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참된 신앙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라는 근거의 마지막은 죄와 마음의 완악함의 관계입니다. 마음의 완악함은 죄를 돌이키지 않는 굳은 마음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못했던 이유는 마음이 강팍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목이 곧고 마음이 강팍한 상태는 마음이 완악해져 있음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불신자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기독교를 반대하는 것도 마음의 강팍함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조나단 에드워즈가 말하는 완악함은 어떤 것일까? 완악함은 굳은 마음의 상태를 뜻하고 굳은 마음은 감정이 없거나 쉽게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뜻합니다. 이것을 돌과 같은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에비해 부드러운 마음은 감정에 영향을 주는 것에 쉽게 인상을 받습니다. 경건한 신앙감정에 쉽게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아이와 같은 심령입니다. 어린아이의 심령이 부드럽고 쉽게 영향과 감동을 받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말씀에 그렇게 반응하는 감정을 지녀야 합니다. 성경은 굳은 마음, 감정이 없는 마음을 자주 마음의 죄와 부패함, 강팍함으로 말씀합니다. 반대로 은혜로운 마음과 거룩함은 경건한 감정에 쉽게 영향을 받습니다. 말씀에 찔림을 느끼며 심지어 심한 아픔에 울기도 하고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하고 찬양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예배에 임할 때 영혼이 크게 감정적으로 고양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이 경건한 감정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모든 감정이 부드러운 마음의 산물은 아닙니다. 미움과 분노, 허영과 같은 이기적이고 교만한 감정은 굳은 마음, 강팍한 마음에서 더 잘 자랍니다. 그래서 마음이 어떤 감정에는 잘 영향을 받지만 또 어떤 감정에는 굳게 닫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자의 감정의 정도가 반드시 그가 지닌 믿음과 같은 수준으로 일치되지는 않습니다. 왜그런가? 참된 성도의 마음에 영적이지 않은 감정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 감정들이 신앙감정과 혼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감정은 대부분 본능적인 감정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몸도 감정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병이 들어 고통스러워 할 때 건강할 때 감정은 분명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감정에 대해 평가할 때 주의해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으로만 판단하면 안 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 이유를 거룩한 감정은 습관적이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습관적이라는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안정적인 감정, 혹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감정으로 보입니다. 신앙감정이 아닌 본능적 감정이 혼재되어 있거나 몸의 상태에 따라 받는 영향으로 인해 갑자기 감정의 급격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것과 믿음이 비례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는 감정, 그것이 무엇인지를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 감정의 변수와 변화가 있음에도 중요한 것은 거룩한 감정이 없이 참된 신앙은 없다는 것입니다. 감정없이 마음의 습관, 원리 또는 외적 열매는 선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의 경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굳은 마음, 강팍한 마음임에도 얼마든지 외적인 종교적 열심을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