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나 동행하시는 하나님
40: 17-38
17. 제 이년 정월 곧 그 달 초일일에 성막을 세우니라
18. 모세가 성막을 세우되 그 받침들을 놓고 그 널판들을 세우고 그 띠를 띠우고 그 기둥들을 세우고
19. 또 성막 위에 막을 펴고 그 위에 덮개를 덮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니라
20. 그가 또 증거판을 궤 속에 넣고 채를 궤에 꿰고 속죄소를 궤 위에 두고
21. 또 그 궤를 성막에 들여 놓고 장을 드리워서 그 증거궤를 가리우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니라
22. 그가 또 회막 안 곧 성막 북편으로 장 밖에 상을 놓고
23. 또 여호와 앞 그 상위에 떡을 진설하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니라
24. 그가 또 회막 안 곧 성막 남편에 등대를 놓아 상과 대하게 하고
25. 또 여호와 앞에 등잔에 불을 켜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니라 26. 그가 또 금 향단을 회막 안 장 앞에 두고
27.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니라
28. 그가 또 성막문에 장을 달고
29. 또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번제단을 두고 번제와 소제를 그 위에 드리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니라
30. 그가 또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거기 씻을 물을 담고
31. 자기와 아론과 그 아들들이 거기서 수족을 씻되
32.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와 단에 가까이 갈 때에 씻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니라
33. 그가 또 성막과 단 사면 뜰에 포장을 치고 뜰문의 장을 다니라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필하였더라
34.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36.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37.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아니하였으며
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
===========================================================================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성전을 지으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과 늘 함께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마치 신혼부부처럼 그들과 동거하기 위해서 성전을 짓게 하시고 성전중심의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과 인간이 동거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무한하신 하나님과 유한한 인간이 한방에 사는 것이 가능할까요? 만일 인간이 돼지와 결혼해서 한 방에서 함께 산다는 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더구나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셔서 죄인이 가까이 가면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성전이었습니다. 이 성전은 인간의 죄를 없어지게 만드는 곳인데, 제사를 통하여 죄를 제거해 주심으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있고, 복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말씀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그들은 어느 민족도 경험하지 못한 축복을 경험하며 능력 있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젊은 부부는 자기 집에 노인을 모시고 사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듯,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이 엄청난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오시려고 하셨는데,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영원히 비참한 노예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말씀대로 살아서 복을 누리는 것을 온 천하가 보고 다른 민족들도 하나님을 모시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는 전체 40장 가운데무려 12장이 성전을 짓는 내용입니다. 성전을 짓는 내용이 그렇게 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만큼 성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성전은 순조롭게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지으라고 하셨을 때는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숭배하는 바람에 실패하였고, 하나님이 다시 명령을 주시어 성전을 지었는데,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동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본문 내용은 백성들이 성전의 기구와 텐트를 말씀하신 그대로 만들었더니, 하나님은 이제는 성막을 세우고 그 안에 기구들을 배치하라고 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성전 뜰이 만들어지고, 텐트가 쳐지고, 그 안에 휘장을 막아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고, 뜰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을 배치하고, 성소에는 등대, 떡상, 향단을 놓고, 휘장 안 지성소에는 법궤를 배치하였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그냥 자그마한 건물을 짓고 그 안에 좀 특이한 가구를 비치해 놓은 것이지 별스럽지도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우리의 죄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함께 사는 길을 트는지 의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하였더니 정말로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용서하셨고 날마다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사하실 분은 하나님이시오,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므로 그분의 말씀대로만 하면 어렵지 않게 죄 사함도 받고 사랑도 받는 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제사하면 어떻게 사죄와 구원을 받지요?
제단에서 바치는 짐승은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불순종의 죄 대신에 당신의 생명을 바쳐 순종하실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죄인이 자기 대신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보고 자기의 죄가 죽을죄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가기만 하면, 그 순간부터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빛이 되시고, 생명의 떡이 되시고, 그를 위하여 늘 하나님께 기도하여 주심으로서, 죄인이 하나님의 집안에 들어가 동거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성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성전을 주신 것은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도록 지음 받은 인간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되었었는데, 이 성전으로 인하여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과 문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성전을 주신 이유를 바로 알고 제사를 바로 드림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사명)
이스라엘은 세상의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민족이었습니다. 다른 나라는 무역을 하거나 군사력으로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오직 성전을 잘 짓고 제사를 잘 드리는 민족이 되어야만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책임지고 복을 주셔서 그들이 온 세상의 복이 되며, 빛을 비추는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사명을 가진 그들을 ‘제사장 나라’ 라고 부르셨습니다. 오늘 이것은 우리 신자들에게 가르치는 교훈으로, 세상 사람들은 돈으로, 권력으로, 명성으로 복을 누리려고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순종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겸손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감으로서 세상에 빛을 비추어, 허무에 사로잡힌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하는 ‘제사장 민족’으로 삼으셨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생각이 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만히 보니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이 없는 것 같고 세상은 급하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동일하신 하나님만 따라가는 것보다는 급변하는 세상을 따라 가는 것이 더 현명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따라나섰다가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불행한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지구상에 그들처럼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민족이 없고, 그들처럼 처참한 고난을 당한 민족도 없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이란, 이라크, 시리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사방으로 우겨 싸인 채 날마다 테러의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토록 많이 받은 민족이 왜 그토록 처참한 고난을 당하고 있는지 이유를 아십니까?
그들은 하나님이 조성하신 민족이요, 율법을 받았고 하나님을 경험한 민족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퇴폐 문화를 받아들이며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찾아와 만나주신 하나님, 인간을 회복시키시고 동거하시를 간절히 바라시는 하나님을 정성껏 섬겨서, 하나님이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시고 복되게 하시는지를 온 천하에 드러내어 보여줌으로서, 천하 만민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사명을 가진 민족입니다. 그들이 받은 사명은 세상의 어떤 민족도 받지 못한, 고유하고 복된 사명입니다. 그런데 그런 복된 사명을 따분한 것으로 치부하고 세상을 따라 가다가 사명도 놓쳐버리고 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교회에 성전과 같은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무엇을 가져다가 배우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과 나란히 가는 곳도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를 보관하고 선포하는 곳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담는 그릇입니다. 하나님은 말 못하는 우상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사람에게 언어를 넣어주신 분이고, 당신이 누구시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복되게 살아갈 수 있으며, 그렇게 살 때는 어떤 복을 주시고, 그렇게 살지 않을 때는 징계 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해 주신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오직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그것을 선포하여 온 세상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곳이고,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그 말씀대로 살아서, 사람들에게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인간의 구원이요 행복이라고 힘 있게 생활로 증거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교회가 이 세상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기관처럼 보이고, 세상에 뒤떨어진 사람들의 모임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 세상을 살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관입니다. 교회는 음악공연장이 아니고, 목사는 엔터테이너가 아닙니다. 교회는 진리의 전당이고 목사는 시대의 선지자요 백성들의 선생입니다. 교회가 본질을 바로 파악하고 그것에 주력해야 자신도 사회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무서운 유혹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욕심입니다. 이 세상에는 좋아보여서 배우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고, 이 세상은 정신 차릴 수 없이 급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세상을 열심히 따라가야 그나마 도태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직 말씀만 붙들고 죽으라는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많은 신자들이 세상을 따라가야 할지, 말씀을 따를지 고민합니다.
저는 이 시대에도 교회가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믿고 선언합니다.
그 근거중 하나는,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에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때 앗수르 왕에게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눈동자이기 때문에 결코 예루살렘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앗수르 왕은 사마리아나 예루살렘을 똑같이 생각했습니다. 왜냐 하면 같은 이스라엘 민족이고 사마리아가 예루살렘보다도 훨씬 더 강했기 때문에, 이미 사마리아를 함락시킨 뒤였기에 예루살렘을 아주 얕보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경고했습니다.
사마리아에는 성전이 없지만 예루살렘에는 아직 말씀 따라 예배를 드리는 성전이 있으니 예루살렘을 공격하면 네가 죽는다고 경고했습니다. 앗수르의 왕이 이 말을 무시하고 예루살렘에 쳐들어왔다가 결국 하룻밤에 185,0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군대가 몰살당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가 예루살렘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바른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을 지키려는 성도가 한명이라도 있는 교회는 하나님이 동거하시는 예루살렘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목숨을 걸고 바른 말씀을 지키며, 그분 앞에서 멀어지지 않고 살아가면, 하나님은 그런 살아있는 교회를 보시고 우리나라를 전쟁으로부터 지켜주시고 경제도 회복시켜 주시고 많은 젊은이들에게 놀라운 비전과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바로 선포하고 따르는 한가람교회는 한국의 희망입니다.
또 하나의, 근거는 에스겔의 환상 중에 나타납니다. 에스겔이 환상을 보니까 성전의 문지방 밑에서 생수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 물이 내려갈수록 점점 불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1천척을 내려가서 측량하니까 발목에 오르고, 또 일천 척을 내려가서 재어 보니까 물이 무릎에 닿고, 다시 일천 척을 내려가서 재보니까 물이 허리에 차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내려가서 재어보니까 헤엄쳐야만 할 강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본 이 성전은 신약시대의 교회를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구원의 길, 즉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교회는 처음에는 아주 미미하게 시시하게 보이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그 교회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넓어져서, 성령의 역사가 이 세상을 덮을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물이 허리를 넘어 목에 차오르면 제 맘대로 못하고 물에 떠내려가게 되는 것처럼, 성령의 역사에 떠밀리면 인간이 죄를 지으려고 해도 성령의 역사가 더욱 강하기 때문에 결국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현상들이 벌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는 성령의 역사로만 죽어버린 세상이 살아나는 새 역사가, 진리의 말씀이 살아서 흘러넘치는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계시입니다.
세상을 한번 보십시오. 세월이 갈수록 세상은 더 험난해져 갑니다. 정치도 점점 더 정도를 잃고 있고, 인심도 옳고 그름을 떠나 괴담을 따라 다닙니다. 기름 값에서 시작된 물가는 대책 없이 오르고, 죄악은 날로 더 흉포해지고, 우리 자녀의 시대는 어떻게 될는지 걱정입니다. 정치인들이 변화시켜 줄 것 같습니까? 과학이 희망을 줄 것 같습니까? 세상의 변화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알고 그 말씀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우리를 향한 사랑을 아는 사람은 성도들뿐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보여주지 못하면 세상은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집중합시다. 말씀을 들으러 교회에 나오고, 복되신 말씀에 굴복하여 삽시다. 그러면 우리교회는 우리 대한민국을 살리는 생수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성전을 세운 날)
하나님은 성막을 정월 초일일에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정월 초일일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1.2) “모세가 그같이 행하되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행하였더라. 제 2년 정월 곧 그달 초일일에 성막을 세우니라.”(16.17)
날짜를 기다렸다가 그 날짜에 맞추어 성막을 세운 것이 아니라, 성막을 세운 그 날을 1월 1일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자세히 보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날과, 성막을 세운 날이 1년 시차를 둔 같은 날입니다. 제2년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지 만 1년이 되는 날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출애굽한 날과 성막을 세운 날을 맞추고, 그날로 정월초하루가 되게 하신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출애굽과 성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실제로 언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애굽을 떠난 날부터였습니다.
출애굽 전에는 애굽인들에게 학대받으며 연명하는 노예였을 뿐이지 그들에게 역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을 괴롭히던 애굽 왕과 군대는 홍해에 수장되었고 그들을 괴롭히고 놀라게 할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그들이 써 갈 수 있는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광야에서 성막을 세우고 하나님의 품에 들어간 날부터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언제입니까? 예수를 만난 때부터가 아닙니까? 예수님을 만난 후부터 우리의 정월초하루는 시작됩니다. 과거의 아픈 상처들이 더 이상 나를 괴롭힐 수 없습니다. 과거의 나의 부정적인 모습은 이제 나에게서 떠나갔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 새롭게 되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할렐루야 ~!
하나님이 애굽을 떠난 날과 성막을 세운 날을 일치시켜 주신 것은, 그들이 애굽을 떠난 목적이 하나님을 만나서 그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바로 섬기기 위함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자유를 주신 것은, 세상 욕심을 따라가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너를 만드시고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따르는 바른 삶을 살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는 하나님을 섬길 수있는 자유이고 무한히 하나님께 내 자신을 바칠 수 있는 자유입니다. 결코 자기 마음대로 죄를 지을 자유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명심합시다.
(기름을 부으심)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성막을 완공하고 기구 배치하기를 마치자 하나님은 모든 것들 위에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습니다. 기름을 바른다는 이 모든 것을 이제부터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명령하셨고 인정하셨기 때문에 이 방법대로만 하면 하나님이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구원이 인간의 아이디어나 인간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고안하신 방법이고,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복을 누린다고 알려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머리를 싸매고 어떻게 해야 죄 사함을 받고 복을 누리는지 연구하고 엉뚱한 방법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말씀대로만 믿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
그들이 말씀대로 성전의 기구들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의 것으로 성별하자 하나님은 그 성막 위에 구름으로 임재 하여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성막위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들을 인도하였습니다.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36-37)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가고 멈춤을 성막위의 구름으로 인도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걸음마를 배워야 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구름이 성막 위에서 높이 떠오르면 그들은 성막을 걷어 분해해서 어깨에 메고 길을 떠날 차비를 했습니다. 아무리 그 자리에 더 눌러앉아 있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고 떠나라 하시면 떠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더 가고 싶어도 구름이 멈추면 그 자리에 멈추어서 성막을 세우고, 그 주위로 자기들의 텐트를 치고는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그 자리에 판이 박힌 듯 머물러 있어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훈련입니다. 그러다가 구름이 다시 떠오르면 즉시 모든 미련을 버리고 그 자리에서 옮겨 구름을 따라가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행진에 관한 결정권은 하나님이 가지셨다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본성을 제어하는 훈련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언제나 우리가 먼저 가고 하나님은 뒤에 따라오게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걸어가고 싶어서 못 견디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런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앞을 모르기 때문이요, 우리의 시야는 좁기 때문에, 우리가 앞서게 되면 하나님이 주시려는 축복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을 따라가야만 하는 양입니다.
또한 구름을 따라서 움직이라는 것은, 목적 그 자체보다는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엄청난 은혜를 체험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나안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그간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거기 까지 가는 과정에서 인도하시는 분의 손길과 그의 엄청난 능력과 사랑을 체험하기를 바라시고 날마다 그분의 때와 방법에 따르는 법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홍해가 가로막혔을 때나, 물이 없을 때에도 그들은 하나님을 경험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은 날마다 순간마다 사건마다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고 따라가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분이고, 그릇을 만드는 장인은 그 그릇을 어디에 쓰려고 만든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걸어갈 길과 살아야 할 삶을 미리 정해주셨습니다. 그것을 인정한다면 가라 하실 때 가고, 멈추라 하실 때 멈출 수 있고, 기도하고 순종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 없이 순종만 강요하는 폭군으로만 오해하고서, 내 마음 내 뜻대로 휘저어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이 엄존하는 한, 그리고 우리가 순종하는 체질로 바뀌지 않는 한, 불순종 하는 자에게서 풍성한 삶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구름을 따라 가야만 했고 우리는 말씀을 따라가야만 합니다.
죄인인 인생을 거룩하신 당신 곁에 두시고, 날마다 동행하시며 인도하셔서 바른 길과 풍성한 삶을 경험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도 복이 되고 이웃에게도 빛을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하려고 이스라엘을 불러서 과거를 용서하시고 성막을 짓게 하셨고, 성막을 중심으로 그들과 동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도 말씀의 교회로 부르시고 하나님을 따라가되 하나님의 템포를 배우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어 사는 과정에서 우리의 신앙이 자라고 능력이 자라고 참되고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뀌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도들이 됩시다.