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三韓詩龜鑑(삼한시귀감)
五夜(새벽) 梅湖 진화(陳澕) 五夜不知風雨惡 오야부지풍우악 醉和殘夢度晨鷄 취화잔몽도신계 家僮忽報南溪漲 가동홀보남계창 半泛山花到石階 반범산화도석계 새벽에 비바람이 사나운 줄을 모르고 술에 취하여 꿈결에 닭 우는 소리 몰랐네 아이들 갑자기 달려와 남쪽 개울 물 불어 반이나 산꽃을 띄워 돌계단에 찼다고 알리네. <三韓詩龜鑑> 오야(五夜)는 오경(五更)으로 오전 3시부터 5시까지이다
梅湖遺稿 / 詩○七言絶句 五夜 오경 밤에 梅湖 진화(陳澕) 五夜不知風雨惡,오야부지풍우악 醉和殘夢度晨雞。취화잔몽도신계 家僮忽報南溪漲,가동홀보남계창 半泣山花到石階。반읍산화도석계 오경 밤 비바람이 고약한 줄 모른 채로 취기에다 꿈결 속에 닭 우는 새벽 맞았는데 동자아이 갑자기 남쪽 시내 물이 불어 반쯤 울며 산꽃이 섬돌에 왔다 알리네 ⓒ 한국고전번역원 | 변종현 윤승준 윤재환 (공역) | 2013
[주-D001] 泣 : 《東文選ㆍ五夜》에는 “泛”.
梅湖遺稿 / 詩○七言絶句=원문이미지
東文選卷之二十 / 七言絶句
五夜 梅湖 진화(陳澕) 五夜不知風雨惡。오야부지풍우악 醉和殘夢度晨鷄。취화잔몽도신계 家僮忽報南溪漲。가동홀보남계창 半泛山花到石階。반범산화도석계 오야에 바람 비의 사나움을 모르고 취해서 옅은 꿈과 더불어 새벽 닭을 넘길 때 사환 아이 갑자기 앞 시내의 물이 넘쳐 반이나 산꽃을 띄워 돌뜰에 왔다고 알리네 ⓒ 한국고전번역원 | 김달진 (역) | 1968
원문=동문선 권20 이미지
진화(陳화)생몰년 미상. 고려 신종·희종 때의 문신. 본관은 여양(驪陽:지금의 洪城). 호는 매호(梅湖). 여양군(驪陽君) 총후(寵厚)의 증손으로,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문신을 보호해주었던 참지정사(參知政事)·판병부사(判兵部事) 준(俊)의 손자이고, 병부상서 광수(光脩)의 아들이며, 식(湜)·온(溫)의 아우이다. 그러나 그의 행적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한다. 그의 문집에 있는 매호공소전(梅湖公小傳)에 1200년(신종 3)에 아직 혼인하지 않았다고하므로 대략 1180년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있었고 명종이 신하들에게 소상팔경(瀟湘八景) 시를 짓도록 하였을 때어린 나이로 장편을 지어 이인로(李仁老)와 더불어 절창이라는 평을 받았다. 1198년 사마시에 수석으로 합격하고, 1200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다음해에 내시(內侍)에 보직되고, 1209년(熙宗5) 학정(學正)으로 전직하였으며, 1212년(강종 1)에 제과시험(制科試驗)에 참여하여 조서(詔書)를 짓는 일을 맡아보았다. 1213년에는 설화(舌禍)로 벼슬에서 물러났다가 다시 한원(翰苑)에 들어갔다. 1215년(高宗2)에 관각제공(館閣諸公)에게 부시(賦詩) 40여운(韻)을 시험하였는데, 이규보(李奎報)가 수석을 차지하고 그는 차석이었다. 서장관(書狀官)으로 금나라에 다녀온 뒤에 옥당(玉堂)으로 옮겨 지제고(知制誥)를 겸직하였고, 정언(正言)에서 보궐(補闕)을 거쳐 우사간이 되어 지공주사(知公州事)에 보직되었다가 재직 중에 죽었다. 그의 시는 현재 59수가 전하고 있는데, 그 중 무신의 난 이후의 피폐한 농촌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도원가(桃源歌)가 특히 유명하며,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면서 지은 사금통주구일(使金通州九日)·봉사입금(奉使入金) 등이 있다. 1784년(정조8) 그의 15세손 진후가 동문선(東文選)·동인시화(東人詩話)·기아(箕雅)》 등에서 시작품을 찾아내어 매호유고(梅湖遺稿)를 간행하였으며, 이 책은 1973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간행한 고려명현집(高麗明賢集) 2에 영인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