑은 할머니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 그 다음엔 아내의 사랑, 누나의 사랑입니다. 남자들은 할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사랑, 형님 사랑, 동생의 사랑을 원치 않습니다. 상대의 사랑을 원합니다. 여자는 어머니의 사랑보다는 할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사랑, 남편의 사랑, 오빠의 사랑을 원합니다. 딸은 어머니를 대하면 답답해서 못 견딥니다. 무뚝뚝하고 울퉁불퉁하고 소리가 나야 될 텐데, 잔잔한 호수 같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잔잔한 호수에는 생동하는 고기들이 살지 않습니다. 그러니 상대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 아내의 사랑, 누나의 사랑 자리에는 남자들이 찾아갑니다. 또 여자들은 할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사랑, 남편의 사랑, 오빠의 사랑 자리에 찾아갑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서 할아버지를 보고 천년 만년 살고지고 할 수 있는 요소가 뭐냐? 사랑밖에 없습니다. 아버지를 대해서도 천년 만년 같이 살고 싶어 할 수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남편 대해서도 천년 만년 살겠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고, 오빠하고 천년 만년 살고 싶다할 수 있는 것도 사랑입니다. 돈이 있든 없든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의 모체는 오로지 사랑뿐입니다. (174-252)
우리가 어머니의 사랑 가운데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머니를 위해야 됩니다. 내가 어머니를 위하게 될 때, 어머니는 반드시 나를 사랑으로 감싸줍니다. 그게 천지 이치입니다. 중심이 따로 없습니다. 내가 중앙에 가서 살려면 투입해야 됩니다. 아내의 사랑 이상을 투입하게 되면 그 사랑이 어디로 가느냐? 나를 던지면 쓰윽 한바퀴 돌아서 다시 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스스로가 사랑 가운데 있게 됩니다. 그게 창조입니다.
왜 시집가느냐고 물을 때, 사랑받으러 가지라고 대답하는 것은 타락한 세계의 결혼관입니다. 사랑을 창조하러 가지라고 해야 합니다. 사랑받으러 가지 하는 사람보다 사랑을 창조하러 가지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좋아합니다. (174-256)
대우주의 원칙적인 비밀이 뭐냐? 천주의 비밀이 뭐냐? 부자의 관계입니다. 부자의 관계를 종(縱)으로 하고, 이 부자관계의 사랑을 횡적으로 전개한 것이 부부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전부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나도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커야 합니다. 어머니는 여자고 아버지는 남자로서 둘이 사랑해서 나를 낳았으니, 나도 언젠가는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됩니다. 그러니 그 어머니 아버지를 본떠서 사랑해야 됩니다. 이게 부자의 관계입니다. 부자관계의 사랑이 우주의 비결입니다. 대우주의 비밀이 부자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누구나 사랑 가운데서 살고 싶어합니다. (174-258)
만점짜리 행복의 씨
행복하게라는 말은 형용어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부모의 사랑 가운데서 살고 싶어하고, 형제의 사랑 가운데서 살고 싶어하고, 그 다음엔 부부의 사랑 가운데서 남편과 아내가 살고 싶어합니다. 참된 부부의 사랑에 취해서 살고 싶어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하늘땅의 사랑 가운데에서 살고 싶다고 하는 것은, 하늘땅이 사랑할 수 있는 터전에서 살고 싶다는 것은 만점입니다. 나는 세계인의 사랑 가운데서 살고 싶다 나는 대한민국 백성으로서 대한민국 사랑 가운데 살고 싶다는 것도 만점입니다. 또한 자기 종중의 사랑 가운데서 살고 싶어하는 것도 만점이고, 그 다음에 자기 집안의 사랑 가운데서 살고 싶어하는 것도 만점입니다. 부모의 사랑 가운데서, 부부의 사랑 가운데서, 형제의 사랑 가운데서 살고 싶다고 하는 것 모두가 만점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귀합니다.
이렇듯 모든 사람에게 만점이요, 모든 사람에게 충만하고 결여된 것이 없는 만점짜리 행복의 씨가 사랑입니다. 이렇게 볼 때, 참된 사랑을 중심으로 한 본연의 참된 씨로 내가 출발해야 됩니다.
한 1톤짜리 황금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여자가 자기 혼자 살고 있는 찬방을 찾아가면서 아, 행복하다!고 한다면,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저 미친 여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조그마한 방을 찾아간다 할지라도 거기에 아주 못생긴 조그마한 남자가 있어서 사랑에 빠져 가게 될 때에는, 그 황금 목걸이가 어울립니다. 1톤짜리일지라도 어울립니다. 그 목걸이가 벗기 힘들어 조그맣고 못생긴 남자와 힘을 다해 벗기다가 손이 부러져도 행복해합니다. 그렇게 가당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특권이 사랑에 있습니다.
그래서 형제의 사랑 가운데서 살고 싶고, 그 다음에는 참된 부부의 사랑 가운데서 살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다냐? 그것은 한 점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 한 점만 가지고는 자기 위치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상하가 있고, 전후가 있고, 좌우가 있어야 합니다. 완전한 위치는 전후 좌우, 사방이 갖춰져야 합니다. 상하․전후․좌우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걸 갖춘 사랑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174-242)
사랑은 역사를 대표한, 과거․현재․미래의 영원한 세계를 대표한 우리의 본향이요, 이상적인 씨의 기원입니다. 행복의 씨는 중심점에 착륙합니다. 그래 가지고 컸다작았다 합니다. 올라갔다내려갔다 합니다. 그것이 조화입니다. 전후․좌우․상하가 일체 되어야 합니다. (174-242)
천지를 녹여낼 수 있는 본연의 힘은 사랑
전후 좌우 사방을 갖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 사랑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남자 여자를 통해서 옵니다. 상대를 통해서 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찾느냐? 하나님은 세계 만물을 다 좋아하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계 만물을 다 좋아하고 더 이상 좋아할 것이 없어 섭섭해할 때 내가 능력이 있다면 하나님이 좋아하실 것을 많이 만들어드릴 터인데…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으면 그 자리에 하나님이 얼싸 좋구나! 하면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만물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나서 하나님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도 사랑의 하나님이라 사랑을 그리워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내가 만들어 하나님을 꽁꽁 싸매서 꼼짝달싹 못 하게 하겠다고 할 때, 하나님이 이 고얀지고! 하지 않습니다. 헤헤헤, 거 참 구미가 동하는데 그럽니다. 야, 거 구미가 동하는군. 사랑권으로 한번 들어가면 억천만년 안 나와도 좋아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본질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관심을 갖게 됩니다.
사랑이 그리워서 날뛰는 무리들, 사랑의 보금자리를 찾아 날뛰는 무리들, 그런 무리들이 종교인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워서 종주를 중심으로 모든 걸 바쳐 사랑하는 사람들이 종교인들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돈이나 권력, 지식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왕입니다. 만우주를 창조한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지은 별들, 수천억이 되는 별들 가운데는 황금 별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또 다이아몬드 별도 수두룩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돈이나 지식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다가 아내의 귀를 잘라 버렸다면, 아이구 좋아! 하다가 귀를 물어 뚝 잘라 버렸다면 어떻겠습니까? 병원에 가서 아무리 수술을 해도 붙지 않는다면, 그 아내가 일생 동안 그것을 불행의 표시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그게 불행의 표시입니까, 행복의 표시입니까? 행복의 표시입니다. 사랑하다가 그랬다면 아내는 여기도 이렇게 잘라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땅의 사랑 가운데 살고 싶고, 나라의 사랑 가운데, 가정의 사랑 가운데, 아내의 사랑 가운데 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은 언제나 중심점입니다. 사랑의 한 점인 남자의 사랑을 중심으로 여자라는 원형을 그려도 불만이 없습니다. 삼각형을 그려도 불만이 없고, 사각형을 그려도 불만이 없습니다. 만사형통입니다. (174-2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