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 병영성

강진 전라병영성
지정종목사적지정번호사적 제397호지정일1997년 04월 18일소재지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 319-1 외 지도시대조선종류/분류성곽크기면적 93,139㎡, 총길이 1,65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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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3월 9일 전라남도기념물 제140호로 지정되었다가 1997년 4월 18일 사적 제397호로 다시 지정되었다. 면적 93,139㎡로 조선시대 전라도 육군의 총지휘부이다. 1417년(태종 17) 본래 광산현에 설치되어 있던 병마절도사영을 이설한 것이다. 초대 병마절도사 마천목이 전라도 53주 6진을 통치하였을 때 축조하였다.
마천목의 꿈 속에 나타난 대로 눈의 자국을 따라 축조하였다고 하여 ‘설성’이라고도 한다. 당시 남해에 자주 출몰하던 왜구를 막기 위한 것으로 1599년(선조 32) 도위수 권율의 상소로 장흥으로 이설하였다가 1604년 다시 본래의 위치로 옮겼다.
1894년의 동학농민운동으로 병영성이 함락되어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이듬해인 1895년(고종 32) 복구되지 못하고 폐영되었다. 폐영 당시 1,889개의 가옥과 5,973명이 살고 있었다. 《대동지지》 《색지》에 따르면 석축의 둘레 2,820척, 높이 18척, 여첩 302개, 옹성 12개, 포루 2개, 호지 5개, 우물 9개가 있었다.
또 2층 누로 이뤄진 남문·동문·북문 등이 있었고, 각종 관사와 누정은 일제강점기에 모두 훼철되었다. 평지에 축조된 성으로 남북으로 약간 긴 직사각형이며, 총 길이는 1,650m이다. 성의 형태는 남북이 길고 동벽의 길이가 서벽에 비해 약간 짧은 부정형의 형태이다. 성곽의 서북쪽에 개천이 흐르고 있는데, 이 개천을 해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축조 방법은 성벽의 안쪽과 바깥쪽을 모두 성돌로 쌓는 협축기법을 사용하였다. 성돌은 대부분 자연석으로 바깥면에는 다듬은 돌을 썼고, 보통의 성과 마찬가지로 하부는 큰 돌을 놓고 위로 올라가면서 작은 돌을 쌓는 방법을 썼다. 병영초등학교의 담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성벽은 너비가 2m 이상이 될 정도로 넓게 안쪽까지 견실하게 마무리하였다. 반면 박삼옥 댁에 있는 성벽 중 일부는 외벽만을 쌓고 안쪽으로 흙을 쌓아 내탁하는 편축도 나타난다.
조선시대 서남부의 군사 본부로서 방어기지와 육군 지휘부가 되었고, 제주도에 표류 중이던 네덜란드인 하멜이 이곳으로 압송되어 약 8년 동안 억류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