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2003.6.9)
“모두가 참여하는 소프트웨어 창출을”
-이재창(편집부국장 겸 문화체육부장)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현대기술산업사회다. 이 사회에서 우리는 지난 1백여년을 오직 서구를 답습하고 모방하기에 급급하면서 살아왔다. 서구의 것이 아니면 일류로 취급받지 못해서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이를테면 양식을 우러러보는 세상이 돼버린 것이다.
이젠 서구의 것을 모방하는 것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한마디로 자기 것이 없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이다. 한국 것이라면 한국다운 맛이 있어야만 살아남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까지의 시대에서 우리는 과거와 같이 서구의 똥구멍 쫓아다녀서는 안된다. 그들의 배설물만 주어먹고 그것으로 배부르다며 허세를 떨고 있을 시대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의 배설물도 한없이 주워먹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들이 우리에게 계속 모방을 허용치 않은 것도 자명하다.
이젠 독창적이지 않으면, 자기 것이 아니면 대가를 지불하고 사야만 하는 시대다. 그 어떤 것도 공짜는 없다. 주먹구구식으로 적당히 베껴서 팔어먹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치관의 전환이며, 사고의 혁신이며, 통념의 파괴다. 즉 물질에 앞서 생각의 변화를 먼저 시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지상에서 시도한 모든 변화는 생각의 변화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생각의 변화조차도 서구의 똥구멍을 핥고 있는 형상이다. 그들이 구축해 놓은 이론을 그대로 답습하고 그 배설물을 즐겨먹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각을 그대로 이식해 우리 문화에 적용하려는 어리석은 짓거리를 계속해오고 있다.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지금 광주의 최대 화두는 문화수도의 유치에 혈안이 돼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것을 주도할 광주시나 문화예술계의 행보는 뚜렷한 방향설정이나 목표를 정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연 문화수도가 무엇인가. 문화관광부를 광주로 내려오게 해 문화에 관한 모든 행정을 관할하는 부처가 있으면 그만인지, 아니면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프랑스의 퐁티두와 같은 예술관을 하나 지어 놓으면 문화수도가 되는 것인지, 문화예술의 본질이 흐려져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거대한 예술관 하나 지어 놓고 정치적인 논리에 의한 주변사람들 직장 구해주기식 인물선정이나 되지나 않을까, 그리고 몇몇 단체의 의견에 불과한 밀실계획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들을 지우기 어려운 것도 이제까지의 많은 일들을 추진하면서 보여주었던 행태에서 비롯된다.
프랑스에 가서 퐁피두를 견학하면 뭘 할 것인가. 서구양식의 번지르르한 건물 한 채 지어 놓으면 문화수도가 되는 것인지. 그 발상 자체가 형식적이다.
진정한 문화수도란 우리의 것을 어떻게 발견하고, 보존하고, 계승해 나가면서 몇 몇 사람이나 문화예술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시민, 더 나아가서는 우리 국민 모두 긍정 할 수 있는 정체성을 지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들과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그 소프트웨어를 새롭게 창출해야 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일 수 밖에 없다.
문화수도를 만든다고 일이년 만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앙부처에서 몇천억 돈을 가져온다고 해서 당장 문화수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지역 시민들만의 문화수도가 아니라 한국의 문화수도, 세계에 내보이며 우리의 것을 자랑하고 우리의 것을 배워 갈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광주시가 문화수도 육성 1단계사업으로 시민 문화예술 참여기회 확대와 문화 예술환경 가꾸기, 전통문화자산 계승 발전, 아름다운 도시 가꾸기, 문화관광 인프라 확충, 문화관광축제 활성화, 공공부문 문화예술 활동기반 조성 등 7개 분야 93개사업을 추진키로 했다고 한다. 꿈과 이상만 큰 용두사미가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우리만의 독특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변화의 토대는 역시 생각이며, 그 생각의 결집체는 사상이다. 우리문화, 우리역사, 우리 사상 속에서 미래를 위한 창조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변화이며 우리의 것이며,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문화예술계도 이러한 가치관의 전환과 사고의 혁신과 통념의 파괴를 통해 문화수도의 계획이나 방향을 설정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