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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30일 서울 마포구 창전동 당사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 남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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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사유 권력도 국가권력 위에 설 수 없다. 우리나라는 국회가 불러도 돈 많은 사람은 안 나온다. 국민으로서 모욕감을 느낀다. 국회 청문회법을 강화해 안 나오면 구속해야 한다. 수천 명의 국민이 울고 있으면 국가가 나서 해결하는 게 당연하지. 청문회 불출석을 용납해? 이건 국가도 아니다. 삼성 백혈병 환자도 노동부가 하나마나한 조사를 하고. 이게 국가일까? 재벌의 종이지."
울컥했다. 조용조용 말을 시작했지만 점점 분을 삭이지 못해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평소 논리정연하고 냉정하며 차분하게 말 잘하는 그지만 국가가 국가답지 못하다고 고발하는 대목에선 치솟는 화를 참지 못했다. 그는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다.
검·경 수사권 조정문제로 줄사표를 내고 대기 중인 검찰 조직에 대해선 "차제에 모두 사표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주 발칙한 조직이라는 게다. 유 대표는 "도대체 입법권이 누구한테 있는 것이냐"며 "개정 형사소송법을 오만방자하게 거부한다고? 이런 모습을 보이니 검사들이 특권의식에 젖어있다고 비판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4.27재보선에서 쓴잔을 마신 그는 지난 4월 출간한 <국가란 무엇인가>(돌베개) 프로모션도 접은 채 두문불출했었다. 한밤에 농 섞은 트윗을 자주 날렸지만 그마저도 뚝 끊었다. 상실의 시기였을까. 홀로 집에 칩거하며 낚시도 동네 주변에서만 했다. 그 시기 생각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4.27재보선 이후 두문불출한 유시민
아무도 자기편은 없고, 서로 주고받은 상처가 너무 많아 진보개혁진영 안의 열정이 죽어버렸다고 말했다. 진보 안에도 경계심이 가득 차 유 대표 자신도 두려움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슬퍼 보였다. 하고자 하는 일이 안됐을 때 겪는 어려움이나 슬픔 같은 게 아니라, 존재론적인 고민을 할 때 겪는 저 밑바닥의 고통 같은 그런 슬픔 말이다.
유 대표는 언제가 끝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마이뉴스>와 만나지 않았다. 몇 해 기록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을 만큼 그와 단독 인터뷰를 한 것은 꽤 오래 전 일이다(마지막 인터뷰는 2008년 2월에 한 것이었다).
2011년 상반기를 마무리하는 6월의 마지막 날, 그는 서울 마포 국민참여당사 당대표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났다. 딸기주스와 커피, 얼음물을 놓고 마주앉아 얘기를 시작했다.
- 한진중공업·유성기업 등 최근 노동현안이 많다. 6월 29일 다른 야당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는데.
"노동3권은 헌법상의 권리이자 시민권의 하나다. 노동조합의 입장을 떠나,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권이 보장은 고사하고 존중이 안 되는 상황이다. 이는 권위주의 체제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다. 표현의 자유 억압, 언론 통제와 장악, 집회·시위의 허가제 운영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시민권이 억압받고 있다. 노동권도 마찬가지다."
- 민주정부 10년에 비해 시민권이 격하됐다고 보는 건가.
"이명박 정부 출범 전만 해도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는 상당히 안착돼 있다고 평가했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실현이 못 됐지만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된 게 아니냐는 것이었는데 그 진단 자체가 성급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보면, 우리 민주주의는 권력자의 선의에 많이 의존하고 있었던 셈이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나 권력의 민주적 운영 의지에 크게 의존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런 해석이 아니라면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해서 모든 게 역행하는 지금을 설명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가 과거로 퇴행했다기보다는 원래 우리의 수준,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수립하는 게 국가의 역할이다"
- 허약했던 우리 사회의 토대가 그대로 드러났다는 뜻인가.
"허약한 토대 위에서 오랫동안 민주주를 위해 투쟁했던 대통령들의 선의가 결합해 어느 정도의 민주주의가 유지됐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당시 그 어떤 누구도 그렇게 진단하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3~4년이 된 지금, 돌이켜보면 (김대중·노무현) 두 분의 의지, 역량, 선의에 많이 의존하고 있었던 민주주의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권력이 교체되고 두 분이 떠나니 그 속살이, 현주소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 당시엔 한 번쯤 (권력이) 바뀌어도 괜찮다는 인식도 있었다.
"그 말도 맞다. 권력이 바뀐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망했나? 그건 아니다. 다만, 힘들어지고 어수선해지고 전망이 안 보일 뿐이다.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라고 생각한다."
- 민주진보진영 내부에서는 어떤 성찰이 필요하다고 보나.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의 생각에 동의한다. 문재인 이사장은 최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참여정부가 왜 진보세력과 협력하는데 실패했는지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이들이 크게 성찰하고 다른 이들도 각자 자기 몫의 성찰을 한 바탕 위에 손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이정희 대표는 <미래의 진보>(민중의 소리) 권두언에서 '진보세력은 왜 지난 두 차례의 민주정부와의 관계에서 견제와 협력을 동시에 못 했나'는 의문을 깊이 살폈다.
각각 출발점이 다르지만 동일한 접점이 있는 문제의식이라 생각한다. 쉽게 말해 자유주의 세력 쪽에서는 진보진영을 향해 '지나치게 과격하다' '무책임하다'고 비난하고 진보진영에서는 자유주의 세력을 향해 '불철저하다' '신자유주의'라고 비난해서는 답이 없다는 것이다."
- 유 대표도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진보진영과 마찰을 크게 빚었다. 정부 운영에서 진보에 대한 답답함이 있었나. "(한숨) 장관이야 1년, 2년 하는데 그분들은 평생 운동하는 분들 아닌가. 그런 데서 오는 차이일 수 있다. 시민단체들은 자신의 견해를 널리 알리고 조금이라도 반영하기 위해 강하게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장관이나 대통령은 그 입장이 논리적으로 옳아도 반대여론을 마냥 무시하고 행정을 펼 수는 없다. 국가를 100% 진보적 견해에서 운영하길 바라고, 거기서 벗어나면 무슨 무슨 주의라고 딱지를 붙이는 게 좋은 일일까? 그렇게 해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까? 말하기 조심스럽긴 하나 서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민주당이 또 집권한다고 해도 (참여정부와 같은) 그런 상황을 맞이할 것 같아 겁이 난다."
-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징적인 사례가 있다. 영화배우 문성근씨, 이창동 감독 등과 함께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을 봤다. 나는 취임식이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 '노무현'다운 취임식을 해야 하는데 관(官)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는 이제 대한민국 대통령인데. 우리들의 노무현에서 대한민국의 노무현이 됐는데, 취임식이 마음에 안 든다고 욕하기 시작하면? 뽑아놨더니 지지자를 배신했다고 비난만 했다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민주주의가 그런 것 아닌가. 한 정파의 대표에서 국민의 대통령이 되는 것인데 정파의 대표였던 시절에 했던 것을 100% 그대로만 하라고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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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30일 서울 마포구 창전동 당사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 남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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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고 기다려줘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게 말하면 변명처럼 들린다. 옛날 얘기는 그만했으면 좋겠다."
- 책 <국가란 무엇인가> 출판기념 강연회를 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국가는?
"R. 니버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수립하는 국가'가 필요하다."
- 국가의 역할이 좀 더 강해져야 한다는 것인가.
"원래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최고 권력은 국가가 아닌 것 같다. 정당하고 합법적이라고 간주하는 강제력을 독점적으로 보유하는 것이 국가 권력의 본질이다. 그 어떤 사유권력도 국가권력 위에 설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안 그렇다. 국회에 나오라 해도 돈 많은 사람은 안 나간다. 이걸 보면서 나는 국민으로서 모욕감을 느낀다. 입법기관은 헌법기관이고 국민주권의 상징이다. 국회 청문회법 등을 아주 강화시켜야 한다. 국회가 불렀는데 안 나오면 구속해야 한다."
"오만방자한 검찰... 다 사표 받아라"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나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을 일컫는 말인가.
"대한민국 국민이 일자리를 잃고 그 가족들이 울며 거리를 다닌다. 누구는 목숨을 걸고 크레인에 올라가 있다. 국가의 역할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 아닌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막기 위해 국가가 만들어졌다. 국민 수백 명, 수천 명이 울고 있으면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행정부가 그 일을 제대로 안 하니 입법부가 나서서 청문회를 열려 했다. 그런데 당사자는 '정치가 기업에 개입하려 한다'며 청문회에 불출석한다. 이걸 용납하면 그건 국가도 아니다."
- 삼성도 문제인가.
"같은 라인에서 백혈병 환자가 대규모 발생했다. 젊은 여성노동자들이 6개월, 1년, 2년 만에 백혈병에 걸렸다. 그러면 노동부, 국립보건의료원 등은 이들이 어떤 조건에서 일했는지 역학조사를 해야 한다. 전 세계에서 돈 많은 회사 중 하나인 그곳이 젊은 사람들을 백혈병 환자로 내몰았는지 조사해야 했다. 그런데 노동부는 하나마나한 조사를 했다. 판사마저도 법원에서 서류를 보고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마당에 말이다. 재벌의 종이지 이게 국가인가. 이런 의미에서 국가가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 검찰은 어떤가. 검찰은 강한 국가권력 중 하나다.
"발칙하다. 국회가 합의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거부한다고 하는데, 입법권이 누구한테 있나. 그들은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다. 사법시험에 헌법은 포함 안 되나. 물론 의견은 낼 수 있다. 그런데 오만방자하게 거부한다고? 이런 모습을 보이니 검사들이 특권의식에 젖어있다고 비판받는 것이다. 차제에 다 사표 받아야 한다. 대통령이 어제 검찰수뇌부 집단사표 보고를 받고 걱정을 했다고 하는데 이게 걱정할 문제인가. 국가 기강을 세워야지. 검찰은 대통령 위에 설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대통령이 이를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헌법에 따라서 받은 권리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것이다."
- 재벌이나 검찰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가 통치에 대한 과제 아닐까.
"진보의 과제다. 권력을 잡고 있는 이들과 차별화된 의제를 내세우는 것도 진보지만 국가의 기본이 제대로 안 돼 있을 때 사람 사이에 정의가 수립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진보의 몫이다. 이걸 자유주의자·보수주의자의 몫으로 돌려선 안 된다. 방 안 쓰레기부터 치워야 마당의 쓰레기도 치울 수 있다. 자꾸 누구의 몫으로 나누면 쓰레기는 영원히 못 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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