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가톨릭 영화 <약속>
<약속>은 10월에 극장가 개봉 예정인 민병훈 바오로 감독의 휴먼 다큐멘터리 예술영화다.
문화사목자인 나는 한국가톨릭이 민병훈 감독에게 고마운 빚을 지고 있다고 늘 생각한다.
그가 영화계에 남긴 <벌이 날다>, <괜찮아 울지마>, <포도나무를 베어라>, <터치>,
<사랑이 이긴다>, <황제> 등은 믿음의 순례자들에게 길을 묻게 하는 화두와
신앙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성찰의 작품들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 민 감독은 가톨릭문화원에서 해마다 ‘어린이 영화제 캠프’를 진행하며
많은 어린이에게 자신의 힘으로 신앙의 주제들을 창작하게 했고,
그들의 창의성에 믿음과 성취감이라는 귀한 체험을 담아주는 감독이었다.
평화방송 영화프로그램 진행을 통해서는 물론이고
그의 혼이 담긴 작품세계는 ‘신앙 안에서의 인간 본질 추구’를 위한 발걸음이었다.
그런 그가 다시 영화로 돌아왔다.
가톨릭문화원은 청소년의 자살 문제를 다루었던 <사랑이 이긴다>의 단독 투자사였고,
<약속>은 공동 제작자로 함께했다.
몇 해 전 작가였던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민 감독은
어린 아들과 함께 아내의 마지막 자리 제주도에 남는다.
세상을 떠난 아내와의 약속의 길을 가며 그가 담아온 지난 몇 년 간의 영상기록은 영화 <약속>으로 완성되었고
소수의 영화관계자들이 함께한 기술시사회에서는 모두가 눈물범벅이 되어 훌쩍이고 있었다.
이 영화는 엄마의 죽음 이후 아이가 세상에서 사랑과 희망이 깨어날 것을 촉구하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아침마다 민 감독은 아들 시우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매일 촬영하기 위해 제주도의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제주도의 자연을 영상으로 찍는 건 그에게 계획이 아닌 일상이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찍을지는 당일 날씨에 따라 정한다.
아들 시우는 4학년이 되기까지 매일 저녁 엄마를 위해 시(詩)를 쓰고,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기도를 한다.
비는 매일 운다.
나도 슬플 때는 얼굴에서 비가 내린다.
그러면 비도 슬퍼서 눈물이 내리는 걸까?
비야 너도 슬퍼서 눈물이 내리는 거니?
하지만 비야 너와 나는 어차피 웃음이 찾아올 거야
너도 힘내 - 민시우 作, <슬픈 비>
하루는 끝이 있지만 영원은 끝이 없어
생명은 끝이 있지만 희망은 끝이 없어
길은 끝이 있지만 마음은 끝이 없어
내가 기다리고 있는 엄마는
언젠가 꼭! 영원히 만날 수 있어 - 민시우 作, <영원과 하루>
어린 시우의 시는 책으로 출간되었고,
시와 함께 기도와 일상은 대자연에서의 치유와 함께 사랑과 평화를 찾아가는 휴먼 다큐멘터리 영화가 되었다.
2023년 부산 국제영화제는 영화 <약속>을 초청작으로 선정하였다.
보는 이에겐 심금을 울리는 감동적인 작품이지만,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할 이는 아마도 소수에 그칠 것이다.
고심 끝에 10월,
극장 개봉 이후 이 영화는 전국 각 성당의 신청을 받아 공동체 영화(성당 상영용)로 선정해서
특화된 작품을 나눌 예정이다.
하지만 영화의 참맛을 느끼기 위해 부산 국제영화제에서나
전국 극장 개봉 때에 발품을 팔아 순례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신앙의 체험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박유진 바오로 신부 가톨릭문화원장
연중 제13주일 (교황 주일) 주보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