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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
▶ 과거-미래-현재, 시간의 흐름(역순행적 흐름)에 의한 시상전개 방식을 취하고 있다.
노주인(老主人)의 장벽(腸壁)에 무시(無時)로 인동(忍冬) 삼긴 물이 나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어 붉고,
구석에 그늘 지어 무가 순 돋아 파릇하고, 정지용, '인동차(忍冬茶)' |
▶ 인동차가 끓고 있는 실내 분위기를 떠올릴 수 있으며, 타던 불이
사그라지다 다시 피어나는 모습으로 '시간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다.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 저문 하늘에 별들는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 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정호승, '또 기다리는 편지' |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
송편 같은 반달이 싸리문 위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 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차워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노천명, '장날' |
봄에는 연녹색 물결 북쪽으로 북쪽으로 퍼져 올라간다 <중략> 여름이면 뻐꾸기 노랫소리 개구리 우는 소리 어디서나 똑같다 가을에는 황금빛 물결 남쪽으로 남쪽으로 퍼져 내려온다 <중략> 겨울이면 시원한 동치미 맛 얼큰한 해장국 맛 어디서나 똑같다 김광규, '동서남북' |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엄마 걱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