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절을 다시 생각해 본다」
8.15 광복절을 앞두고 있다. 광복절은 우리 민족이 일제통치에서 해방된 것이니 너무도 감사한 일로 그 의미를 다시 새겨보자.
광복절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내리신 선물이었다. 우리 스스로 일본제국을 제압하고 쟁취한 해방이 아니었으니, 어찌 자랑스러울까? 그렇다고 광복을 위해 순국하신 애국선열들의 충정을 애써 외면하려는 뜻은 아니다.
태평양 전쟁 직전까지 일본제국의 팽창이 꺾일 줄 모르던 시기에 우리 선열들은 자력으로 광복을 쟁취하기란 너무도 암담했었다. 일제는 항복 직전까지 미국을 상대로 ‘조건부 항복’을 협의하였다. ‘조건부 항복’이란 일본천황의 존속과 조선 영토를 일본에 존속시켜준다면 즉각 항복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때 미국은 일본군의 처절한 저항으로 피해가 엄청났기에 이를 수용할 수도 있었다. 만약 이때 미국과 일본이 ‘조건부 항복’에 합의했더라면 우리는 해방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오끼나와(과거 유구국)는 아직도 해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라.
역사상 강대국간의 전쟁으로 해방된 나라는 한국 외에 핀란드, 체코, 터키 등이 있다. 핀란드는 러시아의 도움으로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했고, 체코와 터키도 전후 질서 재편과정에서 독립되었다. 그러나 이 나라들이 저절로 해방된 것은 아니었다. 국제적 여건이 성숙되었더라도 순간의 기회를 낚아채지 못하면 다시 오기 어려웠고, 국제적 감각이 탁월한 지도자가 없었더라면 불행이 계속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해방을 맞았지만 1950년 6월 북한의 남침으로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았다. 그럼에도 미국은 유엔군을 참전시켜 우리 민족을 구해 주었고 수많은 원조와 경제부흥의 무역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루게 도왔다. 우리 스스로도 ‘새마을 운동‘과 자강불식의 정신으로 7080 시대를 열어 지금과 같은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
반면 북한은 30년간 핵, 탄도탄을 개발하면서 한반도 적화통일 전략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북한은 미국과 협상을 통해 핵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공개 협상보다 어떤 이면합의나 비밀외교를 거치기 때문에 우리는 주시해야 한다. 미국은 월남에서 철수하면서 월남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뒤, 엄청난 군사장비까지 이양하였고 월맹과는 평화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2년뒤 월맹이 무력 침공했을 때 미국은 비밀 합의에 따라 월남을 지원하지 않아 월남이 공산화되었다. 이와 같이 상호방위조약이 있다 하더라도 국가간의 신뢰가 없으면 휴지에 불과한 것이다.
현재 한미동맹은 자동개입이 보장된 NATO와 달리 `각자의 헌법절차에 따라 행동할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앞으로 우리가 전시 작전통제권을 인수할 경우 미국의 핵우산은 한미동맹의 수준과 미 본토의 안전 여부에 따라 변화될 수 있다. 이와 같이 북한의 핵위협이 현실화된 만큼 한국은 어려운 안보적 환경에 처해 있다. 남북한이 분단 40여 년간의 불신과 적대 관계를 그대로 두고 하루아침에 통일을 이룰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그럼에도 세계는 지금 국제정치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한반도에 화해와 평화를 이룩하고 통일을 조성하려는 정책은 세계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북한도 시대의 흐름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핵, 미사일을 앞세우고 공포정치로 인민들을 억압하더라도 ‘철옹성’ 같던 절대권력은 봄바람과 함께 녹아내렸다. 구소련이 붕괴되었고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세스크도 끝내는 성난 군중들에게 처형되었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았을 때, “천하는 한 사람만의 천하가 아니었다. 민심을 함께 해야 천하를 얻을 수 있었고, 천하의 이익을 독점하려 했던 자는 천하가 그를 버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쉽게도 우리는 숙제를 후손들에게 남긴 채, 모두가 ‘고희’를 넘기고 말았다. 자식 세대들이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은 크나, 한편으로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저절로 이뤄진 것으로 여겨 정신적으로 해이되지 않을지 염려스럽다. 이루기는 어려워도 망치는 것은 순간이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에게 마지막 남은 사명은 자식 세대들에게 민족 고난의 역사적 교훈을 늘 일깨워 주어야 하겠다.
청계산 자락에서, ph.d 죽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