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원고는 2017년 12월 9일 팟빵 방송용 원고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나 목사들로부터 이런 저런 피해를 당하면서 기독교와 원수 지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결국 교회를 떠나고, 하나님을 떠나는 경구가 많이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교회나 목사들로부터 피해를 당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경의 내용과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만 바르게 알고 있으면 속을 일이 전혀 없는데도, 성경을 바르게 알지 못하니 교회나 목사들의 꾐에 쉽게 빠져 황당한 일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12:41-44]에 보면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라는 내용입니다.
목사들이 참으로 좋아하는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왜 좋아하지요?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해야 한다고 독려하기에 아주 좋은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을 가지고 많은 목사들이 보통 이런 식으로 설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헌금을 많이 한 부자보다도 넣은 것은 얼마 되지 않지만 모든 것을 드린 가난한 과부를 더 칭찬하셨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고 싶으십니까? 여러분도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고 싶으십니까? 그럼 드리십시오. 가진 소유 모든 것을 드리고 칭찬받은 과부처럼, 아깝다 생각하지 마시고 여러분의 모든 것을 기꺼이 드리십시오. 그럼 하나님의 복이 여러분께 반드시 임할 것입니다. 여러분 세대가 아니면 여러분의 자녀 세대에서라도, 현세가 아니면 내세에서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께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설교합니다. 이런 설교 많이 들어보셨지요? 그런데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런 설교는 사기입니다.
왜 사기인지 지금부터 천천히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에 따르면 여러 부자들은 헌금을 많이 넣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여러 부자는 어떤 사람들일까요?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부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제사장, 서기관, 백성의 장로, 바리새인, 헤롯당원, 사두개인 같은 사람들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적으로 권력층에 해당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도 이미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더 가지려고 함으로써 각종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데, 당시도 다를 게 전혀 없었습니다. 이미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더 가지기 위해 서로서로 연합하여 가난한 백성들을 착취하면서 더 큰 부자로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백성들을 착취했을까요? 요즘 교회에서 하는 식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교회건축을 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당연히 많은 돈이 필요하겠지요? 그때 쓰는 아주 상투적인 수법이 먼저 담임목사가 집을 팔아서 건축헌금을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좀 산다고 하는 장로, 권사, 집사들이 담임목사를 본받아 상당한 액수의 약정헌금을 드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더 큰 재물의 복을 더해주셨다고 선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없는 자들도 나도 헌금을 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선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을 벌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치면 그래도 나은데 한발 더 나아갑니다. ‘교회 하는 일에 힘을 더해야지. 하나님 나라 확장하는 일인데 조금이라도 힘을 더 보태야지. 천국 가서 더 큰 상급을 받을 터인데 뭘 망설여? 이번에 굳센 믿음을 보여 봐. 이번에 하나님께 눈도장 확실히 찍어 봐. 만약 이번에도 그냥 지나치면 무슨 큰 일이 일어날지 몰라. 어떤 재앙이 드리울지 몰라. 그러니 아깝다 생각하지 말고 기꺼이 드려. 설마 하나님이 그냥 계시겠어?’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도 반 협박을 가하며 헌금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 교회에 계속 다니기 위해서는 헌금을 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공동체 사회에서 온전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헌금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누가 당했다는 것입니까?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과부가 이렇게 당했다는 것입니다.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해주겠다고,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상황과 처지를 만들어 주겠다고 과부를 꾀었던 것입니다. 누가요? 대제사장들이 꾀고, 서기관들이 꾀고, 장로들이 꾄 것입니다. 헤롯당원과 사두개인들이 꾄 것입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두 렙돈 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이놈 저놈이 과부를 등쳐먹은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인 과부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소위 지도층이라고 하는 작자들이 그 과부를 막다른 골목까지 몰고 간 것입니다.
이런 과부를 향해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마가복음 12:43-4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입니다. 여쭈어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과연 칭찬일까요? 이 말씀이 과연 ‘과부의 믿음이 크다, 과부의 믿음이 신실하다, 너희들도 가진 소유 모두를 드린 과부처럼 큰 믿음을 가져야 한다.’라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권면하시는 내용이겠냐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철저한 유대교 사회였습니다. 유대교의 적폐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쌓여 있어서 사람들이 그 유대교로 인해 오히려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유대교 성전을 무너뜨리고 사흘 만에 다시 올리겠다고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유대교 성전 헌금함에 가진 것 모든 것을 넣은 과부를 칭찬할 이유란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은 안타까이 이 여인을 여기는 것입니다. 가엽고, 불쌍하고, 긍휼한 마음으로 이 여인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여인을 이런 상태로 몰아넣은 서기관들을 비롯한 소위 있는 자들의 횡포를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나오기 직전에 [마가복음 12:38-40]까지 서기관들을 조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었다는 것을 주목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입니다.
‘서기관들을 삼가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서기관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바로 유대교 종교인들입니다. 그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긴 옷을 입고 다니고 있고,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좋아하고, 유대교 회당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잔치의 윗자리에 앉기를 원하는 자들입니다. 즉 종교적 권위에 사로잡혀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자들로 오늘날 교회의 목사들이 저절로 연상이 됩니다.
또 그들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과부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복을 받게 해주겠다고, 사는 형편과 처지를 더 좋게 해주겠다고 말도 안 되는 내용의 기도를 길게 하는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에 바로 잇달아 나오는 내용이 바로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입니다.
즉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는 두 렙돈을 넣은 과부의 행위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여인을 이 상태로까지 몰아넣은 당시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유익과 이익과 권리와 행복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사람들로부터 단물을 쪽쪽 빨아먹었던 당시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데도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의 행위를 칭찬해주는 내용으로 이해하실 건가요? 이런데도 이 본문을 근거로 한 목사들의 달콤한 꾐에 빠져 속아 넘어가실 건가요? 절대로 그러시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국 속은 사람만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가진 소유 전부를 헌금함에 넣은 그 여인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여인이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일찍 남편을 보낸 것도 서러운 일인데, 이놈에게 뜯기고 저놈에게 당하고. 무슨 재미로 살겠습니까? 무슨 낙으로 살겠습니까? 자신과 같은 존재는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 마지막 두 렙돈까지 너희들 다 쳐 먹으라는 심정으로 헌금을 하고, 스스로 죽음의 문턱을 넘어섰을 것 같다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오늘날 기독교에서도, 오늘날 교회에서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잊을만 하면 이와 유사한 일들을 TV 뉴스에서 목격하게 됩니다. 이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바르게 알고 있으면 절대로 당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만 알고 있으면 당하기 쉽지만, 그 이야기 바로 직전에 서기관을 삼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절대로 당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성경의 내용이 엉뚱하게 해석되고 왜곡되는 일이 너무너무 많이 있습니다. 조금 전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처럼 교회의 유익과 이익을 위해 성경을 왜곡해서 전하는 일이 정말로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진기명기’에서는 ‘이 사건이 궁금했다’라는 제목의 코너를 통해서 그동안 이해하기 어려웠던 내용, 잘못 해석된 내용, 성도들 등치는 내용 등을 꾸준히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기대 많이많이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