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룡산 답사기 >>>
우리나라 계룡산(鷄龍山)은 두 곳이 있다. 하나는 충남을 대표하는 산이고, 다른 하나는 거제도 주봉인 계룡산이다. 그 어원을 보면 둘 다 같은 뜻이다. 계룡산(鷄龍山)이란 닭 볏을 쓴 용, 이것이 바로 계룡산인데, 여기서 닭의 볏은 관(冠)을 뜻하고 용은 임금이니 계룡산은 임금이 관을 쓴 것과 같다는 해석이 다 즉 대단히 유명하고 중요한 산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100대 명산 중 거제는 유일하게 계룡산이 포함되어 있다. 거제는 섬이면서 산과 물이 많은 게 특징이다. 거제에는 표고 500m 이상인 산이 7개나 있으며, 계룡산은 3번째로 높은 산이다. 거제는 수천 년 동안 읍 치가 고현이었으며 임진왜란 후 읍치를 거제면으로 올린 후 250년간 이어갔다. 고현이나 거제면이나 모두 계룡산 하에 있는 곳이다. 그만큼 중요한 산이며 중심의 역할을 하였다. 계룡산 거제의 봉산(封山)이며 거제의 중심 산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아주 옛날에 의상대사가 수행하던 암자인 ‘의상대’가 있었으며 원효대사가 기도하던 ‘원효암’이 있었다는 전설과 함께 그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계룡산은 봄이면 각종 야생화와 진달래와 철쭉, 여름이면 시원한 녹음을 제공하면서 가을이면 억세가, 겨울이면 눈 덮인 산야로 거제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인터넷에 계룡산을 치면 충남 계룡산이 나오고 거제 계룡산을 치면 ‘거제 계룡산’이 나온다. 계룡산 등산코스는 6개 코스인데 짧게는 2시간 길게는 3시간 걸린다 . 일시: 2023년 5월 3일 코스: 고자산치~미군 통신대-kt 송신탑-의상대-계룡산 정상 목적: 계룡산 철쭉과 녹음 관찰 ( 유유자적(悠悠自適) 일행: 거제도 풍경사진가 2명 동행 답사 시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왕복 4km 3시간 4월은 농사의 계절이라 텃밭 가꾸느라 1주일 늦게 답사에 나셨다. 9시 30분 고현에서 출발하여 용산 삼거리를 지나 임도를 따라 고자산에 도달했다.
◉ 전설이 서려 있는 고자산치 고개를 지나... 아주 오랜 옛날에 거제에서 의좋게 잘살고 있던 기성반씨(岐城潘氏)의 반명돌(가명)이란 오빠와 여동생 순이(가명)가 함께 아주의 아주신씨(鵝洲申氏) 집안의 외갓집에 가는 길이었다. 때는 초여름의 장마철로 고자산 고개 중턱을 오를 때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비를 피할 곳이 없으므로 비를 맞으면서 오빠는 앞에 가고 여동생은 뒤를 따라 올라갔다. 계룡산의 고개 정상에 오르자 숨이 가쁨을 쉬어가기 위해 앞서가는 오빠가 기다렸다. 이때 여동생이 올라오니 비 맞은 머리카락을 닦아주는 오빠의 눈에는 너무나도 여동생이 예쁘게 보였다. 얼굴은 보름달같이 밝으며, 두 눈은 부용꽃이 활짝 피운 것 같으며, 푸른 소나무 같은 팔자의 눈썹에 샛별같이 반짝이는 눈알, 해당화 핀 것처럼 분홍색의 양 뺨에 수양버들 가지가 늘어진 모양의 기다란 머리카락에 앵두 같은 입술을 가지고 있었다. 젊은 오빠 명돌이는 끓어오르는 욕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동생을 겁탈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신을 차려보니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상을 하였기에 예(禮)를 중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살아서 무엇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자 돌멩이로 고환을 내리쳐 피를 너무 많이 흘러 죽고 말았다. 앞서가던 여동생 순이는 오빠가 돌아오지 않아 가던 길을 되돌아오니 오빠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다. 여동생 순이는 하는 수 없이 오빠를 바위틈에 흙을 덮어 매장하고 외갓집이 있는 아주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가로질러 하늘만 보이는 골짜기를 무섭게 여기지도 않고 걸어가면서 한없이 한없이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었다. 이러한 전설로 고자산치와 울면서 걸어갔다는 길인 양정에서 아주로 가는 옥녀봉 밑의 고개를 ‘울음이재’라 불려 오늘날 300년 동안 고개의 이름이 되었다.
계룡산 중턱의 고자산치 평원
◉ 6.25 포로수용소와 UN군 통신대(초단파 중계소)...10년전 사진이라 지금은 조금달라요? 고자산치 고개에서 1km 지점에 유엔군 통신대가 있다. 현재는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서 계룡산까지 오르내리는 모노레일이 운영 중이다. 그런데 2022년 화재가 발생하여 운영이 중지 상태이며 올해 9월에 재개통된다고 하네요. 통신대란 6·25전쟁이 발발하여 전쟁 중에 발생한 포로들을 거제도에 수용하면서 그 관리 목적으로 이곳 계룡산 산록에 통신대를 설치하였다.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들어선 것은 1950년 11월 27일이었습니다. 동족끼리 총구를 맞댄 지 5개월여 만이었습니다. 포로는 1951년 6월 북한군 13만 명, 중공군 2만 명 등 15만 명을 기록했고, 이후 2만 명이 더 늘어 최고 17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 당시 거제도 인구는 10만 명, 피난민 10만 명 그리고 포로들이 17만 명하여 이 좁은 곳에 37만 명이 거주를 한 셈이죠? 중공군 포로는 해명 마을, 여자 포로들은 주자 골에 수용됐고, 악질 포로들은 수양동 영창에 수용됐습니다. 포로들의 공동묘지는 연초면 송정리에 있었습니다. 포로를 관리하기 위해 수용동과 경비 막사, 집무실과 야전병원, UN군을 위한 PX와 무도장, 탄약고, 보급창고, 통신대 등이 설치됐습니다. 지금도 그 유적이 수월, 양정, 해명, 고현, 장평 등 거제도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 KT, MBC, KBS 중계탑을 지나 산에 오른다. 미군 통신대를 지나 KT, MBC, KBS 중계탑이 있는 산허리를 오른다. 제일 먼저 마주친 곳이 거제만을 바라보는 전망대이다. 전망대 옆에는 여러 형상을 한 바위들이 보인다. 여시바위라고 하나 고릴라 바의, 아기엄마 곰바위 등 다양하게 보인다. 중계탑이 있는 곳에 올라가는 길은 차도로 가는 길과 바위산으로 가는 길이 있다. 차가 가는 길인데 길이 험하다. 이런 곳에 어찌 차가 다닐 수 있을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산불요 원의 이야기는 여기 운행하는 차는 공공기관의 소속이므로 차가 손상되어도 회사에서 수리해 주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거제시에서는 이러한 애로점을 감지하여 도로 정비를 해야 함이 바람직하다고 생각을 해본다. 송신탑 주변에는 그곳으로 연결하는 전선이 너저부리하게 엉켜져 있다. 빠른 시일 내에 정비했으면 한다. 계룡산 정상으로 가는 길을 재촉한다. 몇 해 전만 해도 이곳 송신탑 주변에는 산철쭉이 만발하여 고현마을 배경으로 좋은 사진을 찍었으나 지금은 잡목이 울창하여 간간이 보이는 철쭉이 애처로울 뿐이다. 길섶에는 못다 핀 야생화들이 간간이 피어 있고, 깨금나무도 보인다. 우리가 어릴 때 간식거리가 없을 때 먹던 기억이 살아난다. 간혹 수리 취나물 같은 것이 보인다. 거제도 높은 산록에는 수리 취나물이 있어 떡을 해 먹기도 했는데 지금은 수리 취나물이 없어진 자 오래다. 같이 동행했던 김태준씨는 어릴 때 국사봉 뒷산에서 수리취 채취하여 수리취떡을 먹은 기억이 살아난다고 하였다. 송신탑이 있는 곳에서 산불을 감시하는 산불요원... 옆에 있는 분은 같이 동행한 김태준, 변청수 사진작가
◉ 의상대사가 기도했던 ‘의상대’를 돌아 계룡산 정상 가기 전에 커다란 암벽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집터 같은 것이 보인다. 이곳이 전설의 ‘의상대’이다. 전설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전국을 순례하던 중 참선하기에 좋은 곳을 발견하고 기도를 드렸던 곳이 이곳 의상대이다. 역사적인 기록은 없으나 전설로 내려오는 곳이다. 큰 암석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바람이 거의 닿지 않으며 동남행으로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다. 아직도 대밭이 있으며 옛날에는 중앙에 샘물이 나오는 샘터가 있었다. 그리고 계룡산 정상 아래쪽에는 원효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 이곳에는 원효대사가 기도를 드렸던 기도처라고 한다. 본인이 답사했을 때(2021) 그곳에서 토기를 발견하였다. 그럼 의상대사와 원효사란 누구일까? 불교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다시 한국으로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신라의 불교는 고구려 백제에 비해 늦게( 500~600년대) 시작되었으며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꽃을 피웠다.
~ 원효대사의 해골 물 일화 ~ 때는 1650년 원효대사 ( 617~686)와 의상대사 (625~702)는 당나라 불교를 전수하기 위해 당나라 유학의 길을 나셨다. 밤이 깊어진 어느 날, 경주로 향하던 중 둘의 발걸음은 동굴로 향하게 됩니다. 잠결에 목이 말랐던 원효는 물을 마시게 되었고, 날이 밝아 본인이 마신 물을 확인하니 그물이 해골바가지에 고인 썩은 물임을 확인하게 되는데요. 그것에서 바로 깨달음을 얻게 되었지요. "해골에 담긴 물은 어젯밤과 오늘 모두 똑같은데, 어째 어제는 단물 맛이 나고 오늘은 구역질을 나게 하는 것인가? 바로 그것이다! 어제와 오늘 사이 달라진 것은 물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다. 진리는 밖이 아는 내 안에 있는 것이다." (三界唯心 萬法唯識 心外無法 胡用別求 (삼계유심 만법유식 심외무법 호용별구)) 원효는 바로 마음먹기에 따라서 썩은 물로 달콤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그 후 원효는 자신의 깨달음을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 저술에 힘을 쓰게 됩니다.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아들 설총을 낳았고 서민 속으로 들어가 불교의 대중화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단 한 번의 상황으로 교훈을 깨닫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한 원효대사. 만약 우리가 그 상황이었더라면 어땠을까요?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신 자신이 너무 싫고 그 상황이 괴롭게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의상대 암자 터에는 각종 부착물이 너저부리하게 꽂혀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등산객님, 여기 설치되었는 안내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아주 꼴불견입니다. 누구 이런 걸 설치했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이런 것을 이런 장소에다 설치하지 않았을 것인데. 거제시 산림녹지과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좀 특별한가 봅니다. 의상대의 꼴볼견 의상대를 품격을 떨어뜨리는 각종 안내판 의상대사가 장기를 두던 곳에 이런 안내판이 있네요. 문화재 훼손이 아닌가요
다시 의상대 위 신성이 놀던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대나무가 한쪽에 있고 사람 십여 명이 앉아 명상하기는 제일 명당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의상대사가 장기를 두던 그 자리에 또 위험 표지 팻말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입니까? 아니, 문화재라고 할 수 있는 장기판 위에 형판을 붙이다니요? 한심하여 말문이 막힙니다. 혹자는 “ 위험을 방지하려는 조치이니 이해를 하시지요?” “ 그런 전 산야의 위험한 곳에 이런 현판을 붙여야 합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이러한 곳이 또 있었습니다. 계룡산 정상 50미터에 있는 불이문(不二門) 바위 한복판에 그런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불이문 입구도 막았네요. 불이문에서 바라 본 거제만...
” 시장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정상에 오르지 않고 발길을 돌린다. 오늘의 등산 목적은 첫째 철쭉 촬영이요. 둘째는 계룡산 바위 탐색이다. 여럿이 오니 좋은 점도 있지만 내 마을대로 시간을 가질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거제에 귀양 온 선인들이 계룡산에 올라 자각 시를 남겼다. 정황(1551) 계룡산, 이유원(1881.8) 김진규(1689) 망계룡산기, 조익차(1870) 계룡산이라는 시를 남겼다. 그 중에서 김진규의 계룡산기에 보면 거제 說話에 ” 계룡산의 정기를 받고 조선을 빛낼 두 사람이 태어날 것이다. 용이 꼬리를 틀고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계룡산의 웅장한 기운을 받아 나라를 일으킬 것이다. 라고 전하다. 또한 거제지역 어르신들이 전해오는 풍수지리에 따르면, 남해바다의 음기가 모두 모여 수렴하는 거제면 동상리 거제여상 터와 녹반골 출신 여성이 왕후(영부인)에 버금가는 여장부가 태어날 것이다. 오늘 조사하기로 한 약물 바위, 쫑긋 바위, 매 통바위, 탕은 바위, 송곳 바위, 병풍바위, 물 바의, 큰 업장과 암바위, 밑 바위, 엿이 바위 등은 다음 기회에~
통신대 바로 옆에 있는 바위인데 특이한 모양을 하죠? 여시바위, 고릴라 바위 바위 병풍으로 둘러싸인 의상대...아래 깃발이 있는 곳이 의상대이고 저 몽댕이 깃발이 있는 곳이 정상입니다. 이 바위는 무슨 형상일까요?
오늘 산에 오르면서 두 가지 산림의 변화를 보았다. 하나는 거제도 산하가 극상림으로 변해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 등산로 주변에 핀 꽃들이 대부분 흰색이다. 그 이유를 알아보면~~~.
◉ 5월에 흰 꽃이 많이 피는 이유 5월의 계룡산은 온통 흰색의 꽃이 장식한다. 층층 지어서 올라간다고 층층나무, 쌀밥(이밥)을 닮았다고 하여 이름 지어진 이팝나무, 팥과 배나무잎을 달았다고 팥배나무, 단풍이든 잎을 태운 재로 노란색 염료를 썼다는 노린재나무, 가을에 매달리는 반질반질한 열매가 마치 스님들이 떼로 몰려온다고 떼중나무로 부르다가 나중에 떼죽나무가 되었다. 오월의 대표적인 향수의 꽃은 찔레꽃이다. 찔레나무의 새순은 옛날 궁핍했을 당시 어린이들이 즐겨 먹는 간식거리였다. 그러나 가시가 날카로워 찔리기 일쑤다. 그래서 가시로 찌르는 나무라는 뜻에서 ‘찔레꽃이 되었다. 어릴적 도장 파는데 사용했던 도장나무...검노린재나무
이런 나무꽃들은 대부분 오월에 꽃을 피우며 그 중 흰색의 꽃을 피우는 종류가 50% 이상 차지한다. 이런 갖가지 이름을 가진 5월의 꽃나무 대부분 흰 꽃을 피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람으로 꽃가루받이하던 시절의 식물은 사실 녹색 이외의 색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초기의 식물들은 생식기관인 꽃도 녹색이었다. 그러다 곤충 또는 동물들에 의존해서 타가수분하는 식물들이 등장하면서 차츰 꽃도 색깔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매개체를 자처하는 곤충이나 동물들은 볼 수 있는 색깔이 서로 달랐다. 그리고 좋아하는 색깔도 달라서 꽃의 색깔에 따라 매개체도 따로 정해졌다.
벌은 붉은색을 보지 못한다. 반면 우거진 숲속에 핀 보라색 꽃이나 노란색 꽃에는 벌들이 많이 모여든다. 나비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은 물론 자외선까지 볼 수 있어서 거의 모든 꽃의 수분 활동을 도울 수 있다. 그렇다면 동물들이 좋아하는 색깔이 다른 것과 5월에 흰색 꽃이 많은 것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첫째 흰색은 다른 색에 비해 식물의 입장에서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 필 수 있는 꽃이다. 즉 생식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 중 매개체를 불러 모으는 색깔에 드는 에너지를 줄이면서 다른 쪽으로 에너지를 사용해 더 많은 매개체를 불러 모은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초록이 짙어지는 시기에 가장 잘 보이는 색이 하얀색이라는 점이다. 특히 수분을 돕는 매개체 동물들은 녹색이 짙어지면 녹색과 빨간색 등을 잘 구분하지 못하지만, 빛 반사를 통해 흰색은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흰색의 꽃은 뭉쳐서 큰 덩어리로 피기 때문에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아까시나무 백당나무 불두화 등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셋째는 흰색 꽃이 에너지를 덜 썼기 때문에 향과 꿀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어 매개체를 더욱 유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쟁하는 꽃이 많다면 보상프로그램이 강한 식물이 선택받을 확률이 크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녹색의 잔치에 뛰엄 뛰엄 보이는 꽃나무는 팥배나무이다. 열매는 팥을 닭고 잎은 배나무를 닮았다나요.
◉ 진달래, 산철쭉, 철쭉은 어떻게 다른가? 진달래속에는 여러 가지 식물이 있으나 대표적인 것이 진달래, 철쭉, 산철쭉이다. 계룡산에는 3월 말에는 수많은 진달래가 핀다. 이어서 한 달쯤 지나면 철쭉과 산철쭉이 핀다. 계룡산 철쭉은 그렇게 많이 모여 피지는 않으나 군데군데 아름답게 꽃을 피운다. 녹색의 향연에 분홍색 철쭉은 아름다움을 더해낸다. 진달래와 철쭉, 산철쭉을 구별하는 방법은? 진달래는 3월 말에 피며 붉은색 꽃으로 술을 담아 먹거나 화전을 부쳐 먹기도 한다. 철쭉은 진달래보다 한 달 늦게 피는데 붉은 꽃을 피우면 산철쭉, 분홍색 꽃을 피우면 철쭉으로 보면 된다. 꽃봉오리를 손으로 만지면 끈적끈적하고 인체에 해로우므로 먹으면 안 된다. 진달래 어원은 술을 담가 먹으면 맛이 좋아 자꾸 달랜다고 하여 진달래가 되었다. 참고로 나물로 묻혀 먹는 달래는 달래를 캘 때 잘못하면 끊어지므로 달래서 캐야 한다고 하여서 달래라고 한다. 철쭉은 한자에서 왔는데 척 촉(躑躅)이라고 한다. 즉 꽃이 너무 아름다워 발길이 멈춘다고 하여 머무를 척(躑), 머무를 촉(躅)자를 쓰고 있다. 화단에 많이 심어지고 있는 철쭉은 대부분 일본에서 개량한 철쭉이다. 옛날 진달래로 부치미(전) 부쳐 먹고, 진달래 꺾어 화병이 없어 항아리에 꼬자 봄의 향취를 느꼈던 시절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산철쭉을 배경 삼아 고현항을 보고 한껏!
◉ 극상림으로 변해가는 거제도 산하 분홍색을 띤 철쭉은 진달래에 비해 한 달간 늦게 피며 거제에서는 먹지 못하는 꽃이라 하여 개꽃이라고 한다. 손으로 꽃봉오리를 만져보면 끈적끈적하다. 붉은색을 띠는 것을 산철쭉이라 하는데 물가에 있는 물 철쭉 또는 수달래라 한다. 옛날에는 진달래 철쭉이 많았는데 지금은 왜 점점 사라질까요? 아마 식물의 천이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식물의 천이는 초기에 화산이 폭발하면 이끼류-일이 년 초-다년초, 관목(진달래 등)-소나무 등 양수-참나무 등 음수림-그리고 서어나무, 가치 박달나무 등이 주류를 이루는 극상림에 도달한다. 거제도는 소나무는 사라지고 참나무와 서어나무, 가치 박달나무가 주류를 이루는 극상림이다. 이 극상림은 상당 기간 오랫동안 지속된다고 한다.
거제도 임상은 소나무에서 참나무 그리고 요즘에는 서어나무와 까치박달나무로 변하여 극상림에 도달했어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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