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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행복에 유리한 환경 만들기
행복의 신호인가? 잡음인가?
: 행복의 신호탐지이론
신호탐지이론(Signal detection theory, SDT)은 심리학의 기본토대를 이루는 이론 중 하나로 외부 환경에 있는 수많은 자극들 중 개인에게 의미 있고 중요한 신호와 무의미하고 중요하지 않은 잡음을 걸러내는 인간의 인지능력을 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1].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의미 있는 신호 자극이 무의미한 잡음보다 충분히 강할 때, 어려운 말로 신호 대 잡음비(Signal-to-noise ratio, SNR) 충분히 높을 때, 신호를 알아차리고 그 신호에 걸 맞는 판단, 의사결정, 행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신호 대 잡음비가 충분히 높아서 잡음 안에 숨어 있는 신호를 알아차리게 될 수 있는 상태를 역치(Threshold)를 넘어선 상태 혹은 최소가지차이(Just-noticeable difference, JND)를 넘어선 상태라고 칭한다.
이 이론이 처음 생겼을 때는 ‘맑은 날 밤 100m 거리에서 불빛을 감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밝기’, ‘1리터의 물통에 설탕을 조금씩 넣을 때 설탕이 들었음을 감지하는데 필요한 농도’ 등의 감각적 차원에 한정하여 연구가 진행되었다[3]. 그러나 이후 이 연구가 감각적 차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고,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경력사원을 채용하려고 한다. 그 사람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고, 연봉협상만 남겨두고 있다. 회사가 그 사람에게 얼마를 제시해야 그 사람이 이직을 결심할까? 즉 그 사람 마음에는 얼마의 연봉이 이전 회사와 확실히 다르다고 인식할만한 역치일까? 다른 말로 그 사람 마음에는 얼마의 연봉이 되어야 잡음(noise)라고 여기지 않고 신호(signal)라고 여길까?[4] 이처럼 우리 주변에 있는 실생활의 문제들은 많은 경우 신호탐지이론에 관한 것들이다. 부연하자면 돈을 효용(Utility)이라고 바꿔서 부르고, 효용을 행복(Happiness)로 바꿔서 부르는 순간 신호탐지이론은 우리 삶의 행복과 관련된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신호탐지이론이 우리 삶과 밀접하다는 것은 알았으니, 이제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자. 신호탐지이론의 핵심은 일정한 강도의 신호가 존재할 때, 잡음의 비율을 낮추면 신호를 감지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사실 기온이 오르듯이 환경의 신호 자체가 잡음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진다면 좋은 일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 환경은 인간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합리적인 방법은 잡음제거 이어폰(noise cancelling earphone)처럼 잡음의 비율을 낮추는 것이다. 잡음을 없애서 우리 삶에 필요한 신호들을 원활하게 획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은 한층 풍요로워 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학생들의 학업 성취와 물리적 소음들의 관계를 다룬 연구들을 살펴보자. 뉴욕시 초등학교 학생들의 읽기 점수에 대한 연구를 보면, 기차가 4~5분마다 덜컹거리면서 지나가는 철로와 인접해 있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읽기 점수는 그렇지 않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읽기 점수보다 심각하게 낮았다[5].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자들이 뉴욕시의 대중교통을 담당하는 정부 기관과 교육위원회에 요청하여 해당 학교 교실에 소음 차단 시설을 설치했더니, 학생들의 읽기 점수가 몰라보게 개선됐다.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활주로 주변의 학교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독일 뮌헨시의 공항을 새로운 곳으로 옮기자 새 공항이 들어선 지역의 아이들은 기억력과 읽기 시험 점수가 크게 떨어진 반면, 예전에 공항이 있던 지역의 아이들의 경우에는 상당히 올랐다[6].
따라서 집이나 자녀의 학교가 자동차, 기차, 항공기 등으로 지속적인 소음이 일어나는 지역에 있다면 소음을 줄이는 해결 방안을 반드시 요구해야 한다. 기업도 직원의 효율성과 회사의 이익을 위해 소음 감소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편 교사는 저학년 학생의 학습을 방해할 수 있는 또 다른 환경 요인을 고려해야 하는데, 특히 교사 자신이 직접 방해 요소를 만드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포스터, 지도, 미술작품 등이 과하게 붙어 있는 교실은 그곳에서 과학을 배우는 아이들의 학습 효과를 떨어뜨린다[7]. 과도한 게시물은 아이들의 과학적 지식 습득을 방해하는 소음이었던 것이다.
이쯤 읽은 독자들은 내 주변에도 이러한 소음이 있지 않은지 고민하기 시작했을 수 있다. ‘지금 나의 재미있고 의미 있는 삶을 방해하고 있는 소음, 즉 내 행복을 방해하고 있는 소음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들을 던지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여러분 주변을 살펴보시라. 혹시 환기 시키려고 열어둔 창문을 계속 열어두지 않았는가? 이것 때문에 밖에서 계속 소음이 들어와서 내 집중을 방해하진 않았는가? 혹시 공부를 하거나 독서를 하려고 마음먹었으면서 모국어 가사가 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지는 않았는가? 아니면 내가 절대음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뭔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한음 한음마다 달라지는 음계(도레미파솔라시)가 내 머릿속에 들어오게 만들고 있지는 않았는가?
SNS의 단체 대화창을 열어놓고, 내 시야에 잘 들어올 수 있는 위치에 놓아두고는 누가 말할 때마다 시선을 뺏기지 않았는가? 해가 질 무렵 버스나 전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고 있는데, 스마트폰만 쳐다보느라 환상적인 노을이 있는 풍경을 놓치지 않았는가? 스마트폰만 보고 걷다가 눈앞에 제발 가져가 주세요~ 하고 떨어져 있는 5만 원짜리 지폐를 놓치고 그냥 가고 있진 않은가? 운전하면서 네비게이션을 보느라 전방주시를 태만하게 해서 옆 차선을 달리던 차가 깜박이를 켜고 차선을 변경하고 있다는 더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진 않은가? 운전 중에 재미있는 라디오 디제이들과 게스트의 멘트에 정신이 팔려서 빠져나갔어야 하는 교차로를 지나쳐버리진 않았는가? 간식을 필요할 때만 꺼내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늘 잘 보이는 곳에 꺼내놓음으로써 자꾸 손이 가게 만들고, 간식이 다는 속도도 빨라지고, 살도 찌고, 안 써야 하는 돈도 더 쓰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았는가?
눈에 보인다고, 귀에 들린다고 손으로 만져진다고, 다 행복에 중요한 신호(Signal)는 아니다. 행복해지기 위한 여러 가지 이론들이 나와 있지만, 어쩌면 이것들은 모두 심리학의 기본인 신호탐지이론의 주석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즉 삶의 행복과 관련 없는 잡음은 줄이고, 행복과 관련이 높은 신호를 높이라는 이 단순한 메시지가 행복과 관련된 연구의 전부일 수도 있다. 행복에 정확한 신호인 것은 하라(Hit). 그러나 행복의 잡음인 것은 하지 말라(Correct reject). 행복의 정확한 신호는 놓치지 말라(Not Missing). 마지막으로 행복의 잡음을 행복의 신호인 것으로 착각하지도 말라(Not false alarm). 내 방에 뭔가 잡음이 많다고 느껴지는가? 그냥 청소를 해보자. 그것만으로도 내 방 곳곳에 숨겨져 있던 행복의 신호들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1] Green, D. M., & Swets, J. A. (1966). Signal detection theory and psychophysics. Oxford, England: John Wiley.
[2] Galanter, E. (1962). Contemporary psychophysics. New York, NY, US: Holt, Rinehart and Winston.
[3] Linker, E., Moore, M. E., & Galanter, E. (1964). Taste thresholds, detection models, and disparate results.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67(1), 59-66.
[4] Galanter, E. (1962). The direct measurement of utility and subjective probability. The American Journal of Psychology, 75(2), 208-220.
[5] Bronzaft, A. L., & McCarthy, D. P. (1975). The effect of elevated train noise on reading ability. Environment and Behavior, 7(4), 517-528.
[6] Hygge, S., Evans, G. W., & Bullinger, M. (2002). A prospective study of some effects of aircraft noise on cognitive performance in schoolchildren. Psychological Science, 13(5), 469-474.
[7] Fisher, A. V., Godwin, K. E., & Seltman, H. (2014). Visual environment, attention allocation, and learning in young children: When too much of a good thing may be bad. Psychological Science, 25(7), 1362-1370.
글: 이국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