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10-12항에서 교황님께서는 프란치스코 성인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 10항. “저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약자를 돌보시고 기쁘고 참되게 통합 생태를 사셨던 가장 훌륭한 모범이시라 생각합니다.”
우리말 번역은 ‘통합 생태론’이라 되어 있는데요, 제4장의 제목이기도 한 integral ecology는, 초판에서는 ‘온전한 생태학’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교황님께서 ‘생태학’을 주창하시기 위해 이 회칙을 반포하신 것이 아니기에,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개정판에서는 ‘통합 생태론’으로 수정되었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통합 생태’로 번역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통합 생태론을 실천하셨다’고 말하기보다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통합 생태를 사셨다(vissuta; lived)’고 말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교황님 말씀은 “우리도 프란치스코 성인을 본받아 통합 생태를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성인께서는 기쁨과 고귀한 헌신과 우주적 마음으로 사랑하셨고 또 그 때문에 사랑받으셨습니다.”
저도 이제는 번역 얘기 그만하고 내용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올바른 번역이 올바른 내용 이해로 이어지기에, 자꾸만 번역에 대해 말씀드리는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말 번역본이 가장 기피하는 단어가 나왔는데요, ‘우주’입니다.
회칙 전체에 ‘우주’(universo; universe)가 27회, ‘우주적’(universale; universal)이 17회 나옵니다(그중 한 번, 242항은 ‘보편 교회’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말 번역본 초판은 이를 각각 ‘세상’과 ‘보편적’으로 번역했고 ‘우주’라는 단어를 단 한 차례도 쓰지 않았습니다.(단 한 번, <what a cosmic!>을 '얼마나 보편적입니까!'로 번역했다가, 이 부분에서만 저의 의견이 반영되어 '얼마나 우주적입니까!'로 수정되었습니다.) ‘세상’(mondo; world)이라는 단어가 140회, ‘보편적’(generale; general)이라는 단어가 5회 따로 등장하는데, 교황님께서 명백히 ‘우주’라 지칭하시는 단어들을 왜 다 그렇게 바꾸어 번역했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초판이 인쇄되기 전, 이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개정판에서는 얼마나 바꾸었는지 앞으로 보겠습니다만, 일단 10항의 ‘우주적 마음’(cuore universale)이 ‘열린 마음’으로 번역되었네요. “그는 사랑을 하였고, 또한 기쁨, 관대한 헌신, 열린 마음을 지녔기에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우리말 개정판)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번역해 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기쁨과 고귀한 헌신과 우주적 마음으로 사랑하셨고 또 그때문에 사랑받으셨습니다.”
이 회칙의 제목은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지으신 “피조물의 찬가”에서 따온 것입니다. “찬미받으소서, 저의 주님, … 형제인 태양을 통하여 … 누이인 달과 별들을 통하여…” 이런 노래를 지으신 프란치스코 성인은 ‘우주적 마음’의 주인공이 아니실까요? ‘열린 마음’은 영어번역본(openheartedness)을 따라간 것으로 보입니다만, 원문의 뜻이 지나치게 약화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노래하신 피조물들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온 우주의 상징입니다. 성인께서는 창세기 1-3장의 창조 이야기를 새로운 노래로 부르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주의 창조주이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생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인이 아닙니다. 우주를 얘기할 때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창조주 하느님께로 향합니다. ‘우주적 마음’은 그런 것입니다. ‘열린 마음’ 정도를 갖자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