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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주류성이야기 '기벌포' 위치비정에 관한 논문.
하루신선 추천 0 조회 155 13.06.17 12:15 댓글 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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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2.06.04 14:53

    첫댓글 본문 "백강에서 주류성까지의 거리가 금강에서 전주처럼 멀리 떨어진 거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군산에서 부안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는 필자의 거리감에 의아함이 든다. 군산에서 전주 부안은 비슷한 거리다.
    하지만 맞는 이야기 인 것은 어느정도 거리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 작성자 22.06.04 14:55

    본문 "부안 위금성은 일본서기에서 밝힌 주류성의 지세에 맞게 논밭과는 떨어져있고 메마른 자갈밭으로 농사에는 적당치 않고~"
    위 내용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주류성이라 주장하는데 있어 위금산성이 풀지못하는 가장 취약점이 이 부분인 것을 모르시고 하는 주장이다. 위금산성 앞자락에는 고부 태인으로이어지는 옥답들이 넘처난다.

  • 작성자 19.02.28 08:55

    백제충신 성충, 흥수가 군사적 요충지로 강조한 기벌포는 어떤 침략자를 염두에 두고 의자왕에게 충언한 것일까?
    신라와 아산만을 사이에두고 대치한 백제의 북방 수비에서 무한천 또한 중요한 수로로 임존성의 방어와 직결 된다.
    기록상 당군은 금강하구 해안에 상륙하여 사비로 진격한 것으로 보이는데, 상륙후 타고 돌아갈 배를 안전하게 보관할 장소는 또 어디일까?
    백강해전은 당군이 타고 돌아갈 배를 제거하여 당군의 사기를 꺾고 전쟁의 기선을 잡으려는 전략 때문에 벌어졌다면 억지일까?

  • 작성자 14.10.28 10:24

    기벌포-장암-손량-백강이 같은 지역으로 역사서에 기록되어져 있다.
    백강과 백촌강은 같은 지역일까?
    수많은 의혹들이 설명되어야 사라져버린 주류성의 모습이 드러날것이다.

  • 작성자 16.05.20 15:50

    본문중, 첫째 위의 두 사람은 모두 백제 최고의 전략가들로서 적의 침입시 그 공격로를 두 사람이 일관되게 육로로는 탄현을 해로로는 기벌포 혹은 백강을 들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위치를 알 수 없지만 기벌포 혹은 백강의 군사적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말은 역으로 생각하면 백제에 있어서 해로로서 가장 중요한 방어지역을 찾으면 기벌포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러한 뜻에서 본다면 금강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에 이르는 단 하나의 해로(海路)이므로 성충과 흥수가 강조한 수로를 통한 적의 침입시 핵심방어시설이 되므로 성충과 흥수의 내용을 보면 당연히 기벌포와 백강은 금강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을 반론하면

  • 작성자 17.08.19 21:47

    백제의 주적은 신라다. 당시 한강 평택 아산만을 차지한 신라의 공격을 가상하여 기벌포와 탄현의 중요함을 말한 것이다.
    아산만은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역으로 한치의 소홀함이 있어서는 않되는 중요한 지역으로 밀물시 무한천 중 상류까지 쉽게 이동할 수 있다.
    기록상 당군은 금강하구 해안에 상륙 빠르게 사비성으로 향한 것으로 주장하지만,
    백강해전은 금강하구가 아닐수도 있다.
    백강해전 당시 부흥군이 백제 전역을 회복한 상태로 당군의 배가 금강하구 어디에도 정박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백강과 백촌강이 서로 다른 지역이고, 아산만을 웅진강구로 잘못기술 되었을 수도 있다.

  • 작성자 14.12.12 01:34

    백강과 백촌강은 다른 지명이고 웅진강구 또한 아산만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는것은 사서를 기록한 사람이 백제 지리에 어둡고 전쟁에 참여한 사람이 아니고 전해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고 삼년간의 전쟁을 함축하여 기록하였기에 더더욱 오기 가능성이 크다.

  • 작성자 18.03.24 09:44

    백강해전이 아산만이 아니라는 주장은 웅진사비성에서 출발한 당군이 가까운 육로를 선택하지 않고 금강을 빠져나와 거치른 서해안을 올라오는 길고 험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것이라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연기 운주산성이 주류성이 될 수없는 증거이다. 하지만 홍주목 주류성 이라면 다르다. 백강과 백촌강이 동일 지명이 아니라면, 웅진강구가 사서 기록자, 이야기를 전한 사람의 혼란으로 쓰여진 거라면 설명이 가능하다. 주류성 공격에 나선 나당군은 웅진 사비성에서 수백척의 배로 이동한 것이 아니다. 장수 몇명이 배로 웅진에서 사비까지 이동하여 백강을 건너 홍주목 주류성으로 향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백강해전에 참여한 당~

  • 작성자 18.03.24 09:59

    결과적으로 백강해전에 참여한 당나라 수군은 웅진에서 출발한 병력이 아니다.
    당나라 수군은 지원군을 상륙시키고 안전하게 배를 보호하기 위하여 상륙 지역에 주둔하고 있었던 것이다.
    웅진강 어디에도 수백척을 정박시킬 수 없을뿐 아니라 부흥군이 날뛰는 상황에 그들이 타고 돌아갈 생명과 같은 배를 정박시킬 곳이 어디일까 생각해 보면 쉽게 얻을 수 있는 장소는 안전한 신라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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