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 소음
중안 조상진
아파트 주거의 유래는 썩 유쾌하지는 않다고 역사적으로 논의된다. 그 이유는 집단으로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건축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아파트 문화는 서구나 미주의 경우와 상당히 다르다고 본다, 아니 특이하다고 보는 견해가 더 어울릴 것이다. 물론 좁은 국토의 사정을 이유로 드는 것은 별도의 문제이다.
고대 로마제국은 전쟁에 필요한 군인들과 도시생활에 필요한 각종 공사 인력들을 점령지 노예들로 채웠다. 그들을 끌고 와서 집단으로 수용해야 하는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당시의 귀족들은 넓은 농장을 소유하면서 식량과 식재료들을 생산하였고 농장지 중앙에 큰 저택 (villa)을 지어 살면서 전쟁이 발생하면 인력과 자금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용병으로 또는 노예로 끌려 온 많은 사람들은 저택에서 같이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집단으로 한 장소에 거주하게 할 건물이 필요했는데 그 개념이 아파트이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물자와 장비가 충분하지 않아서 5층 이하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로마 시내에서 지금도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 콜로세움의 건축물을 보더라도 그 당시 5층 높이 아파트 건립은 사실로 입증될 것이다.
실제로 우리 한국에서 초기의 아파트 건설도 5층 이하로 건설되었고 농어촌에서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 또는 자가 주택이 없는 도시 서민들을 위하여 최소한 작은 주거면적을 위주로 도시 외곽에 아파트를 건축하였던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우리 한국사회는 이제 도시 농촌을 구분하지 않고 신도시 건설이라는 구호까지 만들어 전국적으로 아파트 건설이 붐을 이루고 있다, ‘내집 마련’의 꿈과 희망을 만들어 주었으니 누구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할까.
그러나 모든 일들은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옛날 우리의 부모들은 크든 작든 집터를 잡고 초가든 기와든 소박한 집을 지어서 특별하게 남의 눈치를 살필 필요없이 뛰고 노래하고 귀여운 아들 손자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 가족이 큰 소리로 웃기도 하면서 보다 자유롭게 살아왔지만, 아파트라는 주민공동체 내에서는 문화적 사정이 달라진 것이다.
외면적으로만 본다면, 아파트 단지의 멋진 수목 조경과 자동차 통행을 위한 아스팔트. 그리고 편리한 주차장과 편의시설 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 또한 엘리베이터가 높은 층이라도 편하게 올려주고 내려주니 로마제국 귀족들의 저택이 부럽지 않은 것이다. 고층일수록 베란다 너머로 보이는 조망은 볼 때마다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다. “우리 집의 전망은 아주 끝내 준다” 라고 친지 친척들을 불러들여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리라. 고급 아파트일수록 그 안에서 살다가 보면 아파트 전체가 모두 자신의 집터이고 잘 가꾸어진 조경은 마치 큰 전원주택을 소유한 존재로 착각도 들 것이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시간이 좀 한가하여 13층의 34평 중급 아파트에 살고 있는 친구와 만나기로 하였다. 친구가 사는 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는 조용한 카페에서 둘이 앉았다,
카페 창문을 통하여 15층 높이의 아파트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마치 “왜 선생님은 우리 아파트로 이사오지 않으세요? 우리 아파트보다 더 비싼 아파트에 사시나 보네요” 라고 비웃는 듯 하다. 그렇다면 나의 눈초리가 그리 호감스럽지 못하게 보였다는 것인가.
“아 친구야 잘지내나” 안부를 묻자 “응 요즘 머리가 좀 아프다. 위층에서 부시럭 대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라고 답을 한다.
이어서 하는 말은, 그런대로 나는 참을 만한데 아내가 좀 민감한 성격이라서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위 14층에서 젊은 부부가 어린 애들을 키우며 사는 것 같다면서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란다. “그래서 어떻게 할라고?” 라고 묻자 “관리사무소에 소리가 나지 않게 조치해 달라고 전화를 수차례 했어” 라고 답을 한다. 그러나 관리소의 반응은 신통하지 않다고 한다. 중간에 끼어서 난처한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관리사무소에서 위층의 주민에게 주의를 요청하게 되면 오히려 신고자가 누구냐고 밝혀 달라고 역정을 낸다는 것이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위층이 아래층에 내려와 항의하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하니 감정싸움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는 친구의 말이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렇다면 친구야, 너의 손자손녀들이 찾아와서 소란을 피우게 되면 마찬가지로 아래층에서 피해를 당하지 않을까” 나의 물음에 친구는 자신도 1년 전에 아래층에서 소음 피해를 신고했다고 하면서 관리사무소로부터 주의를 받은 일이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손자들이 보고 싶으면 밖에서 만난다고 하면서 한숨을 토해낸다.
나는 아파트의 1층에 산다, 그래서 아래층에 피해줄 일은 없지만 나 역시 2층인 위층에서 나는 소음을 경험한다. 낮에는 의자를 끄는 듯하거나 나무를 툭툭 치는 소리가 들리고, 밤에는 침대의 메트리스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고 친구에게 들려주었더니 동병상련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파트 문화는 우리나라의 특별한 성질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서구나 미주 등 자유와 민주적 의식이 선진화되어 있는 나라들은 개인 주택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아파트 형식 말고 타운하우스 라는 건축물도 생겨났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3층 높이로 옆으로 길게 늘어진 건축물이다, 타운하우스 역시 영국에서 아파트 대용으로 시작된 개념으로 보이므로 아파트의 원래 개념에서 회피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린 부분이 엿보인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아파트 문화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단순한 주거공간을 넘어서 부의 증식으로 변질되었다고 단정하고 싶다. 한 편으로 보면, 잘못된 정부의 정책이 발단이 되었고 천박한 자본주의에 의한 건설부분 투자가 주거공동체의 시민 정신을 흔들고 있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아파트 층간의 소음은 입주하기 전에 전혀 모르는 문제이었는가 하는 과제도 짚어 봐야 한다. 분양이득을 최대화하기 위하여 방음시설 설계를 소홀히 한 건설사의 욕심, 집단 주거장소의 예상 문제점을 착안하지 못한 정치와 정부의 무능, 일정공간에서 집단으로 주거하는 공동체 생활중 발생할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한 입주자의 마음 준비, 그리고 층간 소음 뿐만 아니라 흡연으로 인한 간접피해 등을 일괄하여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심을 키우도록 관리단과 관리주체의 노력 부족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복합되어 발생하는 현상들이 된다.
서구나 미주 선진국들이 아파트를 선호하지 않는 큰 이유는 사생활을 간섭받지 않기 위함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의 아파트 문화는 그 반대로 사생활의 간섭을 각오하고 입주하였다고 스스로의 책임을 추궁해도 할 말이 적을 것이므로 한 개인으로서 재산권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생활에서는 상대방을 먼저 이해하고 배려하는 의식을 성숙시켜야 되지 않을까. 그것이 자유와 민주를 사랑하는 진정한 시민정신 이다 라고 나는 외치고 싶다. 성숙한 시민의식 그것이 곧 천민적 민주주의와 천박한 자본주의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라고 또 한번 외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