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명:성광)석 ↓ (족보명:창복)담 ↓ (족보명:기준)성흥 ↓ (족보명:학도)사헌←→처:진주강씨(1773년생) / (족보명:학선)사윤(1772년생) ↓ (족보명:영구)기환(1820년생)←→처:나주임씨(1819년생)/경환(1824년생)←→처:보성오씨(1824년생) ↓ (족보명:제중)화중(성찬)(1851년생)←→처:전주최씨(1854년생)/성복(1849년생)/성열(1864년생)
*우리 호적단자에는 고조할아버지가 기환琪煥(호적단자의 기환琦煥과 한자는 다름)이고, 그 아들(증조할아버지)이름이 성찬이나 족보나 호적상에는 성찬이란 이름은 없고 단지 성찬의 처가 전주최씨로서 광양현 봉강면에 사는 최응동의 여식이라는 사실은 호적단자에서 밝혀졌고, 우리 제적등본에도 그 기록이 그대로 있으므로 여기서 성찬은 이름은 낯설지만 우리 증조할아버지 문화중(제중) 이라고 인정됩니다. ↓ (족보명:춘기)사홍(1881년생)←→처:청주한씨(1888년생) ↓ (족보명:병길)수복(1922년생)←→처:청주한씨(1929년생)
위에서 호적이름과 족보 이름이 다를수 있으며, 호적신고가 부정확하여 실제 생년월일과 족보상의 생년월일과 호적상의 생년월일과 호적단자상의 생일이 차이가 있을수 있읍니다만, 4대조(고조부)까지는 제적부로, 5대조~8대조까지는 집에 보관중인 호적단자를 확인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우리의 고조부인 기환 선조님은 경환이라는 4살 아래 동생이 있었는데 기환 선조님은 5대조 이신 사윤선조에게 양자로 들어간거 같읍니다, 호적단자에 적혀 있기를 고조부의 부는 사윤이라고 되어 있으나, 생부는 사헌(사윤선조의 형제)이라고 되어 사윤선조는 후손이 없었던듯 합니다. 5대조이신 사윤 선조는 1843년경 지금의 지역사령관(정3품)직급인 절충장군까지 하신분(임금으로부터 교지를 하사받음)이었으나 호적상은 물론이고 그 어디에도 그 기록을 찿을수 없으는걸 보면 후손이 없어서 대가 끊긴거 같습니다. 또한 고조부와 형제이신 4살아래 경환선조가 후손이 없었던겄 같읍니다. 호적단자를 보면 기환선조의 아들이 子로 등록되어 있읍니다(양자로 입양한게 아닌가? 함) 우리 선조들은 5대조(고조부)까지는 광양현 며내면 지곡리旀內面 紙谷里(지금의 광양시 봉강면 지곡리)에서 살다가 증조부때 정읍군 용북면(지금의 신태인 신용리)으로 이사 와서 살다가, 할아버지대에 수남 작은아버님까지를 신태인에서 낳고나서 감곡으로 이사하여 온거 같읍니다. 증조모님의 고향도 지금의 광양시 봉강면 지곡리이고, 할머니는 태인군 용산면(지금의 신태인읍) 화호리(숙구지)출신인걸 보면 알수 있을거 같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