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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정의가 있는 곳에 존재한다. 정의는 정의로운 하나님의 소망이다. 로마서는 이런 하나님의 뜻대로 정의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바울 사도의 서신이다. 우리는 정의를 통해서 자유를 세워야 한다.!!
샬롬! 주일 아침입니다. 우리는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어제 일어난 일이 방송이나 매체에 아무런 보도도 없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수도 없는 국민이 광화문에 모여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아무런 방송과 매체가 보도가 없으니 이 나라가 무슨 나라입니까? 그리고 오늘도 대형교회 목사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교회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설교라 이름할 것입니다. 교회는 무엇이며 목사는 누구이며 설교는 또 무엇입니까?
교회는 악을 이기고 승리하는 곳입니다. 죄를 이기고 진리는 전하고 진리를 수호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정의를 세우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죄인을 구원하시려 오셨습니다. 죄에 빠져서 소망이 없고 죄로 온 세상에 악을 행하는 자들을 자신의 피와 죽음으로 구원해서 이 땅에서 선하게 정의롭게 살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설교는 이에 대한 성경적인 설명입니다. 즉 이 땅에 진리를 전하고 정의를 세워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설교입니다. 바쁜 교인들을 교회에 불러놓고 잡담이나 하는 곳이 아니라 피를 흘리고 죽으신 예수를 전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제대로 들어간 교회나 성도는 진리를 위해서 피를 흘리고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제국을 복음으로 이긴 로마 교회는 피를 수도 없이 흘렸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는 대부분 순교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복음이 400년 전에 천주교로 들어왔을 때 또한 한국의 왕에도 와 양반 제도와 제사 문제 등과의 갈등으로 백 년 동안 1만 명이 순교를 해서 정의를 세우고 진리를 세웠습니다.
이렇게 악과 싸운 교회 덕분에 자유가 보장이 되고 인권이 보장이 되고 사람이 자유롭게 이 세상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법적으로 권리를 보장을 받으면서 살게 된 것입니다. 이런 기독교의 악과의 전투와 희생과 피 흘림이 없었다면 세상은 여전히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독재가가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며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해서 죽이고 종으로 노예로 삼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에 가장 먼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전투의 선봉에 서고 전투를 독려해야 할 사람이 교회의 목사요 대형교회 목사입니다. 이런 세상을 보면서도 오늘 시원하게 에어컨이 나오는 교회에서 땀도 피도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 자는 악에 굴복하는 자요, 정의로운 예수님을 모독하는 자요, 그냥 보통의 국민보다 더 악하며 비굴하며 사람의 형상은 가졌지만 껍데기만 사람이고 그 속에는 악을 받들고 마귀에 순종하고 세상이 망해도 나라가 망해도 자신의 교인이 억압에 두 손과 두 발이 묶여도 아무런 감정도 대응도 못하고 그냥 그 자리에서 여전히 월급 받고 안일하게 살다가 압수 수색을 당해도 그냥 당하고 자진의 아내와 자녀가 악에 이리저리 능욕을 당해도 여전히 아무 행동도 아니하고 살 멍청한 사람에 불과한 것입니다. 참으로 더운 여름 날씨보다 더 답답한 이들이 이들 못난 1000개의 대형교회 목사입니다. 그런데 오늘도 이 못난 사람에게 무엇을 배울 것이 있다고 교회로 몰려가서 1시간 예배 중에 들을 것이 없는 설교를 듣는 성도는 누구입니까?
이미 교회에 장로와 성도가 목사가 진리를 전하는 것을 방해하고 막는 형국이 되어 목사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으니 교회 목사로 교회를 이렇게 악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담임 목사인 것입니다. 악이 교회를 정복해도 무어라 말도 못 하고 지내니 세상이 이렇게 되어도 역시 말도 못 하고 이들 눈치만 보면서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하려고 정의를 세우는 예수의 종이라는 자들이 오늘도 한국의 대형교회에서 목사로 무슨 소리를 쏟아낼지 주일은 답답하기만 한 것입니다.
용기가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정의를 위해서 피를 흘리지 않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자유를 위해서 싸우지 않는 교회는 그 기능이 상실이 된 것입니다. 이를 누가 이렇게 만듭니까? 1000개 대형교회 목사가 만듭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법을 정해두고 법대로 사라고 하십니다. 그 법이 정의롭고 사랑이 넘치며 사람 간에 서로 신실하게 살게 만드는 모세 오경의 법 율법입니다. 이 법의 가장 중요한 내용 중의 하나가 거짓 증거하지 말라와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입니다. 방송을 보시기 바랍니다. 정의를 전하고 진실을 전하는 방송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제 일어난 수많은 국민의 외침을 전하는 방송이니 매체가 없는 세상에 살면서 이런 악하고 거짓된 세상에 대해서 잠잠한 예수의 종이라는 1000개 대형교회 목사는 목사가 아니라 거짓의 노예요, 거짓에 억눌린 자요, 거짓에 동조하는 자요, 거짓을 사랑하는 자요, 거짓에 목을 맨 미친 정상적이 아닌 마귀의 자녀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마귀의 자녀에게 무엇을 듣고자 교회에 오늘도 수많은 한국의 성도가 갑니다.
1000만의 성도가 이런 한국에서 분별력을 잃고 악한 방송에 의해서 거짓된 방송에 의해서 망가져 가는데 목사가 무엇이 무서워서 이런 현실도 외면하고 오늘도 성전에서 정의로운 예수를 섬긴다고 헛소리를 내 쏟을지 모르지만 그 소리는 썩은 물로 생명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일제가 한국을 1910년 합병을 하고 우상을 섬기라고 할 때 한국 장로회 총회는 그렇게 하자라고 결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개가 되었습니다. 살아는 남았지만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천주교가 100년 동안 1만 명이 죽으면서 싸운 것과 너무나 다르게 목사라는 자들이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그 악한 전통이 있는 개신교가 이제 회개하고 이런 세상을 피를 흘리며 바로잡아야 하는데 또 굴복하고 조용하고 동조하고 가고 있으니 이 나라의 장로교(개신교 전체)는 이 세상에서 가장 못난 교단이 되는 것입니다. 언제 악과 싸우고 피를 흘린 경험도 없이 어찌 100명 중에 12-3 명이 순교한 기독교의 역사 속에 이름 속에 그 한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자신도 지옥행이며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를 지옥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싸우는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 먼저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이웃과 교인과 나누기 바랍니다. 모든 부를 다 팔아서 먼저 수백만 명의 소망 없는 가난한 한국인을 살리기 바랍니다. 먼저 본을 보이면 장로 권사가 따릅니다. 그다음에 그 자리에 연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국에서 폐지를 주어서 살아도 살고 나이가 들면 연금으로 살아도 죽지는 않습니다. 가난하게 되시고 그리고 할 말을 하기를 바랍니다. 악에 대해서 악하다 외치고 성도가 그렇게 하면 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고 외치시기 바랍니다. 악한 놈들이 교인도 아니면서 교회에 와서 교회를 망치는데 이들과 당당하게 맞서시고 이들의 세력이 크면 나가면 되고 이들이 약하면 이들이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정의로운 사람들이 남아서 정의롭게 악과 싸우면서 교회를 예수님의 정의대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한국의 대부분의 악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요, 우리가 참다운 자유를 누리는 비결입니다. 이 길로 속히 모든 1000명의 대형교회는 가시고 이렇게 가지 않는 모든 대형교회 목사는 이미 예수의 제자도 종도 아니고 마귀의 것이라서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성도가 마귀의 괴수를 담임으로 세워놓고 마귀에 유혹된 성도와 같이 악으로 가는 것입니다.
저도 이미 그렇게 40년을 살고 있고 윤 대통령은 옥에 계시고 그리고 일반 백성과 깬 성도는 더운 여름도 잊고 거리에서 정의를 외치고 있으니 가장 선봉에서 이렇게 살아야 할 분들이 모두가 1000개 대형교회 목사이니 이렇게 못한 것을 회개하고 이제라도 이렇게 사시길 간절히 권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이완용이나 매국노보다 더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노하게 한 사람이 바로 장로교회 목사들입니다.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악한 일을 한 자들이 이들입니다. 이들의 악행이 무엇을 불러옵니까? 수백만이 죽는 동족의 상잔입니다. 이제 1000명의 대형교회 목사가 악에 동조하고 침묵하면 무슨 결과가 올 것 같습니까?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그들과 그들의 가족을 치실 것입니다. 가장 악한 무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수백만 명이 죽는 비극이 올 것입니다. 중국이 한국의 다 뺏어갈 때 미국은 그냥 당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중국을 막는 지구상에서 가장 요지인데 이 요지가 중국의 손에 들어가면 일본이 그다음에 당하고 그리하면 태평양이 중국에 들어가고 미국은 하루 만에 3-4등 국가가 되어서 로스엔젤레스 자신의 국경이 되는 역사상 가장 비참한 상태에 들어가는데 미군을 철수하고 이재명이 하고 싶은 대로 가만히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모든 사람은 죽고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 이란의 핵을 한 방에 날리는 트럼프가 북한의 핵도 한 방에 날리고 이런 한국이 그대로 중국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을 묵과하지 않고 군사적인 행동을 중국에 하게 되면 한국에서 또 전쟁이 발발해서 수백만 명이 죽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책임이 당시 일제강점기에 우상을 섬긴 장로교 목사의 배신에서 비롯이 되듯이 역시 이 시대에 침묵하는 1000명의 대형교회 목사의 비겁함에서 비롯이 될 것입니다. 역사는 반복이 되는데 비극은 이런 역사의 과오를 알고 고치는 데서 그치기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나 나나 모두가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자유하기 위해서 믿는 것입니다. 죄의 속박에서 자유하고, 율법에서 자유하고, 그리고 죽음에서 자유롭게 되고자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 세상에서도 인권의 보장을 받으면서 자유롭게 이 세상에서 살면서 하나님도 자유롭게 섬기고 풍성한 은혜도 누리면서 이 땅에 우리 주 예수님께서 세우고자 하는 세상 즉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이 세상을 지배하고 교회를 압수하고 목사를 압수하고 방송이 장악이 되어서 거짓이 난무하고 진리가 외면되고 왜곡되는 현실을 보면서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모든 믿는 사람과 1000명의 대형교회 목사는 이런 하나님의 나라와 상관이 없는 마귀에 이미 포섭이 되고 마귀의 종이 되어서 분별력이 사라진 소망이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았다는 1000개 대형교회 목사가 예수님의 나라가 파괴되고 성도가 악에 잡혀서 자유를 상실하게 되는데도 이를 선봉에서 피를 흘리며 막고 싸워야 하는 자가 성도 맨 뒤에서 이들이 하나님께 바친 물질로 큰 아파트와 비싼 차와 많은 사례와 각종 교회의 모든 혜택과 성도의 존경을 독식하면서 성도라도 싸우라고 해야 하는데 이도하지 않고 모두가 침몰하게 하고 있으니 그 죄의 댓가가 가장 먼저 1000 명의 대형 교회 목사와 가족에게 갈 것이 분명합니다. 자신의 아내와 자녀가 가장 참혹하게 그 죄의 댓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공산화가 되면 가장 먼저 이들의 재산을 빼앗고 이들의 목을 칠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수도 없는 사람이 이들의 악행으로 생명을 잃게 될 것이고 한국이라는 나라는 망할 것입니다. 그 망하는 것이 눈에 보이고 너무나 진도가 빨리 나아가고 있는데 무엇합니까?
그리고 모든 자유는 박탈이 되고 모든 교인은 사라지고 그래도 예수를 믿고자 하는 자는 지하로 숨어들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왜 잠잠합니까? 광복 후 80년의 물질의 축복과 성경을 연구하고 올바른 길로 가게 할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서 과거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주셨는데 또 이렇게 타락하니 어찌 이 나라에 소망이 있습니까? 가장 큰 죄를 1000명의 대형교회 목사가 짓는데 과거엔 일제의 탄압이었으나 이제는 물질의 유혹에 빠져서 자신도 죽고 자신의 가족의 죽이고 성도도 죽이고 국민도 죽이니 이 악하고 게으르고 ㅣ비겁한 1000 명의 무리를 어찌합니까?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신앙도 자유도 싸워야 할 때 싸워서 쟁취하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전투가 없는 신앙이 없고 자유가 절대로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일본의 압제로 모든 것을 40년 동안 수탈을 당했고 그리고 6.25전쟁으로 수백만이 죽으면서 자유를 쟁취한 것입니다. 그냥 온 자유가 아닙니다. 북한에는 자유가 없는 것을 온 세상의 80억이 다 알고 그리고 고위직 사람과 엘리트가 자유가 없음에 자유가 있는 한국으로 생명을 걸고 탈출을 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를 북한과 같이 만들려고 하는 세력에 그냥 내어 주여야 합니까? 누가 가장 앞서서 막아야 합니까? 가장 교회로부터 대접을 받는 1000 명의 대형교회 목사가 앞서서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수고하라고 대형교회 목사로 초빙하고 사례를 과도하게 하고 존중해준 것입니다. 잠잠하라고 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한국의 몰락을 후대에 논할 때 1000 명의 대형교회 목사와 그 가족의 비겁에 대해서 배신에 대해서 불충에 대해서 반드시 논하는 날이 옵니다. 그 무서운 역사적인 심판과 함께 지옥도 역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절대로 이들이 천국에 갈 확율이 0.0001%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장 큰 책임을 지고 가장 큰 대우를 받는 위치에 있는 자들이 가장 비겁하고 악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허물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누리고 세워야 하는 자유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절대로 그냥 오는 것이 아닌 영적인 싸움으로 오는 자유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나 대형교회 1000명의 목사는 먼저 부모님의 희생을 기억해야 합니다. 60이 넘으신 분은 대부분 부모님께서 별세를 하셨을 것인데 이분들이 어떻게 우리를 이렇게 키웠는지 알아야 합니다. 6.25이후에 모든 것이 파괴가 된 가운데 자녀를 대부분 많이 나으셔서 물도 길어다가 한 명의 음식이 아니라 열 명이 넘는 음식을 매끼를 준비하시고 우리를 굶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선대가 6.25전쟁에서 공산주의와 피를 흘리며 생명을 바치시면서 이 나라가 공산화가 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천주교의 100년의 피를 흘리고 생명을 건 혈투가 100년 동안 있었고 이에서 승리했습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자유를 위해 피를 흘리며 싸운 역사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 피를 흘리며 싸워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그런데 피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우리의 자유를 지킬 방법이 있으니 우리가 누리는 물질의 축복을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의 모든 문제는 물질의 불균등한 분배에서 비롯이 되는 것입니다. 집도 없고 땅도 한 평도 없는 국민이 국민의 약 각각 50%, 70%에 달하니 소망이 없는 국민이 생겨나고 헬 조선이 되고 하루에 그냥 40명이 자살을 하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 선택이 악이든 공산주의든 내게 집을 주고 땅을 준다면 문제가 없다고 하면 무엇이 이를 고칩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신자가 악하게 되면 악의 세력으로 응징을 하십니다. 즉 악이 나의 자유를 박탈하고 생명을 뺏어가도 침묵하시고 묵인을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택한 이스라엘을 악의 손에 맡기는 하나님의 역사를 너무나 분명하게 봅니다. 심지어는 망하게도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제 지금의 형세가 그 지경에 갔다고 한다면 누가 이를 고칠 수가 있습니까? 오직 가장 대우를 받고 가장 큰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1000명의 대형교회 목사의 회개 밖에는 그 답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대형교회 목사는 그 교회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모든 사람의 운명을 책임을 지고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의 창조주 하나님! 온 세상의 주관자가 되시는 예수님의 종으로 그분의 교회의 종이며 그분의 가장 큰 교회의 종으로서 그분의 뜻을 가장 정확하게 잘 받들어야 되는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큰 차와 집과 혜택을 받는 것만 생각하고 이런 의무에 대해서 이해가 없는 분은 오늘 속히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자격이 없는 자가 그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불을 받은 김정관 목사가 전합니다. 속히 그 자리에서 내려오시고 평신도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불의를 싫어시고 악을 이 세상에서 없게 하시려고 하십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죄로 물이든 인생을 구원하셔서 정의롭게 살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간 구원의 목적입니다. 이 목적도 아지도 모르고 목회를 하시면 목사 자격이 아주 없는 사람입니다. 십자가에는 사랑과 정의가 동시에 있습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 로마서의 로고는 이를 정확하게 표현했습니다.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서 믿음으로
21.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율법서와 예언서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24.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주셨습니다.
25.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과거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참고 눈감아주심으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고
26. 오늘날에 와서는 죄를 물으심으로써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올바르시다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21. But now a righteousness from God, /apart from law, /has been made known, /to which the Law and the Prophets testify.
22. This righteousness from God comes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o all/ who believe. There is no difference,
23. 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24. and are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came by Christ Jesus.
25. God presented him/ as a sacrifice of atonement, /through faith in his blood.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justice,/ because in his forbearance he had left the sins committed beforehand unpunished --
26. he did it to demonstrate his justice /at the present time, /so as to be just/ and the one /who justifies those /who have faith in Jesus.(개역 개정, 공동번역, NIV 순)
But now a righteousness from God, /apart from law, /has been made known, /to which the Law and the Prophets testify.
This righteousness from God comes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o all/ who believe.
There is no difference, 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and are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came by Christ Jesus.
God presented him/ as a sacrifice of atonement, /through faith in his blood.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justice,/ because in his forbearance/ he had left the sins /committed beforehand unpunished -- /he did it to demonstrate his justice /at the present time, /so as to be just/ and the one /who justifies those /who have faith in Jesus.
[ 21 22 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이 증거한 것이라.
이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임하는 것이라.
23 24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25 하나님께서 그를 화목 제물로 세우사 그의 피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셨느니라.
26 이는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 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지금 이 시대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시는 이시니라.]
하나님의 정의가 십자가에 이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제가 이를 풀어서 길게 다음과 같이 설명도 드렸습니다.
로마서의 가장 중요한 구절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구절보다 더 중요하고 로마서 1장 17절의 근거가 되는 구절입니다.
율법과 별도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율법은 모세 오경이며 성경의 가장 근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통치의 근본으로 각국에 가장 최상위에 헌법이 있듯이 이 율법은 온 인류의 공통적인 헌법이며 모든 성도의 헌법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이 법대로 온 우주를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법을 알든 모르든 이 법의 통치를 그대로 온 인류는 받습니다. 사는 동안에도 그렇고 죽고 난 후 영생과 영벌의 기준이 바로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율법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그리고 신실함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율법의 정신이 바로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그리고 우주 만물 인간을 포함에서 가장 높은 곳에 가장 오랜 시간 존속하는 거룩한 법이 바로 율법입니다. 우주 만물이 사라져도 일점 일획 변치 않고 존재한다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셨습니다. 이를 이스라엘 역사 1000년을 통해서 정확하게 보여주셨고 우리 인간의 역사를 보아도 역시 모든 인간의 역사가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고 그 통치는 법치로 율법에 의한 통치입니다. 그런데 법은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래서 율법에는 하나님의 의가 그대로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하면 의인데 이 율법과 별도의 의가 이번에 나타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는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미 예언서를 통해서 율법서(모세 오경)를 통해서 이미 증거가 되어 있다고 하십니다. 율법과 다른 의가 율법서와 예언서에 있다고 하시니 우리는 이를 찾아서 보아야 합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모세 오경 중에서 창세기에 15장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의롭다 하시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언서의 하박국서 2장 4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를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구약의 율법서와 예언서에 기록이 된 바와 같이 믿음으로 오는 의가 있는데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의가 있습니다. 즉 율법서에 기록이 된 조항을 잘 지킴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닌 이미 예언서와 율법서에 기록이 된 믿음을 통한 의와 같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이 오는데 모든 믿는 사람에게 온다고 하십니다. 21-22절이 설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의는 차별이 없습니다. 즉 믿는 모든 사람이 다 의롭다 인정을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와 너 모두가 하나님께 죄를 범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는 인간이 죄를 짓기 이전의 상태를 잃어버린 것을 설명합니다. 우리는 죄가 없다면 에덴에서 늙지도 병들지도 그리고 수고도 하지 않고 영생을 누릴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이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창조하셨는데 그분의 영광을 함께 누리도록 창조하셨는데 우리의 죄로 인해서 이를 잃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낙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대속인 하나님의 은총으로 값없이 의롭게 됩니다. 누구나 이 하나님의 은총과 예수님의 대속을 믿기만 하면 아무 값도 없이 의롭게 되기에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복낙원이 되는 것입니다. 23-24절입니다.
25절을 봅니다. 이 구절의 복음이 핵심입니다. 로마서에 이 구절에 대한 이해가 다 있습니다. 먼저 로마서 5장 8절을 봅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화목 제물로 세우셨다고 하는 것은 구약의 율법에 따라서 죄를 지은 사람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는 흠이 없는 양이나 소를 잡아서 피를 흘리는 제사를 성막에 가서 혹은 성전에 가서 제사장과 함께 드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사람의 죄를 씻어야만 하나님 앞에 나가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께 죄를 범했고 이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예수님 즉 독생자를 희생의 제물로 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내어 주는 사랑 그 사랑으로 우리 모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증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는데 이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모두의 죄를 씻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세우시고 믿는 우리를 의롭게 하신 일이 자신이 의로운 분이심을 나타내시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26절에 있는데 이 부분부터 잘 보아야 합니다. 누가 설명을 잘 하지 않는 부분입니다.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justice에서 밑줄 친 this는 앞의 문장 전체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그분의 피 흘리심을 통해서 이를 믿는 우리를 의롭게 하신 일이 그분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려고 하신 일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를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희생이나 피 흘리심이 없이 누구를 용서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법에 의하면 죄에는 대가가 반드시 따르고 죄는 대가가 죽음과 피 흘림이 반드시 있어야 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즉 죄에 대한 처벌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잃고 이 땅에서 살다가 죽는 신세가 되어서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은총이 값이 없이 우리의 희생이 없이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그런데 그 은총은 너무나 큰 하나님의 사랑으로 큰 희생으로 옵니다. 즉 하나님의 죄에 대한 처벌로서 오는데 그 처벌이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아들에게 대신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과 예수님의 죽으심이 바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처벌로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정의가 이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법대로 우리를 죽게 그대로 두어야 하나 우리 대신 예수님을 피를 흘리시고 죽게 하신 것입니다.
이 대속을 믿는 이를 하나님께서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설명으로 이렇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그분의 정의로우심을 나타내시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죄에 대해선 절대로 피 흘림이나 죽음이 없이는 용서가 불가하다는 것으로 이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사는 사람에 대해서는 반드시 죄에 대한 심판이 있고 그 심판이 최후의 심판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죄는 그대로 넘어가는 경우가 없고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 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라는 것입니다. 이 죄에 대한 처벌을 우리 대신 예수님께서 받게 하심으로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정의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받는 길을 은총으로 주셨지만 이를 믿지 않는 자에겐 틀림없는 죄에 대한 심판을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절대로 죄는 두 가지 방법 외에 피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이시기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를 용서를 받든지 아니면 그냥 그 사람이 피를 흘리고 죽는 것 외에는 달리 어떤 방법의 해결책도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로서 모든 세상에서 악하게 살고 마음대로 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는 사람에겐 틀림없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존재함을 온 세상에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것입니다. 죄는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인생의 순간이고 하루살이나 불나방과 같이 순간의 권력욕이나 재물의 욕심에 죄를 범하는 인간의 말로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결단코 피해 갈 길이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죽음으로 내어 모는 사건을 통해서 온 인류에게 엄중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이렇게 죄에 대해서 무서운 분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절대로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같이 나타나 있음을 굳게 믿으시고 절대로 죄에서 멀어지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전에 설명한 내용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정의의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가 되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과거에 지은 죄로 인해서 죽어야만 하는데 예수님께서 대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으심으로 우리는 이를 믿고 죄를 용서받고 이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즉 죄에서 벗어난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영생을 소망하는 천국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제 이 백성의 삶에 대해서 로마서는 전체를 통해서 설명해 주십니다.
그 내용을 제가 쉬지 않고 전하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예수님의 말씀 마태복음 5장 17-20절이 로마서를 이해하는 등불이며 기준이 되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 예수와 율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기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낫지 못하면 하는 내용은 우리가 사는 삶이 지금의 유대인 중에서 율법을 잘 배우고 지켜서 율법으로 의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보다 못하면 이란 뜻입니다. 유대인은 어려서부터 모세 오경을 잘 배우고 암송하고 지킵니다. 지금도 그렇게 잘 지키는 무리가 아주 많습니다. 이들은 율법에 따라서 유대인을 형제로 대하고 사랑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주안에서 형제로 사랑하는 것 보다 이들이 더욱 사랑합니다. 민족의 유대가 율법을 통해서 아주 강합니다. 그리고 정의롭게 살고자 합니다. 이들이 악으로 온 세상을 통치하고자 했다면 독일의 유대인 학살은 없었을 것이고 독일이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냥 그들이 순순히 당한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시도가 아주 강합니다. 그런데 이들보다 이런 면에서 못한 모든 사람은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정말로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 설교를 하시는 목사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어찌 로마서를 올바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까?
슬프게도 한국의 현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바울의 로마서를 그분의 주요, 참된 심판주인 예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 이렇게 믿고 사는 모든 사람은 다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오늘 바로 잡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 중의 한 구절이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내용입니다.
제가 단언합니다. 로마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시고자 오신 예수님의 제자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분의 뜻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뜻을 받들고자 쓴 서신서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대적하던 지옥에 갈 인간 바울이 천지를 창조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하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그분의 은혜로 죄를 용서받고 그분의 사랑으로 성령을 선물로 받아서 그분의 종으로 사역을 하다가 그분의 뜻을 받들어서 로마 교회를 굳게 하고자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로마서가 위의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게 하거나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라고 기록을 했다면 바울을 미친놈이요, 배신자요, 역사에 남을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신교의 신학자와 성도와 목사와 장로가 로마서를 그렇게 알고 이해를 한다면 바울이 그렇게 미친 것이 아니라 로마서를 잘못 이해하고 그렇게 사는 모든 사람이 정신이 나갔고, 미쳤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다가 지옥으로 그냥 가는 것입니다. 오늘 참된 로마서의 진리를 전하니 바로 알고 믿고 이상하게 전하는 자들에게 경종을 울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잘못 알고 믿어서 지은 죄를 회개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로마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시기 위해서 그분의 종 바울 사도를 성령으로 감동케 하셔서 기록하게 한 서신서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위의 말씀을 잊지 마시고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내용을 잊지 마시고 로마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로마서는 절대로 절대로 예수님의 종인 바울 사도가 쓴 서신서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주인의 간절하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조금도 해가 없고 도리어 예수님의 뜻을 굳게 세우기 위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절대로 잊지 마시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천국에 가고 아니 가고를 결정하고 내가 예수님의 보혈로 십자가 대속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아서 그분의 백성이 되어서 그 은혜를 보답하고 올바로 사느냐 못 사느냐를 결정하는 내용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믿고 행위도 사랑도 성령의 인도도 없이 마음대로 살면 100% 지옥에 간다는 내용이 바로 로마서의 온전한 가르침입니다. 오늘 제글로 정신이 들고 바로 이해를 하셔서 나를 지옥으로 인도한 사람과 교리에서 멀리 멀리 가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간단한 이해입니다. 제가 그림으로 이미 소개를 드렸습니다. 그림만 보시면 다 이해가 갑니다.
이제부터 차근차근 위의 도표를 설명해 드립니다. 여러분께만 보낸 것이 아니라 리버티 대학교 학장이신 모스탄 대사에게도 보냈고, 온 세상의 700명의 신학교 교수님께도 보냈습니다. 다 영어로 번역을 해서 보냈습니다.
먼저 로마서 1장 17절의 내용을 제 설명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6.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it is the power of God for the salvation of everyone who believes: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16: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이방인에게 입니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 의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믿음에 의한 의입니다, 기록된: " 의인은 믿음을 갖고 삶을 살 것입니다." 와 같이 말입니다.]
맨 마지막에 제가 번역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의 믿음에 의한 의"와 "의인은 믿음을 갖고 삶을 살 것이다" 하는 부분이 우리가 보는 번역과 다릅니다. 중학교 영어로 보면 그 내용이 바로 보입니다. "The righteous /// will live /// by faith." 이 문장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어인 의인 그리고 동사인 살 것이다. 그리고 천치사구 믿음을 갖고로 되어 있습니다. 의인이 되기 위해선 믿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반드시 하루하루 살아아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란 부분은 로마서 4장과 야고보서 2장에 있으니 찾아서 보여 드립니다. 이부분을 루터는 그리고 모든 신학자들이 확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롬 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창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때의 아브라함의 나이는 75-85세 경입니다. 첫번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오심입니다. 그런데 이에서 끝이 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는 개신교의 가르침대로 맞습니다. 그런데 두 번의 더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체크가 있습니다. 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이 때는 분명하게 아브라함이 100세 때 이야기입니다. 두번째 하나님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심입니다. 세 번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뵈옵는 것은 어떤 사람은 자주이고 이제는 매일 주님을 뵈옵고 동행합니다.
약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이 때는 분명하게 아브라함이 110세 때 무렵입니다. 분명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입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이 이런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습니다. 오늘 잘 믿다가 어떨 때 하나님께서 오셨는데 믿음을 버리고 악을 범하고 있는 사람을 절대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지 않습니다. 에스겔서를 보시면 의인이 악을 행할 때 이미 행한 의는 기억되지 않고 악인이 된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왜 성급하게 로마서 1장 17절만 보시고 또 이렇게 깊고 정확한 의미가 있는 로마서를 겉만 보시고 예수님의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말씀을 조금도 지키지 않으려고 하십니까? 로마서도 중요하지만 로마서를 쓴 바울 사도의 주인이 되시는 우리 모두의 최후의 심판자가 도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더욱 중요합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로마서로 예수님의 어떤 말씀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진리입니다. 모든 분께 이렇게 권하고 있습니다. 이를 도표로 정리를 했습니다. 쉽게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로마서 1장 17절의 칭의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먼저 이렇게 되고자 하는 자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을 갖고 매일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삶과 믿음의 질과 종류가 분명하게 성경에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이를 로마서 4장이 증명하고 야고보서 2장이 증명합니다. 이 이해를 통해서 천주교와 개신교는 서로 논쟁을 접고 서로 부족한 이해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이렇게 믿고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를 이를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믿습니다.
바울 사도는 2000년 전에 로마서를 기록할 때 이런 내용을 너무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롭게 됨에 있어서 이렇게 기록을 한 것입니다. 저도 경험적으로 성령을 받고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가운데 약 17년 이상이 경과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의롭다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어서 처음 도표와 같이 이해하고 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1장 17절의 본문의 의미에 모든 답이 있는 것을 보고서 이렇게 전하게 된 것입니다. 시간이 적어도 20년 이상은 걸린 이해입니다. 제가 게으르고 목이 곧고 그리고 고집이 세어서 그렇게 걸린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제 글을 읽고 바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늘 늘 저를 격려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힘을 내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너는 내 희망이다!"라고 쉬지 않고 반복하셨습니다. 그래도 제가 무지하고 게을러서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지 못했습니다. 빨리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느리게 느리게 제가 너무나 무심해서 이렇게 시간이 걸렸지만 여러분이나 모든 성도는 오늘 바로 이해하고 믿고 행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격려와 인내가 저를 이런 이해로 인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제 노력은 없습니다.
이제 이신칭의에 대해서 모두가 올바로 이해를 했으리라 믿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십니까? 이제 로마서 1장 17절의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데 그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조건을 보았습니다. 믿음을 갖고 아무것도 아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분명히 로마서는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의 삶에 대해서 정확하게 로마서는 7장 6절에서 설명합니다. 힘을 내셔서 이 부분에 와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조금도 없이 로마서를 설명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성령의 사역에 대한 이해가 없는 로마서의 이해는 모두가 부족합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20년을 전도하고 교회를 세운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로마서를 기록했는데 성령의 사역을 논하지 않는 로마서는 다 알맹이가 없는 이해입니다. 이런 시도를 예수님을 믿지도 않는 자가 지식으로 하는 경우가 있는데 볼 필요도 없는 가짜입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6. But now, by dying to what once bound us,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개역개정, 공동 번역, NIV)
영어로 보지 않으면 한국에 있는 성도는 절대로 이 본문의 본래 의미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절대로 그렇습니다. 제가 밑줄을 친 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이렇게 번역하면 불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을 낡은 법조문,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번역하면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로마서를 인도하는 등불인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내용을 절대로 지키는데 어렵게 하는 번역입니다. 제가 영어로 보면서 다시 번역을 했습니다. 여러분! 한국 사람이 성경의 진리로 가는 여정은 이렇게 번역의 문제를 뛰어 넘어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영어도 하시고 한글도 조금 아시니 별로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얼마나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며 앞서 갈 수가 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영어는 이제 모두가 할 수가 있고 한 언어로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를 하나 되게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를 한 때 얽매였던 것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율법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는 것이지 즉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지 옛날에 하던 낡은 방법 즉 율법을 가지고 섬기던 방법으로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옛 사람 바울이 섬기던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던 방법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방법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섬긴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 사람이 되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율법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는 표현은 0.00001%도 없습니다. 옛 사람이 낡았고 과거의 바울 사도가 섬기던 방법이 낡았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새롭게 거듭난 새 사람 바울이 성령을 받았으니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새로운 방법으로 섬긴다는 표현입니다. 율법에 대해선 그냥 두고 있으니 율법으로부터 자유합니다. 율법의 문제가 0.00001% 도 없습니다. 옛 사람 바울이 문제이고 그 섬기던 방법이 문제입니다. 율법학자라 하면서 실제로 율법의 정신을 다 던져두고 형식적인 조문의 준수로 위선자가 된 과거 예수님을 모르던 바울이 문제이며 바울이 섬기던 방법이 문제입니다. 이를 어째 거룩하고 성스럽고 지구가 사라져도 없어지지 않고 온 인류가 다 사라져도 한점도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낡았다고 하십니까? 얼마나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은 성도가 그분의 말씀을 불경되게 여기고 표현하십니까? 천주교 개신교는 모두가 회개하고 이 구절의 해석을 똑바로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제가 한국의 천주교 개신교 학자에게 하는 부탁입니다. 경제, 군사 온 세상에서 10 대국이 된 나라가 그렇게 복을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바로 이해하고자 하고 이를 온 세상에 전할 사명이 있는 국가가 성경의 연구엔 교회를 비롯해서 너무나 인색합니다. 대부분 백만 달러가 넘는 부자 크리스천이 수도 없이 있는 한국에서 저를 지원하고 응원하는 사람은 극 소수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성경을 연구하는 한국의 모습이며 교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한 세력의 통치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먼저 정치를 바로 잡을 것이라 아니라 영적인 측면을 재건해야 합니다. 여러분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가 로마서를 비추는 등불! 예수님의 말씀!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말씀에서 한 시도 눈을 떼지 말고 주목하고 로마서를 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바울 사도는 한 번도 그분의 주인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추상과 같은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말씀을 함부로 대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후대에 신학자나 목사가 그의 글 로마서의 왜곡된 이해로 이렇게 하시면 우리도 그렇게 따라서 가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를 보시고 바울 사도가 천국에서 한탄하십니다. 정신을 모두가 차리시고 로마서를 올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역시 한국의 모든 신학자 목사 신부에게 권하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적어도 20년 이상을 섬기면서 전도하고 선교하고 교회를 세우고 치리하면서 고린도에 갔을 때 자신이 가보지도 않고 세우지도 않은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에 로마서를 기원 후 약 57년 경에 쓰십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로 씁니다. 성령은 보혜사로 우리를 돕는데 하나님의 영으로 예수님께서 파송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서로 완전히 일치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내용을 성령께서는 기억하시고 그 말씀대로 성도를 살도록 그 말씀을 잘 지키도록 바울 사도를 로마서를 쓰도록 하시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령으로 섬긴 결과를 직접 보고서 아래와 같이 표현을 했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롬 14: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바울 사도는 자신이 옛날에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 율법의 완성을 봅니다. 예수님의 책망만 받던 과거 율법학자 바울이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 율법의 굳게 섬을 봅니다. 대단한 반전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분명하게 율법을 저만치 두고 즉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가운데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다 보니 이렇게 사랑을 하게 되고 그래서 율법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 생활을 성령의 인도를 받는 방법으로 하다보니 율법을 도리어 굳게 세웁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정말로 잘 지키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약속대로 천국에서 큰 자가 되신 것입니다. 이렇게 로마서는 정확하게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합니다. 그리고 로마서는 구약의 모세 오경을 너무나 정확하게 잘 지켜지게 하십니다. 로마서의 진정한 목적이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렇게 믿고 생각합니다.
저도, 온 세상의 모든 성도도 이와 같이 로마서를 이해하고 성령의 인도로 신앙 생활을 매일하고 그 결과로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는 신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도전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이런 새로운 창조물 피조물에 대해서 이미 에스겔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확인을 합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예수님을 통한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통한 새로운 창조물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그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게 된다는 말씀으로 로마서의 설명과 너무나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예수님의 말씀과도 너무나 일치합니다.
이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창세부터 지금까지 성경을 통해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동일한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또 이해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시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 명령을 어기면 죽고 순종하면 영생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어겼습니다. 그리고 노아와 그 가족의 의를 보시고 나머지 악한 모든 사람은 홍수로 다 죽이십니다. 법도 없고 악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창세부터 싫어하십니다. 선민교회 박기수 목사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죄는 미워하고 사람을 사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악을 미워하시고 우리는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창 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제 아브라함을 택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또 의와 공도를 지키게 하려고 율법을 주십니다. 그리고 40년을 사람이 율법으로 살아야 하는 법을 가르치시고 1000년을 지켜 보시고 하다가 하다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이 타락한 이스라엘을 586년 멸망을 시키시고 400년을 준비하시고 이제는 예수님을 보내십니다.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보내십니다.
에스겔서와 같이 구원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그의 아들 예수님께서 오시고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우리의 죄를 대속하십니다. 이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믿고 회개하고 그 분의 이름을 세례를 받게 되면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를 다 용서받게 됩니다. 이제 이런 사람에게 성령께서 선물로 오시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이 거듭난 사람이 즉 바울 사도와 같은 성도가 성령의 인도로 즉 새로운 섬기는 방법으로 믿음 생활을 매일 매일 로마서 1장 17절과 같이 하게 되어 율법을 잘 지키게 되어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웁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의롭게 하심으로 누구나 차별이 없이 틀림없이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법을 주시고 그 법대로 인간이 살아야 하는 원칙을 창세부터 한 번도 포기가 없으십니다. 그리고 하시고 하시다가 이제는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인간을 총동원 전도로 구원하시고 그분의 법을 지키게 하십니다. 이제 이렇게 완벽하게 모든 것을 다 주신 하나님께서는 더 줄 것이 없습니다. 성도가 이런 원리를 알고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믿음 생활을 하는 도리외엔 다른 방법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는 다 주셨습니다. 이제는 최후의 심판만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를 알고 이스라엘을 비롯해서 모든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가장 먼저 우선적으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믿습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분께서 주신 법이 인간을 통해서 지켜지길 바라십니다. 그 율법이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공평한 법이며 정의로운 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법대로 이스라엘이 살고 인간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율법을 완성하면 그 나라가 바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세우고자 하는 나라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그분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소망이 창세부터 너무나 강력하십니다. 이 분의 뜻을 잘 받드는 개인과 집단과 국가가 번영합니다. 그렇게 되자면 그분의 법이며 이 땅에 세워지는 하나님의 근본법인 율법이 지켜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지켜지면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1000년의 이스라엘의 경험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실패하지 않게 예수님을 보내시고 성령을 보내서서 이 일을 믿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얼나 복되고 영광스러운 부르심과 선택과 사역입니까? 모든 남자와 여자 성도는 여기에 인생을 다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올바로 알고 실천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께서 사랑하시는 이 나라는 교회와 담임이 문제가 너무나 많습니다. 자본주의 논리가 더 성경의 말씀보다 목사의 머리에 깊이 박혀서 먼저 돈과 집고 땅을 성도보도 많이 선점하고 성도를 자신이 복을 받아서 그러니 따르라고 합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뜻과 다른 세상의 나라를 세우고자 합니까? 하나님의 이 땅에 대한 진노는 이런 대형 교회 목사의 행태로부터 시작이 된다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이를 고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이 일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세상의 법을 잘 배워서 세상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십니까? 그런데 이 일은 예수님을 몰라도 합니다. 세상의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이지 않습니까? 절대로 절대로 그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생명이 있는 동안 그분의 구원을 받은 그분의 백성으로 그분의 신부로서 그분의 간절하신 염원을 이루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렇게 하나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율법이 성령의 인도로 시행이 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그 나라의 성격에 대해서,모습에 대해서 역시 로마서는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롬 4: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7.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개역개정 공동번역)
성령을 통해서 율법이 완성되는 나라의 모습입니다. 율법은 정의의 법이기에 율법대로 성도가 살게 되면 정의가 세워집니다. 그 정의가 있으면 평화가 당연하게 옵니다. 그 정의와 평화가 있는 나라가 바로 기쁨이 넘치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에 와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 이 나라를 세우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거창하게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닌 매일 매일 예수님을 잘 믿고 하루하루 살되 성령의 인도를 받기만 하면 세워지는 나라인 것입니
다.
이제 이런 원리도 잊고, 예수님의 마태복음 5장 17-20절도 잊고, 성령도 없이, 사랑도 없이, 마음대로 사는 자가 가는 길이 바로 지옥이 분명합니다. 제가 1000명의 대형교회 목사 대부분이 갈 길이라 하는 것은 자본이 넘치는 이 물질의 시대에 물질의 우상에 완전히 빠져서 너무나 빈부의 격차가 심하게 나서 하루에 한국에서 자살자가 40명이나 되고, 젊은이가 장가를 가지 않고, 직장도 없고 늙은 사람은 양로원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고 독거하고, 아무런 소망도 없이 병자들이 죽어가는 한국에서 이런 현실을 한탄하고 고칠 생각은 조금도 없이 즉 이웃에 대한 사랑이 1% 없이 먼저 교회에 성도가 낸 헌금으로 가장 먼저 수십억을 하는 아파트를 챙기고 한 달에 1천만이 넘는 사례비를 챙기고 10억원이 넘는 퇴직금을 챙기고 자녀에 대한 특혜를 받고 온갖 이런 것 외에 교회의 특혜를 누리면서 모든 자신의 가난한 교인과 이웃을 외면하는 사람이기에 100% 지옥 외에 갈 곳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악행을 세습을 해서 아들까지 지옥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한국에 시행이 된다면 오직 200만 정도만 율법대로 살아도 모든 사람이 집과 땅을 갖게 되고 모두가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 경쟁이 줄고 부모를 모시고 살고 자살자가 거의 없는 세상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너무나 위대한 율법이 있음에도 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지키지 않고 솔선해서 부를 챙기고 성도를 자신과 같이 살아라 하니 이들이 소망이 없는 헬 조선을 만든 주범이 되어서 결코 예수님의 마태 복음 5장 17-20절과같이 천국에 갈 수가 없고 지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이런 위대한 율법을 잘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일생에 걸쳐서 이 중요한 예수님의 말씀을 한 번도 설교하지 않는 자가 어찌 목사라 할 수가 있으며 예수님의 종이라고 교회에서 섬김을 받으면서 살 수가 있습니까? 1000명의 대형교회 목사는 이구절 앞에서 통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구절대로 사시고 성도도 이 구절대로 살도록 설교하시기 바랍니다. 속히 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고자 하면 모든 부를 다 팔아서 가난한 교인과 이웃에게 먼저 나누면서 해야 됩니다. 이를 장로가 따르고 권사가 따르면 이 땅에 비로소 예수님께서 꿈을 꾸시는 그분의 나라가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일을 하라고 예수님께서 1000명의 대형교회 목사와 장로와 모든 성도를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내 생명을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내 피를 흘리는 일도 아니고 어렵고 소망없는 이웃에게 내가 먹고 남은 충분한 부를 나누지 않고 왜 가지고 살다가 지옥으로 가십니까?
우리가 누릴 자유에 대해서 길게 설명을 했습니다. 로마서의 기록대로 성령의 인도로 율법이 완성되고 굳게 서고 그리고 율법이 요구하는 데로 되는 세상을 만들 사명이 모두에게 있습니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참다운 자유는 정의로운 세상에서 확보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국가가 원하는 자유도 역시 헌법과 각종 법이 잘 만들어지고 이 법대로 나라가 통치가 되어야 즉 법치가 이루어져야 정의로운 세상이 되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이 법보다 더욱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 율법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나라로 세상이 주지 못하는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도 주는 완벽한 나라인 것입니다.
그 완벽한 세상을 추구하는 성도, 그 성도를 이끄는 목사, 그 목사 중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1000명의 목사가 세상의 정의도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도 정의도 버리고서 어찌 하나님의 집 교회에서 강단에서 오늘도 헛소로로 밥을 빌어먹고 있는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도야! 온 세상의 사람아! 한국의 모든 문제는 이 1000 명의 대형교회 목사의 무지와 비겁과 그리고 악행에 있음을 믿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들이 바로 가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제 강점기의 악행을 그대로 자행하고 반복하는 1000 명의 대형교회 한국 목사여! 진정한 평화를 사랑하고 성도와 한국을 사랑하는 목자가 되라! 예수님과 그분의 법 율법에 대해서도 깊이 배우고 실천하는 목사가 되어라! 그리고 다시는 그렇게 악한 죄를 다시 나라와 민족과 성도에게 짓지 말라!! 그 자리의 중함과 영광을 알고 불신자보다 못한 악행을 멈추고 불신자 보다 못한 매국적인 행위를 멈추고 스스로 그 자리에서 속히 떠나든지 모든 소유를 오늘 속히 다 팔아서 가난한 형제와 이웃에 나누라!! 나라가 이 지경인데 잠잠하면 구원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있겠지만 너의 네 가족은 멸망할 것이다. 에스더서 4장 13-14절의 말씀입니다.
|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
|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
정의의 하나님! 아버지의 이 시대에 대한 뜻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제게 불을 주시고 40년을 가난하게 살면서 전도하고 성경을 정리하게 하신 목적이 이렇게 말씀을 정확하게 전하라고 하심에 있음을 믿습니다. 제게 영적인 권세를 주시고 힘을 주옵소서! 이 글을 읽는 모든 성도를 감동케 하시고 1000 명의 대형교회 목자가 속히 회개하게 하소서! 나라와 민족의 위기에 행동이 없이 말만 하게 마시고 피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모두가 승리하는 부를 나누게 하소서! 사랑하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가 어려운 사람을 보고 돕는 것입니다. 집도 땅도 없이 절망하는 믿음의 형제와 이웃이 3000만 명이 있는 한국에서 가장 부자로 살면서 나누지 않는 자가 어찌 예수님의 종이라 칭함을 받을 수가 있습니까? 주여! 이들이 수치와 낭패가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사랑이 없고 정의도 없고 행함도 없는 자가 한 명도 대형교회 목사로 부름을 받지 않게 하시고 이 모든 자들이 세상에서 가장 비겁하고 추치를 당해야 할 자들임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고 약하고 정의롭고 가난한 성도의 기도와 하나님도 모르면서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서 무더위도 극복하고 거리에서 모든 어려움을 겪는 백성의 절규를 들으시고 속히 이 나라를 불의에서 건져주시기 바랍니다.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