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주의자 홍박사가 앞장서면 늘 망했지. 직관주의자 홍씨가 앞장서면 그래도 덜 망했지! 그래서 긴급 인터뷰를 실시했습니다.
<합리주의자 홍영일이 직관주의자 홍영일에게 묻는다>
메르스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 합리주의적 태도의 허술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합리주의적 태도를 가져야 할 때는 따로 있다.
합리주의적 태도는 언제 가져야 하는가?
==> 문제가 발생한 후, <재발방지>를 위해 원인을 파악하고 시스템을 갖출 때 좋은 태도이다.
합리주의적 태도가 언제 안 좋은가?
==>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안 좋다. 지금 메르스 사태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럼 어쩌자는 건가?
==> 대처는 직관적으로, 뒷수습은 합리적으로! 즉, 문제 상황에는 직관적으로 대처해나가면서, 이미 지난 일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합리적으로 원인분석하여 재발방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도 신속하게.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줄 수 있는가?
==>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에 비유해보자.
소 잃은 후에 외양간의 허술함을 철저히 분석해서 다시는 그곳으로 소가 탈출하지 못하게 보수해야 한다.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이처럼 원인을 분석하여 그에 따른 해결책을 마련해나가는 태도를 합리주의적 태도라고 한다.
그러나 소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지금 내 눈앞에서 탈출하고 있다면 당장 무슨 수라도 써야 한다. 예상치 못한 곳으로의 탈출이기 때문에 그 어떤 시스템적 매뉴얼도 없는 상황이다.
이미 탈출한 후라면야 어쩔수 없이 사후적으로라도 이후 재발방지를 위해 철저히 원인분석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는 현재진행형이라면, 원인분석은 잠시 미루거나 그 분야를 잘 아는 전문가에게 일임시켜놓고 동시에 상황에 즉각 대응해서 탈출하는 소를 막아야 한다.
지금 정부당국의 대응 자세는 철저히 합리주의적 태도로만 일관하고 있다. 즉각 대처하려는 자세를 두고 섣부르다고 지적하면서 마냥 퇴행적 자세를 보인다.
정부를 비롯한 어떤 조직이라도 그 리더십은 직관적이어야 하며, 팔로워십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직관리더십이 헤쳐나가면 합리팔로워십이 뒷받쳐주는 형태여야 한다.
합리주의적 태도는 원인을 찾아 뒤를 돌아보기 때문에 퇴행적 자세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직관적인 모습이 무엇인가?
==> 나도 잘 모른다. 다만, 기본적인 것은 매 순간에 대처하는 자세이다. 앞서가는 국민의 모습을 보면 된다.
정부 당국의 올바른 자세는 무엇인가?
==> 정부를 비롯한 어떤 조직이라도 그 리더십은 직관적이어야 하며, 팔로워십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직관리더십이 헤쳐나가면 합리팔로워십이 뒷받쳐주는 형태여야 한다.
차선책도 있다. 직관리더십의 변형된 형태로서 권한위임(임파워링)을 통해 시스템 스스로 변화에 대처하도록 시스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방법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간단하다. 권한위임 받은 자는 스스로 리더가 되어 그가 직관리더십 행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권한위임도 직관리더십을 행사할 줄 아는 자에게 위임해야 그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말씀?
==> 솔직히 합리주의적 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아 정말 그런가? 왜 그런가?
==> 문자가 발명되고 학문이라는 것을 추구하기 시작한 이래로, 인간 지성의 최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하여 인류는 끊임없이 "합리적 이성"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인류 전체가 합리적 이성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학자들만이 합리적 이성을 추구한다.
여기서 학자는 학문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을 특정한 것은 아니다. 학자라는 표현은 하나의 비유적 표현 또는 상징적 표현이다. 세상 이치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 그리고 설명해내고 싶어하는 사람, 이들은 대부분 학자의 길을 걸어가려고 한다. 학자들은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설명을 해내고 싶어 한다. 이들이 학자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학자라고 부르는 것뿐이다. 이것이 합리적 이성을 추구하는 학자들의 모습이다.
(살아가면서 잠시잠깐 그러한 태도를 취한다고 학자 취급하지는 않는다. 평소에 매사에 사사건건 원인을 따져가며 현상을 설명해내려하고 이해하려고 하고 일반화하려고 하는 태도를 가져줘야 학자 취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합리적 이성을 추구하는 이는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태도를 갖는다. 그렇다보니 문제가 생기면 원인부터 규명하려고 한다.
우리는 초등학교에서부터 학자들이 만든 교육과정(수학, 과학, 사회 등등)을 통해 하루도 빠짐없이 합리적 사고를 하도록 요구받아왔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 "근거가 무엇인가?" "논리적으로 증명해봐라" 등등의 요구를 받는다.
우리의 삶은 매 순간이 문제해결의 과정이다. 문제해결은 곧 의사결정이다. 따라서 우리는 매 순간 의사결정을 한다. 합리적 이성은 의사결정을 할 때 반드시 근거에 기반한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도록 요구한다. 이때 근거란 과거의 원인분석 결과나 반복되는 패턴으로부터 추론한 예측된 미래 상황이다.
합리적 이성은 이처럼 미래를 예측할 때도 이러한 태도를 유지한다. 즉, 과거와 현재에 알려진 원인이라고 믿어지는 단서들의 집합 속에서 일관된 패턴을 찾아내어 미래를 예측해왔다. 패턴이 안 나오면 통계를 따져보아 확률이 높은 쪽으로 예측한다. 이러한 예측을 기반으로 의사결정하려는 태도를 가리켜 "합리적 의사결정"을 추구하는 태도라고 한다.
모든 문제 해결의 첫 단계는 원인규명으로 시작한다. 문제 해결안은 규명된 원인에 따르도록 제한되며 규명된 원인으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될 것을 요구받는다.
이처럼 합리적 이성을 따르는 문제 해결 과정은 철저히 통제를 기본 속성으로 갖는다.
합리적 이성을 따르는 "통제"는 멋있는 수식어가 붙여진다. “과학적” 통제라고 부른다. 과학적 통제의 원리와 기법은 행동과학의 이름으로 지난 20세기를 관통하며 전 세계의 교육과 학문을 지배하였다.
“과학적” 통제란 당초 설정한 목적을 향해 한 스텝 한 스텝 밟아 나가면서 원래 계획된 노선을 벗어나거나 오류가 발생하면 즉시 본 노선으로 복귀하도록 피드백 하는 것을 말한다.
피드백을 통하여 원래의 계획대로 최종 목적지에 정확히 도달할 수 있게 된다. 도중에 생각이 바뀌어 노선을 벗어나고 싶어도 통제에 의해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당초 규명했던 원인에 오류가 밝혀져서 최종 목적지가 수정된 경우에 한한다.
도중에 발생하는 오류는 수정해야 할 오류이며 과학적 통제의 대상일 뿐이다.
합리모델은 예측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대표적인 합리모델로서의 시스템은 예측 가능한 문제를 미리 예방하고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다. 예측 못한 상황에서는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된다.
이렇게 시스템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예측 불허의 돌발 상황에서 나를 살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를 살리는 지혜로운 처신을 하는데 있어서 시스템을 따라야 한다는 합리적 사고의 한계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를 기억하는가? 다음 사례는 시스템에 대한 강한 믿음이 오히려 해가 되는 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즉, 시스템에 대한 의존적 태도가 돌발 상황(미처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오히려 족쇄가 될 수 있다.
대지진에 의한 쓰나미로 후쿠오카 원전 사고 났을 때 이야기란다. 한 초등학교에서는 쓰나미 경보가 나고 아이들을 시스템에 따라 평소 훈련했던 대로 모두 운동장에 집결시켰다. 그 다음에 교장샘의 지시에 따라 신속히 산으로 대피해야 한다. 그 순간 교장샘이 자리에 없었다. 결국 교장의 지시가 없어서 주저하는 사이에 쓰나미에 희생당하고 마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뒤에 올라가면 살 수 있는 산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합리모델은 다음 세 가지 이유에서 특히 심각하다.
첫째, 합리모델은 원래 설명하고 해명하는데 관심이 있으며 문제해결은 주요 관심사는 아니다.
둘째, 합리모델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는 오직 예측 가능한 문제, 인위적으로 설정된 목표뿐이다.
셋째, 우리 삶 자체가 예측가능하지 않은 상황의 연속이다. 따라서 합리모델에 의존하는 삶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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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주의자 홍영일 박사가 감동을 받았는지 눈물이 글썽거린다.
지금까지 무난한 호감형 합리주의자 홍영일 씨와 멋진고 섹시한 직관주의자 홍영일 씨의 직격 인터뷰였습니다.
첫댓글 교수님!! 직관주의자의 자세로 현명하고 지혜로운 탁월한 선택을 정확히 해야겠다는 더 굳은 마음을 갖게 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대처는 직관적으로, 뒷수습은 합리적으로.. 세월호 때에도 그랬지만, 이번 메르스 사태로 더 명확하게 직관과 합리적 사고에 대해 저 스스로 판단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원칙과 시스템이 뿌리깊게 내려져 있는 우리 사회에 직관적 사고를 보기엔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게 저의 의견입니다. 맨 마지막 문장이 재미있네요ㅎㅎ
갑자기 하인즈의 딜레마가 머리 속에 떠오릅니다. 하인즈라는 이름의 남자의 아내가 중병을 얻어 죽어가고 있었고, 마을엔 아내의 병을 살릴 수 있는 약을 파는 약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인즈는 가난했기에 약을 살 만큼 충분한 돈이 없었습니다. 마을의 약사에게 사정을 설명했지만 약사는 돈을 100% 지불하지 않으면 약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이 경우 하인즈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제가 하인즈라고 한다면 일단 전 약을 훔칠 겁니다.
그게 직관적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닌가하고 합리주의자들이 생각해서
만약 하인즈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내는 죽고 말겁니다.
직관이란 우선순위를 찰나에 결정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직관적으로 위기의 순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의 생명입니다.(세월호나 메르스 사태에서처럼)
법을 지키는 것이 생명을 무릅쓰는 것보다 우선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리더가 결정하는데생각이 너무 많아서 망설이게 되면 그 팀은 산으로 갈것입니다. 지금이 그런 시기인것 같습니다. 메르스도 초기대응을 잘했다면 이런사태가 없을텐데 대처를 망설이고 정작 중요한일부터 하지못하였기때문에 초기에 잡을것을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대처는 직관적으로 뒷수습은 합리적으로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생각됩니다.
합리주의와 직관주의 라는것에대해 다시한번생각해볼수있는 글이였던것같고. 나는 매순간마다 어떤것을 사용하고있는가를 다시한번 생각해볼수있는 좋은계기가 될수있던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이 예측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합리모델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는 말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사실 학자들의 합리적인 의사결정과정을 따라하려고는 했지만 늘 직관적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직관적으로 행동한 후 합리적인 프레임을 어설프게 따라하며 그 행동을 후회는 했죠(^^). 메르스 사태에서 시스템의 한계를 여실히 실감합니다. 몇 개월 전에 티비프로그램에서 본 것인데, 에볼라 의심 환자가 병원 등 여러 담당 부서의 책임 전가로 인해 길 위를 헤매이다가 결국 다른 질병으로 사망했다는 이야기였어요. 직관적으로 행동해야 할 때는 합리주의를 모방하고, 합리적으로 재발 방지를 위한 행위를 해야할 때는
직관적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이 참 아쉬웠습니다. 이번 메르스 사태도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답답하네요
날카로우시네요^^
한 학기동안의 수업이 잘 정리되는 인터뷰네요. 뭔가 두 명의 다른 교수님이 카페에 앉아 말을 주고 받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읽으니 웃음이 났습니다.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에 대한 예시가 참 잘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소를 잃고 있는 상황에서 원인을 분석하는 것 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은 없겠죠. 저에게 있어 올해는 어떤 선생님이 되어야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 이 수업을 듣고 나도 모르게 학생들에게 합리주의적인 사람을 강요하는 선생님이 되어가는 저 자신을 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항상 원하던, 학생들을 교육하고 싶었던 방향성이 이 직관적인 사고를 갖고 행복한 살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었나 되돌아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언제 해결될지 끝이 안보이는 현 메르스 사태를 보고 있자면 합리주의 프로세스가 얼마나 무능한지 그 한계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교육 공학 수업 초기만 해도 합리주의 사고가 왜 문제인지 이해를 못하고 의구심을 품고 있었는데 한 학기 수업과 교수님의 인터뷰를 보면서 합리주의 시스템의 문제를 알 것 같습니다! 후회를 하더라도 일단 해보고 후회하자! 라는 말처럼 직관적인 태도가 때로는(사실 더 많은 경우) 인류의 삶을 향상시키는 원동력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어차피 합리적 사고를 통해서 내린 결정도 후회가 뒤따르니까요..~)
하은영 님 의견에 교정할 부분 ==> 합리주의 시스템 자체는 문제가 없어요. 그건 인간이 정의한 것에 불과해요. 문제가 되고 우리 뒤통수를 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에 있어서 합리주의적 태도만 고수하는 것을 말합니다. 현상을 설명하고자 할 때는 합리주의적 태도가 옳습니다. 그래야 또 설명이 되구요.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는 직관 스위치를 켜두어야 합니다.
아 네 그렇군요~! 가장중요한건 결정적인 순간에 즉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직관적 태도라는것.. 동의합니다~!
합리주의자 홍영일박사와 직관주의자 홍씨의 인터뷰 재밌게 잘 봤습니다! 이때까지 수업시간에 다뤘던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는 것같아요! 이번 메르스 사태를 경험하면서 합리주의적 사고 방식이 문제가 발생한 상황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직접 경험할수 있었습니다. 당장의 문제가 발생했을때는 그문제에 대해 원일을 밝히고 조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보다 지금 눈앞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메르스 같은 감염성을 가진 바이러스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구요... 마지막에 ' 우리 삶 자체가 예측가능하지 않은 상황의 연속이다. 따라서 합리모델에 의존하는 삶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라
는 말이 크게 와닿습니다. 아무리 계획을 철저하게 세운다고 해도 우리의 삶은 어찌될지 예측할수 없습니다. 돌발적인 상황에서도 해쳐나가기 위한 직관적인 사고를 키울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메르스 사태가 일어나고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말씀하신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이 어떤 문제를 가져오는지 전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기 때문이겠죠. 어떤 사태가 일어났을 때, 직관적으로 판단하여 곧바로 대처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지체한 그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사건인 것 같습니다.
어떤상화에선 무조건 합리주의자,어떤상황에선 무조건 직관주의자 이것보단
상황에 따라 합리주의,직관주의로 판단하여 사용하여야 하는것같습니다.
작년에는 세월호 사건으로, 올해는 메르스 사태로.. 최근,, 나라에 너무 안타까운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합리주의 홍영일박사와 직관주의 홍영일씨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 메르스 사태와 이런 메르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나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또 다시 생기면 안되겠지만, 만약 문제가 발생한다면 합리적으로 파고들어 생각, 생각, 생각하기 보다는 직관적으로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 제가 되어야 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합리주의 홍영일박사와 직관주의 홍영일씨의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합리모델과 직관모델 사이에서 가장 고민이되었던 것을해결하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가장 문제가 되고 있고 해결이 시급한 메르스라는 사태를 가지고 이야기 한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교수님의 강의에서 들었던 합리주의와 직관주의라는 것이 이렇게 빠른 시일내에 바로 우리 주변의 일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합리주의와 직관주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합리주의 홍영일박사와 직관주의 홍영일씨의 인터뷰를 통해서 메르스 사태를 돌아보신 점이 흥미롭습니다. 교수님이 수업시간에도 계속 말씀해주신 것처럼, 어떤 사태가 일어났을 때 직관적으로 판단하고, 곧바로 대처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명선 샘, 만약에 말이에요, 누군가가 이렇게 질문하면 뭐라고 답하시겠어요?
"어떤 사태가 일어났을 때 직관적으로 판단하고 곧바로 대처하는 자세가 좋을수도 있지만, 보다 합리적인 자세로 신중하게 대처하는 것이 더 큰 화를 불러오지 않는 자세 아닐까요?"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신중하게 생각하다가 이미 결정포인트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중하게 생각하는 동안 이미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이런게 아닐까 싶습니다.
명선샘의 답변은 합리주의자들에게 납득이 가지 않는 답변입니다. 결정포인트를 잃어버릴 수도 있지만 신중하지 못하여 더 큰 화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합리주의자는 더 큰 화를 막기 위해 신중한 태도를 고수하게 됩니다. 이번 메르스 사태 초기 대응에서 온 국민이 바로 이러한 현실을 여실히 보았죠. 더 좋은 답변이 필요합니다.
더 좋은 답변??? 무엇이어야 할까요? 합리주의자도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는 그런 답변 말이죠.
매 순간 의사결정을 합리냐 vs. 직관이냐의 이원론으로만 접근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꼭 유념하세요. 합리냐 직관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합리주의자를 설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것 밖에 없는 거 같애요. 뭐냐하면...
그 어떤 합리적 태도에 기반한 의사결정이라 하더라도, 근거에 기반한 합리적 의사결정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최초의 의사결정은 직관이라는 점을 지적해야 합니다. 가장 최초의 판단은 직관입니다. 그 직관의 역할은 내가 이 순간에 합리적으로 할 것인가 직관적으로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일 수 있어요.
이처럼 최초의 판단은 반드시 직관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기시켜주어야 합니다. 직관이 개입할 여지는 최초의 순간에서뿐만이 아닙니다. 합리적 프로세스를 밟아가는 매 순간 순간에도 직관이 필요합니다. 왜일까요?
합리적 프로세스란 미래를 예측하고 그 예측된 상황을 전제로 그 다음 단계의 행동을 결정하고 또 그 다음 행동을 결정하고... 이처럼 예측을 기반으로 제시한 행동의 나열이죠.
그러나 그 어떤 예측도 100% 맞아떨어지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예측을 벗어나면서 상황이 전개됩니다. 유일하게 100% 충족시키는 예측은 "예측이 빗나갈 것이다"라는 예측 뿐이죠.
따라서 합리적 프로세스에서 나열된 행동 계획들은 매 순간 변화된 상황에 맞게 바뀌어야 합니다. 이때 당초 계획을 바꿀꺼냐 말꺼냐를 상황 분석 결과에 비추어 결정을 내릴 수 있으니, 아직까지는 직관의 개입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상황 변인은 매우 복잡하여 솔직하게 충분히 상황을 분석해내어 타당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기대감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 직관에게 길을 터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죠? 매 순간 상황은 예측을 벗어나 전개되며, 결국 매 순간마다 계획되지 않았던 의사결정의 필요가 발생하게 됩니다. 결국 새로운 상황에 따른 새로운 합리적 프로세스를 정립해야 합니다.
새로운 합리적 프로세스를 수립하기 위한 가장 첫 의사결정은... 네 맞습니다. 직관입니다. 결국 매 순간 순간에도 직관은 결국 필연적으로 개입하게 됩니다.
그러나 합리성에 길들여진 우리는 직관의 개입을 차단시키고 맙니다. 그 결과는 처참합니다. 매 순간 우리는 주체적 의사결정을 하지 않고, 계산된(또는 추론된) 가상의 시나리오에 맞춘 합리적 프로세스를 전개하면서 실제적 현실에서는 필연적으로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교육이 지금과 같은 합리적 이성만을 우리에게 요구한다면, 결국 우리 자신을 파멸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예측을 벗어나 전개되는 미래의 상황 상황들에 어떻게 대처하며 의사결정을 해나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이처럼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것을 미리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리 생각해서 대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합리주의적 태도이며, 예측 가능성을 믿고, 그 예측된 상황에 대처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것를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대처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니, 그냥 대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측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을 바꾸어보죠.
예측을 벗어나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미리 생각하는게 필요한 게 아닙니다.
예측을 벗어나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묻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없습니다. 답이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불확실성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수용적 태도,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있게 헤쳐나가겠다는 긍정적 태도가 필요합니다.
결국, 관건은 태도입니다.
리더에게는 직관이, 팔로워에게는 합리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는 말에 적극 공감하는 바입니다. 다만 합리주의가 단지 예측 가능한 문제에만 국한된다는 논지에 대해서는 아직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합리주의는 '풍습이나 감정에 의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행동하는 태도'를 말한다고 정의되는데(철학사전 참조), 이 이성이 단지 예측 가능한 문제만을 대상으로 하는 걸까요? 예측 불가능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합리적인 이성을 사용할 수는 없는 건지요? 합리적 이성의 적용범위를 잘 모르겠습니다..
찬미 샘, 합리주의를 설명할 때 풍습이나 감정에 의존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려는 태도라는 정의는 합리주의자들이 내린 정의입니다. 그들의 머릿속 개념이죠. 그렇게 정의하는 합리주의자 머릿속에는 직관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더욱이 그런 개념은 르네상스나 계몽주의 시대에 주창되었던 매우 구식의 개념이죠.
대부분의 학자다운 학자라면 그들이 추구하는 합리적 이성의 개념, 합리적 태도는 분명합니다.
첫째, 철저히 근거에 기반하여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논증만이 진리를 보장한다.
둘째, 합리성은 현상을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한 해석의 도구이다.
이상입니다. 예측은 들어있지 않아요.
일요일(6/21)에 제 페이스북에도 올렸지만, 합리성의 역할과 합리모델의 한계를 잘 드러내보여주는 국내 대표적 역사학자의 인터뷰에요.
“흔한 오해 중 하나는 역사가 반복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복될 수가 없어요. 반복된다면 예측이 가능할 텐데 그렇지가 않으니, 지난 경험을 아무리 잘 알아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혀 예측 못 하는 거지요. 다만 지난 역사 경험을 들여다보면 인간이란 어떤 존재고 사회는 대개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남들보다 감을 더 잘 잡든지 혹은 약간 실수를 덜 하는 정도는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역사가는 예측이 아니라 해석을 할 뿐입니다...”
-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 출처: biz.chosun.com
왼쪽 게시판 중에 <My own idea> 게시판에서 가장 최근에 올린 "요즘 트렌드인 인문학 강연... 다시 생각해봐야할 이유!"를 들어가보세요. 국내 최고의 칸트 권위자로도 알려져 있는 서울대 철학과 백종현 교수님의 인문학에 대한 칼럼이 있습니다. 이 또한 합리성의 역할을 잘 보여주고 있는 글입니다.
처음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때만 해도 직관이라는 것에 대해 크게 호응, 공감하지 못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완전히 직관적인 사람이 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그동안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생각을 하며 나름 잘 살아왔구나 라는 제 생각이 아 직관이라는 것이 틀린것은 아니구나 오히려 직관적인 삶을 살게된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더 많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조금은 들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이 수업은 머릿속에 전혀 없던 직관이라는 것이 이제는 조금은 들어오고 직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직관, 합리를 접했을때 익숙한 말이지만 딱히 정의 내리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 합리적으로 하는것이 옳은지,직관적으로 하는것아 옳은지 갈팡질팡 했는데.. 대처는 직관적으로,뒷수습은 합리적으로란 말이 모든것을 명쾌하게 해주는것 같습니다.
아 교수님^^ㅋㅋㅋ 저 교수님 수업듣고, 직관주의자로 살려고 했는데...
멋지고 섹시한 직관주의자 홍영일도 좋지만, 무난한 호감형 합리주의자 홍영일도 좋은데 어떡하죠?ㅋㅋㅋㅋㅋ
무난한 호감형 합리주의자가 호감형이면서도 무난한 스타일인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과거에 저를 좋아해주었던 숱한(내 생각에는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 여성들을 떠올려보면, 매사에 대처하는 태도가 침착하면서도 합리적으로 상황 설명을 명쾌하게 하고 갈등을 정리해주는 그런 제 모습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바삐 살아가다가도 가끔은 쉬면서 뒤를 돌아보고 내가 잘 가고 있는가 점검도 하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태도가 합리주의적 태도가 아닌가 생각이 되는 거죠. 그래서 합리적인 사람에게도 끌어당기는 매력 같은게 있을 수 있는 거죠.
또한, 등산에 비유를 해볼 수 있겠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몇시간이고 마냥 오를 수는 없어요. 가끔 바위 턱에 걸터앉아 쉬어주어야 합니다. 쉬면서 내가 어디까지 올라왔나 주변을 둘러보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면서 내가 앞으로 올라갈 길의 정황도 살피기도 하고 하는 거죠. 그럴 때 필요한 태도가 합리주의적 태도가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본능적으로라도 합리적 태도를 싫어할 이유는 없어요. 좋아할 이유는 많은 거죠.
교수님 ~~~ 초반 수업때 해 주신 말씀이 기억나네요~ 그 문제에 대한 고찰이 끝났을 때 이미 시간과 공간은 변하고 문제는 그대로 같은 양상이 아니다~ 이 말이 참 가슴에 와닿았는데 다시금 떠오르네요~~ 직관적인 상황 대처의 중요성을 항상 숙지해야겠습니다.
페북에서 이 글을 읽고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내 안에 합리와 직관이 모두 있는게 맞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자아와 자아가 맞붙게 되지요...
예전엔 합리의 승률이 높았는데 언젠가 직관의 승률이 높은 삶을 추구하고 있더라고요...ㅎㅎ
바른 삶을 살고 계신 것 같습니다^^
^^ 어린이들의 영어교육에 비하자면 큰 학원에서 잘 짜여진 커리귤럼에 따라 아이들은 이리저기 옮기는 것 보다 작은 학원에서 실력있고 성실한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성장 속도에 맞추어 학습하는 그래서 결국 학생들에게 더 유익한 교육이되는 ...겉으로는 그럴지 않을지라도...
흥미롭네요 합리와 직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