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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새!, 참섀! ” 아름다운 금문교에 넋을 잃고 있는 일행들에게, 갈 길을 재촉하는 가이드의 호출이 계속 된다. “ 짹!, 짹, ” 아쉬움 속에, 일행들이 힘없이 화답을 한다. 시간에 쫒기는 여정이라, 금문교 다리 위는 밟아 보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달리는 케이블 카. 우리나라의 케이블 카와는 그 개념이 다르다.)
다음 목적지는 Fishermans' Wharf. 샌프란시스코를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거쳐 가는 필수 경유지다. 이 곳에는 수 백 대의 요트가 정박 해 있는 요트장이 있고, 각 지역을 운행하는 유람선의 출발지이며, 각종 기념품 상점이 여행객들을 유혹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두에서 벌어지는 각종 연예 장면은 풍성한 볼거리를 준다.
( Fisherman's Wharf, 수 백 척의요트가 정박 해 있는 요트장. )
또 한, 해양 박물관, 잠수함 박물관 이름도 우스꽝스러운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 밀 납 인형 박물관, 등이 있다고 가이드의 안내가 있었으나, 시간에 쫒기는 일정이라 현지답사는 생략. 이 지역의 선착장은 그 수로도 유명하다. 북쪽 저스틴 허만 프라자, 페리 빌딩에서 시작하는 선착장은 태평양을 끼고 남쪽으로 모두 47 개의 선착장을 갖추고 있다. 그 중 관광 유람선이 출발하는 선착장은 Pier 39에서 43 번까지. 특히 Pier 39 는 생략 할 수 없는 선착장이다.
( 관광 명소 Pier 39. 각종 선물 가게와 음식점 등으로 관광객들이 항상 붐비고 있다.)
Pier 39 는 관광객 유치를 위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시설임을 알 수 있다. 약 18만 m2 의 넓이에, 2 층으로 된 목조 건축물로 기념품 상점 110 개와, 바다를 조망 할 수 있는 음식점 12 개, 해양 수족관, 과일 가게, 옷 가게 등이 300 m 길이로 바다를 향하여 일직선으로 줄을 서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무엇보다도 샌프란시스코만을 한 바퀴 도는 쿠르즈 여행. 바다사자들의 서식지를 보고, 유명한 알카트라즈 섬, 잔파도에 출렁이며 내닿는 요트의 행렬, 그리고 Golden Gate Bridge 다리 밑을 돌아 나오며 샌프란시스코 언덕에 높이 솟은 빌딩 군을 바라보는 여정이 여행객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준다.
( 샌프란시스코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무엇보다도 샌프란시스코만을 한 바퀴 도는 쿠르즈 여행이다. 2 시간 동안의 크루즈 여행은 몸과 마음을 한 껏 부풀린다.)
선착장을 뒷걸음질로 빠져나온 유람선은 선수를 돌려 물살을 가르며 바다 한가운데로 속력을 낸다. 오른 쪽 선창에서 갑자기 “ 와!, 와!” 함성이 들린다. 시선을 돌린 곳에 수 십 마리의 바다사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눈앞에 예상치 못했던 동물을 목격한 관광객들은 함성과 함께 쉴 새 없이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댄다.
( 수 백마리의 바다 사자들이 인간 사회와 멀지 않은 곳에서 자연 그대로 서식하고 있다.)
이들은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데크 위에 한가로이 엎드려 있다. 지나가는 배들을 관심 없다는 듯,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다. 마치 이들이 사람 구경을 하는 것 같다. 다시 20 여분을 달렸을까? 오른 쪽 선창에 전투함 모양을 한 검은 물체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보인다. 아직도 안개가 걷히지 않아 그 물체가 무엇인지 선뜻 분별이 되지 않는다.
( 년간 150 만명이 다녀 간다는 관광 명소, 알 카트라즈 아일랜드. 1934 년부터 1963 년까지 29 년 동안 1 급 흉악범들을 수감 했던 형무소. 알 카포네, 머신 건 캘리 등이 수감 되었엇다.)
“ 저 섬이 바로 그 유명한 알 카트라즈 섬입니다. 1934 년부터 1963 년까지 29 년 동안 주 연방 형무소로, 전국의 각종 흉악범들을 수감했던 곳 입니다. 1930 년대 시카고 마피아의 대부, 알 카포네, 베어비 페이스 넬슨, 머신 건 켈리, 존 딜링거 등, 일등 흉악범들이 수감 되었던 곳입니다.
( 좀 더 가까이에서 본 알 카트라즈 섬. 시간에 쫒기는 여정이라 아깝게도 섬 상륙은 하지 못 했다. 그 안에는 수감자들의 사진과 기록물, 그리고 탈출을 시도했던 현장이 고스란히 보존 되어 있다는데. )
그 당시 이 섬은, 수감자들이 탈옥 할 수 없는 천혜의 형무소로 알려져 왔습니다. 고립 된 섬이며, 섬 주위의 물살이 빨라 탈옥에 성공해도 곧 급류에 휩쓸리게 되지요, 뿐만 아닙니다. 이 지역은 수온이 차고, 주위에는 상어들이 있어서 탈옥에 성공하여도
이 형무소 개원 이래 폐쇄 될 때까지, 모두 14 회에 걸쳐 36 명의 탈옥 시도 자가 있었으나, 모두 실패하고 단 3 명만이 오리무중 속, 의문만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3 명의 탈출자는 해변 가에 신발만 가지런히 남겨 놓고 사라졌는데 세월이 가도 시체가 발견되지 않아, 탈옥의 성공 여부를 가름 할 수가 없습니다. 탈옥에 성공하여 멕시코 어딘가에 운둔 생활을 하고 있는 탈옥 범을 목격 했다는 주장도 있고, 상어 밥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어 이 해답은 아직까지도 미궁 속에 묻혀 있습니다. 상어 밥이 되었다는 주장이 우세 하기는 하지만, 그 탈옥 사건이 있은 후, 이 형무소는 폐감 되었습니다. 더 이상 천혜의 형무소가 될 수 없다는 이유지요. 최근에 와서는 숀 코넬리와 니콜라스 케이지가 공연한 “ The Rock ” 영화가 촬영 된 장소이기도 합니다. “ 샌프란시스코만을 약간 벗어나 있는, 총 면적 22 에이커(88,000m2) 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섬은 그 규모와는 달리 세월 따라, 환경 따라, 그때그때 매우 중요한 역사의 무대가 되어 왔다. 한 때는 인디안 부족들의 영토로, 남북 전쟁 당시에는 군 교도소로, 혹은 미군들의 첫 번째 해안 초소로, 또는 미국 서해안의 첫 번째의 등대로, 주 연방 감옥으로, 그 후 새와 식물들의 보호 구역으로 지정 됨으로써, 시대에 따라 그 역할이 변천되어 왔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1934 년부터 1963 년까지, 29 년 동안의 연방 형무소 이야기가 세상에 제일 많이 알려져 있다.
1960 년대 중반쯤으로 기억되는데, 그 당시 단성사에서 “ 암흑가의 왕자, 알 카포네” 라는 영화를 인상 깊게 본적이 있었다. 주인공의 실제 이름은 기억나지 않으나, 짧은 키, 다부진 용모의 주인공은 시카고를 배경으로 온갖 만행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1930 년대 미국 정부에서 내린 금주령을 위반하고 주류 밀 매매 유통과정을 석권하였으며, 살인과 협박을 일삼으며, 암흑가를 지배한 마피아의 대부다.
그는 정치에도 간여하여 시장과 지방 판사 등 고위 공직자들을 협박하고 때로는 회유하며, 마피아 대부로서의 파워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밤의 대통령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다른 마피아 두목과의 파워 게임에서도 무자비하게 살인을 자행 하였다. 그는 10 여 번에 걸쳐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번번이 증거 불충분, 무혐의로 풀려 나왔다. 보복이 두려워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집행판사도 뇌물과 협박으로 몸이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법으로는 연방 정부가 지방의 살인, 도박, 매춘 사건 등에 관여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만행을 알면서도 한 동안 수수방관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만행이 극에 달하자, 연방 정부는 드디어 그의 이름을 불랙 리스트에 올려놓고, FBI로 하여금 그를 옭아 매도록 지시 하였다. FBI는 치밀한 작전 끝에, 연방 정부가 관여 할 수 있는 주류 밀매와 세금 포탈에 초점을 맞추어 비밀리에 증거 확보에 나섰다. 결국 세금 포탈 혐의를 입증시켜, 11 년의 유죄 판결로 1932 년 아트란타 교도소에 수감 하였다가, 1934 년 초에 알 카트라즈 형무소로 이송 하였다. 아트란타의 교도소 생활은 그에게 큰 고통을 주지 못했다. 비록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그의 금권과 조직의 파워는 감옥의 교도관들에게도 여지없이 발휘 되었다. 감옥 안에서도 여전히 그의 조직 “ Chicago Outfit "를 지휘했고, 편한 감옥 생활을 즐겼다. 오히려 감옥에 있는 것이 시끄러운 사회여론을 피 할 수 있었기에, 본인이 스스로 더 편한 감옥 생활을 즐겼는지도 모른다. 1934 년 초, 그가 악마의 섬, 알 카트라즈 형무소로 이송 된 후, 모든 상황은 돌변했다. 그는 이곳도 아트란타 형무소와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 하였다. 그러나 상황은 정 반대로 움직였다. 부하들의 면회도 쉽지 않았고, 금권도 통하지 않았으며, 엄격한 내무 생활은 그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이 곳은 전국 형무소에서 오랜 감옥 생활 속에서도 좀처럼 감화되지 않는 재소자들을 이 곳으로 이송시켜 강도 높은 감화를 시도 하는 곳이다. 따라서 규범과 체벌이 엄격 할 수밖에 없다.
결국, 그는 1939 년 7 년간의 옥살이 끝에 가 석방 되었다. 출소 당시 그는 이미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폐인이 되어 있었다. 1947 년 1 월 25 일 그는 플로리다의 한적한 어느 해변에서 숨진 채로 발견 되었다. 사망 당시의 병명은 매독과 폐렴 합병증. 1927 년 한 해 총 수입이 1 억 달러에 달한 “세계 최고의 시민” 으로 기네스 북에 올랐던 암흑가의 왕자, 알폰스 가브리엘 카포네 (Alphonse Gabriel Capone ). 1899 년 1 월 17 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이탈리아 남부 출신 이민자의아들로 태어 나 1945 년생을 마감 할 때까지, 미국의 대 공항과 금주 법으로 가장 혼란한 시기에 암흑가를 지배함으로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갱스터로 이름을 남긴 사나이. 그도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말년에는 한적한 해변 가에서 지켜주는 사람도없이 그가 살아 온 46 년의 삶을 초라하게 마감 할 수밖에 없었다. 기록에 의하면, 알 카트라즈 섬을 ‘ 악마의 섬 ( Devil's Island ) “ 이라고 이름을 붙인 사람은 초대 형무소 소장 제임스 존스톤 알 카트라즈 라고 한다. 형무소의 이름도 그의 이름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그가 악마의 섬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된 배경을 소개한다. “ 이 곳은 잔인하다. 차가운 바닷물과 거센 파도 때문에 탈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니다. 손만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보이고, 금문교 위를 달리는 자동차와 샌프란시스코 만을 한가롭게 떠다니는 요트가 그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감방 넘어 보이는 이 광경은 그들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 삶은 가까이 있지만, 자유는 멀리 있다. ”고 “ ( 9 편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