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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알아보다!
안녕하세요. 해양수산부 海리포터 7기 유재호입니다. 저는 해운업계에 관심이 많아 2년간, 해양수산부 공식홈페이지와 공식블로그를 애정으로 바라봤었는데요. 올해는 공식적으로 해리포터로 활동하며 해양수산부의 정책이나 사업을 알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첫 번째로 들려드릴 소식은 바로, 부산항입니다. 부산항하면 어떤 것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바다, 배, 등대 이런 것부터 떠오를 거라 생각이 드는데요. 저는 2년간, 부산항만 5번 넘게 견학을 하면서 부산항에 근무하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브리핑도 듣고, 이야기도 나누며 부산항의 역사, 현재방향, 나아갈 방향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여러분들에게 그동안 제가 보고 느낀 부산항의 매력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우리나라 강력한 기간산업은 바로 해운업이었다는 사실? 기간산업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기간산업은 나라의 기초가 되고, 경쟁력을 만드는 데 기틀이 되는 탄탄한 산업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기간’동안, 산업 발전에 박차를 가해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는데요. 그와 동시에 군수품과 병력수송 등 국방기능을 수행하는 국가안보산업일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강력한 기간산업이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체계가 탄탄한 해운업은 1960년대부터 수출과 무역 진흥에 초점을 맞춰 해상화물이 증가해 선박이 커지고, 컨테이너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죠. 우리나라 해운업은 최초로 1962년 한국과 일본, 태평양 정기항로를 개척하기 시작했고, 한국해운의 기반을 다지는 데 주력한 결과 10년 만인 1960년대 한국상선대가 최초로 물동량 1만 톤을 넘기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1981년 우리나라가 세계 2위 조선강대국으로 떠올랐고, 주변의 도로, 철도, 항만과 같은 연결수송체계를 확립 발전시켜 해운업의 기반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왜 해운업이 우리나라의 강력한 기간산업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나라는 무역 의존도가 세계 상위랭크 10위 안에 들 정도로 강하기 때문입니다.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 K-Stat에 따르면, 무역의존도가 최고점을 찍은 시기가 2012년, 87.3%로 기록되며 수출금액이 가장큰 시기가 2004년, 573,694백만불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무역의존도가 강해 무역수지 개선에 큰 기여를 하며 다양한 직종의 일자리를 창출시킬 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과 연계발전을 선도하는 업종이기도 합니다. 부산항은 1876년 근대 국제항으로 개항되면서 세계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였는데요. 주변에 항만을 영위할만한 세관, 우편국, 물류센터가 건설되면서 본격적인 항만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경제개발 기간 동안 선박 대형화, 부두 완공, 항만시설 도입 등을 통해 항만의 모습을 조금씩 갖춰나가기 시작해 1960년대 이후 수출입 전진기지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부산항은 6.25전쟁 당시 유엔군의 병참 기지 역할을 담당해 물자를 실어 날랐는데요. 6.25전쟁 이후 항만재건사업을 통해 기능이 발전해 교류하는 국가가 많아지며 자연스레 물동량 또한 많아지게 되며 무역항으로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1960년대 들어서게 되면서 경제 개발 정책을 실시하게 되는데요. 무역항으로 발돋움하기에 하역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다 보니 1970년대부터 제 1단계와 2단계 개발사업을 통해 하역능력을 강화하게 됩니다. 3단계 사업부터 항만 시설 정비와 함께 신규 컨테이너 부두를 축조하였고, 4단계 사업을 통해 컨테이너 부두 기능을 강화해 야적장 확보 공사를 시행해 물동량 처리 확충에 신경을 쓰게 되었죠. 2015년 8월에는 국제여객 수용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북항재개발 사업지 내에 신국제여객터미널을 개장합니다. 1978년 문을 연 국제여객터미널은 연안여객터미널로 활용하고요. 컨테이너를 받아들일 수 있는 야적장과 정박지, 보관시설을 설립해 해운업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항만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죠. 국제적으로도 일본의 도쿄항과 오사카항, 싱가폴의 싱가포르항, 중국의 상해항 등과 경쟁우위를 확보해 국가경쟁력 향상에 한몫 한 효자항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