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향기/서울대교구 개포동성당 김종화 미카엘
활발한 활동으로 후배들의 모델
박연근 아오스딩 서울 Se. 명예기자
구룡산 기슭, 김대건 신부님의 아버님인 김재준 이냐시오 성인상을 성전입구에 모신 웅장한 개포동성당에서 갓 칠순을 지낸 분 같이 아직도 정정한 김종화 미카엘 형제를 만났다.
81년 전 울산에서 태어나 6.25 피난시절 부산과 서울에서 건축 관련 공부를 한 뒤 시작한 박봉의 공무원 생활 5년을 청산하고 외국계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입사하여 지난 2012년 77세 나이로 퇴사했다. 국내의 주요 공장, 관공서 등의 대형 건물들 중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고 한다. 퇴직 후 지금까지도 국내 중견 엔지니어링회사에 매주 한두 번 출근하여 본인의 재능을 발휘하며 후배들을 위해 노하우를 나누고 있다고 했다.
비신자였던 미카엘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반려자 박진희 비비안나와 1968년 결혼하고 관면혼배를 했으며, 1남2녀의 자녀도 생겼다. 자녀들 모두 유아 영세했으며 결혼하여 지금까지 행복한 성가정을 이루고 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까지도 비신자였던 미카엘은 1977년 승용차를 갖게 되면서 매주일 가족들을 논현동성당에 데려다 주다가 기다리는 시간에 그도 자연스럽게 미사에 참례하게 되었고 하느님을 조금씩 알게 되어 정식으로 교리반에 등록, 1979년 12월 세례를 받았다.
건축 관련 달란트 활용 개포동성당 건립에 공로
미카엘이 개포동으로 이사를 온 1984년도에는 대치동성당으로 미사하러 다녔다고 했다. 그 이듬해 대치동성당에서 분당되어 개포동성당이 설립, 개포종합상가 건물 6층에서 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새 성전을 건립할 때 대형건물 건축에 풍부한 노하우를 가진 그는 자연스럽게 개포동성당 사목협의회 시설분과위원장이 되었다. 미카엘은 정치윤 이냐시오 본당신부님의 손발이 되어 건물 설계 및 감리관련 탁월한 달란트를 한껏 발휘했다. 미카엘은 설계부터 완공까지 성당 신축을 위해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고 성실하게 모든 것을 바쳤다.
주간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특별한 상황이 없으면 현장에 들러 공사관계자들을 만나고 제대로 공사를 하고 있는지 꼼꼼히 점검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냐시오 주임신부님께서 건축 문제로 찾으면 열일을 제쳐두고 수없이 회사에서 달려왔다. 미카엘의 노고와 정성이 이렇게 들어간 성당이라 현재 25년이 되었지만 별다른 하자 없이 신자들이 편안하게 미사드리고 있다 성당 신축을 위한 7년의 성실한 봉사로 개포동성당 봉헌식 때 김수환 추기경님으로부터 개포동성당에서 유일하게 공로패를 받은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무엇보다 이렇게 유능한 신자가 때에 꼭 맞추어 이사를 오게 된 것은 개포동성당을 위한 성령의 배려라고 여겨진다.
또한 미카엘은 구직에 목말라하는 젊은이들의 직장을 마련해 주기 위해 힘써 오십여 명에게 직장을 구해주었다.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져 소식을 주고받는 몇 사람들이 있다. 이들 중 한 사람은 대학중태 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어렵게 지낸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미카엘이 기꺼이 취직을 시켜주었다. 자신과 같은 건축 관련 전공인 이 청년에게 근무 후 여가시간에는 훌륭한 엔지니어가 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일감제공과 더불어 조언과 트레이닝까지 해주었다고. 이 후배는 괌에서 성공한 한인이 되어 잘 살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신앙인으로 성실과 기도가 중요해
이처럼 남을 위한 일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은 미카엘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팔십년 이상 살면서 깨달은 그의 교훈은 “친절하자! 정직하자! 윗사람을 공경하자! 남을 돕자!”로 모두 이타적인 것들이다.그리고 신앙인으로서 성실과 기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번은 미카엘이 중요한 미국출장을 위해 공항에 도착했으나 여권문제로 출국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앞이 캄캄했다. 그때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느님께 의지해 이 문제가 꼭 풀리도록 화살기도와 묵주기도를 간절히 드렸더니 묵주기도가 채 5단이 끝나기 전에 문제가 잘 풀려 비행기를 타게 되어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묵주기도를 끝까지 드렸다고 한다.
미카엘은 사목회 부회장으로 봉사하던 1994년 꾸르실료 교육을 수료한 뒤 같은 사목위원이었던 레지오 단원으로부터 레지오를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은 후 희망의 모후 Pr.에 입단하여 쁘레시디움에서 회계 등을 거쳐 현재 부단장을 하고 있다. 레지오 단원으로서 그동안 쁘레시디움에서 하는 가정방문, 환자방문 등을 열심히 했으며, 지금도 매월 마지막 주에는 라파엘성당 교중미사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봉사를 하고, 매월 두 번 있는 본당 주차봉사에도 참가한다고 했다.
“레지오는 자기수양이다”라고 말하며, 최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주회합이나 월례회의 교육, 봉사 등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희망의 모후 Pr. 단장인 최재성 미카엘은 “미카엘 부단장님은 연세가 많지만 건강하시고, 주회합에 빠지지 않으며 활발히 활동하신다. 우리 레지오의 기둥 같은 분이며, 후배들도 그분을 보며 육체와 정신 건강이 허락하면 80세가 넘어도 당연히 단원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본보기 같은 분으로 고령화시대의 개척자적인 분이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