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한남금북정맥 04차(쌍암재~현암삼거리) 산 행 일 : 2013. 03. 09.(토) 산행코스 : 쌍암재 ~ 602봉 ~ 살티재 ~ 국사봉 ~ 추정재 ~ 대항산 ~ 신정말고개 ~ 선두산 ~ 안건이고개 ~ 선도산 ~ 현암삼거리(수레너미재) (산행거리 20.4km) 산행참가 : 23명. <산행코스>
지난번 백석고개에서 쌍암재까지의 산행에서 무척이나 힘든 산행을 했던 터라, 이번 산행에 대한 우려가 컸다. 지난 산행에서 16km로 짧았고 야트막한 4~5백 미터 높이의 능선 산행이라 얕봤다가 10시간이나 걸리며 혼이 났던 기억 때문에, 이번 산행이 20km라는 말에 다들 걱정이 앞선 모양이다. 이제 계절이 3월로 접어든 상태라 춥지 않을 것이고, 지난번보다 큰 산은 더러더러 있는 구간이지만, 작은 봉우리들이 연속되는 상황은 아닐 거라 진정시키고는 일찌감치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03:43 한밤이라 통행이 전혀 없는 쌍암재 마루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03:45 표지기들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 옆 들머리로 들어서며 한남금북 네번째 산행을 시작한다.
03:54 희미한 등로를 찾아 오르니, 산행기에서 보았던 커다란 PVC물통이 나오고,
03:56 이내 임도를 건너 숲길로 진행하면,
04:00 벽돌로 잘 축조된 참호 옆을 지나게 되고,
좌측에 가족묘지가 나오며 '토지지신'비석 옆을 지나면,
04:04 인가와 시멘트 포장도가 있는 새터고개를 지나게 된다.
<새터고개> 이곳은 오래전 지방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충북 보은군 회인면 쌍암리와 내북면 법주리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개였지만, 지금은 571번 지방도가 개설되면서 농로와 마을길의 역할만 하는 작은 고개로 변해버렸다. 고갯마루 주변에는 잘 지어진 주택이 몇채 있다. 들머리는 입산통제 입간판이 세워진 우측 옆으로 진행한다.
04:28 팔봉지맥(단군지맥)이 분기되는 525봉 오름길(좌)과 우회길(우)이 갈라진다.
04:33 팔봉지맥이 분기되는 525봉 정상 도착.
<팔봉지맥/단군지맥>
'팔봉지맥(八峰枝脈)'이란 한남금북정맥 줄기에서 갈라져 피반령을 거쳐 팔봉산과 은적산, 그리고 황우산을 끝으로 금강 물줄기로 떨어지는 46.6km의 산줄기다. 이곳부터 한남금북정맥은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충북 보은군과 청주시의 경계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525봉 정상에는 '단군지맥'표지석이 있고, 좌측 능선 들머리에는 '팔봉지맥'이라는 표지도 걸려있다. 짐작컨데 팔봉지맥을 일부에서는 단군지맥이라 표시한 듯하다.
'단군지맥' 표지석 뒷면에는 천부경이 새겨져 있다.
<천부경(天符經)> 대종교(大倧敎)에서 신성시하는 기본 경전으로 우주 창조의 이치를 81자로 풀이하고 있는 경전이다. 유대민족이 구약을 가졌던 것처럼 상고시대에 우리 민족도 고유한 경전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에 이르러 세계 최고(最古)의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이라 자랑스레 떠들면서도, 우리 민족의 정신적 뿌리인 경전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3대 경전은 천부경과, 고구려의 재상 을파소가 쓴 참전계경, 그리고 삼일신고의 세 가지다. 그중 가장 오래된 천부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일 뿐 아니라, 유불선과 음양오행, 그리고 주역이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우리 민족만의 경전일 뿐 아니라 전체 동양의 경전이며, 세계인의 경전이다. 이 천부경은 원래 환인시절부터 있다가, 훗날 환웅에게 전해진 삼부인 세 개 중의 하나인 거울(용경)에 새겨졌던 것인데, 환웅천황이 백두산 기슭에 신시를 개국한 다음, 백두산 동쪽에 큰 비를 세우고 거기에 글로 새겨, 훗날 통일신라시대까지 전해져 왔던 것이다. 이 비에 새겨진 천부경은 우리 민족의 옛글자(훗날 훈민정음의 모체가 됨)인 '가림다'로 새겨진 것이어서, 후세 사람들이 판독치 못하다가, 통일신라 시대에 해동공자로 추앙받았던 당대의 세계적 석학인 최치원이 백두산을 찾았다가 이 비석에 새겨진 글을 읽고 한자로 번역해서 전하는 것이 바로 여든한 글자의 천부경이다. 이 81 글자로 우주의 법칙 모두를 압축해 담은 번역문을 볼 때에 최치원의 학식의 깊이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 구름 이경숙님의 글 - 우리 천손 천민의 배달겨레는 개천 이래로 위대하고 거룩한 3대 경전으로 조화경인《천부경》과 교화경인《삼일신고》, 치화경인《참전계경》이 있다. 81자로 구성된《천부경》은 한배검께서 천부삼인을 가지고 태백산(백두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오셔서 신시를 열어 인간을 넓고 크고 유익케 하기 위하여 만백성을 가르치실 적에 조화의 원리 곧 우주 창조의 이치를 81자로 풀이한 참 경전이다. 말로써 전해 오던 것이 신지 혁덕(神誌 赫德)에 의하여 녹도문자(鹿圖文)로 기록되었고, 뒤에 신라의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선생께서 신지[*글을 맡은 사관 벼슬이름]가 쓴 그 천부경이 전자(篆字)로써 옛 비석에 적힌 것을 찾아내어, 그것을 작은 수첩에다 한자로 옮겨 세상에 전하게 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귀중한 경전이 오랫동안 묻히게 되었는데, 특히 조선왕조에 이르러서는 유교의 책만을 읽게 하고 이를 돌보지 아니하였고, 그러는 동안 개천 4363(1916)년에 선천(宣川) 계연수(桂延壽) 선생께서 묘향산 석벽에서 이를 발견하여 개천 4364(1917)년 대종교에 전했으니...
위의 글들에서 보듯 천부경(天符經)은 단군조선 이전의 고대부터 전승되어 내려온 우리 민족의 위대한 가르침이다. 천부경은 비록 81자의 짧은 문장이지만 조화의 원리, 즉 우주 창조의 이치를 밝힌 위대한 가르침으로, 그 문장이 짧고 간단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오한 뜻을 품고 있어,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가 어렵고 많은 학자들이 여기에 매달려 나름의 해석을 풀어놓지만 여러 논란을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몇몇 해석을 대충 눈으로 훑어봤지만, 그 뜻풀이가 제각각이고 내용이 어려워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다만 쉽게 풀이한 내용을 아전인수격으로 더 간단하게 이해하자면,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의 근본은 변함이 없고, 사람을 우러러 하늘의 밝은 빛을 비추어..'라고 터무니없게 결론을 지어버린다.
天符經[천부경] - 직역 一 始 無 始 一 하나(one, many)가 비롯됨은 무(emptiness, fullness)에서 비롯된 하나이며, 析 三 極 無 盡 本 셋으로 나뉜다 할지라도 그 근본은 다함이 없으니, 天 一 一 地 一 二 人 一 三 하늘의 하나는 하나요, 땅의 하나는 둘이요, 사람의 하나는 셋이니라. 一 積 十 鉅 無 櫃 化 三 하나부터 쌓고, 열을 크게 펼치면, 무를 둘러싼 셋의 조화가 나오느니, 天 二 三 地 二 三 人 二 三 하늘도 둘과 셋의 조화요, 땅도 둘과 셋의 조화요, 사람도 둘과 셋의 조화로서, 大 三 合 六 生 七 八 九 큰 셋(천지인)이 합치면 여섯이 되고, 일곱, 여덟, 아홉(만물)이 나오며, 運 三 四 成 環 五 七 一 妙 衍 셋(천지인)을 운영하여 넷(음양, 사계절)이 완성되면 다섯(오행)으로 고리를 이루어 (돌아와) 일곱(칠요)과 모두 하나(only one의 한)가 되는 묘한 흐름을 보이니, 萬 往 萬 來 用 變 不 動 本 수만 번을 오고 가며 쓰임이 변한다 할지라도 그 근본은 움직이지 않느니라. 本 心 本 太 陽 昻 明 근본 마음은 근본 태양(진리)을 우러러 향한 밝음이고, 人 中 天 地 一 사람의 중앙에는 하늘(우주마음, 허공, 하나님)과 땅(자연, 만물)의 이치가 있어 크게 하나(great one의 한)이며, 一 終 無 終 一 하나(maximum의 한)의 끝남은 무로 끝나는 하나(minimum의 한)이니라. (펌)
팔봉지맥 상의 은적산에 단군성전이 있어서 일부에서 팔봉지맥을 달리 단군지맥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정맥길을 걷다 보니 단군지맥의 유래도 점쳐보고, '천부경'이라는 단어와 단군에 대해서도 한번 더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뭇가지에는 눈에 익숙한 준.희 님의 '팔봉지맥분기점'이란 표지판이 걸려있다.
04:37 514봉 정상 단군지맥 표지석에서 인증을 남기고 우측 한남금북정맥 등선으로 들어선다.
05:05 겨울이 가고 있음을 느끼며 어둠 속에서 593봉을 지난다.
삼각점이 있고 표지기들이 많이 걸려있는 602봉을 지나는데, 오늘 산행 중 제일 높은 봉우리임에도 따로이 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봉우리의 높이와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은 별로 상관이 없는가 보다.
06:16 돌탑이 있는 살티재를 지나,
<살-티/사흘티(三日峙)> 살티재는 청원군 가덕면 금거리와 보은군 염둔리를 잇는 고개로, 고개를 넘는데 삼일이 걸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움푹 들어간 고개에는 돌무더기를 쌓아 놓은 성황당이 있고, 고개 양쪽으로 길이 또렷하게 나있다. 살티재는 큰사티 또는 삼일재라고도 불리는데, 옛날에 교통이 좋지 않았던 시절에 이곳 살티재를 거쳐서 선도산 아래에 있는 매태재와 말구리재를 지나 청주 등지를 다니는 길이 있었는데, 옛날에 한 노인이 3일 동안 이 고개를 지나다가 죽었다고 하여 삼일재라 부른다는 예기도 있다.
06:35 무명봉을 연이어 넘고,
날카롭게 각을 가진 바위들이 흩어져 있는 능선을 지나며,
06:39 국사봉을 향한 오름길을 이어간다.
06:55 오름길이 비교적 평탄하게 바뀌고,
06:56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일출이 시작된다.
해가 솟아오르는 곳이 속리산 주능선으로 추정된다.
속리산 주능선이 조그마하고, 떠오르는 해가 커 보인다.
당겨본 속리산 주능선.
속리산 주능선 위로 솟은 태양. 언제 보아도 아침 일출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켜켜이 쌓인 산줄기들을 제쳐놓고 해는 제일 놓은 산줄기 위로 떠 오른다.
속리산 주능선 위로 떠오르는 아침 일출을 감상하는 백두들.
자~아 이제 국사봉으로 갑시다!
속리산 위로 솟는 태양을 보면서,
켜켜이 쌓인 산그리메를 당겨보기도 하고,
07:00 일출의 장관을 카메라에 담는다.
조금 진행하다가는,
또 멈춰 서서 일출을 보고,
07:03 오늘도 그렇게 벅찬 가슴을 안고 국사봉을 향한다.
이제 국사봉을 향한 마지막 오름을 하는 백두들!
07:08 국사봉 헬기장에 도착한다.
국사봉 헬기장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며,
이른 아침식사를 한다.
07:35 조금은 느긋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금 산행길에 나서니,
07:37 이내 국사봉 정상이 나온다.
<국사봉(國師峰 586m)> 청원군 낭성면 추정리와 보은군 내북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나뭇가지에 '국사봉'이란 나무 팻말도 걸려있고,
국사봉 표시 금속판도 걸려있다.
국사봉 정상 증명을 남기고,
07:38 추정재를 향한 급경사 내림길을 시작한다.
07:48 청원군 남성면에서 추정재로 이어지는 골짜기에는 낮은 구름이 들어차 있다.
07:54 한금길이 좌측으로 급히 방향을 바꾸어 내려가서는,
08:02 이내 한금정맥은 편안한 내림의 능선을 따른다.
멋진 일출에 아침식사까지 한 백두들의 표정은 여유롭다.
08:07 한금길은 다시 한번 좌틀하여,
08:12 내림길로 진행되고,
08:14 우측 계곡에는 삼나무 조림지가 있고,
추정재 방향의 골짜기는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다.
08:17 우측으로는 빼곡한 삼나무 조림지가 있고,
좌측으로는 은사시나무 조림지가 있다.
그렇게 여유로운 능선 내림길을 걷다 보면,
08:26 관정사로 이어지는 진입로에 내려서게 되고,
관정사로 향하는 도로.
관정사 진입로를 따라 잠시 내려가면,
08:28 막고 있는 철대문을 옆으로 돌아 통과하고,
돌아본 국사봉 방향.
08:30 32번 지방도가 지나는 추정재에 도착한다.
<추정재> 32번 지방도가 지나는 밋밋한 고개로, 고갯길 같은 분위기가 들지 않은 고갯길이다. 머구미고개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머구미는 옛날 우물 물이 검다 하여 '먹우물', '묵정'이라 한 것이 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