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고지금博古知今, 옛일을 널리 알면 오늘날의 일도 알게 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지나간 역사를 통해 오늘의 현실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의 눈을 얻을 수 있다.
전염병은 결코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여러 감염병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새로운 감염병의 출현 가능성 또한 인류가 계속 대비해야 할 현실적 과제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전염병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인류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그 미래를 가늠하고 대비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난날 인류가 겪어온 전염병의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전염병은 맨 처음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인류가 역사의 첫걸음을 내디딘 그때부터 질병은 인간의 삶과 함께해 왔다. 역사학자 윌리엄 맥닐은 약 1만 년 전 인류가 농경과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 대규모 전염병이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이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보았다.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생활 환경은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토양과 물이 오염되고, 소나 말 등 여러 동물을 가축으로 기르면서 인간과 동물의 접촉도 훨씬 빈번해졌다. 동물에게 있던 병원체가 인간에게 옮겨올 가능성도 자연스럽게 커졌다.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이 집단을 이루어 정착하고 가축을 기르며 문명을 일구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부터 전염병이 유행할 수 있는 조건도 함께 만들어진 것이다.
문명의 탄생과 전염병의 출현은 서로 무관한 사건이 아니었다.
사람이 모이고, 도시가 생기고, 교역이 이루어지고, 인간과 동물의 이동이 활발해질수록 질병 역시 더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문명의 발상지는 동시에 전염병이 발생하고 확산될 수 있는 중요한 환경이기도 했다.
기록에 따르면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이집트 문명이 본격적으로 싹트기 이전인 BCE 3500년경, 동방 배달국의 태호복희씨 시대에는 이미 침술의 기원이 나타났다고 전한다. 태호복희씨는 태극기에 나타나는 건곤감리 등 팔괘를 처음 그린 인물로 전해진다.
그로부터 약 200년 뒤 염제신농씨 시대에는 농경과 교역뿐만 아니라 의학 또한 크게 발전했다고 전해진다. 신농씨가 농경과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도 이러한 전통과 관련되어 있다. 의학이 발전했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이 다양한 질병과 끊임없이 맞서왔음을 보여준다. 질병이 있었기에 치료법이 필요했고, 인간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몸과 자연의 이치를 탐구했다. 질병과 의학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인류 문명과 함께 발전해 온 셈이다.
문명은 발달한 곳에서 그렇지 않은 곳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고 교역로가 열리면서 문화와 기술이 전파되었고, 그 길을 따라 질병 역시 함께 이동했다. 따라서 고대의 전염병 역시 어느 한 지역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문명의 교류와 확산에 따라 점차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갔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인류 초기부터 인간을 괴롭혀 온 대표적인 전염병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시두, 즉 천연두·두창·마마이다. 시두는 오랜 세월 동안 세계 여러 지역을 휩쓸며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문명이 이동하고 서로 다른 민족이 접촉하는 과정에서 시두를 비롯한 여러 감염병도 함께 퍼져나갔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가 문명사를 바라볼 때 반드시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인류가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거대한 문명 전환의 과정에서 전염병이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해 왔다는 사실이다.
윌리엄 맥닐은 전염병이 단순히 개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차원을 넘어 민족과 국가, 나아가 문명의 운명을 바꾸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염병이 대규모로 확산되면 사람만 죽는 것이 아니다. 사회질서가 흔들리고 경제활동이 멈추며, 기존의 정치 체제와 가치관도 큰 충격을 받는다.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달라지고 종교와 사상, 국가의 제도까지 변화한다. 때로는 기존 문명이 쇠퇴하고 그 자리에 전혀 새로운 질서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문명은 질병이 확산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왔고, 다시 질병은 문명의 방향을 바꾸어 왔다.
과거에는 전염병이 문명 변화에 미친 영향이 전쟁이나 정치적 사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주목받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질병이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꾼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이 점점 더 크게 조명되고 있다. 인류 역사를 길게 관통하여 보면 그 모습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고대에서 중세로,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거대한 문명의 전환기에는 전쟁과 함께 대규모 전염병이 반복해서 나타났다.
전쟁이 기존의 국가와 사회질서를 무너뜨렸다면, 전염병은 인간의 삶과 가치관, 경제와 문화의 기반 자체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충격 속에서 인류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사회질서와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왔다. 그렇다면 인류의 역사를 뒤흔든 전염병은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으며, 그 질병들은 세계사의 방향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