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돌섬을 팔아 가수가 된 한동엽 ☻ 거제 출신 가수 한동엽(본명 한천도) ☻ 출생지: 거제시 일운면 망치리 ☻ 학력: 거제수산고등학교 졸업 ☻ 약력 -1978 그룹 ‘불랙이글스’싱어 -1979 가수 하수영 발탁 ‘휴전선아 말해다오’ -2009 1집 음반 발표 ‘거제도 사랑’ -2010 2집음반 발표 ‘검정고무신’ 2010 현재 : 타이틀곡 ‘검정고무신’으로 왕성히 활동 중 ~ 윤돌섬을 팔아 가수의 꿈을 이룬 한동엽, 가업 잇기 위해 가수의 길을 접다.~ 거제도에 오면 부속섬이 몇 개 있는데 그중에서 아름다운 섬이 ‘윤돌섬’이다. 고기를 잡던 아버님은 사업이 잘되어 윤돌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아들을 위해 그만 윤돌섬을 팔고 말았다. 중학교 때 삼촌이 사준 기타로 음악에 빠져 들게 된 한동엽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으로 음악유학을 떠났다. 대형 기획사가 없던 시절, 노래학원은 가수 등용문으로 통했다. 음악학원을 거쳐 블랙이글스라는 그룹에서 리드싱어를 했다.
1979년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로 유명한 가수 하수영에게 발탁된 그는 본격적으로 음악수업을 받았다. 음반도 냈다. 이산가족의 애환을 담은 노래 ‘휴전선아 말해다오’(김영광 작사·작곡)는 꽤 사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군대를 갔다 와서 일이 꼬였다. 어렵게 들어선 가수의 길을 포기해야 할 위기가 찾아왔다. 제대하면 서울로 올라가 본격적으로 가수로 뛰어볼 ‘장밋빛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장남으로서 아버지를 저버릴 순 없었다. 섬까지 팔아 자신을 뒷받침 해 주신 아버지의 눈물겨운 사랑이 가슴에 맺혔다. 그래도 부모님 덕택에 잠시나마 무대에 올라 하고 싶은 음악을 했지 않은가. ‘차라리 제대 후 곧 바로 서울로 가버렸으면….’ 흔들렸지만 그는 자신의 꿈을 접고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 어민후계자가 되어 가업을 이었지만 음악의 꿈만큼은 놓지를 못했다. 낮에는 바다와 싸우고 밤에는 기타와 씨름했다. 바다사업이라는 게 육지사업보다 더 힘들었다. 음악만 붙들고 있기에는 너무 바빴다. 그렇게 20년 세월이 흘렀다. ‘여한없이’ 부모님을 도왔고, 어엿한 수산경영인으로서도 입지를 굳혔다. “1∼2년만 아버지를 도와드리려고 한 게 20여년이 지나버렸어요. 가수로서의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죠. ” 오랫동안 수면하에만 있던 가수의 꿈이 다시 솟구쳤다. 젊은 시절 음악활동을 같이 했던 친구들도 그의 가요계 복귀를 적극 도왔다. ‘아까운 재능 썩히지 말고 더 늦기 전에 어서 시작하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가 스무살 시절에 참여했던 블랙이글스는 아직도 여전히 활동을 하고 있는 현역 그룹이다.
그러한 가요계 재입문 과정을 거쳐 2004년에 탄생한 곡이 ‘거제도 사랑’이다. “구자형 작사가와 김학민 작곡가와 함께 세번이나 거제도를 탐방하고 나서 만든 곡이죠. 하지만 거제도에서만 알리고 전국적인 홍보를 하지 못해 빛을 못 봤죠.” 2009년 발표한 1집이 ‘거제도사랑’은 펜들은 사랑을 받지 못하였으나 2010년에 발표한 2집 ‘검정고무신’은 예상외로 좋은 반응이 나타났다. ‘검정고무신’이 인기를 얻으면서 라디오를 중심으로 방송 활동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거제에서 바닷사람으로 살 때보다 더 힘든 강행군의 일정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청춘의 정점에서 섬 팔아 가수를 시작했지만 달콤했던 시절은 잠깐이었다. 요즘 다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하는 자신이 대견스럽고 행복하다. 이제는 음악적 자존심을 지켜면서 죽을 때까지 마이크를 놓지 않을 생각이다. 한동엽은 아들 또래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노래를 통해 밝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바람도 갖고 있다.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에 젖어있는 청소년들에게 ‘검정고무신’ 노랫말이 가슴속 깊이 잔잔하게 스며든다면 부모님을 공경하고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건강한 청소년이 될 수 있겠죠.” 오랜 시간 담금질을 거쳐 성인가요계에 도전을 내민 그는 “젊은 시절 꽃피우지 못한 늦깎이 음악인생이지만 2집 반응이 너무 좋아 행복하다”면서 “어릴적 아련한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마음속 휴식을 선사하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어머니에 대한 가슴 시린 그리움을 노래로 승화시킨 ‘검정고무신’을 통한 한동엽의 활동은 거듭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또 그만큼 대중들의 가슴에도 소중한 노래로 기억될 것이다. 검정고무신. 1960∼70년대 배고팠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물건. 항상 부족하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웠던 그때 그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노래가 발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어머님 따라 고무신 사러가면 멍멍개가 해를 쫓던 날 / 길가에 민들레 머리 풀어 흔들면 내 마음도 따라 날았다 / 잃어버릴라 닳아질세라 애가 타던 우리 어머니 / 꿈에서 깨어보니 아무도 없구나 세월만 휭휭 / 검정고무신 우리 어머니.”(검정고무신 1절) ‘검정고무신’이 라디오 전파를 타면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겨온 연세 지긋한 분들의 가슴은 뭉클함으로 채워진다. 이 노래를 접하는 많은 분들이 부모님의 감사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곡이다. ‘검정고무신’은 1950∼70년대 가난했던 시절, 어려웠던 세상을 살면서 자식들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들에 대한 감사의 노래다. “아버지께서 거제도 망치마을 앞에 있는 ‘윤돌섬’이라는 섬을 파셨는데, 전설의 고향에도 방영됐던 유명한 섬이에요. 아낌없이 주고도 더 못줘서 애가 타신 아버님의 크신 사랑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이 자식의 꿈을 키우기 소중한 재산 '윤돌섬'을 팔았다. 지금도 윤돌섬은 망치 마을 앞에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검정 고무신 - 한동엽 어머님 따-라 고무신 사러가면 멍멍개가 해를 쫓던날 길가에 민들레 머리풀어 흔들면 내 마음도 따라 나간다. 잃어버릴라 닳아 질세라 애가 타던 우리 어머니 꿈에서 깨어보니 아무도 없구나 세월만 휭휭 검정 고무신 우리 어머니 보리쌀 한-말 이고 장에가면 사오려나 검정고무신 밤이면 밤마다 머리맡에 두고 고이 포게서 잠이 들었네 잃어버릴라 닳아 질세라 애가 타던 우리 어머니 꿈에서 깨어보니 아무도 없구나 세월만 휭휭 검정 고무신 우리 어머니 잃어 버릴라 닳아 질세라 애가 타던 우리 어머니 꿈애서 깨어보니 아무도 없구나 세월만 휭휭 검정고무신 우리 어머니
1960년대 고무신 1940~60 짚신
1900년대 초 나막신 한동엽의 고향 망치望峙마을 현재 거제도에서 가장 많은 펜션을 보유하고 잇는 동네가 망치마을이다. 그 이유는 따뜻하고 풍광이 아름답고 해금강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이다. 망치리는 양화마을, 망치마을, 양지마을로 구분된다. 같은 구역에 있으나 윤돌마을은 구조라리 소속이다. 망치마을은 임진왜란 때 망을 보던 곳이며 숙종 14년 (1688) 김대기가 거제현령으로 부임하고 보니 거제현아가 고현에서 거제면으로 옮겨 일반 백성이 왕래하기에 불편하여 새로운 길을 만들기 위해 백성들을 동원하였으나 과도한 부역과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자 안렴사按廉使가 책하여 파직하고 말았다. 파직당한 김현령은 망치마을에서 잠시 머물다 충남 공주로 돌아가 별세하였다. 그러나 둘째 아들 경원은 망치마을이 그리워 가족과 함께 거제로 내려와 양지마을에 정착했다. 그리고 경양재를 짓고 후배 양성에 힘쓰다가 돌아가신 아버님이 보고 싶을 때는 양지마을 뒷산인 북병산에 올라 계룡산 너머 아버지가 만든 고갯길을 보면서 아버지를 생각하고 자신의 호를 망치望峙라 했다. 그러니까 김실령재를 바라본 고개라는 뜻으로 생각되며 김경원의 호인 망치를 따서 양지마을이 망치마을로 바뀌게 되었다. 지금은 이곳에 의성김씨사우가 있으며 거제도 의성김씨 입거제 할아버지를 모시는 곳으로 양지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의성김씨 재실인 대덕사大德寺는 거제현령 김대기 비롯하여 아들 경원(호 망치)이하 의성김씨 거제문중 망치종파 선조를 비롯하여 65위를 모시고 있다.
大德祠( 대덕사 의성김씨 거제사당 ) 望峙 府君 神位 ( 망치는 김대기 아들 김경언의 호임) 入巨濟始祖 金大器 府使( 김대기는 거제 현령임) 의성김씨거제파계보: 二一世(몽여) 二二世 (중기,홍기,대기) 二三世(경수,경원,경홍) 파직당한 현령은 아들과 함께 살기 위해 이곳을 오면서 망치고개에서 감응하여 시를 지었다. 春回山舊靑 봄이 돌아오니 산은 옛 같이 푸른데 地得路新名 대지大地엔 길이 생겨 새 이름을 얻었구나. 豈知裳越郡 가뿐히 넘어가는 고을이라고 어찌 알릴까? 不肖復爲萍 다시는 부평초 되어 떠돌지 않으리.
윤돌섬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한동엽씨 주택 주변의 정원( 한동엽 동생이 직접 조성한 것임) 지금도 해녀의 집을 운영하고 있음. 아버님이 살고 게시는 한동엽 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